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가 저녁부터 심한 인후통을 호소했다.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고 감기몸살 기운도 있었다. 다행히 코로나19의 대표적 증상인 열은 전혀 없고 기침도 하지 않았다. 혹시나 싶어 자가진단키트로 검사했는데 음성이 나왔다. 그럼 그렇지, 안심했다. 나와 아내 모두 백신을 3차까지 맞았다. 아내는 종합감기약을 먹고 잤다. 코로나19 가족 집단감염의 전조였다는 건 상상도 못했다.
아내는 아침에 일어나서도 목이 계속 아프다고 했다. 말하기 힘들 정도였다. 오전에 집 근처 가정의학과 의원에 간 아내에게서 전화가 왔다. 코로나19 감염이 의심되니 신속항원 검사를 받을 수 있는 다른 병원으로 가보라고 했다는 거다. 검사 결과 양성이 나와 선별진료소에서 유전자증폭(PCR) 검사를 받아야 한다고 했다. 불길한 예감이다. 아내는 두 시간이나 긴 줄을 서서 기다린 끝에 검사받고 돌아왔다. 내일 아침에 결과가 나온다. 연일 ‘오미크론 신규 확진 최고 기록’ 뉴스가 이어지지만 나만 조심하면 된다고 여겼다. 그런데 갑자기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코앞까지 훅 다가온 느낌이다.
둘째 날(2월16일 수): 오미크론오전 9시30분, 보건소에서 아내 휴대전화로 문자메시지가 왔다. “◯◯◯님이 2월15일 코로나19 검사 결과 ‘양성’(확진)으로 판정되었으며, 확진자 및 동거인은 자택 대기하셔야 합니다(외출 불가).” 영문을 모르는 ‘유죄 선고’를 받은 것 같다. “보건소에서 역학조사 대상 문자 오면 URL 접촉 자기기입식 전자 역학조사서(를) 작성(하라)”는 안내도 있었다.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나와 고3인 쌍둥이 아들딸도 감염됐을 가능성이 크겠구나. 아이들은 백신 2차 접종까지 했다. 그런데도 양성 판정이 나오면 어떡하지? <한겨레21> 뉴스룸 메신저 방에 소식을 올렸다. 놀라움과 무탈하길 바라는 마음이 뒤섞인 댓글이 줄줄이 달린다. 일주일 재택근무 방침을 전달받았다.
아이들과 서울 ◯◯구 임시선별검사소에 PCR 검사를 받으러 갔다. 아내의 확진 통보 문자, 그리고 확진자와의 관계를 증명할 주민등록등본을 챙겼다. 오미크론 변이종이 거침없이 확산하자, 정부는 2022년 1월26일부터 고위험군이 아닌 일반관리군은 자가진단키트에서 양성이 나오거나 의사 소견서 또는 확진된 동거 가족이 있어야만 PCR 검사를 해준다. 집에 돌아오는 길에 비상식량을 한가득 샀다. 대부분 죽, 볶음밥, 인스턴트 국, 컵라면, 피자 같은 즉석조리 간편식과 빵, 과일이었다. 손소독 물티슈도 샀다.
아내는 대체 어디에서 감염된 걸까? 최근 며칠 새 외출은 주말에 나와 함께 한 시간 남짓 산책한 게 전부다. 국숫집에서 늦은 점심을 먹을 때를 빼고는 줄곧 마스크를 썼다. 감염원을 짐작하기 어렵다.
오늘은 우크라이나 관련 기사 마감일이다. 우크라이나 국경 지역에선 러시아와 일촉즉발의 군사적 긴장 상태가 이어지고 있다. 오전 9시가 채 안 돼 아이들보다 먼저 나한테 보건소 문자 통보가 왔다. “조일준님, PCR 검사 결과 음성입니다.” 천만다행, 시작이 좋다. 조금 뒤 아이들에게도 잇따라 문자 통보가 왔다. 결과는…, ‘양성’(확진) 판정이었다. 아득해졌다. 집안이 보건 위기 사태다. 침착해지자. 나까지 감염되면 안 된다. 4인 가족 모두가 ‘외출 금지, 재택치료’ 격리 생활을 할 순 없잖은가. 오미크론 변이종이 전파력은 강하지만 독성은 약하다는 의료계 평가를 상기했다. 아이들 학원에 전화로 사정을 말하고 당분간 재택수업 또는 자체 휴강을 결정했다.
우리 집은 방 세 칸 아파트다. 확진자 세 명이 각각 하나씩 전용 격리공간으로 쓰고, 나는 당분간 거실에서 지내기로 했다. 모두 마스크를 쓰고, 컵과 수건을 따로 쓰고, 식사도 시차를 두고 따로 먹기로 했다. 아내는 수시로 소독 티슈로 방문과 화장실 문, 수도꼭지 등을 닦는다. 갑자기 집안 분위기가 썰렁해졌다. ‘격리 속 격리’가 심리적 거리감까지 자아낸다.기사 마감시간은 어김없이 다가온다. 영문 자료와 외신 뉴스를 들여다보지만 눈에 쏙쏙 들어오질 않는다. 기사를 어떻게 썼는지 모르겠다. 식구들은 평소보다 음식을 적게 먹었다. 입맛도 떨어진 걸까.
아이들도 코로나19 증상에 시달리기 시작했다. 심한 인후통과 근육통. 다들 힘겹게 견뎌내고 있다. 온 식구가 집에서 마스크를 쓴 풍경도 차츰 익숙해진다. 약을 사와야 한다. 오전에 동네 의원에 전화해 상담했다. 의사는 처방전을 병원 건물에 있는 약국에 맡겨두겠다고 했다. 유일한 음성 판정자인 내가 ‘대리 수령인’ 자격으로 약을 찾으러 갔다. 일주일 분량. 약사는 정부가 처방료와 약값을 지원한다고 했다.
약을 먹으려면 먼저 밥을 먹어야 한다. 즉석 전복죽을 데웠다. ‘방콕’ 하던 아들이 나와 식탁에 앉았는데, 울음을 터뜨리기 직전이다. 온몸이 너무 아프단다. 예상치 못한 상황이 벌어졌다. 아들이 손가락이 경직되고 꼬여서 숟가락을 쥘 수 없다는 거다. 숨이 가쁘고 식은땀도 흘렸다. 가슴이 철렁했다. 아내가 아들에게 죽을 떠먹여주고 손을 주물러주는 동안 나는 재택치료자 지정병원인 서울시립 ◯◯병원에 전화를 걸었다. 상담 간호사는 아들의 증상을 날짜별, 시간순으로 꼼꼼히 묻고 기록했다. 아들의 손톱 색깔이 보라색을 띠는지도 물었다. “아, 손톱 색깔이 ‘산소포화도’와 관련이 있겠구나” 짐작했다. 그런데 산소포화도가 포함된 재택치료 키트는 지급받지 못했다. 상담 간호사는 아들 증상을 전달받은 의사가 전화할 거라고 말했다.
2월10일부터는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더라도 60살 이상 등 ‘집중관리군’에만 의료기관의 건강 모니터링과 재택치료 세트를 제공한다고 정부가 발표한 소식을 뒤늦게 확인했다. ‘일반관리군’은 자택에서 스스로 건강을 관리해야 한다.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에 따르면 전체 재택치료자 중 집중관리군은 약 15%, 일반관리군은 85%를 차지한다.
오후 5시가 되도록 지정병원에선 연락이 없다. 전화했다. 상담 간호사가 아들 이름을 확인하더니 약 처방전이 지정된 약국에 팩스로 전달됐으니 보호자가 대리 수령하면 된다고 알려준다. 확진자가 폭증하는 상황임을 고려하면 안내가 늦은 걸 탓할 수도 없다. 저녁 식사 뒤 아들은 새 약을 먹고 잠들었다. 국내 신규 확진자가 10만9715명(2월18일 0시 기준), 팬데믹이 시작된 지 2년 만에 처음으로 하루 신규 확진자가 10만 명을 넘은 날이었다.
온 집안이 조용하다. 나 홀로 안방에 갇혀 지내는 ‘격리 속 격리’가 답답했다. 며칠 전 구매한 과학책들을 읽으려 식탁에 앉았다. 책 속에 빠져든 지 얼마나 지났을까. 거실 소파에 힘없이 누워 있던 아내가 “나는 마스크를 쓰고 있는데 왜 당신은 안 쓰느냐”고 타박한다. 답답해서 잠깐 벗었는데 들켰다.
서울에서 확진 판정을 받고 혼자 재택 격리 중이던 50대 남성이 숨진 채 발견됐다는 뉴스가 나왔다. 숨지기 전날, 격리차 외부에 머물던 가족에게 “몸이 안 좋다”고 한 게 세상에 남긴 마지막 말이 됐다. 가족이 있어도 이런 일이 생기는데, 곁에 돌봐줄 사람이 없는 1인 가구 확진자들은 오죽할까. 디지털 소통에 미숙한 노년층과 시청각 장애인 등 감염병 취약 계층은 또 어떨까.
여섯째 날(2월20일 일): 호전식구들 증상이 호전되기 시작했다. 아들은 낮엔 근육통이 거의 없어졌지만 잘 때는 다시 온몸이 아프다고 했다. 코막힘은 여전하다. 딸도 근육통은 사라졌지만 여전히 인후통과 두통을 호소한다. 아내는 정신이 몽롱하고 무기력감이 가시지 않는다고 한다.
저녁 뉴스에선 신규 확진자가 사흘 연속 10만 명을 넘겼고 재택 치료자가 45만 명을 넘었다는 보도가 나온다. 아들이 야식으로 치킨을 배달시켜 먹는다. 방에서만 칩거하던 딸아이도 슬며시 문을 열고 나온다. 어제 이어 이틀째 밤참이다. 아이들이 입맛을 되찾은 것 같아 다행이다.
새로 한 주가 시작됐다. 집 안 분위기는 여전히 절간처럼 조용하다. 아이들은 평소에도 자기 방에서 좀체 나오지 않지만, 확진 판정 이후엔 더욱 그렇다. 요 며칠 습관처럼 아내와 아이들에게 증상을 물었다. 다들 한결 나아진 듯하다. 약간의 인후통과 코막힘이 공통 증상. 나는 오전에 다시 보건소에 가서 PCR 검사를 받았다. 최초 확진자인 아내가 검체 채취일에서 7일 뒤 격리가 자동 해제되는데, 그 경우 음성 판정 밀접접촉자는 그 1~2일 전에 다시 PCR 검사를 받아야 한다.
여덟째 날(2월22일 화): 터널 끝아침 일찍 보건소 문자 통보가 왔다. “조일준님, PCR 검사 결과 ‘음성’입니다.” 아내는 오늘부터, 아이들은 내일부터 자동 격리해제다. 점심 때엔 아들이 스파게티를 만들었다. 저녁은 누룽지 닭백숙을 사와서 먹었다. 텔레비전 뉴스에선 ‘재택치료 확진자 급증’ ‘보건의료 종사자와 공무원의 과로가 위험 수준’ 같은 뉴스가 쏟아진다.
네 식구가 집에 갇혀 지내다보니, 자잘한 집안일이 끝도 없다. 하루에도 몇번씩 끼니와 간식 차리고 치우고, 틈틈이 먹거리 사오고, 아이들 약 먹었는지 확인하고, 세탁기 돌리고, 마른 빨래 수납하고, 쓰레기 분류(재활용·일반·음식)해 내놓고, 보리차 끓이고…. 가사노동, 돌봄노동의 고단함을 실감한다.
해방이다! 확진 판정을 받은 세 식구 모두 자가격리에서 ‘해제’됐다. 방역 지침이 규정한 7일이 지나서다. 이제 집 안에선 마스크를 벗어도 괜찮은 걸까? 정말로 다중이용시설에 가도 되는 걸까? ‘자동 격리해제’가 환자 개인과 보건역학에 무슨 의미인지, 격리해제 이후에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구체적 정보를 받지 못했다.
우리 가족은 큰 고비를 넘었지만 상황은 녹록지 않다. 2월23일 0시 기준 신규 확진자가 17만 명을 넘어섰다. 하루 만에 7만 명이 늘었다. 가족 내 감염이 30~40%로 추정된다. 재택치료자는 50만 명이 넘는다. 곧 3월, 봄이 오고 새 학기가 시작된다. 일주일 전 <21> 뉴스룸에 가족 감염을 알렸을 때 구둘래 팀장이 건넨 유머 섞인 위로가 떠오른다. “확진되더라도 안 아프고 지나가기를. 지나고 나면 선배는 세계 최강. (이쯤되면 그냥 걸리고 지나가는 게 낫겠다는….)” 이제 우리 가족은 정말 면역력 ‘세계 최강’이 된 걸까? 알 수 없다.
글·사진 조일준 선임기자 ilj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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