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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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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접 사인은 고혈압, 간접 사인은 고립감

코로나19 심화된 2021년 무연고 사망자 추이 2020년 같은 기간 비해 3배 가까이 급증, 죽음의 결정적 요인은 ‘사회적 고립’
등록 2021-10-21 05:51 수정 2021-10-27 02:13
서울 영등포구 쪽방촌에서 살다가 2021년 9월 암으로 숨진 50대가 살던 방에 있는 냉장고 문이 열려 있다. 냉장고 앞에는 방 주인이 119구급차에 실려가기 직전의 응급상황을 보여주듯 주사기들이 흩어져 있다. 그가 무연고 사망자에 해당하는지는 10월14일 현재 확인되지 않았다. 박승화 기자

서울 영등포구 쪽방촌에서 살다가 2021년 9월 암으로 숨진 50대가 살던 방에 있는 냉장고 문이 열려 있다. 냉장고 앞에는 방 주인이 119구급차에 실려가기 직전의 응급상황을 보여주듯 주사기들이 흩어져 있다. 그가 무연고 사망자에 해당하는지는 10월14일 현재 확인되지 않았다. 박승화 기자

최근 몇 년간 무연고 사망과 고독사가 계속 증가하고 있다. 노년층뿐 아니라 20~50대 청장년층에서도 늘어나는 추세다. 무연고사와 고독사의 원인이 되는 빈곤, 관계 단절, 우울, 고립감 등을 더 이상 개인이 아니라 사회적 문제로 다뤄야 하는 이유다. 영국과 일본은 국가 차원에서 이 문제에 대처한다. 영국은 2018년 ‘외로움부’를 설립해 담당 장관직을 신설했고, 일본도 2021년 고독·고립 문제 담당 장관직을 만들었다.
한국에서도 2021년 4월부터 ‘고독사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이 시행됐다. 보건복지부가 5년마다 고독사 실태조사를 하고 고독사 예방 기본계획을 세우도록 했다. 정부는 2022년 초 실태조사에 착수할 계획이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고립과 단절 문제가 심각해지는 상황에서 뒤늦은 감이 있다.
무연고 사망과 고독사는 조금 다른 개념이다. 고독사는 가족, 친척 등 주변 사람과 단절된 채 홀로 사는 사람이 혼자 임종을 맞고 일정한 시간(통상 3일)이 흐른 뒤에 주검이 발견되는 죽음을 말한다. 무연고 사망이란 연고자가 없거나, 연고자를 알 수 없거나, 연고자가 있지만 주검 인수를 거부·기피하는 경우를 뜻한다. 연고자는 부모, 자식, 형제자매 등만 인정된다.
<한겨레21>은 2020년 1월부터 2021년 8월까지 609일 동안 공영장례를 치른 서울 무연고 사망자 1216명에 관한 자료를 분석했다. 서울시 무연고 사망자의 공영장례를 지원하는 나눔과나눔의 도움을 받아, 무연고 사망자의 연령과 주거지, 사망 원인 등을 다각도로 살폈다. 6개월여 서울 영등포와 동자동 쪽방촌을 찾아다니며, 무연고 사망자들의 가족과 지인을 만났다. 공영장례가 치러지는 서울시립승화원을 여러 차례 방문하며 살아 있을 때 잘 보이지 않았고 죽고 나서야 무연고 사망자라는 숫자로 기록된 이 ‘투명인간’들의 지난 삶의 퍼즐을 모으고자 했다. 이들이 투명인간이 될 수밖에 없었던 과정이 드러나야, 정부와 사회가 무연고 사망자에 대한 실효성 있는 대책을 세울 것이라고 판단했다.
제1384호에서는 무연고 사망자가 가장 많이 발생한 서울 영등포구 쪽방촌이라는 공간을 중심으로 이들의 삶을 추적했다. 코로나19로 사회적 고립이 심해지면서 지난 1년간 무연고 사망자가 크게 증가한 추세, 2020년 무연고 사망자 665명의 사망 원인에 대해서도 분석했다. 관련 보도는 다음호 제1385호에서도 이어진다. 1인 가구 증가 등으로 무연고 사망이 더는 우리 일상과 멀리 있지 않은 현실, 앞서 대책을 마련한 영국과 일본의 사례 등을 깊이 있게 다룰 예정이다._편집자주

2021년 1~8월 공영장례를 치른 서울의 무연고 사망자는 551명. 2020년 같은 기간(400명)에 견줘 37.8%(151명)나 증가했다. 서울시 공영장례를 지원하는 사단법인 나눔과나눔이 서울의 25개 구청에서 받은 공문을 종합해 집계한 결과다. 37.8%는 최근 들어 도드라지게 나타난 숫자다. 2016~2020년 4년 동안 전국 무연고 사망자(보건복지부가 국회에 제출한 자료) 연평균 증가율이 13.9%라는 점과 견줘보면, 지난 1년간 3배 가까이 무연고 사망자 증가폭이 부쩍 가팔라진 셈이다(표 참조).

폭염 사망자 역시 노인·빈곤층·1인 가구에 집중

박진옥 나눔과나눔 상임이사는 “무연고 사망자가 해마다 증가하는 핵심 원인은 빈곤과 가족관계 단절 때문이다. 그런데 코로나19 유행은 경제적으로 빈곤한 사람들을 더 빈곤하게 만들고, 사람들 사이에 더 거리를 두게 했다. 지난 1년 사이 서울 무연고 사망자 증가폭 38%에서 연평균 증가폭 14%를 뺀 24%포인트가량은 코로나19 재난의 영향 때문에 늘어난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1년간의 변화를 좀더 뜯어보면 무연고 사망자 중 65살 이상 노인이 2020년 188명(47%)에서 2021년엔 282명(51.2%)으로 늘었다. 기초생활수급자도 1년 사이 232명(58%)에서 361명(65.5%)으로 늘었다.

오랫동안 고독사 연구를 해온 송인주 서울시복지재단 정책연구실 선임연구위원은 “취약계층일수록 환경 변화로 인해 사망할 가능성이 더 높아진다”고 분석했다. 코로나19라는 재난 상황에서 취약계층이 가장 먼저, 가장 큰 타격을 입었을 것이라는 해석이다. 송 연구위원은 “비대면 거리두기로 인해 기존의 돌봄서비스가 약화되거나 그동안 관계를 맺는 공간이었던 지역사회 복지관, 노인정 등이 문을 닫으면서 노인들의 사회적 고립이 심화됐다”며 “만성질환자, 근로능력 상실자, 장애인 등이 대부분인 기초생활수급자 무연고 사망자가 늘었다는 점 역시 비슷한 맥락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팬데믹(감염병 대유행) 같은 재난이 닥쳤을 때 누가 죽음에 이르게 되는지를 결정하는 주요 요인 가운데 하나는 ‘사회적 고립’이다. 1995년 섭씨 41도까지 올라가는 폭염이 덮친 미국 시카고에서 700명 넘는 사망자가 발생했는데 사망자 대부분은 노인, 빈곤층, 1인 가구 등이었다. 이 죽음을 ‘사회적으로 해부’한 학자들은 “폭염 사망자의 지형도가 빈곤과 폭력범죄 등 불평등의 지형도와 대부분 일치하지만, 독거노인 숫자 등이 비슷한데도 피해자 수가 10배 가까이 적었던 지역은 낮은 범죄율 덕분에 노인들이 활발한 사회적 교류를 했던 지역”이라는 사실을 입증해냈다.(에릭 클라이넨버그, <폭염사회>)

50대 장년층 무연고 사망자도 증가

서울의 한 영구임대아파트에 살던 오정순(87·가명)은 2020년 2월 말 거주지에서 고독사했다. 두 자녀가 있었는데, 한 명은 먼저 숨졌고 다른 한 명은 외국에 있었다. 오정순은 고혈압, 당뇨, 청각장애가 있어 돌봄이 필요했지만 홀로 살았다. 기초생활수급자인 그는 동네로 이사 온 지 반년 남짓밖에 되지 않아, 아는 사람이 많지 않았다. 노인복지관을 자주 찾아 김치, 도시락 지원을 받았다. 하지만 코로나19 유행이 시작되자, 감염에 대한 두려움 탓에 그는 스스로 복지관에 발길을 끊었다. 안부를 묻는 주민센터 복지플래너와의 전화 통화에서 그는 “코로나19로 인해 복지관 출입을 못하고 집에만 있다”며 답답함을 토로했다고 한다. 얼마 지나지 않아 오정순은 집에서 홀로 생을 마감했다. 사망진단서에 적힌 직접 사인은 고혈압이었다. 간접적 원인은 ‘코로나19로 인한 고립감’이었다.1

거주지에서 숨진 무연고 사망자는 전체 사망자의 30% 안팎에 이른다. 전 국민 평균 15.6%(통계청 ‘2020년 사망원인통계 결과’)보다 2배가량 많다. 송인주 연구위원은 “가족관계 단절, 사회적 관계망이 끊어진 무연고 사망자는 (빈곤층과 마찬가지로) 취약계층으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세계보건기구(WHO) 등은 ‘사회적 고립’을 건강에 악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요인으로 본다.

최근 1년 사이 주목해야 할 또 다른 추이는, 50대 장년층 무연고 사망자의 증가다. 2020년 1~8월 19.5%(78명)에 불과하던 50대 사망자는 1년 만에 25.7%(142명)로 늘어났다. 최현수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사회보장재정·정책연구실장은 “적극적 복지의 대상이 되는 노인층과 달리 ‘일할 나이’로 인식되는 50대는 복지서비스의 사각지대에 있는데다, 코로나19 상황에서 일자리를 잃거나 경제적 타격을 받으면 가족이나 지인들과의 관계를 본인이 더 회피하고 스스로 고립되는 경우가 많다”고 짚었다. 무연고 사망자 가운데 남성이 절대다수인 점도 비슷한 맥락으로 해석될 수 있다. 2020년 1월~2021년 8월 서울시 무연고 사망자 1216명 가운데 남성이 차지하는 비중은 83.7%(1018명)에 이른다.

고아였고 술에 의존하고 노래방에서 일했던…

지난여름, 거주지에서 고독사한 한영진(50대·가명)의 집과 일터에는 석 달이 지났지만 아직 그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 10월8일 찾은 서울의 한 주택가에 있는 그의 집 우편함에는 구청에서 보낸 납세 독촉 고지서, 신용정보회사들이 보낸 우편물, 건강보험료 청구서 등이 수북했다. 집에서 5분 거리에 있는 그의 일터였던 노래방도 마찬가지였다. 노래방에는 한국전력이 보낸 ‘전기사용 계약해지 예고서’가 수취인 없어진 우편함에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한영진은 코로나19 유행이 시작된 이후에 노래방을 인수해 운영했다. 하지만 코로나19 탓에 장사가 잘되지 않았다. 재난 한가운데서 그는 술에 더 의존했다. 고아인 그는 외롭게 살았다. 한영진은 냄새가 난다는 이웃이 신고해 경찰에 발견됐다. 숨진 뒤 며칠이 지나 주검은 부패한 뒤였다. 연고자가 없는 한영진의 주검은 경기도 파주에 있는 ‘무연고 사망자 추모의 집’에 봉안됐다.

김규남 기자 3strings@hani.co.kr

참고 문헌
1. 송인주·모은정, <서울시 고독사 위험계층 실태조사 연구>, 서울시복지재단, 2021년 11월 발간 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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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기획물은 정부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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