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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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엎어지는 것도 닮은 깔롱쟁이 내 딸

[미안해, 기억할게] 이태원 희생자 이야기 ⑭노류영
‘이렇게 행복해도 되나 싶을 만큼 행복하다’던 늦깎이 대학생, 엄마는 이해 안 가는 게 너무 많다
등록 2023-01-15 13:13 수정 2023-01-19 01:15
일러스트레이션 권민지

일러스트레이션 권민지

“너무 좋아. 이렇게 행복해도 되나 싶을 만큼 행복해.”

27살에 늦깎이 대학생이 된 류영은 엄마 정미진(52)씨가 대학생활이 어떠냐고 물으면 한결같이 대답했다. 사교성이 좋고 사람들 챙기는 걸 행복해하는 류영에게 대학축제며 귀여운 후배와 어울리는 일상은 즐거움으로 가득 찼다. 20대 초중반 간호조무사로 일하면서 적성을 확신하고 부푼 마음으로 발 디딘 간호대학이었다. 류영에게 2022년은 눈부시게 출발한 해였다.

목포에서 부산으로 끊임없이 재잘대던 문자

고향인 부산을 떠나 전남 목포에서 대학생활을 시작한 딸이었지만 가족은 야무진 류영을 걱정하진 않았다. 부산의 병원에서 간호조무사로 일할 때, 류영은 엄마가 일하는 미용실에 놀러 오곤 했다. 그곳에서 동네 사람들의 건강상태를 봐주고 수다를 떨었다. 이모들과도 친구처럼 지냈다. 야간대학을 다니는 이모 정화진(55)씨에게는 “같이 대학 다니니 우린 똑같은 엠제트(MZ)세대”라고 농담하며 누가 더 학점을 잘 받는지 내기하기도 했다.

류영은 애교 많은 딸이었다. 목포에서도 부산에 있는 엄마가 허전할까봐 문자를 보내 자주 재잘거렸다. ‘운전면허 필기시험에 합격했는데 너무 떨렸다’는 소소한 이야기도 축제에서 놀다가 넘어져 무릎에 상처가 난 사진을 보내주며 ‘쾅 엎어지는 것도 엄마 닮았나봐’라며 너스레 떠는 이야기도 재잘거림은 끊이지 않았다. 아빠의 눈가 주름 시술을 직접 예약해주고, 엄마가 예쁘다고 하는 옷은 잊지 않고 선물하는 효녀이기도 했다. ‘염색해줘, 엄마. 금발 머리가 하고 싶어. (엄마가 직접) 해줄 거야?’ 2022년 10월27일 류영이 엄마에게 보낸 문자였다. 이게 마지막 문자가 될 줄은 몰랐다. 그렇게 다음주 부산 집에 가겠다는 약속이 류영의 마지막 연락이 됐다.

엄마 아빠는 류영이 이태원에 놀러 간 사실을 알지 못했다. 10월29일 참사 다음날 아침 8시30분께, 뉴스에서 많은 사람이 이태원에서 일어난 사고로 숨졌다는 내용을 보았다. “우짜노, 그러면서 보고 있었죠. 내 딸이 간 줄은 몰랐어요. 혹시나 해서 (류영에게) 전화했는데 받지 않더라고요. 늦게까지 자나 했다가 문자로 ‘혹시 이태원 간 건 아니지’ 했는데 답이 또 없었어요.” 엄마 미진씨에게 악몽이 시작된 건 그때부터였다. 계속 전화했더니 류영의 휴대전화를 용산경찰서 관계자가 받았다. 경찰은 류영이 어디 있는지 알 수 없다며 우선 실종신고부터 하라고 말했다.

류영을 찾기 위해 가족은 한참 헤매야 했다. 류영의 막내이모 정숙진(48)씨는 모든 병원에 다 전화했다. 경기도 평택 한림대병원에 있다는 경찰의 이야기를 듣고 갔지만 류영은 없었다. 병원 관계자의 시큰둥한 반응에 “이태원에서 사고가 나서 (가족을) 찾으러 다니는데 왜 말을 그렇게 하느냐”고 화내자, 그제야 잠시 기다려보라더니 안양샘병원을 알려줬다.

가족이 노류영씨 사진으로 만든 앨범 표지. 유가족 제공

가족이 노류영씨 사진으로 만든 앨범 표지. 유가족 제공

앨범에 담긴 사진들. 유가족 제공

앨범에 담긴 사진들. 유가족 제공

“이의제기를 하면 장례식은 진행 못한다”는 병원

류영은 그곳에 누워 있었다. 얼굴만 내놓고 옷이 벗겨진 몸은 천으로 감싸진 채였다. “확인했을 때 내 새끼 아닌 줄 알았어요. 믿기지도 않고. 그런데 타투를 보니까 맞더라고요. 실눈을 뜨고 나를 보는 것 같았어요. 그냥 주저앉아버렸죠.”(엄마 정미진씨) 가족은 왜 경찰이 류영의 상황을 제대로 알려주지 않고 실종신고만 하라고 했는지, 딸을 찾아 왜 여러 병원을 전전해야 했는지 아직도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병원 쪽은 사건을 구체적으로 알고 싶으면 이의제기하되, 장례식은 진행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끓어오르는 마음을 누르고 고민하던 가족은 더 이상 차가운 냉동실에 류영이를 두지 않는 쪽을 선택했다. “우리 욕심이라고 생각했어요. 밤에 가서 진술서를 쓰고 확인했고 이의 없다고 해서 장례식이 진행된 거예요. 빨리 해야 한다고 해서 결정했는데, (장례식이) 끝나고 생각하니까 이해되지 않는 게 더 많았죠.”

류영의 장례식에는 많은 사람이 찾아왔다. 친구만 600명 가까이 왔다. 류영을 차마 보낼 수 없던 친구들은 장례식장에 와서도 쉽게 자리를 뜨지 못했다. 2022년 11월11일 류영의 추모공원에는 과자 ‘빼빼로’ 상자로 가득했다. 떠난 친구에 대한 마음을 담은 선물들이었다.

“우리 영이는 노래방에 가도 꼭 애국가를 불렀어요. 자기 나름대로 애국심이 있어서, 주위에서 어이없다는 듯 웃어도 열심히 불렀죠. 친구들과 가도 부른다고 영상을 찍어 보내주더라고요.” 하지만 가족은 그런 류영에게 과연 국가가 있었던 게 맞느냐고 물었다. 이모 화진씨는 “계속 국가에 묻고 싶은 이야기가 많은데, 유가족들이 한탄하는 것만 보도되는 게 속상하다”고 말했다.

류영은 사고가 나고 두 달 가까이 돼서야 처음으로 엄마 꿈에 나왔다. 좋아 보이는 이층집에서 엄마를 맞으며 “여기 왜 왔노” 하고 물었다. 집에 가자고 하자 할 일이 있으니 엄마는 먼저 가라고 말했다. 엄마 미진씨는 요즘도 류영과 나눈 마지막 문자메시지들을 몇 번이고 곱씹어본다. “말도 한마디 안 하고 갔어요. 이렇게 엄마에게 이야기 잘하는 애가 왜 이태원 갔을 때는 얘기를 안 하고 갔을까.”

숟가락 하나까지 짐을 모두 싣고

아빠 노현용(59)씨는 딸을 보내고 난 뒤 딸의 사진과 문자들을 모아 앨범을 만들었다. ‘사랑하는 내 딸을 그리워하며 기억을 담다’라고 쓰인 표지를 넘기면 멋 부리며 찍은 류영의 사진들과, 중학생 시절 길에서 데려온 고양이를 엄마 반대로 키우지 못하자 입양을 보내주려 혼자 연습한 글귀들, ‘항상 고맙고 사랑해’ ‘졸업해서 돈 많이 줄게’ 하고 부모에게 살갑게 보낸 휴대전화 메시지들이 담겼다.

엄마 아빠는 목포에 있던 류영의 짐을 숟가락 하나도 버릴 수 없어 꾸역꾸역 차에 싣고 모두 가져왔다. “1톤 트럭으로 갔는데도 다 못 실었어요, 옷도 가방도 많아서. 우리 딸은 완전 깔롱쟁이(‘멋쟁이’의 경상도 방언)였거든.” 미진씨는 류영의 사진들을 보여주며 추억에 미소 짓다 끝내는 울먹이고 말았다.

김지은 <한겨레> 기자 quicksilver@hani.co.kr

엄마 정미진씨가 딸에게 쓴 편지 

사랑하는 내 딸 류영아. 너무 보고 싶고 만지고 싶고 안고 싶은 내 딸. 더 많이 안아주지 못해서 아쉽고 미안하구나. 이제 어디 가서 내 새끼를 찾아야 하노. 그 순간에 얼마나 아프고 무서웠노. 마지막까지 엄마를 찾았을까. 엄마는 가슴이 미어진다는 표현으로도 모자랄 만큼 어떤 말로도 채워지지 않는구나. 사랑하는 내 딸. 더 많이 사랑한다고 말해줄걸. 늦게나마 공부한다고 최선을 다해준 딸아. 고생했고 고맙다. 엄마를 실망시키지 않으려고 열심히 하고, 이제 철들었다고 걱정하지 말라고 엄마를 안심시켜주던 속 깊은 내 딸. 보는 사람마다 싹싹하고 예쁘다고 할 때마다 행복하고 뿌듯했어. 지금 엄마는 살아가는 목표가 없어져서 공허하고 가슴이 답답해. 꿋꿋하게 견뎌야 한다고 다짐하고 또 다짐해보지만 힘이 든다. 류영아. 이번 생에 엄마 딸로 와줘서 엄마는 너무 행복했다. 너무 사랑하고, 엄마가 죽을 때까지 잊지 않을게. 항상 옆에 있을게.

<한겨레21>은 참사 한 달째부터 이태원 참사 유가족들의 이야기를 싣는다. 추상화로 뭉뚱그려졌던 이야기를 세밀화로 다시 그려내기 위해서다. 우리가 지켰어야 할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이 얼마나 소중한지, 그것이 사라진 이후 가족의 삶은 어떠한지. 유가족이 알고 싶었던 것이 수사 과정에서 어떻게 배제되고, 가족을 위한다고 만든 행정 절차가 어떻게 그들을 되레 상처 입히는지 <21>은 기록한다. 재난의 최전선에 선 가족들의 이야기는 같은 과오를 되풀이하지 않도록 기록하는 우리 사회의 묵직한 사료가 될 것이다. 희생자의 아름다웠던 시절과 참사 이후 못다 한 이야기를 건네줄 유가족의 연락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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