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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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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썩이는 재개발 욕망, 자양4동을 가다

2006년 오세훈 1기 때 ‘한강르네상스’ 좌초
‘골목길 재생사업’도 서울시장 바뀌자 최근 잠정 중단
등록 2021-05-09 13:45 수정 2021-05-10 06:08
서울 광진구 자양4동의 ‘양꼬치 거리’ 모습. 뒤쪽에 호반건설이 짓고 있는 고층 아파트가 보인다.

서울 광진구 자양4동의 ‘양꼬치 거리’ 모습. 뒤쪽에 호반건설이 짓고 있는 고층 아파트가 보인다.

오세훈 서울시장이 돌아왔다. 2011년, 오 시장은 학생 무상급식에 반대하다 주민투표가 무산되자 스스로 그만뒀다.
오세훈 시장은 1기(2006~2011년) 때 ‘개발’에 힘썼다. 한강 르네상스 사업과 한강변 정비구역 사업엔 각각 5천억원 넘는 예산을 투입했다. 3천억원이 들어간 서울시 새 청사를 지으려 등록문화재였던 옛 시청사를 파괴했다. 개발주의 반달리즘(훼손 행위)이었다. 31조원 규모가 예상된 용산국제업무지구 사업은 2013년 대출이자를 갚지 못해 청산됐다. 1390억원을 쓴 세빛둥둥섬은 부실 공사로 완공 뒤 3년간이나 문을 열지 못했다.
주거정책도 대단지 아파트를 만드는 뉴타운·재개발 사업(683곳)이 중심이었다. 다만 임기 말인 2010년 기존 주거지를 유지하면서 소규모 개발하는 ‘휴먼타운’ 사업을 시도했으나 확산되지 못했다. 그가 추진한 뉴타운·재개발 사업 가운데 394곳(57.7%)은 지지부진했고 후임 박원순 시장 시절에 취소됐다.
오 시장 뒤에 취임한 박원순 전 시장은 도시재생과 친환경 교통, 한강 재자연화 등 ‘보존’을 새로운 대안으로 내놓았다. 그러나 도시재생은 주거의 대안을 보여주지 못했다. 기후위기 시대의 친환경 교통도 승용차 앞에서 무릎을 꿇었다. 한강 재자연화는 9년 동안 보고서만 두 권을 펴내고 끝나버렸다. 박 전 시장은 주거와 교통, 하천 정책의 방향을 바꿨지만 그 속도는 더뎠다.
2021년, 다시 오세훈 시장에게 서울의 미래를 그릴 권한이 주어졌다. 재개발, 재건축, 용적률, 한강변 높이 제한을 모두 풀겠다는 제안에 집값이 벌써 들썩인다. 하지만 서울과 경쟁하는 세계의 도시들은 오세훈 1기의 개발과 박원순의 보존이라는 이분법을 넘어섰다. 오히려 기후위기를 맞아 대담한 2030년, 2050년 도시 계획을 내놓고 도전한다. 갈림길에 선 오세훈 시장의 선택, 그 미래를 전망해본다._편집자주

붉은 벽돌 주택들 사이로 초고층 아파트가 한층 한층 올라간다. 공사 중인 건물을 감싼 주황색 가림막에는 ‘호반(HOBAN)’이라는 글자가 선명하다. 아파트가 들어서는 땅 옆으로 난 골목길엔 승용차 한 대가 꽉 채웠다. 그 좁은 길 사이로 보행기를 짚은 어르신이 걸어다닌다.

2021년 5월3일 찾은 서울 광진구 자양4동의 모습이다. 지은 지 30년 넘은 단독, 다가구 주택이 즐비했던 그곳에 고급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고 있었다. 이미 짓기 시작한 아파트 공사장은 2곳이고, 정부 규제가 심한 재건축·재개발 대신 조합원들끼리 민간 아파트 단지를 조성하는 지역주택조합도 추진되는 중이다. 주택조합은 조합원을 모아 분담금을 걷고 아파트 부지를 매입해 사업승인을 받는 시스템이다. 사업부지 확보가 어려워 실패하는 일이 많다.

30년 넘은 노후주택 많지만 최적 입지

그러나 오세훈 서울시장이 취임하면서 개발 기대는 더 높아졌다. 오 시장은 앞서 <한국일보>와의 3월5일 인터뷰에서 시장으로 취임하면 일주일 이내로 주요 지역의 재건축·재개발 규제를 풀겠다고 밝혔는데, 자양동이 그중 하나다. 10년 전 추진했던 대규모 재건축·재개발(뉴타운 정책) 카드를 다시 꺼내든 것이다.

오 시장의 규제완화 발언으로 서울 집값이 들썩인다. 5월6일 한국부동산원이 발표한 주간 아파트 가격 동향을 보면, 서울 아파트값 상승률은 2·4 부동산 대책이 나오기 직전인 2월 첫째 주 조사에서 0.10%를 기록한 이후 상승폭이 9주 연속 감소세를 보였다. 하지만 4·7 서울시장 보궐선거 직후 조사에서 0.07% 반등한 데 이어 2주 연속 0.08%를 유지하다 5월 첫째 주에는 0.09%로 오름폭이 커졌다. 오 시장은 4월29일 서울시청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재건축·재개발 속도를 조절하면서 가능한 행정력을 총동원해 부동산 시장 교란 행위를 먼저 근절해나가겠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부동산 시장은 반대로 움직이고 있다.

시장의 기대처럼 오 시장이 대규모 재건축·재개발을 추진한다면 자양4동은 중·대단지 아파트가 우후죽순 들어설 법한 땅이다. 2호선 건대입구역과 7호선 뚝섬유원지역을 낀 더블역세권인데다 걸어서 15분이면 한강에 도착한다. 차를 타고 영동대교를 건너면 삼성역에 10분 만에 닿는다. 오세훈 시장이 전세로 사는 이튼타워리버는 청담대교를 사이로 마주한 자양3동에 있다. 높은 아파트 가격을 보장하는 입지는 재건축·재개발 사업에 필수 요건이다. 게다가 신축빌라 수는 적고 오래된 단독주택과 다가구주택이 많다. 골목길이 좁다보니 재건축·재개발 심사를 통과하기도 수월하다. 그만큼 재개발 욕망도 거세다.

오세훈 서울시장 1기 때도 자양동은 좋은 입지로 눈길을 끌었다. 2006년 재건축·재개발 대신 한강르네상스 프로젝트를 추진해 50층 전후 아파트를 자양동에 짓겠다고 약속했다. 용적률·층수 규제를 푸는 대신 기부채납 비율을 높여 한강공원을 확장하려는 계획이었다. 그러나 수익성이 떨어질까 걱정하는 일부 주민의 반대에 부딪혀 사업은 좌초됐다.

후임인 박원순 서울시장의 주거정책은 정반대 방향으로 흘러갔다. 그는 대단지 아파트 단지를 공급하는 대신, 오래된 도로를 포장하고 골목길을 정비하는 도시재생 정책을 펼쳤다. 이 도시재생은 양질의 주택을 공급하는 속도가 느리다는 비판을 받았다. “기존 저층 주거를 개선하려는 도시재생사업은 개량 방식만을 부각했다. 보다 다양한 (주택 공급) 방식이 도입되고 (개발이 더) 활성화될 필요가 있었다. 필지 규모가 큰 곳은 소규모 철거형 개발(가로주택사업)을 병행해야 했다.” 박원순 시장의 핵심 참모이던 김수현 전 서울연구원장이 밝힌 뒤늦은 후회다.(<서울을 바꾸다: 혁신가 박원순의 도시혁명 10년>, 비타베아타 펴냄, 2021)

‘골목길 재생사업’에 선정된 능동로 골목시장(서울 광진구 뚝섬로30길) 위쪽으로 대규모 아파트단지가 들어설 ‘자양1구역 주택정비사업지’가 있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광진구 자양동에 있는 한 아파트에 거주 중이다.

‘골목길 재생사업’에 선정된 능동로 골목시장(서울 광진구 뚝섬로30길) 위쪽으로 대규모 아파트단지가 들어설 ‘자양1구역 주택정비사업지’가 있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광진구 자양동에 있는 한 아파트에 거주 중이다.

오 시장은 자양3동 아파트 살아

자양4동도 노후주택이 많았지만 도시재생지역에는 들어가지 않았다. 재건축·재개발 지정을 원한 주민들의 반대 때문이었다. 오세훈의 서울시에선 한강르네상스 프로젝트로 재정비사업이 부진했고 박원순의 서울시에선 도시재생지역에 들지 못하면서, 자양4동의 주거환경은 제자리걸음이었다. 재건축·재개발 열망에 신축빌라 공급도 거의 없었다.

그나마 2019년부터 골목길 재생사업이 추진되면서 변화의 움직임이 꿈틀댔다. 골목길 재생사업은 보존을 앞세웠던 기존의 대규모 도시재생사업과 달리, 사업구역을 제외한 곳에서는 정비사업을 추진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 서울시는 자양4동(뚝섬로30길) 8만9175㎡ 일대 등 12개 자치구를 골목길 재생사업 지역으로 지정했다. 자양동의 경우 전통시장을 중심으로 한 시설 현대화 방안에 방점이 찍혀 있었다. 돌출된 시설을 정비하고, 오래된 도로를 바꾸고, 스페인 세비야의 시장처럼 차양막을 꾸미는 안이 계획됐다. 서울시 예산 10억원에 광진구도 1억원을 보탰다. 최근까지 1억9800만원이 사업계획을 위한 용역비로 쓰였다.

그러나 오 시장이 취임한 뒤 자양4동 능동로 골목시장에서 진행 중이던 골목길 재생사업이 잠정 중단(보류)됐다. <한겨레21>이 취재한 서울시와 광진구의 설명을 종합하면, 사업이 잠정 중단된 이유는 ‘출처가 불분명한 지역 민원’과 ‘도시재생해제연대(도시재생 지정 해제를 요구하는 주택·토지 소유주 모임)의 활동’이 꼽혔다. 광진구 관계자는 “광진구청 누리집을 중심으로 192건의 민원이 집계됐다. (사실 민원인이 외지인인지 주민인지) 파악하기 곤란한 부분이 있다”고 했다. 또 “서울시에도 도시재생사업을 중단해달라는 도시재생해제연대의 제안서가 제출됐고, 그 시점과 맞물려 사업을 중단하라는 전화 통보(4월15일)를 서울시에서 받았다”고 덧붙였다. 서울시 관계자는 “시장이 바뀌고 사업을 점검할 시기다. 사업을 취소한 것은 아니고 잠깐 멈추는 것”이라며 “투입된 재원은 향후 공공재개발이 진행될 경우, 공공기여금에서 환수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골목길 재생사업의 잠정 중단에는 문재인 정부가 2020년 추진한 8·4 부동산 대책인 공공재개발의 영향도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공공재개발은 공공 주도로 재개발을 추진해 용적률을 비롯해 각종 혜택을 주고 이익은 공공과 나누는 개발 방식이다. 공공재개발 정책이 발표된 뒤 골목길 재생사업에 동의했던 자양4동의 대다수 통장과 시의원의 마음이 바뀌었다는 게 광진구 쪽 설명이다. 지하철역(뚝섬유원지역)이 인접한 능동로 시장까지 전면 개발하는 공공재개발을 추진해야 대단지 아파트가 들어서고 높은 수익이 보장되기 때문이다.

더불어민주당 소속 김재형 광진구 시의원은 광진구청의 설명을 반박하고 나섰다. “광진구청 말처럼 골목길 재생사업을 중단하자고 말한 적이 없다. 골목길 재생사업을 찬성하는 통장이나 구의원도 여전히 많다. (광진)구청은 시의원, 구의원, 통장들의 의견을 왜곡하고 있다.”

광진구의 골목길 재생사업은 200억 예산을 들인 창신숭의의 대규모 재생사업과 다르다고 그는 강조했다. “이런(골목길 재생) 사업으로 동네의 재건축, 재개발이 다 막힌다고 주장하면 말이 안되는 것이 아니냐. (광진)구청이 골목길 재생사업을 하면, 재개발이나 재건축이 안된다는 개발업자의 논리를 받아들인 것으로 보인다.”

골목길 재생사업의 이해당사자인 시장 상인들은 ‘투기세력’이 자양4동에 들어왔다고 주장한다. 능동로 골목시장에서 음식점을 운영하는 ㄱ씨는 “빌라 (개발)업자들이 민원을 넣는데 이들은 지역주민이 아니라 (부동산) 업자들이 연결해놓은 하청업자”라고 말했다. 이들은 단독주택과 다가구주택을 사들여 면적은 같지만 세대수가 더 많은 빌라로 쪼개 새로 짓고는 재개발되면 아파트 입주권을 얻을 수 있다고 투자자를 현혹해 비싼 가격에 팔고 있다고 했다.

“서민들만 죽는 거여, 땅값이 비싸지면”

2021년 1월부터 4월 말까지 거래된 자양4동 단독주택·다가구주택 25건 가운데 최고가 거래(1월2일)는 평당 6042만원(토지면적 기준)이었다. 1975년 지어진 단독주택을 매입한 이는 부동산 개발업자였다. 2019년 2월 평당 2500만원에 팔렸던 집이 23개월 만에 2.41배 오른 가격에 다시 팔렸다. 정부가 공공재개발을 밀자 부동산업자로 활동하는 유튜버들도 가세해 자양4동이 재건축·재개발 유력지로 소문난 탓이다.

지역주민도 들썩인다. 자가는 경기도 남양주에 두고 전세로 자양동에 사는 60대 여성 ㄴ씨는 4월 지역주택조합에 가입했다. 20평대 아파트를 평당 2600만원에 계약했고 조합에 넣은 현찰은 1억원 남짓이다. 아파트 분양가는 평당 4천~5천만원을 예상한다. 그는 개발 사업이 잘 안 될까 걱정돼 조합 사무실에 들렀다가 나온 참이었다. 골목에서 녹슨 대문을 칠하는 사람들을 보며 ㄴ씨가 말했다. “(지역주택조합에) 물어보니 돈 많이 받고 싶어서 칠하는 거란다. 새 집으로 보여서 아파트가 들어설 때 돈을 더 쳐달라고 떼거리 쓰려고.”

이미 들어선 고급아파트 단지는 욕망 기폭제로 작용한다. “(자양4동) 대로변 옆에도 (호반써밋자양 아파트가 들어서기까지) 오래 걸렸는데 되긴 되더라고. 거긴 낙후된 곳도 아니었는데. 그거 보고 이것도 (재개발)되겠다 (싶었지). 시장이 바뀌어서 더 하기 편할 거 같지, 안 그래?”(ㄴ씨)

일부지만 장밋빛 미래를 그리지 않는 주민도 있었다. 자양동에서 50년간 살아온 70대 주민 ㄷ씨는 어르신들을 걱정했다. “노인 양반들이 큰 문제라. 구옥을 가지고 있으면 한 달에 200(만원)이든 250(만원)이든 (월세) 수입이 있는데, 아파트 40평이나 줘봤자 관리비는 겁나게 비싸고 (돈벌이는 없어지잖아). 서민들만 죽는 거여. 땅값이 비싸지면 재개발 분담금이 많아져 힘들고. 오 시장도 헛바람 들어가지고 괜히 재개발 이야기 꺼냈다가 슬그머니 꽁무니를 빼고 있잖아.”

전문가들은 대규모 단지를 짓는 뉴타운식 개발의 한계를 지적한다. 정석 서울시립대 교수(도시공학)는 “대단지 아파트로 돈 벌려는 사람이 있는 한 집값은 못 잡는다. 한채 한채 집을 고치고, 골목을 따라 개발하는 미니 재개발이 해법이다. 작은 개발도 큰 계획 안에서 진행하면 난개발을 막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오 시장이 2010년 1기 서울시장 임기가 끝날 무렵 뉴타운을 대신해 제시한 ‘서울 휴먼타운’도 대안이 될 수 있다고 했다. “단독주택·다가구주택을 살기 좋은 모습으로 탈바꿈하고, 공원·놀이터·도서관·실내수영장 같은 생활SOC(사회간접자본)를 넣어준다면 대규모 철거 없이 도시재생과 개발을 병행할 수 있다. 재생은 무개발이 아니다.”(정석 교수)

도시재생과 개발 병행하는 대안도

오세훈 시장은 2010년 다세대·다가구 주택이 밀집한 연남동 239-1 일대 등을 휴먼타운으로 지정했다. 아파트 대단지를 조성하는 대신 보존형 정비사업이라는 대안을 제시한 것이다. 연남동 주민공동체가 중심이 돼 마을 풍경을 가꾸고, 서울시는 이를 지원했다. 젊은이들 사이에서 인기 많은 ‘연트럴파크’도 휴먼타운과 더불어 탄생했다.

서울시의 미래는 지역주민을 내쫓던 뉴타운이 될까, 지역주민과 함께 가던 휴먼타운이 될까. 오세훈의 선택만이 남았다.

글·사진 이정규 기자 j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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