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SBS에서 방영한 <김어준의 블랙하우스>를 기억하시나요? 이 프로그램에 방송인 강유미씨가 뉴스의 중심이 된 이들을 직접 찾아가는 코너가 있었습니다. 강씨가 강원랜드 채용 비리에 연루됐다는 의혹이 제기된 권성동 의원에게 불쑥 다가가 “강원랜드에 몇 명 꽂았나요?”라고 ‘돌직구’를 던진 편이 큰 화제가 됐지요.
이런 강씨를 가리켜 진행자 김어준씨는 “기자들이 했어야 할 질문을 대신 던졌다”며 “올해의 기자상을 받아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기레기들보다 훨씬 낫다’ ‘기자들은 뭐 하고 있냐’며 기자를 비난하는 댓글도 쏟아졌습니다. 과연 방송인이 기자보다 취재를 잘했을까요? 기자들은 다 손을 놓고 있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강원랜드 채용 비리는 2017년 9월 <한겨레>가 강원랜드 감사보고서를 단독 입수해 보도하면서 세상에 처음 알려졌습니다. 다른 언론사들의 후속 취재로 부정 채용의 구체적 방법도 드러났습니다. 대중의 기억에서 빛나는 건 ‘강유미 기자’뿐이지만, 오히려 이 사건은 기자들의 활약이 돋보인 사례였습니다.
의혹의 당사자를 기다리다 갑자기 나타나 질문을 던지는 취재를 ‘앰부시(Ambush·매복) 기법’이라 합니다. 유명인이 손을 내젓거나 고개를 숙이며 도망가는 장면이 자주 연출되지요. 나쁜 짓을 저지른 사람을 곤경에 몰아넣는 통쾌함을 주기에 시청자는 앰부시 취재에 뜨거운 박수를 보냅니다.
그러나 앰부시 기법이 진실을 밝혀내는 데 효과적인 방식은 아닙니다. 기자의 기습적인 질문을 받고 순순히 죄를 자백할 사람은 아무도 없으니까요. 게다가 상대에게 모욕이나 망신을 주면 향후 취재가 원활하게 될 가능성이 크게 낮아집니다. 진실을 밝히기보다 이미 정해진 진실을 극적으로 보여주기 위한 방식이라고 할까요?
알려지지 않은 사실을 밝혀내기 위해서는 정보를 손에 쥔 사람과 싸우기보다 우호적 관계를 쌓는 게 효과적입니다. 기자가 정치인이나 검사와 어울리는 걸 두고 말이 많습니다. ‘좋아하는 형님들’과 이권을 주고받는 기자들은 욕먹어 마땅하지요.
그러나 기자가 이들과 만나는 일 자체는 문제가 아닙니다. 기자는 시민이 필요로 하는 정보를 알아내기 위해서라면 어떤 악인과도 웃는 낯으로 만날 수 있어야 합니다. 역사 속 특종은 그렇게 만들어졌습니다.
많은 분이 오해하는 점이 있습니다. 기자는 ‘나쁜 놈을 혼내주는’ 사람이 아닙니다. 기자는 ‘나쁜 놈과 어울려서라도’ 시민이 몰랐던 새로운 사실을 찾아내 전달하고 기록하는 사람입니다. 수사권을 가진 검사도 아니고 사법권을 가진 심판관도 아닌 기자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입니다.
오늘날 많은 시민이 바라는 기자는 ‘나쁜 놈을 혼내주는’ 영웅 쪽에 가까운 것 같습니다. 악을 징벌하고 정의를 실현하는 언론을 기대합니다. 국회의원에게 망신 주는 앰부시 취재를 보며 환호하는 이유입니다. 이들이 바라는 언론상을 저는 ‘권선징악 저널리즘’이라 부르고 싶습니다.
‘선 넘는’ 언론이 칭찬받는다지금 우리는 정의를 향한 열정이 과잉된 사회에 살고 있습니다. 정의가 강물처럼 흘러야 하는데, 정의를 외치는 목소리만 홍수처럼 넘쳐납니다. 정의가 좌절된 현실과 이상적 정의를 바라는 외침 사이의 간극이 너무 큽니다. 그러다보니 흑백논리로 선과 악을 규정하고, 적법한 절차를 건너뛰어서라도 악을 처단해 이 간극을 메우려는 조급한 열망을 자주 목격합니다.
정의를 향한 과도한 열정은 언론이 부족한 정의를 채우는 데 적극적 역할을 해야 한다는 믿음으로 이어집니다. 그게 권선징악 저널리즘입니다. 선한 일을 하고 악을 벌하자는 건데 나쁠 게 뭐냐고 물을 수 있겠지만, 권선징악 저널리즘은 언론을 병들게 하는 심각한 위험 요인입니다.
가장 큰 문제는 언론을 오로지 도구로만 바라보는 인식입니다. 권선징악 저널리즘은 ‘절대악’ 척결이라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라면 언론 본연의 가치나 원칙도 기꺼이 희생시킬 수 있다고 믿습니다. 언론이 사실을 조작하거나 과장하더라도, 진영 논리를 노골적으로 따르더라도, 누군가의 사생활과 인권을 침해하더라도 눈감습니다. 아니, 오히려 그럴수록 훌륭한 언론이라 칭찬합니다.
문재인 대통령을 싫어하는 분들은 21대 총선에서 부정선거가 있었다고 주장하는 유튜브 채널 <가로세로연구소>에 열광합니다.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경선 후보를 싫어하는 분들은 그의 가족 사생활과 관련된 루머를 파헤치는 유튜브 채널 <열린공감TV>의 보도를 응원합니다. 모두 나름의 정의감에서 비롯됐겠지만, 이 콘텐츠들이 진실과 인권의 차원에서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은 걸 지적하진 않습니다.
권선징악 저널리즘을 바라는 시민이 많아질수록 선을 넘는 언론은 늘어나게 돼 있습니다. 비뚤어진 기대에 영합하면 손쉽게 돈을 벌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한강 대학생 사망 사건의 진실을 밝혀야 한다고 믿는 분이 있으니 무고한 친구를 범인으로 몰아가는 유튜버들이 나오고, 아동 성범죄자 조두순이 천벌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분이 있으니 많은 유튜버가 그의 집 앞에 몰려가 소란을 피우는 거지요.
권선징악 저널리즘이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진 건 아닙니다. 우리 언론에는 일제나 독재정권에 맞서 싸우며 옳은 길을 제시하고 대중을 계몽하는 지사(志士)적 언론인의 전통이 있습니다. 정의를 위해 분연히 싸우는 기자를 기다리는 대중의 심리는 이런 지사적 언론인의 이상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지금 일제나 독재에 맞서 싸우는 게 아닙니다. 다양한 가치가 공존하는 사회에서 나의 정의는 누군가의 불의일 수 있습니다. 보수의 정의와 진보의 정의는 다릅니다. 민주주의는 이 다름을 인정하는 관용 위에서 가능하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합니다.
우리가 오늘날 싸워야 할 민주주의의 적은 나와 생각이 다른 이를 악으로 여기고, 무슨 수를 써서라도 상대를 없애버리려는 지독한 불관용입니다. 권선징악 저널리즘은 언론을 불관용의 무기로 삼는다는 점에서 위험합니다.
권선징악 저널리즘을 벗어나 사실 전달 저널리즘에 충실하기. 언론이 가야 할 길입니다. 생각이 달라도 합의할 수 있는 공통의 영역인 ‘사실’을 발굴하고 검증하는 일에 언론이 집중할 수 있도록 시민들이 도와줘야 하겠습니다.
박영흠 협성대학교 미디어영상광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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