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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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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재승이 담론에서 정치로 넘어갔을 때

현실 정치와 담론의 경계에서 결정적 순간에 나서는 시민, 정치권이 정치 파괴의 주모자이자 공모자
등록 2021-12-19 23:57 수정 2021-12-20 14:21
정치 영역으로 진입하는 담론 시장의 인사들을 한국 사회는 수없이 저지해왔다. ‘비니좌’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다 국민의힘 선거대책위원회 공동위원장으로 발탁된 노재승씨는 자진 사퇴했다. YTN 갈무리

정치 영역으로 진입하는 담론 시장의 인사들을 한국 사회는 수없이 저지해왔다. ‘비니좌’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다 국민의힘 선거대책위원회 공동위원장으로 발탁된 노재승씨는 자진 사퇴했다. YTN 갈무리

결국 사퇴했다. ‘비니좌’라는 이름으로 국민의힘 선거대책위원회 공동위원장으로 단박에 발탁된 노재승씨 이야기다. 이준석 대표 등과 면담하며 버틸 것처럼 보이더니 여론의 압박이 심상찮다는 부담감에 자진 사퇴를 했다. 물론 정말 ‘자진’ 사퇴가 아니라 김종인 총괄선거대책위원장의 압박에 따른 것일 확률이 높다는 말도 있지만 말이다.

정치 담론의 공간, 중첩된 두 공간

그는 오세훈 서울시장의 선거 유세 때 유세차에 올라 ‘비니’를 쓰고 연설한 것으로 유명해졌다. 그는 그 연설에서 “십시일반으로 모아준 세금 다시 전 시민에게 10만원씩 나눠주는 후보”를 뽑을 건지, 아니면 “그 소중한 세금 다시 한번 멋진 주거 공간, 멋진 문화·여가 공간 서울 시민의 복지 혜택으로 돌려주겠다는 후보”를 뽑을 건지를 물어서 일약 스타가 됐다.

이에 대해 이준석 대표 역시 “이 연설자가 8개월 만에 제1야당의 공동선대위원장으로 다시 뛴다”면서 “이 연설을 기억하신다면 이번 선거에서는 그 이상을 기대해도 좋다”고 전폭적인 지지를 보냈지만, 노재승씨는 그만 과거 자신이 한 발언에 발목 잡혀서 며칠 버티지도 못하고 그만두게 됐다.

노재승씨를 비판하는 많은 사람이 정규직 전면 철폐나 5·18 광주민주화운동 폄하 등 주로 그의 극단적인 이념을 문제 삼는다. 그러나 그 내용만큼이나 주목해봐야 하는 것이 그 ‘표현’이다. “비정상인 자를 추종하고 따르는 바보들” “가난하게 태어났는데 그걸 내세우는 사람들” “정상적인 교육” “대한민국에 보낸 신의 구원자” 등등. 소외된 사람들에 대한 경멸과 혐오를 노골적으로 드러내며 극단적이고 선정적이다. 그 덕분에 그의 이야기는 ‘선명한’ 이야기로 읽힌다. 바로 이 점 때문에 그가 ‘뜬’ 것이고 또 거기 발목 잡혀‘진’ 것이다.

정치적 담론의 공간은 하나가 아니다. 두 공간이 중첩돼 있다. 하나는 현실 정치의 공간이다. 이 공간에서는 말 한마디를 잘못하면 한순간에 낙마하고 매장된다. 그래서 표현 하나하나에 신경 써야 하고 잘 골라내야 한다. 다른 한 공간은 정치적 담론 ‘시장’의 영역이다. 정치적 담론 시장은 전형적인 주목 경제의 영역이다. 주목받지 못하면 도태되는 것을 넘어서 아예 존재하지 않는 것이 된다. 이 영역에서 말은 ‘팔려야’ 존재한다. 말을 팔아먹기 위해 강도를 높여 선명하게 이야기해야 하는 것이 이 공간의 규범이다. 말의 인플레이션이 필연이다.

반대로 이 시장에서 제일 안 팔리는 담론이 ‘밀도’ 높은 이야기다.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는 결코 단순하지가 않다. 어떤 주제이든지 대부분 많은 일이 복잡하게 얽혀 있다. 방역 문제를 보자. 이는 단지 감염내과나 예방의학에서 다루는 ‘질병’의 문제이기만 한 것이 아니다. 자영업자와 소상공인의 생계가 걸려 있고 나라의 경제 전체가 얽혀 있다. 또한 학생들의 성장과 교육 과정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단순화해 선명하게 이야기할수록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꼬이게 된다.

따라서 이런 문제들의 해법을 찾기 위해 필요한 언어는 선명도 높은 언어가 아니라 복잡한 것을 복잡하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하는 말이다. 혹시 놓친 변수는 없는지, 연관된 다른 요소를 간과하거나 돌봐야 하는 것 중 빠진 것은 없는지 꼼꼼하게 챙겨야 한다. 그래야 실수를 덜 할 수 있다. 단지 실수이기만 한 것이 아니라 누군가에게는 생명이나 생계가 직결된 문제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런 밀도가 높은 언어는 느리고, 복잡하고, 어렵기 때문에 담론 시장에서는 인기가 없다는 점이다.

정치 담론 시장에서는 선정적이 돼야 주목을 끈다. 대표적 예가 유튜브 채널 ‘가로세로연구소’다. 강용석 변호사(왼쪽)와 김세의 전 <문화방송> 기자가 조동연 전 더불어민주당 공동상임선대위원장 가해자에 대한 고발장을 제출하는 모습을 방송하는 가로세로연구소 유튜브 방송 화면. 가로세로연구소 유튜브 갈무리

정치 담론 시장에서는 선정적이 돼야 주목을 끈다. 대표적 예가 유튜브 채널 ‘가로세로연구소’다. 강용석 변호사(왼쪽)와 김세의 전 <문화방송> 기자가 조동연 전 더불어민주당 공동상임선대위원장 가해자에 대한 고발장을 제출하는 모습을 방송하는 가로세로연구소 유튜브 방송 화면. 가로세로연구소 유튜브 갈무리

선정적으로 정치화하는 두 방법

대신 정치적 담론 시장에서는 선정적이 돼야 주목을 끌 수 있고 돈을 벌 수 있다. 두 가지 방법이 있다. 하나는 선정적 주제를 다루는 것이다. 정치적 주제가 아님에도, 아니 정치적 주제가 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대중의 말초적 쾌락을 자극하는 주제를 선정적으로 정치화한다.

가장 대표적인 게 가세연(가로세로연구소)이다. 사람의 인격과 존엄을 ‘알권리’라는 이름으로 콜로세움에 발가벗겨 세우고 사자밥을 만들고는 그것을 대중이 즐기게 한다. 그리고 그 책임을 물으면 ‘자유에 대한 탄압’으로 규정하며 자신들을 숭고한 이념의 전사로 만든다. 사람을 죽이고 그것을 구경하며 낄낄거리며 그 ‘죄’를 공유한 대중은 ‘슈퍼챗’(후원금)으로 ‘입금’하는 순간 자유를 위한 숭고한 투쟁에 연대하는 행위가 되어 면죄된다.

이 주목 경제에서 주장하는 ‘자유’는 “시시껄렁한 포르노를 볼 자유도 자유다”라고 주장한 래리 플린트(미국의 포르노 잡지 발행인)의 자유조차도 못 된다. 그 누구도 자신의 의사에 반해 타인의 삶을 착취하여 ‘구경거리’로 만들 자유는 없다. 이처럼 지금 주목 경제에서 벌어지는 일은 자유라는 이름으로 타인의 삶을 구경거리로 콜로세움에 세워 착취하는 ‘자유’다. 이것은 자신의 자유를 향한 투쟁이 아니라 타인의 자유에 대한 투쟁이다.

다른 하나는 그것이 비록 정치적 주제라고 하더라도 앞에서 말한 것처럼 ‘세게’ 말하는 것이다. 노재승씨의 경우가 여기에 해당한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해상도 높게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선명도의 강도만 높여서 ‘극단적’으로 말하면 된다. 지금 정치적 담론 시장을 장악한 유튜브나 팟캐스트 같은 채널들의 대다수가 극단적인 이유는 이것 때문이다. 그래야 팔린다. 팔아야 하니 또 그렇게 극단적으로 말하고 누가 누가 더 ‘쎄게’ 말하나 경쟁한다.

이 시장이 이렇게 형성된 이유는 한편에서 이 ‘물건’을 돈 주고 사는 사람들은 강성 지지자이기 때문이다. 보통 사람들은 아주 예외적인 경우가 아니라면 돈을 주면서까지 이 담론을 소비하지 않는다. 지금 정치적 지지자들이 바라는 것은 논쟁이나 토론이 아니다. 내가 맞다는 것을 합리화하고 정당화하는 담론이다. 여기서는 지지자가 충성하는 게 아니라 지지자를 향한 충성 경쟁이 펼쳐진다.

다른 이유는 말하는 이의 정치적 야심 때문이다. 정치적 담론 시장에 진출한 이 중 상당수는 이 시장에서 돈을 버는 것만으로 만족하지 않는다. 그들은 ‘정치’에 진입하기를 바란다. 정치적 담론 시장에서 두각을 보인 뒤 그 지분으로 실제 정치 공간으로 진출하는 것이 목적이다. 처음부터 그렇게 시작하지 않았더라도 지금 정치권이 ‘인재 영입’ ‘수혈’이라는 이름으로 이들을 유혹한다.

선을 넘어가면 백에 아흔아홉은 망한다

이 꼬드김에 넘어가지 않을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정치적 야심보다는 담론 시장에서 돈을 버는 게 더 확고한 목적이거나, 이 일을 하는 것 자체가 진짜 이념적 소신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넘어가게 된다. 정치는 돈과는 비교되지 않게 사람을 직접적으로 움직이는 권력에 대한 유혹이고 차원이 다른 사회적 지위에 대한 유혹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선을 넘어 정치적 담론 시장에서 실제 정치 공간으로 넘어간 사람들은 열에 아홉, 아니 백에 아흔아홉은 망한다. 정치적 담론 시장과 정치 공간 둘 다 ‘정치’와 연관돼 있기에 비슷한 공간으로 착각하지만 두 공간의 말/담론의 규범과 질서가 완전히 다르기 때문이다. 정치적 담론 시장에서는 선정적이더라도 문제가 되지 않고 오히려 그것이 돈을 버는 최상의 수단이지만, 정치 공간에서는 그것이 망하는 지름길이다.

정치적 담론 시장의 경우와 달리, 정치 공간에서 말은 내용이 문제가 아니다. 오히려 형식이 문제다. 여기선 무엇을 말하는지가 아니라 어떻게 말하는지가 더 중요하다. 극단적 이념이라고 하더라도 교묘하게 말해야 한다. (노재승씨의 5·18에 대한 발언이 문제가 됐을 때 이준석 대표가 5·18 광주민주화운동 자체에 대한 것이 아니라 ‘역사왜곡방지처벌법’의 부분에 대한 것이라며 논점을 돌려버리는 것처럼 말이다.) 무엇을 무엇의 문제로 말하는지 그 형식이 정치 공간 발언의 핵심이다.

아무리 포퓰리즘(대중영합주의) 시대가 도래했다고 하더라도 한편에서는 정치 공간이 정치적 담론 시장과 구분되는 질서를 아직 가지고 있음을 확인시켜준다. 아니 더 정확하게 말하면 이 구분이 지켜지는 이유는 한국 사회의 시민들이 아직 이 둘 사이에 선이 있으면 이 선이 붕괴돼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 점이 한국 사회가 가진 가장 큰 힘이다. 평소에는 강성 지지자들의 목소리, 마이크를 쥔 사람들의 목소리만 들리고 다른 목소리는 정치적 담론 공간에서 쫓겨나는 것 같지만, 결정적 순간에는 시민들이 나서서 “그래도 정치가 저런 말을 하면 안 되지”라고 장벽을 친다. 그 결과 정치적 담론 시장에서 선정성으로 승부를 걸던 사람들이 정치 영역으로 진입하는 일이 저지된다. 이미 노재승씨 이전에 한국 사회는 이 선을 넘는 인사들을 숱하게 저지했다.

미국과 비교해봐도 이 점은 정치의 문법과 질서를 지키며 그나마 정치를 정치답게 하는 한국 사회의 가장 큰 힘이다. 도널드 트럼프가 대통령이 되고 난 다음 스티브 배넌 같은 사람들이 중용됐다. 스티브 배넌은 극우 온라인 뉴스의 설립자이고 네거티브 선거의 달인이라는 점에서 전형적인 주목 경제의 장사꾼이었다. 한국 같았으면 이런 자가 청와대에 들어가는 일은 거의 불가능했을 것이다.

대통령이 된 트럼프, 백악관에 간 배넌처럼

그러나 이런 정치의 금도를 지키는 시민들의 역량과 달리, 정치적 담론 시장은 점점 더 그 도를 더해간다. 가세연의 경우가 보여주는 것처럼 말이다. 아마 이 공간은 더 선정적인 방향으로 가속될 것이다. 더욱이 지금처럼 정치가 시민들의 삶을 콜로세움에 사자밥으로 세우는 이 시장의 말/담론에 기대려 할수록 말이다. 솔직히 정치권이 노골적으로 이 시장을 정략에 따라 기대면서 정치가 아닌 것을 정치로 만들어 사람을 발가벗겨 사냥하는 것을 방조하고 후원하고 있지 않은가? 이런 점에서 정치권이야말로 정치 파괴의 주모자이자 공모자다.

한국 사회에서 사는 극단적 피곤함이 여기에 있다. 정치가 시민을 보호하는 게 아니라 이 파괴자들에 맞서 시민이 정치를 보호하려 한다. 내 삶은 각자 알아서 챙겨야 하고 말이다. 그러니 이 나라에서 시민 노릇 하며 살기 정말 힘들다.

엄기호 사회학자·청강문화산업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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