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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미크론 속에서도 반복되는 의료자원 부족, 상품·성장 신기루를 걷고 평등-연대 원리로 의료체계 재조직해야
등록 2022-02-27 23:33 수정 2022-03-01 10:38
서울역 광장에 마련된 코로나19 임시선별검사소에서 노숙인이 검사받고 있다. 연합뉴스

서울역 광장에 마련된 코로나19 임시선별검사소에서 노숙인이 검사받고 있다. 연합뉴스

“선생님, 어제 오셨던 환자분 있잖아요. 입원 병실 없어서 집에 돌아가신 그분이요. 어제 집에 돌아가셔서 극단적 선택을 시도하셨대요.”

내가 진료하는 환자들은 직업병을 앓고 있다. 그도 일터에서 얻은 직업병으로 늘 호흡곤란을 호소하던 환자였다. 코로나19에 감염됐고 중증으로 이행할 확률이 높았지만 다행히 잘 치료돼 입원 10일째 병원에서 퇴원할 수 있었다. 그랬던 환자가 퇴원 하루가 지나 다시 찾아왔다. “선생님, 숨이 너무 차요. 다시 입원하고 싶어요.” 확인해봤지만 빈 병실이 없었다. 평소 입원 병실 일부를 코로나19 환자 전담 병실로 운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환자의 호흡곤란 상태를 확인해보니 당장 응급처치가 필요해 보이지 않았다. “오늘은 병실이 없어 입원하기 힘들어요. 입원 예약을 하고 가시면 병실이 나는 대로 연락드릴게요.” 다른 환자들을 내쫓지 않는 이상 방법이 없었다. 환자와 보호자는 집에 돌아가 병실을 기다리겠다고 했다.

한국 의료가 기출문제 해답을 못 찾는 이유

그가 앓는 질병의 특성상 다른 병원에 가면 진료비 부담이 몇 배가 많을 환자였다. 다행히 지금은 회복돼 우리 병원에서 잘 치료받고 있지만 환자가 극단적 선택을 시도했던 이유는 아마 두려움과 고립감 때문이었을 것이다. 오미크론 변이 대유행 속에 지금 한국 의료시스템은 선택지가 별로 없는 이들을 사지로 내몰고 있다.

코로나19 유행 내내 한국 의료는 입원 병상 부족, 치료 인력 부족에 시달리고 있다. 지난 2년간 사회 전체가 경험한 기출문제인데도 해답을 찾지 못하고 있다. 왜 이렇게 됐을까?

코로나19 이전에 한국 의료와 관련한 공적 담론에서 가장 많이 등장한 단어는 ‘4차 산업혁명’ ‘신성장 동력’ ‘효율성’ ‘비용 절감’ ‘생산성’ 등이다. ‘가난’ ‘빈곤’ ‘노동환경’ ‘질 낮은 일자리’ ‘불평등’ ‘인권’ 등의 단어가 ‘의료’와 함께 거론된 경우는 극히 적다. 이런 담론이 전제하는 이데올로기적 질서는 명확하다. ‘의료는 시장에서 사고팔 수 있는 상품이고, 상품의 질 향상을 통한 소비자 효용 증가는 시장경쟁을 통해서 가능하다’는 관념이다. 의료에서도 비용 절감과 생산성 증가가 필요하고 이는 공공보다 민간이 더 잘할 수 있다는 결론.

이런 관념은 사실 현실과 맞지 않는 신기루에 불과하다. 우선 건강은 존재적 가치다.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이다. 우리는 누구나 건강이 인간 존재의 총체성과 관련됐다는 것을 직관적으로 안다. 그래서 “아픈데도 돈이 없어 치료를 제대로 못 받는 일은 없도록 하겠다”는 대통령의 약속이 지켜져야 하고 지켜지기를 바란다. 둘째, 질병은 누구에게나 던져진 공통의 위험요인이다. 우리는 언제, 어떤 질병에 걸릴지 예측하기 힘들고 대부분 자기 선택이 아니다. 질병은 개인 역량의 한도를 넘어선다. 건강과 질병이 개인의 책임이기보다 사회적 책임인 이유다.

셋째, 상품과 달리 의료적 필요나 수요는 애초부터 구체적이지 않고 개인이 결정하기 힘들다. 의료는 전문지식과 기술에 따라 그 필요나 수요가 구체화하고 결정된다. 본인이 결정하기 힘든 필요나 수요를 ‘현명한 소비자’가 시장을 통해 ‘구매’하기는 힘들다. 의료 전문 지식과 기술, 그리고 그것을 사용하는 이들에 대한 사회적 통제와 관리가 필요한 이유다.

넷째, 환자는 ‘취약한’(vulnerable) 조건에 있는 이들이다. 권력·경제력·학식 등이 있더라도 환자는 불확실성과 무력감으로 의료진에게 의존적이 될 수밖에 없고, 때로 두려움과 수치심을 느끼더라도 의료진 도움을 갈구한다.

미덥지 않은 ‘공공병원 확충’ 공약

마지막으로, 의료를 가장 필요로 하는 이는 권력이 없거나 경제적·사회적 자원이 없는 사람들이다. 어느 사회에서나 억압받는 사람, 차별받는 사람이 병에 더 잘 걸리고 의료를 필요로 한다. 건강과 질병의 다섯 가지 본질 중 이것이 가장 중요하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자본주의사회에서는 가장 필요한 이들이 가장 적게 의료를 이용할 수밖에 없다.

이렇게 본질적 조건 때문에 의료는 시장이 해결할 수 없다. 의료의 수요와 공급은 시장에 맡겨 조절하기 힘들고 사회적·공공적인 제도와 장치를 통해 해결해야 한다. 국가가 나서서 의료의 필요, 수요, 공급을 책임져야 최소한의 정의가 달성된다. 한국은 국민건강보험제도를 운용함으로써 기본적인 보편성과 공공성을 갖췄다. 하지만 의료제도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의료기관 병상과 인력 측면에선 국가가 책임을 다한다고 보기 힘들다.

한국의 병상 중 국가가 책임지는 공공병원의 병상은 전체 병상의 9.7%다. 이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의 7분의 1에 불과하다(2020년 기준). 노무현 정부는 공공병상 30%를 약속했지만 임기 내 공공병원 확충은 없었다. 문재인 정부 역시 공공의료기관 확충을 약속했으나 실행하지 않았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전국 70곳에 공공병원을 확충하겠다고 공약했으나 미덥지 않다.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는 공공병원 확충은커녕 의료를 민간과 시장에 맡기겠다고 대놓고 얘기한다.

정치인들이 어떤 신념으로 의료를 주장하든 우리는 코로나19 대유행이 가르쳐준 가장 중요한 교훈에 직면했다. 의료는 연대(Solidarity)와 우애(Fraternity)에 기초해 있으며 그래야 한다는 것이다. 많은 의료진이 감염되면서도 환자 곁에 있는 이유다. 사람의 건강을 돌보는 일은 상호 연대 없이 가능하지 않다. 연대는 시장에서 행동하는 이기적 개인이 아닌, 인류가 공동으로 내재화하며 발전해온 무언가에 기반한다. 연대와 우애로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은 집단적인 것이다. 가장 강력한 연대는 아래로부터 강력한 참여를 기반으로 조직된 형태다.

억압받고 불행한 이를 걱정할 때

코로나19 유행은 건강은 상품이 아니며 모두가 건강해질 때까지 누구도 홀로 건강해질 수 없다는 평범한 진리를 확인해줬다. 코로나19 이후 의료는 평등과 연대의 원리에 기초해 재조직돼야 한다. 개인의 건강이 모두의 건강의 조건이 되는 공동체를 향한 비전 속에서 구체화해야 한다.

의사이자 인류학자로서 가난한 이들의 건강을 위해 평생을 헌신했던 폴 파머가 2022년 2월21일 타계했다. <감염과 불평등>의 저자인 그는 2009년 미국 보스턴대학에서 마틴 루서 킹의 날을 기념하는 연설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억압받거나 불행한 사람들을 걱정해야 할 때입니다. 깊은 공감과 연대를 이끌어내야 합니다. 무엇보다도 세상을 더 안전하고, 더 정의롭고, 더 인간적으로 만들기 위한 운동에 참여할 때입니다. 누구나 연대할 수 있기 때문에 누구나 위대해질 수 있습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이상윤 직업환경의학과 의사·‘건강과대안’ 책임연구위원

*코로나19 알파-오메가: 사회학·인류학·역사학 연구자와 의사 등 보건의료 연구자가 속한 연구공동체 ‘건강과대안’ 연구위원들이 코로나19와 감염병, 그리고 코로나19 이후의 사회에 대해 매주 짚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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