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줄짜리 정치가 공론장을 흔들고 있다. 그중 가장 센 것은 “여성가족부 폐지” 일곱 글자였다. 이 말이 성별과 세대를 가로지르며 가지는 파급력은 상당했다. 인터넷 공간의 ‘젊은’ 남초 커뮤니티들은 환호했고 반대쪽에서는 경악했다. 이후 “병사 봉급 월 200만원” “주식양도세 폐지”가 올라오더니 북한이 중거리탄도미사일을 쏜 섣달그믐에는 급기야 “사드 추가 배치”가 올라왔다.
“여성가족부 폐지” 이 일곱 글자는 메시지다. 대통령 후보로서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의 성차별 문제에 대한 인식을 분명히 보여준다. 여기에 “성범죄 처벌 강화, 무고죄 처벌 강화”와 “병사 봉급 월 200만원”을 보태면 더욱 분명하게 그가 유권자 중 누구를 주 고객층으로 생각하는지가 분명하게 드러난다. 이른바 ‘이대남’, 20대 남성이다. 이미 이번 선거를 좌지우지하는 큰손이 ‘이대남’이라고 많은 언론이 이야기한다. 가장 큰 고객, 그것도 가장 큰손의 고객에게 메시지를 보내는 건 주류 정치인으로서 당연한 일인지 모른다. 선거는 당선되기 위해 나가는 것이니까 말이다.
이 짧은 말은 동시에 미디어다. 미디어를 어떻게 해석하고 정의하느냐에 따라 이야기가 달라지겠지만 미디어는 사람들을 묶어낸다. 미디어의 특성에 따라 인간의 오감과 감성, 이성 중에서 특정한 것을 중심으로 자극해 사람들을 묶어낸다. KBS 라디오 <최경영의 최강시사>에서 김경일 아주대 심리학과 교수가 말한 것처럼, 유권자가 정치인의 말을 들으러 유세장에 갈 때는 ‘긴 이야기’를 선호하지만 정치인의 말이 유권자를 찾아갈 때는 짧아야 한다. 현대 대부분의 미디어는 찾아가는 말이다. 그러니 짧고 선명해야 한다.
또한 미디어는 묶어내는 사람들의 규모를 결정한다. 저 일곱 글자가 올라온 미디어는 가볍고 발 빠르며 순식간에 별다른 장벽 없이 구석구석까지 확산되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다. 지금은 어떤 이상한 메시지든 독자적인 세계를 구축할 만큼의 규모를 만들어낸다. 단적인 예가 지구가 평평하다고 믿는 사람들이다. 과거라면 이들은 자신이 거주하는 장소적 한계로 세력이 될 만한 규모를 만들 수 없었다. 그렇기에 아무리 지구가 평평하다고 생각하더라도 그것을 쉽게 말할 수도 없었고 같은 믿음을 가진 사람들과 연결될 수도 없었다.
지금은 다르다. 이들은 전 지구적으로 연결되며 독자적 세계를 형성할 정도의 규모를 이룬다. 독자적 세계가 형성됐다는 건 타자의 시선을 일상적으로 의식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말한다. 자기에게 편안하게 거주할 ‘집’이 생긴 것이다. 그렇기에 타인의 눈치를 보기보다 동료/동지들의 응원을 받으며 그들과 토론하고 경쟁하는 것이 중요해졌다. 당연히 자기가 옳다고 확신할 수 있으며 삶에 활기가 돈다. ‘활동적 삶’(Vita Activa)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미디어가 규모를 이루면 그 안에 독자적인 공론장과 시장이 만들어진다. 생계유지가 그 세계 안에서 가능해진다는 말이다. 실제로 지구가 평평하다고 믿는 사람들을 위한 책을 내고 강의를 하는 등 ‘콘텐츠’를 파는 것만으로도 생활이 가능하다. 여기서 나아가 정치적 삶도 가능하다. 즉, 그 안에서 누가 더 신빙성이 있는 이론과 근거를 찾아 제시하느냐에 따라 ‘명망’을 높이는 토론과 경쟁이 가능해진다. 명망, 즉 명예는 정치적 삶의 핵심이다. 이것은 오로지 독자적 세계를 만들 수 있는 규모가 될 때 가능하다. 저 일곱 글자는 그런 독자적 세계로 믿는 이들을 결집한다는 점에서 메시지를 넘어 미디어로 기능한다.
바로 이 점에서 저 짧은 단문은 미디어를 넘어 ‘플랫폼’ 구실을 한다. 플랫폼도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사람들이 서로 만나 모이고 섞이고 가진 것을 교환하는 장이라고 할 수 있다. 미디어가 중계하는 것이라면 플랫폼은 행위자들이 직접 만나 교류하게 한다. 돈과 물건을 교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활동적 삶이라는 관점에서 본다면 무엇보다 말과 의견을 교환하는 것이 중요하다. SNS에 툭 던져진 저 짧은 글은 그 자체로 빈약한 메시지지만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들을 모아내고 그들이 서로에게 말을 걸며 ‘의견’을 교환하게 하는 플랫폼이다. 담론의 공간을 열어낸다.
선거란 유권자의 말을 듣는 유일한 시공간이는 이미 웹툰을 비롯한 많은 콘텐츠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웹툰을 보는 사람들은 웹툰만을 보지 않는다. 웹툰을 읽고 나면 바로 궁금해진다.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말이다. 그래서 바로 댓글들을 살펴본다. 내가 알지 못한 것을 기막히게 찾아낸 사람들도 있다. 감탄하는 대댓글이 줄줄이 달린다.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는 사람도 있고 반대의 사람도 있다. 그들 사이에 댓글에 대댓글을 달며 열띤 토론이 펼쳐진다. 많은 경우 서로에 대한 조롱과 혐오의 발언이 이어지지만 그 댓글들을 보고 있으면 내 생각이 어디쯤인지를 알 수 있다. 작품에 대한 담론의 지형이 그려지고 내 위치가 보이는 것이다. 저 일곱 글자 밑에도 수천 개의 댓글이 달리고 또 그 글을 퍼나른 수백 개의 담벼락에도 수십 개의 댓글이 달리면서 담론 공간이 열렸다. 이런 점에서 저 일곱 글자는 담론 공간을 생산해내는 플랫폼이기도 했다.
그것을 시작한 사람이 이를 계산했는지 아닌지는 모른다. 그러나 말을 정치에 활용하는 매우 영리하고 첨단의 방식인 것은 분명하다. 고전적 정치인들이 어떤 메시지를 내보낼지 고민하거나 어떤 미디어를 활용할지를 전략이라고 생각할 때 단숨에 특정 유권자의 말을 활성화하는 플랫폼이 되는 데 성공했다. 찬성하는 자들뿐만 아니라 반대하는 사람들까지 한동안 저 일곱 글자로 숱한 말을 쏟아냈다.
유권자는 정치인의 말을 듣는 존재가 아니라 말하는 존재일 때 즐겁고 기쁘다. 우스갯소리로 하는 말처럼 선거야말로 정치인이 떠들기만 하는 게 아니라 유권자의 말을 듣는 시늉이라도 하는 유일한 시공간이 아니던가. 특히 자유민(=유권자)은 남의 말을 듣기만 해서는 안 된다. 적극적으로 자기 의견을 말해야 한다. 정치인을 향해서만 말하는 게 아니라 자유민 사이에 열띤 토론이 활성화돼야 한다. 그런 점에서 어떤 말을 할 것인가와 어디서 말할 것인가를 넘어 유권자가 ‘서로’ 말하게 하는 플랫폼이 됐다는 점에서 ‘말’의 새로운 차원을 극대화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일곱 글자, 그리고 이후 이어진 글자들은 말로 이뤄지는 정치의 위기이기도 하다. 정치는 자유민이 그저 말하게 하는 것에 그쳐서는 안 된다. 첫째로 말의 ‘질’이 중요하다. 정치의 목적이 유권자를 말하는 존재로 활성화하는 것을 넘어 유권자가 말하는 것을 통해 ‘좋은 삶’으로 가게 하는 것이라면 말이다. 저 말로 인해 열린 담론 공간의 말들은 유권자가 ‘좋은 삶’을 생각하게 하는가?
정치와 말의 관계가 그렇다. 유권자가 말하는 존재가 되도록 활성화하는 것이 좋은 정치다. 그러나 동시에 유권자가 말할수록 더욱 좋은 삶에 대한 질 높은 의견을 말하는 ‘탁월한 존재’가 되게 하는 게 목적이지, 그냥 아무 말이나 하게 하는 게 좋은 정치는 아니다. 만약 그것이 말이 아니라 흥분된 고함이라고 한다면 이는 인간의 말을 소리로 타락시키는 위험한 정치일 뿐이다. 말하되 오직 말하는 것을 통해 좀더 탁월해지는 것. 그것이 정치와 말이 맺는 관계여야 한다.
무엇보다 현대사회에서 탁월해진다는 건 복잡한 문제를 복잡하게 인식할 수 있는 역량을 말한다. 더 이상 진리는 단순한 것이라는 말이 통하지 않는다. 진리는 단순하지 않고 복잡하다. 저 단문이 다루는 정치적 문제 중 간단한 것은 하나도 없다. 그러나 발산된 미디어의 특성을 따라야 하는 메시지는 대중의 기대를 충족하고 주목을 이끌어내기 위해 강도를 점점 더 높이며 건드려서는 안 되는 영역까지 무모하게 뛰어든다. 특히 윤석열 후보가 섣달그믐에 페이스북에 게시한 사드(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 문제 같은 경우 외교부터 지역, 북핵, 경제 문제까지 완전히 복잡하게 얽힌 초고단위의 고차방정식이다. 단문으로 이야기될 수 없다.(이 문장만 보고 또 지레짐작으로 글쓴이가 중국 편이라고 말하지 말라. 나는 홍콩의 민주주의와 티베트의 자유를 위해 깊게 연대하는 활동을 지금까지 해왔다.)
둘째로 정치는 말을 활성화해 시민과 시민이 직접 교류하는 장을 여는 것만큼이나 시민들의 말에 개입해 적극적으로 중재해야 한다. 시민과 시민이 충돌하고 해결까지 직접 해야 하는 것만큼 나쁜 정치는 없다. 비유하자면 도로에서 사고가 났을 때 뒷목 잡고 나와 운전자들끼리 언쟁하고 멱살 잡는 것만큼 끔찍한 사회가 없다. 시민들은 서로 악수하고 명함을 주고받고 나머지는 보험회사가 처리해야 한다. 이게 근대가 만들어낸 중개되는 삶이다.
정치적 메시지가 미디어를 넘어 담론 공간을 여는 플랫폼이 되는 데까지 성공했다면 다시 시민들의 말에 개입하고 중개하는 메시지로 돌아와야 한다. 그래서 그 공간에서 한 명의 시민으로서, 대통령이 되려는 정치인으로서 나는 이 문제를 어떻게 생각하고 해결하려 하며 그 해결 과정에서 벌어지는 복잡한 문제에 대해 또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말해야 한다. 이렇게 다시 메시지로 돌아오지 않는 정치적 말은 시민들의 충돌을 방치하고 심지어 즐긴다는 점에서 위험하고 무책임하며 비겁하다.
그래서 당신들의 생각은 무엇인가그래서 당신들의 생각은 무엇인가? 온 시민이 서로 갈라져 반목하는 이 복잡한 문제 하나하나에 대해 끈기 있게 당신들의 생각을 긴 호흡으로 듣고 싶다. 순발력 테스트를 하는 토론 말고 깊이 있고 끈질기게 하는 정책 토론이 듣고 싶다. 그러려면 텔레비전(TV) 토론과 다양한 플랫폼에서의 토론이 더 많아져야 한다. 이미 <삼프로TV>라는 유튜브 채널에서 정치적 말은 어떠해야 하는지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지 않았는가? 아침부터 저녁까지 토론하고 토론하라. 이것만이 이 ‘역대급’ 비호감 대선이 정치에 대한 말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줬다고 평가받을 유일한 길일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누가 대통령이 되건 그의 말로는 매우 비참할 것이다. 지금 한국에서 대통령이 되려는 자, 모두 목전의 당선만을 향해 달려가지만 가장 근심해야 하는 것은 퇴임 이후가 아니겠는가? 당선까지는 시민들을 충돌시키더라도 51%를 모아내면 되지만, 퇴임 때 사람들이 당신을 평가하는 것은 당신의 정치적 메시지가 51%를 넘어 얼마나 시민들의 삶을 적극적으로 중재했는지, 그 결과 공화국이 얼마나 공화국답게 됐는지를 평가할 것이기 때문이다.
엄기호 사회학자·청강문화산업대학 교수
*엄기호의 사건의 사회학: 발생한 뒤에는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는 ‘사건’의 종단을 되새기는 칼럼입니다. 격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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