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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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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면서 들어오면 가격 더 부른다” 죄책감이 돈이 되는 파양산업

등록 2023-07-14 22:51 수정 2023-11-02 14:56

“동물 판매는 워낙 많은 업체가 있으니까 자기들끼리 암묵적으로 매겨놓은 가격이 있어요. 소비자도 그걸 알아요. 그런데 파양은 부르는 게 값인 게, 자기가 끝까지 못 키운다는 죄책감을 이용하거든요.”

‘신종 펫숍’이 어떤 방식으로 운영되는지 비교적 잘 아는 심인섭 라이프 대표는 말했습니다. 심 대표는 2023년 4월 경기도 여주의 한 야산에 신종 펫숍이 처리업자에게 넘긴 동물 118두가 매장됐다는 사실을 밝혀냈습니다. 그가 전한 신종 펫숍의 영업전략 중 하나는 “매장에 들어올 때 울면서 들어오는 사람에겐 (파양) 가격을 더 부르는 것”입니다. 이들은 죄책감뿐 아니라, 학대·유기 동물을 구한 사람의 선의도 적극적으로 이용해 더 높은 비용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러나 업체들의 설명처럼 ‘안락사 없는 보호소’는 실현될 수 있을까요? 반려동물을 키우는 분은 아실 겁니다. 반려동물을 키우는 데는 유·무형의 자원이 정말 많이 필요합니다. 기사를 쓰기 위해 ‘안락사 없는 보호소’를 표방한 업체에 파양비를 문의했을 때 업체는 500만원 내외가 들 것이라고 했습니다. 큰돈이긴 하지만, 강아지의 남은 인생을 보장하기엔 부족한 돈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신종 펫숍에서 버니를 구조한 동물보호 활동가 ‘설구아빠’는 “경제학적으로 봤을 때 아무리 봐도 절대 (업체의 설명대로) 운영될 수 없다”고 단언했습니다. 그는 2023년 초 도살장에서 구조한 개 50마리를 돌보기 위해 쉼터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설구아빠는 “한 마리를 돌보기 위해 하루 한시간씩 쓴다고 해도, 한 달이면 약 30만원이 든다”며 “청소와 산책 등을 위한 시간까지 계산하면 개 한 마리를 돌보는 데 드는 인건비가 70만~100만원”이라고 했습니다. 파양비로 300만원을 낸다고 해도 3~4개월 뒤엔 어떻게 될까요? 그렇게 파양된 일부 동물은 영업장에 방치돼 굶거나 죽고, 혹은 산 채로 암매장됐습니다. 동물보호단체들은 이 사건이 빙산의 일각이라고 봅니다. 파양이 용인되지 못하도록 신종 펫숍 규제가 시급한 이유입니다.

다만 이 산업이 유지되는 구조를 고찰하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한국에선 번식장을 통한 반려동물의 대량생산, 경매장에서 이뤄지는 대량 판매와 유통, 쉬운 입양 등의 요인이 어우러지면서 많은 사람이 손쉽게 반려동물을 입양할 수 있습니다. 파양 수요는 그대로 둔 채 신종 펫숍만 규제한다고 해결될 문제는 아니라는 거지요.

서혜미 기자 ha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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