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방역패스’ 의무적용 집행 효력을 정지하는 결정을 법원이 내리는 등 코로나19 백신 접종에 대한 갈등이 소송전으로까지 비화했다. 백신은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에서 피해 최소화와 바이러스 확산을 차단하는 가장 효과적인 수단 중 하나다. 하지만 백신 접종률이라는 정량적인 지표를 달성하기 위한 수단으로써 방역패스가 가장 유효한 접근이었는지는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 가장 큰 문제는 백신 미접종자에 대한 이해가 매우 피상적이라는 점이다. 어떤 요인 때문에 백신 접종을 주저하거나 거부하는지, 이런 선택이 어떻게 전파되는지를 잘 이해하는 것은 효과적인 정책 개발을 위해서라도 필요하다. 현재 우리는 ‘무식해서’ ‘잘 몰라서’ ‘비이성적이어서’ 같은 모호한 단어들로 이를 묘사한다. 비난과 낙인은 쉽지만, 해결책을 찾아가는 과정은 훨씬 지난하다.
백신 접종을 거부하는 사람들은 하나의 집단으로 균질하지 않다. 백신을 접종한 사람 중에도 추가 접종에는 불안해하거나 접종을 최대한 늦추려는 집단도 존재한다. 미등록 이주민이나 노숙인처럼 접종 이후 적절한 휴식 조건이 주어지지 않는 등 여러 사회적 요인으로 백신 접종을 주저하거나 거부하는 사람들이 있다. 코로나19 혹은 이전의 다른 백신 접종에서 크고 작은 부작용을 경험한 사람들도 있다. 이런 백신 접종에 대한 접근성 문제나 사회적 요인은 다양한 정책적 지원을 통해 완화할 수 있다. 하지만 개인적인 신념과 선택에 따라 백신을 거부하는 사람에게는 어떻게 접근할까.
최근 연구들은 백신 접종을 주저하거나 거부하는 사람들이 단지 정보가 부족하거나 접근성이 낮아서 그런 것은 아니라는 점을 보여준다. 미국에서 이뤄진 연구에 따르면 백신을 거부하는 많은 부모가 고학력 중산층 전문직이었다. 2013년 한국에서도 백신 접종을 거부하는 사람들이 모인 인터넷 커뮤니티를 조사(차혜경 연구팀)한 결과, 커뮤니티 가입자의 3분의 2 이상이 월 소득 300만원 이상 대졸 학력자였다. 2017년 질병관리본부가 보건소에서 백신 미접종자를 추적 조사하는 담당 직원들을 인터뷰한 결과에서는 접종을 거부한 사람 중 상당수가 의사나 한의사였다.
이들은 질병이 완전히 박멸되지는 않았지만 매우 낮은 수준으로 유행하기 때문에 감염에 따른 위험보다는 백신 접종에 따른 부작용 위험이 확률적으로 더 큰 것으로 받아들인다. 혹은 백신 접종에 따른 이득이 개인 차원이라기보다 공동체 전체의 이익을 위해서라고 생각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백신 접종은 공동체의 안전을 지키기 위한 일종의 약속 같은 것이며, 이를 위해 접종 부작용이라는 낮은 위험을 감수하는 것은 사실이다.
이는 현대사회에서 공동체적 가치가 점점 희미해진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개인의 이익과 위험은 개인이 감수해야 한다는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높은 정보 습득력과 해석력을 가진 개인이라면 냉정한 위험이득 계산을 통해 백신 접종을 거부하는 선택을 내릴 수 있다.
접종 정책을 결정하는 전문가들백신에 대해 사람들이 가진 태도나 입장은 다양한 스펙트럼에 걸쳐 있다. 백신 접종을 일종의 절대선으로 간주하고 접종자와 미접종자를 이분법적으로 구분하는 접근 방식은 그에 따른 낙인과 차별을 다양한 형태의 미접종자에게 불평등하게 가중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접종 뒤 부작용 경험 등 불가피한 이유가 있는 경우 예외조항을 두었지만, 방역패스가 전달하는 메시지는 백신 접종자와 미접종자를 이분법적으로 구분하고 미접종자에게는 마땅한 페널티가 가해져도 된다는 것을 공인한다.
이런 맥락에서 방역패스가 현재 백신 접종을 거부하는 집단에 대한 접종률을 최대한 끌어올리는 적절한 전략인지 질문을 던져볼 필요가 있다. 2021년 성인 1차 백신 접종률은 95%를 넘어섰고, 청소년 백신 접종 역시 1차는 80%를 넘어선 상황이다. 현재 백신을 접종받지 않은 성인은 불가피한 사유 또는 사회적 요인으로 백신을 접종받기 어려운 상황에 놓였거나 개인적 신념으로 접종을 강력하게 거부하는 사람일 것으로 보인다. 강제성과 페널티를 부여하는 전략은 오히려 백신 위험성에 대한 신념을 가진 사람들에게 박해로 받아들여져 이들의 신념을 더 공고화할 수 있다.
해법 중 하나는 정책 결정 과정에서 더욱 민주적인 의사결정이 가능하도록 보장하는 것이다. 코로나19 백신 접종 정책을 시행하는 과정에서 반복해 지적되는 것은 지나치게 전문가 중심으로 정책이 만들어지고 결정된다는 점이다. 백신의 효과나 안전성에 대한 부분은 전문가 의견으로 될지 몰라도 누가 먼저 백신을 맞을지 결정하고 백신을 어떤 방법으로 권장하며 백신을 맞기 어려운 사람은 어떻게 보호할지에 대한 논의에는 가능한 한 다양한 이해관계자가 참여해 민주적인 과정으로 결정할 필요가 있다.
정부는 방역패스 같은 접종증명 제도를 시행함에 “미접종자 차별이 없도록 면밀히 설계”할 필요가 있으며 국민 의견을 수렴해야 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2021년 시민건강연구소에서 펴낸 ‘코로나19 백신 보고서’에서는 이런 의사결정 과정에서 시민 참여는 명목상에 불과하거나 거의 이루어지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우리가 궁극적으로 물어야 할 질문은 방역패스와 백신 접종으로 얻고자 하는 목표가 무엇인지를 명확히 하는 것이다. 방역패스의 적용과 범위 확대는 단계적 일상회복 정책의 일환이다. ‘다시 일상으로’라는 문구는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반복해서 사용됐다. 백신과 치료제 개발, 상대적으로 낮은 규모의 확진자와 사망자로 유행을 통제해온 한국의 대응은 이러한 일상으로의 복귀가 눈앞에 다가온 것처럼 보이게 했다. 하지만 구체적으로 각각의 이해관계자가 어떠한 ‘일상’을 목표로 하는지가 합의됐는지 질문해볼 필요가 있다.
과연 앞으로 우리가 마주할 일상에서 과거로의 온전한 회귀가 가능할까. 코로나19 팬데믹은 세계가 마주한 다양한 위기 중 하나일 뿐이다. 심화하는 불평등, 기후위기 같은 전 지구적 변화는 코로나19 같은 감염병이 유행할 환경을 제공한다. 감염병이라는 위기는 반복해서 닥쳐올 가능성이 크며, 지금 같은 팬데믹 수준의 위험은 상존할 것이다. 우리는 어떠한 일상을 상상해야 하는가. 백신, 방역패스 같은 기술적 해법은 이를 도와주는 다양한 도구 중 하나일 뿐이다. 위험이 상존하는 미래의 일상을 살아가는 해법은, 그 위험을 어떻게 분배할 것인지에 대한 사회적 합의에 기반한다. 이러한 기술적 도구들을 통해 우리가 목표해야 할 것은 위험과 낙인, 차별이 불평등하게 배분되는 오래된 일상이 아님은 분명하다.
정준호 의료인문학자·연구공동체 ‘건강과대안’ 연구위원
*코로나19 알파-오메가: 사회학·인류학·역사학 연구자와 의사 등 보건의료 연구자가 속한 연구공동체 ‘건강과 대안’ 연구위원들이 코로나19와 감염병, 그리고 코로나19 이후의 사회에 대해 매주 짚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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