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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올 1~3월 ‘또 다른 이선호’ 238명 있었다

중대재해법 5명 미만 사업장은 법 적용 제외되고 벌금형 상한선만 정해져,
김용균재단 “중대재해의 원인이 되는 구조 없애나가야”

제1365호
등록 : 2021-05-28 18:38 수정 : 2021-05-31 1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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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5월21일 세종시 고용노동부 청사 앞에서 고 이선호씨 아버지 이재훈씨, 고 김용균씨 어머니 김미숙씨 등(맨 앞줄)이 산업재해 문제 해결을 촉구하는 집회를 열고 있다. 박승화 기자

어떤 부고는 숫자로만 기억된다. 7명. 올해 1~3월 일터에서 산업재해 사고로 숨진 청년의 숫자다.

2021년 4월22일 경기도 평택항에서 300㎏ 컨테이너 날개(철판)에 깔려 숨진 스물셋 이선호처럼, 2018년 12월10일 어두컴컴한 충남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컨베이어벨트에 끼여 숨진 스물넷 김용균처럼, 2016년 5월28일 서울 지하철 2호선 구의역 승강장에서 스크린도어 수리를 하다가 숨진 열아홉 김군처럼, 이름 모를 청년 노동자들이 오늘도 일터에서 숨지고 있다. 만 18~29살의 안타까운 나이에. 2020년 42명, 2019년 51명의 청년이 산업재해 사고로 숨졌다.

4월22일 이후에도 31건 사고사
그 숫자는 좀처럼 줄어들지 않는다. 2021년 1~3월에만 청년 7명을 포함해 노동자 238명이 산재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하루 평균 2.6명꼴이다. 사고사망자는 전년 같은 기간(253명)보다 15명 줄어들긴 했지만, 질병에 걸려 숨진 산재 사망자 수(336명)까지 더하면 전년보다 12명이 늘었다(이수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이 제출한 ‘산업재해통계(잠정수치)’ 자료).

문재인 대통령은 2017년 대선 때 ‘산재 사고사망자 절반 감축’을 공약했다. 사망자 969명(2016년)을 500명대 초반(2022년)까지 낮추는 것이 목표다. 2021년 고용노동부는 ‘사고사망 20% 감축을 위해 전 부처의 역량을 집중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쉽지 않아 보인다. 2019년 처음 사망자 수가 800명대(855명)로 줄었으나 2020년 882명으로 다시 늘어난 데 이어, 2021년에도 산재 사고사 소식이 잇따르는 탓이다.

2021년 5월24일 인천의 한 기계제조 공장에서는 용접하던 50대 노동자가 300㎏ 철판 구조물에 깔려 숨졌다. 하루 전날인 23일엔 경남 창원 부산항신항에서 퇴근하던 30대 노동자가 대형 지게차에 깔려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현장에는 지게차 운전자에게 주변 상황을 알려줄 신호수도 없었다. 날짜와 장소만 달라졌을 뿐, 이선호씨의 죽음과 닮았다.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이 누리집에 올리는 ‘재해사례’와 ‘지역사례’ 등을 참고해 집계해봤더니, 이선호씨가 숨진 4월22일 이후로도 최소 31건의 사고사가 발생했다. 재해사례는 공단이 사고 속보만 올리는 방식이라 실제 산재 통계보다는 숫자가 적게 잡힌다.

2021년 1월8일 중대재해처벌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노동자가 안전하게 일할 권리, 특히 사업주와 경영책임자, 공무원이 안전·보건 의무를 다하지 않으면 ‘처벌’받는다는 점을 분명히 못박았다. 처벌 초점을 현장의 안전관리 책임자에게 맞춰 원청 사업주나 경영책임자가 피해나갈 구멍을 마련해준 기존 산업안전보건법과 달리, 적어도 법·제도로는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간 듯 보였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여전히 제자리걸음이다.

노동자 사망 한 명당 벌금 450만원
중대재해처벌법은 2022년 1월27일에야 시행된다. 그나마도 법안이 국회 논의 과정에서 누더기가 됐다. 5명 미만 사업장은 법 적용에서 제외되고, 5~49명 사업장은 적용이 유예돼 2023년 1월부터 시행될 예정이다. 2021년 1~3월에 발생한 산재 사고사망의 79%는 50명 미만 사업장에서 일어났다(그래프 참조). 고용노동부가 4월 발표한 ‘2020년 산업재해 통계’를 봐도 사고사망자(882명)의 45.6%(402명)가 5~49명 사업장, 35.4%(312명)는 5명 미만 사업장에서 일하다가 사고를 당했다. 법을 만들어놓고도 정작 노동자들의 목숨이 위험한 사업장을 눈감아주겠다는 꼴이다. 우리나라 노동자 넷 중 하나는 5명 미만 사업장에서 일한다.

경영계는 오히려 한 걸음 뒤로 물러날 것을 주장한다. 한국경영자총협회 등 7개 경제단체는 3월 국회와 고용노동부 등에 ‘중대재해법 보완 입법 요청사항’을 전달했다. △중대재해를 ‘사망 1명 이상’에서 ‘동시에 사망 2명 이상’인 경우로 바꾸고 △경영책임자에 대한 형사처벌 기준을 ‘징역 1년 이상’(하한선)이 아니라 ‘징역 ○년 이하’(상한선)로 바꾸고 △법 시행 시기를 2023년 1월로 늦추자는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국회에서는 이탄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벌금형 하한선’을 1억원 이상으로 못박는 내용을 담은 중대재해처벌법 개정안을 5월13일 대표 발의했다. 현재 법이 50억원 이하로 ‘벌금형 상한선’만 두고 있어 솜방망이 처벌이 우려된다는 이유에서다. 실제 산재 사고로 노동자 1명이 숨질 때 기업 또는 회사 관계자가 받는 평균 벌금형은 450만원 남짓에 불과하다. 그러나 중대재해처벌법의 가장 큰 허점으로 지적되는 사업장 규모별 적용 예외·유예 조항을 개정하려는 움직임은 아직 국회에서 보이지 않는다.

노동건강연대 등 9개 노동안전보건단체는 5월26일 세종시 고용노동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제대로 된 중대재해처벌법 시행령을 마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권미정 ‘김용균재단’ 사무처장은 “비정규직, 하청, 다단계, 위험의 외주화 등 중대재해의 원인이 되는 구조를 없애나가야 죽음의 행렬을 끊을 수 있다”며 “시행령을 제대로 만들고 중대재해처벌법을 다시 개정하는 것이 그 출발점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고용노동부는 중대재해처벌법 시행령을 조만간 확정해 입법예고할 예정이다. 법에 명시된 경영책임자의 ‘안전·보건 의무’와 관련해 구체적으로 어떤 조항을 두어 강제할 것인지 등이 쟁점이다. 이태의 민주노총 부위원장(노동안전보건위원장)은 “산재도 범죄이므로 처벌돼야 한다는 중대재해처벌법의 취지를 살려야 하는데, 정부는 여전히 ‘기업의 자율적인 안전관리’를 지원하는 방향으로만 시행령을 만들려 한다”며 “시행령 제정 과정뿐만 아니라 평택항 현장 조사에도 노동자의 의견이 전혀 반영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죽음에 빚진 사회 끝내달라”
문제는 결국 법의 실효성이다. 시행되지 않고, 지켜지지도 않는 법은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고용노동부는 4월26~27일 이선호씨를 고용한 원청업체인 ㈜동방 평택지사와 협력업체를 정기감독해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사항 17건을 적발했다. 고용노동부가 안호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제출한 ‘㈜동방 정기감독 결과’ 자료를 보면 △신규 종사자에 대한 안전교육 미실시 △일부 노동자에게 안전화·안전모 미지급 △지게차 및 중량물 취급에 따른 작업계획서 미작성 등 기본적인 안전관리 수칙조차 지켜지지 않았다.

“현장에 신호수·안전관리자만 세워놨어도, 컨테이너가 불량인지 제대로 관리만 했어도 선호는 거기서 사고를 당하지 않았을 거다.” 이선호씨의 친구 김벼리씨는 한 달 넘도록 친구의 장례식장을 지키고 있다. “구의역 김군이나 김용균씨의 죽음이 마음 아팠지만 솔직히 내 일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이게 모두 우리의 일인데. 기업이 안전수칙을 지키지 않아도 되도록 방치해둔 탓에 사람들이 계속 일터에서 죽어간다. 이제는 누군가의 죽음에 빚져 변화를 만들어야만 하는 사회를 끝내달라.” 김씨는 간절히 호소했다. 그는 친구의 죽음이 “그저 누적되는 산재 사망 숫자 중 하나가 될까봐 두렵다”.

황예랑 기자 yrcom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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