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6년 6월12~14일 강원도 철원 고석정에서 열린 ‘디엠제트(DMZ) 피스트레인 뮤직 페스티벌 2026’ 공연에 참여한 관객들. 사단법인 피스트레인 제공
“지금은 유엔 창설 이후 가장 많은 분쟁이 진행되고 있는 시대다.”
2026년 5월 안전보장이사회에서 나온 유엔 사무총장 안토니우 구테흐스의 선언은 동시대를 가장 상징적으로 설명하는 문장이다. 미국·이스라엘-이란 전쟁은 세계 최대의 안보 이슈였고, 여러 지역에서 대규모 무력충돌이 동시에 진행되며 지정학적 분열이 지속됐다.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이 뮤직 페스티벌에 참여하면서 대한민국이 평화와 가장 원거리에 있었던 ‘분단국가’임을 감각하게 되는 일은 드물다. 그래서 2026년 6월12~14일 강원도 철원 고석정에서 열린 ‘디엠제트(DMZ) 피스트레인 뮤직 페스티벌 2026’(피스트레인)이라면 한번쯤 우리가 발 닿고 있는 땅의 정체를 되새겨보게 된다. 이 축제는 영국의 대표 음악 축제인 ‘글래스턴베리'의 아티스트 섭외 총괄 역할을 맡은 마틴 엘본이 서울 홍익대 앞에서 열리던 음악 축제 ‘잔다리페스타’ 기획자들에게 제안하며 시작됐다. 음악 축제에 익숙하지만 한국을 낯설게 볼 수 있는 이방인의 눈에 강원도 철원은 “분단의 상흔과 음악 축제에 적합한 인프라를 갖춘” 최적의 부지로 보였다.

2026년 6월12~14일 강원도 철원 고석정에서 열린 ‘디엠제트(DMZ) 피스트레인 뮤직 페스티벌 2026’ 공연 모습. 사단법인 피스트레인 제공
그렇게 시작된 피스트레인은 오래전부터 ‘노 헤드라이너’ 정책을 유지해왔다. 특정 스타를 중심으로 관객을 모으기보다 위계가 없는 여러 무대를 통해 축제 전체를 경험하게 하는 방식이다. 그런데 피스트레인에서는 무대 아래에서 이상한 일이 벌어진다. 모르는 사람들끼리의 어깨동무, 강강술래, 기차놀이는 예삿일이다. 부모 품에 안긴 두 살도 안 된 아이가 모르는 사람들과 하이파이브를 나눈다. 위스키 병을 들고 춤추는 백발의 노인은 관객 사이에서 ‘코리안 이스트우드’라는 별명을 얻는다.
올해 피스트레인의 주제는 ‘인간활동’(Human Activity)이었다. 입장 전에는 추상적으로 느껴진 구호를 가장 잘 보여준 건 접근성 정책이 스며든 축제 공간이었다. 장애인·어린이·임산부·노년층 누구나 안전하게 공연을 즐길 수 있는 ‘컴포터블 존’이 운영됐고, 신체적·신경학적 다양성을 가진 사람들이 축제에 참여할 수 있도록 차음 헤드폰, 진동 풍선, 심리안정 인형 대여 서비스도 마련됐다. 사회적기업 ‘소소한소통’의 백정연 대표가 책 ‘쉬운 정보’에서 말했듯, 정보와 환경이 특정 사람만을 기준으로 설계될 때 누군가는 선택할 기회조차 잃게 된다. 이 축제는 그 반대 방향을 선택했다.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 것. 서로 다른 사람들이 대열을 이탈하지 않고 함께 머무르는 것. 가장 입바른 소리지만 가장 구현하기 어려운 과제를 실천해보기. 그것이야말로 인간활동의 출발점이라는 듯이.
6월14일 축제에서 마지막 출연자의 무대가 끝난 뒤 현장의 스크린에는 이런 자막이 흘러나왔다. “우리가 피스트레인에서 함께 느낀 생명력을 기억하며, 많은 전쟁과 갈등, 혐오와 배척으로부터 지구 곳곳의 생명과 미래를 지켜나갑시다. ‘잘 살아 있음’이 누구에게나 당연한 상태가 될 수 있도록, 각자의 자리에서 인간활동을 이어가며 내년에 다시 만나요.” 이 축제에는 총 8개국 30개팀의 아티스트가 무대에 올랐지만, 여기까지 피스트레인 이야기를 쓰는 동안 나는 단 한 팀의 무대도 언급하지 않았다. 그러고도 이 축제를 설명할 수 있기 때문이다. 평화를 믿기 어려운 시대일수록, 잘 살아 있기를 다짐하는 옆 사람의 얼굴을 마주하기 위해. 어쩌면 우리는 이런 경험을 위해 뮤직 페스티벌에 가는지도 모른다.
서해인 콘텐츠로그 발행인
*깨어 있는 시간의 대부분은 케이팝을 듣습니다. 케이팝이 만들어낼 ‘더 나은 세계’를 제안합니다. 3주마다 연재.

2026년 6월12~14일 강원도 철원 고석정에서 열린 ‘디엠제트(DMZ) 피스트레인 뮤직 페스티벌 2026’ 포스터. 사단법인 피스트레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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