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백신 접종을 앞두고 혼란이 계속되고 있다. 무엇보다 한국에서 가장 먼저 접종이 시작될 예정인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을 두고 언론에서는 연일 ‘우려’의 목소리를 보도한다. 영국과 유럽연합(EU)에서는 65살 이상 고령층까지 허가했지만 독일과 프랑스 등 몇몇 나라는 고령층에 접종하는 것을 제한하고 스위스는 아예 승인을 보류했다. 전문가가 아니라면 이런 뉴스를 접할 때마다 혼란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이런 상태에서 정부의 아스트라제네카 접종 가이드라인은 더욱 혼란을 부추긴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아스트라제네카 백신 국내 사용을 승인하면서 65살 이상 고령층에는 신중하게 사용할 것을 권고했다. 현장 의료진이 알아서 판단하라는 말인데, 이런 국가적인 사업에서 국가가 명확한 가이드라인을 내리지 않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한국 의사가 100년 만에 최고 권한을 부여받았다”고 <뉴스1> 보도에서 한 의사의 말이 인상적이다. 현장 의사 입장에서 보면 이런 중차대한 사안에 현장 의사에게 책임을 떠넘긴 것으로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재난 시기에 중요한 것이 제도에 대한 신뢰다. 제도에 대한 신뢰가 무너지면 그다음은 걷잡을 수 없는 사태가 벌어진다. 이 신뢰가 무너지는 것이 재난에 뒤이은 재난이다. 주로 ‘자연’에서 시작되는 모양새를 취하는 앞의 재난이 불가항력적인 부분이 있다면, 뒤의 재난은 순수하게 정치적으로 야기되는 사회적 재난이다. 이 재난이 닥치면 사회적 협력을 이끌어낼 수 없다. 백신을 예로 들면, 시민 30% 이상이 제도를 믿지 않고 개별적으로 움직이면 집단면역을 달성할 수 없게 된다. 재난에 대처하지 못하는 사회적 재난이 발생하는 것이다.
물론 제도에 대한 신뢰가 있다고 하더라도 사회 일각에서는 제도를 완전히 불신하는 자들이 있다. 그리고 이들은 그들의 폐쇄적인 조직 내부의 지식과 정보를 맹신한다. 대표적인 것이 신흥종교 같은 컬트들이다. 이 컬트들은 자신들 위치가 사회적으로 주변부일수록 강한 결속력을 생명으로 한다. 조금이라도 결속력이 약해지면 금방 해체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많은 경우 합숙하며 함께 공부해야 절대적 믿음을 유지할 수 있다. 신천지부터 영생교에 이르기까지 지속적으로 컬트발 집단감염이 속출할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컬트화되지 않는다고 해도 문제다. 소설을 줄거리만 요약해서 아는 것처럼 이런 전문가 말을 듣다보면 마치 자기도 다 알아듣는 것처럼 착각하게 된다. 사실 등장하는 개념은 몇 안 되기 때문에 그 단어들만 알아들으면 대충 다 파악되는 것처럼 보인다.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이 ‘개념’이 아니라 ‘단어’라는 것에 대한 자각이 없는 한, 이 착각은 자신을 ‘준’전문가로 여기며 결정적인 순간에 실수하는 값비싼 대가를 치르게 된다.
책임을 회피하는 언어 전략사회에 무슨 일이 생길 때마다 온 국민이 그 분야에서 ‘준’전문가가 되는 것은 한편에서는 극단적인 반지성주의가 횡행하는 것을 방지하는 효과도 있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자기도 대충 다 안다는 생각에 제도보다는 자기 판단을 더 우선시하는 반지성주의적 태도를 구조화한다. 이런 점에서 한국에서 대중은 극단적인 반지성주의에 강하게 저항하면서도 동시에 제도와 전문가를 불신하는 반지성주의적인 분열 모습을 보이는 경향이 있다.
공론장 역시 엉망진창이다. 대표적인 것이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의 고령에서의 안전성 문제를 보도하는 한국 언론이다. 몇몇 언론은 정부에 대한 정파적 이해관계에서 안전성과 효과성 문제를 교묘하게 섞어서 불분명하게 이야기하며 불안을 부추긴다. 공론장은 논란과 그에 따른 논쟁을 특징으로 하고 다수 의견이 충돌하는 공간이지만, 이런 것은 논란이 아니라 그저 혼란을 부추길 뿐이다.
공론장이 이렇게 혼란스러울수록 제도의 신뢰를 회복하고 지속시킬 수 있는 의사소통 역량이야말로, 재난 시대에는 무엇보다 중요한 국가 역량이라고 할 수 있다. 제도의 성과를 알리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제도 신뢰를 탄탄하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이다. 이런 점에서 전 지구적 재난 시기에 한국 정부의 정책에 대한 의사소통은 혼탁한 공론장만큼이나 우려되지 않을 수 없다. 조급하고 임기응변이라 자주 말을 바꾸고 명확하지 않은 말을 사용하여 책임을 미루는 듯한 인상을 준다.
대표적으로 ‘상투어’를 들 수 있다. 정부에서 거리두기 조정과 관련해 발표할 때마다 빠짐없이 등장하는 말이 “이번 주말이 중대 고비”라는 말이다. 거의 2주에 한 번씩 이 말이 등장한다. 그러나 ‘중대 고비’ ‘최대 고비’가 그렇게 자주 반복되면 그건 더는 중대한 것도 최대의 것도 아니라 일상적인 것이다. 사실 지금은 하루하루가 다 고비인 ‘위기의 일상화’ 혹은 ‘위기의 항구화’ 상태라고 봐야 한다.
이 위기가 2주 단위로 변화가 올 수 있는 고비가 아니라 오래 지속되는 일상적 위기라면 일상을 바꾸어야 하고 시민들이 바뀐 일상을 버틸 수 있게 하는 정책이 필요할 것이다. 대표적인 것이 영업 손실을 보는 자영업자에 대한 보상이다. 2주만 참으면 다시 원래대로 돌아가 영업할 수 있다면 재난에 대한 지원을 해주면 된다. 하지만 이것이 적어도 몇 달 이상 지속된다면 보상을 통해 그들이 일상을 버틸 수 있게 해야 한다. 사실 이런 점에서 ‘최대 고비’라는 상투어를 반복하는 것은 ‘항구적 위기’라는 현실을 직시하며, 져야 할 책임을 회피하는 언어 전략인 셈이다.
이런 점에서 정부가 의사소통에서 참조해야 할 전문가가 있다. 가천의과대학 예방의학과의 정재훈 교수다. 페이스북을 통한 그의 의사소통은 재난 시기에 혼란을 줄이고 제도에 대한 신뢰를 구축하고 지속하는 데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하다. 자연과학 전문가가 사회적 영향을 미치는 대중 공론의 장에서 발언할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 지금까지 보기 힘들었던 전문가라고 할 수 있다.
첫 번째로 그의 글은 철저하게 ‘자료’를 바탕으로 한다. 자신의 의견을 전달할 때도 그 의견의 근거가 되는 것을 먼저 군더더기 없이 간결하게 밝히고 시작한다. 따라서 자료를 읽는 사람이 그의 의견을 ‘의심’하지 않고 받아들일 수 있게 한다. 그의 자료가 업데이트된 자료이지 정파적 이익에 따라 ‘선택’된 자료라는 의심을 하지 않게 된다는 말이다. 따라서 그와 의견이 다르다고 하더라도 이 부분에서 그가 제공하는 자료를 보는 것만으로도 그에 대한 ‘신뢰’가 보장된다.
또한 자료를 먼저 제공하고 자신의 의견을 말하는 방식에서 사람들은 그가 결론을 정해놓고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계속 공부하면서 소통한다는 것을 신뢰하게 된다. 파생적 불안이 지배할 때 사람들은 그가 혹시 꼼꼼하게 변화를 추적하며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미리 결론을 정해놓고 말하는 것이 아닌지 의심하게 된다.
제도에 대한 불신 역시 제도가 ‘답정너’일 때 오는 불신이다. 이 불신을 깨는 유일한 방법은 변화를 놓치지 않고 공부하며 업데이트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새로 발견한 것을 통해 견해를 수정하더라도 일부 사람을 제외하고 대다수에게는 견해의 수정이 불신이 아니라 신뢰의 바탕이 된다.
또한 그가 소통하는 방식에서 정념은 최대한 배제됐다. 재난 시기에 사람 마음을 지배하는 것은 불안 같은 정념인데, 무미건조함은 이런 정념을 건드려 말하는 이에 대해 불필요한 판단을 하지 않게 한다는 점에서 탁월한 의사소통이라고 할 수 있다. 보통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지배하는 언어가 정념으로 지배되고 촉발하는 것과 매우 큰 차이를 보여준다. 이것이 사람들이 그의 글을 편안하게 읽을 수 있는 이유이다.
그렇다고 그가 논쟁적인 부분에 대한 자기 견해를 밝히지 않는 것도 아니다. 논쟁적인 부분에 대해서도 그는 아쉬운 점과 왜곡된 점을 분명하게 밝힌다. 2월11일 페이스북에 쓴 글을 보면 식약처의 ‘의사의 판단’이라고 하는 말에 대해 그 말이 ‘관습적’이라고 하더라도 불필요한 오해를 일으킬 수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일부 언론이 효과의 문제를 안전의 문제로 교묘하게 돌려서 마치 안전성에 문제가 있다는 듯이 말하는 아스트라제네카에 대해서도 ‘안전성’에서는 증명이 끝났기에 특별히 우려할 필요가 없다고 말한다. 모호한 것을 명확하게 개념을 통해 설명하는 것은 재난 시기에 무엇보다 필요한 의사소통 방식이다.
마지막으로 그의 의사소통은 하루하루 달라지는 개별 사건들이 아니라 이 전체 재난 시기에 대한 ‘시대적 인식’에 기초한다. 그는 3월에서 4월 사이에 4차 대유행은 반드시 온다고 말한다. 대규모 감염병은 수학적 모델을 따라간다며 그 규모와 시기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 재난이 단기적 위기가 아니라 오래 지속되는 ‘항구적 위기’임을 그는 소통을 통해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
백신 거부 응답률이 오르기 전에그렇기에 그는 정부 대책이 2주마다 찾아오는 ‘최대 고비’에 대처하는 것이 아니라 항구적 위기를 겪는 사람들의 일상을 어떻게 바꾸고 지원해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으로 이어진다. 2월4일 그가 페이스북에 올린 것은 ‘세계 각 국가의 자영업자 등 재정지원 프로그램’에 대한 자료다. 이 재난 시기의 특징에 대한 명확하고 과학적인 인식이 이 시간을 견뎌내는 사람들에 대한 안타까운 ‘연대’의 마음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이것이 그의 글이 담담하고 정념이 배제되어 있음에도 무미건조하지 않고 따뜻한 이유다. 지금 정재훈 교수의 의사소통을 누구보다 정부가 배워야 한다. 아직 기회는 있다. 여론조사에 따르면 여전히 한국 시민 70% 정도는 백신을 맞겠다고 말한다. 유보하거나 거부하는 응답은 30% 정도이다. 맞겠다는 응답률이 떨어지기 전에 제도 신뢰가 무너지지 않도록 정책을 세우고, 그 정책에 걸맞은 소통을 해야 한다.
반복하여 말하지만 지금은 국민이나 의료진에게 책임을 미루거나 묻는 것이 아니라 책임을 지겠다는 것을 확실히 보여줘야 한다. 그래야 제도를 신뢰하고 불안을 부추기는 반지성주의적인 쪽을 고립시킬 수 있다. 공론장까지 엉망진창인 이 환란을 건너는 데 필수적인 ‘사회적 협력’을 구축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엄기호 사회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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