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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은 동물의 얼굴도 하지 않았다

등록 2026-04-02 22:22 수정 2026-04-09 11:45
사람가족이 손잡고 동물가족을 만나러 가는 건 그야말로 신나는 소풍이지.(물론 이상한 일이기도 해.) 전쟁 전 이라크 바그다드의 동물원 풍경도 그랬을 거야. 재잘재잘 아이들 웃음소리가 사방에서 들렸겠지. 2025년, 이란 테헤란의 동물원 풍경 또한 같지 않았을까. ‘우리 동물원’에 폭탄이 떨어진다는 걸 상상할 수 없는 나라의 사람들과 그게 일상이 되어버린 나라의 사람들은 어디서, 어떤 얘기를 나눠야 할까. 2015년 미국 로스앤젤레스의 동물원.

사람가족이 손잡고 동물가족을 만나러 가는 건 그야말로 신나는 소풍이지.(물론 이상한 일이기도 해.) 전쟁 전 이라크 바그다드의 동물원 풍경도 그랬을 거야. 재잘재잘 아이들 웃음소리가 사방에서 들렸겠지. 2025년, 이란 테헤란의 동물원 풍경 또한 같지 않았을까. ‘우리 동물원’에 폭탄이 떨어진다는 걸 상상할 수 없는 나라의 사람들과 그게 일상이 되어버린 나라의 사람들은 어디서, 어떤 얘기를 나눠야 할까. 2015년 미국 로스앤젤레스의 동물원.


 

전쟁이 모든 것을 앗아간다고들 하지만, 맞는 말일까.

‘모두가 지는 전쟁’이란 표현은 고개를 끄덕이게 하는 문학적 수사일지는 몰라도 현실과 다르다. 전쟁은 많은 것을 앗아간다. 많은 걸 쓸어엎는다. 하지만 주워 담는다. 그게 없다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가 무엇 하려 이란에 폭탄을 쏟아붓겠는가.

석유든, 정적 제거를 통한 국제적 패권이든, 궁지에 몰린 국내 정치의 탈출구 모색이든, 혹은 쌓아둔 무기의 재고 처리든 그들은 얻고자 하는 마음으로 이 전쟁을 벌였다. 설령 그들이 진다 한들 이 전쟁으로 얻는 자들이 없어지나. 모든 전쟁은 가늠하기 힘든 파괴와 고통과 눈물을 남기고, 폐허 위에 전리품을 놓는다. 누가 독차지할 것인가, 어떻게 나눌까를 두고 다시 다툼이 벌어지곤 한다.

전쟁의 결정권자는 트럼프가 그렇듯 포화 속에 살지 않는다. 그자는 오늘도 여봐란듯이 골프를 즐겼다. 침략군이든, 방어군이든, 그 속의 민간인이든 전쟁의 불길을 마주해야 하는 이들은 ‘사선’을 넘나들며 적과 싸우고 죽음과 싸우며 자신과 싸운다. 적과 싸우는 동물적 행위는 생존 가능성을 높여주지만, 자신과 싸우는 인간적 행위는 생존 가능성을 낮춘다.

전쟁은 ‘총동원’의 명령이자 ‘총체적 난국’의 엄습이다. 남과 여의 경계가 흐릿해진다. 살고자 죽여야 하고, 살고자 숨어야 하는 상황에서 남녀는 다르지만, 암수는 다르지 않다.

제2차 세계대전 중 100만 명을 웃도는 여성이 전쟁에 가담했다. 남성에 비해 주요 종사자는 아니었다. 당연한 듯 그들이 품은 이야기는 전쟁의 일부가 되지 못했다. 전쟁을 사후 포장하고, 영웅담 앞에 초대형 확대기와 스피커를 갖다놓는 일은 승전국과 패전국 모두가 하는 짓인데, 그럴 때 여성의 이야기는 덜 매력적이었던 것이다. 양념일지언정 메인요리가 될 수 없었다. 벨라루스의 작가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는 참전여성 200여 명의 기억을 옮겨 적었다. 그들에게 전쟁이 무엇이었으며, 삶과 생각을 어떻게 바꿔놓았는지 귀담아들었다. 베테랑 참전군인에게선 들을 수 없던 이야기를 모아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를 펴냈다. 제목 끝에서 느낌표와 물음표가 함께 서성댄다. 전쟁은 사람을 동물로 만들고, 동물을 사물로 만든다. 사람 목숨 오락가락하는 판에 동물 따위 무엇이란 말인가. 동물은 방치되고, 굶어 죽으며, 사살당하고, 잡아먹힌다. 전쟁기 동물의 가치는 압축된다. 먹을 만한가, 짐을 나를 만한가.

바그다드 동물원은 이라크의 자랑이었다. 독재자 사담 후세인 일가는 애완사자를 기를 정도였다. 2003년 전쟁과 함께 동물원은 쑥대밭이 됐다. 폭격에 이은 방치와 약탈로 수많은 동물이 희생됐다. 그 소식을 주워들은 남아프리카공화국 ‘코끼리아빠’ 로런스 앤서니는 대책 없이 바그다드로 뛰어든다. 좌충우돌 행동기를 ‘바그다드 동물원 구하기’란 책으로 펴냈다. 책을 읽다가 오늘 문득 이란 테헤란의 동물원을 떠올린다면, 사람 목숨 오락가락하는 판에 참 철없는 짓일까.

전쟁의 얼굴 위엔 언제나 가면이 있다. 가면을 벗기면 누가 나오는가.

 

 

사진·글 노순택 사진사

 

*노순택의 풍경동물: 어릴 적부터 동물 보는 걸 좋아했습니다. 동물을 키우려고 부모님 속을 썩인 적도 많았지요. 책임의 무게를 알고부터 키우는 건 멀리했습니다. 대신 동물책을 많이 읽었지요. 시골로 내려와 살기 시작하면서 개와 닭과 제가 한 마당에서 놉니다. 작업을 위해서, 또는 다른 일로 국내외 여러 곳을 오갈 때면 자주 동물원에 들릅니다. 편안한 마음과 불편한 마음이, 마치 거울을 보는 것처럼 스며들거든요. (격주로 연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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