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0세대가 ‘보수적’이라는 증거로 흔히 거론하는 게 공정담론과 능력주의다. 능력주의에 따르면 승자가 독식하는 게 불평등해 보이는 게 아니라 오히려 공정해 보인다. 자기 재능과 노력으로 성취한 것이기에 그만큼 합당한 보상을 차등적으로 받는 것이 정당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오히려 사회적 약자를 보호한다는 이름으로 노력과 재능, 즉 능력에 제한을 임의로 걸고 규제하는 것이 불공정하다고 생각하며 불평등을 심화하는 것이 능력주의라고 진보적인 쪽에서는 비판한다.
물론 능력주의를 비판하는 사람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능력’의 상당 부분을 결정하는 건 개인의 노력과 재능이라기보다는 그 사람의 조건이다. 아르바이트로 학비와 생활비를 벌면서 학업을 해야 하는 학생과 집에서 전적으로 보조받을 수 있는 학생의 차이는 크다. 비대면수업을 할 때 자기 방에서 몇 가지 장비를 동시에 사용하는 학생과 그렇지 못한 학생의 차이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크다. 이런 조건의 차이를 간과한 채 개인의 ‘능력’만을 보는 건 그 자체로 불공정하면서 동시에 불평등이 심화되는 것을 외면하는 일이 될 것이다.
그러나 지금의 청년세대가 가지는 ‘절망감’에는 능력주의만큼이나 ‘능력’의 정의 자체에도 문제가 있다. 현재 능력주의가 말하는 ‘능력’은 아주 최적의 조건을 갖춘 몇몇을 제외하고 나머지는 모두 다 ‘무능력자’로 낙인찍히게 한다. 능력 개념이 능력의 ‘정도’에 따라 가파르게 줄을 세워 불평등을 심화하는 것만이 문제가 아니라, 전혀 다른 능력을 요구하며 절대다수에게 패배감을 안긴다는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일례를 들어보자. 학생들과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자신이 뭘 해야 할지 몰라 헤매는 경우를 많이 본다. 사실 그런 학생을 종종 보는 게 아니라 가장 흔하게 만나는 학생들이 자신이 뭘 해야 할지 몰라 당황하고 있다. 이들이 ‘능력’이 없냐면 전혀 그렇지 않다. 자기 분야에서 상위층에 속하는 학생들이다. 능력을 인정받으며 그 능력을 갖추기 위한 조건과 노력 모두가 다 된 학생들이다.
그런데 이들이 상위 학생만 모인 곳에 들어와 한 번도 비교해보지 못한 방식으로 자기를 다른 사람과 비교하면서 당황한다. 물론 이 당황함은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현상은 이전에도 있었다. 세상에서 내가 제일 잘났다고 생각하다가 나보다 잘난 사람을 만났을 때의 당혹감이니까 말이다. 자신이 그렇게 잘난 사람이 아님을 받아들이는 건 당연히 힘든 일이다. 그 과정에서 자존감에 상처받는 것도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자존감에 상처받는 것이 극단적인 경우가 많다. 자괴감의 나락으로 떨어진다. 자신이 소중하고 존중받아야 할 존엄한 존재라는 것에 대한 자의식은 이전보다 아주 높아졌지만, 동시에 존재감에 상처 입고 자존감이 바닥을 뚫고 추락하는 경우가 너무 많아졌다. 자의식과 자존감의 이 낙차가 너무 커서 감당되지 않기에, 가르치는 사람이 어떤 말을 해야 할지 당황하는 경우가 많다.
무엇을 해내는 능력, 전략화하고 관리하는 능력문제는 생각만큼 자기가 잘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면서 분발해 더 열심히 노력하려 할 때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는 경우가 더 많다는 점이다. ㄱ을 열심히 하라고 말하기도, ㄴ에 더 정진해야 한다고 말하기도 모호하다. 사실 문제는 ‘둘 다’인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하나만 잘해서 되는 게 아니라 ‘모든 걸’ 잘해야 한다. 이런 점에서 “뭘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말은 이미 모두 다 잘해야 한다는 요구를 받는 것을 방증한다.
물론 이렇게 말할 수도 있다. 다 잘해야 하지만 그중에서 특히 잘해야 하는 것이 있거나 우선해서 잘해야 하는 것이 있다고 말이다. 그래서 ‘선택과 집중’이 중요하고 그럴 수 있는 ‘전략’과 ‘전략적 사고’가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다른 말로 하면 이들에게 결여됐다는 것이란 바로 전략적 사고의 능력이다. 그리고 그 전략에 따라 자신의 일상과 관계 등 모든 것을 ‘관리’하는 능력이다.
이것이 요구받는 능력 개념의 핵심이다. 이 능력을 갖지 못하면 다른 능력을 가졌더라도 한번 경쟁에서 패배하면 한순간에 나락으로 떨어져 ‘무능력자’가 된다. 다음으로 도약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 바로 이 ‘전략과 관리’인데, 그가 가진 능력이란 ‘무엇을 해내는 능력’을 의미하지 그 해내는 능력을 ‘전략화하고 관리하는 능력’은 아니기 때문이다. 이 시대가 요구하는 능력은 사실 후자의 능력이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능력의 ‘정도’로 사람을 줄 세우는 것을 넘어, 어떤 이들에게는 거의 불가능한 전혀 다른 능력을 요구한다.
이 능력이야말로 개인의 자질과 노력보다는 ‘환경’에 의해 만들어진다. 한국어·영어·수학을 잘한다고 생기는 것도 아니고 밤새 도서관에서 책을 읽는다고, 혹은 자기가 좋아하는 기술을 연마한다고 생기는 것이 아니다. 이 능력은 주변의 사람과 사물을 자원으로 다루고 활용하는 기술에 가깝다. 만일 이 능력이 체화돼 있지 않으면 외주화해 비싼 값을 주고 ‘컨설팅’으로 구매해야 한다.
이 능력을 사회학자 셸리 코렐의 개념에 비춰보면 ‘초국적 비즈니스’ 남성성의 능력이라고 할 수 있다. 그의 개념으로 웹툰 <치즈인더트랩>을 분석한 연세대학교 구자준씨의 논문에 따르면, 이 남성성은 이전 남성성이 헤게모니(패권)를 유지하던 방식인 정서적 과잉에 의존하지 않고 대신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며 때로는 잔인하게 주변의 모든 것을 자원화해 자신의 커리어를 관리하는 데 사용한다. 그렇기에 그는 무엇이 이용할 자원이고 버릴 것인지를 정확히 판단해 행동해야 한다.(이게 책으로 배우고 연습한다고 되는 일일까?)
이런 점에서 학생들이 자기 능력의 한계에 봉착했을 때 뭘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말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 그때 그 학생이 알고 싶은 건 자기가 더 개선하고 싶어 하는 능력에 초점을 맞췄지만, 그것을 해내기 위해서라도 이 학생에게 요구되는 건 ‘전략과 관리’라는 의미에서의 능력이기 때문이다. 그것도 매우 프로페셔널한 수준에서의 능력을 요구한다. 아마추어적으로 하다가는 더 큰 실패와 낭패를 보고 그건 회복할 수 없는 존재감의 훼손을 겪게 할 가능성이 크다.
우리 모두는 이제 자기 삶에서 초국적 비즈니스‘맨’이 돼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실패한 삶이다. 이 점 때문에 가르치는 사람도 학생에게 조언할 때 매우 조심한다. 그들 역시 이 분야의 ‘제갈공명’은 아니기 때문이다. 누가 누구에게 삶의 전략을 함부로 조언하고 충고할 수 있단 말인가. 간이 배 밖에 나오지 않은 이상 말이다. 이 과정에서 과거처럼 ‘가볍게’ 조언하고 충고하는 이는 사라지거나 ‘경솔한’ 사람으로 취급된다. 신중한 사람일수록 말을 아끼고 경솔할수록 함부로 말하기에 조언과 충고라는 의미에서 사람들의 ‘곁’은 점점 더 황폐해져간다.
대신 그 자리는 ‘전문적’으로 전략과 관리를 조직하는 사람이 차지한다. 어디를 가나 ‘컨설팅’이 차고 넘치는 이유다. 결국 전문 컨설팅을 받을 수 있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의 격차가 다름 아닌 능력의 격차가 된다. 무엇을 잘하는가 못하는가라는 의미에서의 능력보다 더 결정적이다. 그러니 이 능력을 가지고도 저 능력이 없는 사람들은 헤매고 좌절하지 않을 수 없다. 뭘 해야 할지 판단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이렇게 판단을 못하고 헤매는 사이 점점 뒤처지며 자신이 탈락하고 도태되는 것을 느끼는 좌절감은 이루 말할 수 없다. 능력이라는 말이 무엇을 하고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하는지, 무엇을 할 수 있고 무엇을 할 수 없는지 그 ‘경계’를 짓는 것에서 시작한다면 도저히 경계짓기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김곡 작가가 책 <과잉존재>에서 말한 것처럼 경계를 짓지 못하는 무능력, 그 무능력감을 매 순간 절감하며 살아가야 한다.
역설적으로 이 무능력감과 단짝을 이루는 게 김곡 작가가 말하는 것처럼 무엇이든 할 수 있고, 다 해야 한다는 전능감/만능감이다. 할 수 있음과 없음 사이에 경계를 짓지 못하니 무엇이든 할 수 있고 다 해야 한다. 늘 그 과정에 있지 못하면 불안해서 견딜 수 없고 무력감에서 벗어날 수 없다. 전능감을 잃지 않기 위해서라도 쉼 없이 자기계발 과정에 있어야 한다. 프로페셔널한 ‘전략과 관리’를 돈 주고 살 수 없는 사람들에게 가능한 거의 유일한 자기 전략과 관리의 방법이 ‘자기 계발’인 것이다. 그 능력을 계발한다는 것으로 자기 위안을 삼으면서 말이다.
피로함에서 벗어날 수 없는 삶이 능력 개념이 지배적인 한 우리 삶은 피로함에서 벗어날 수 없다. 주변의 관계를 비롯한 모든 것을 전략화하고 삶을 관리하며 또 그런 존재가 되기 위해 자기를 계발하면서 ‘과’긴장한 상태로 살아가야 한다. 그러나 그렇게 해봤자 아마추어인 자신이 찾아가는 그 전략이 정말 전략적인 것인지도 확실하지 않다. 더구나 그 부분을 돈 주고 전문가에게 외주화한 사람들과의 경쟁에서 이기는 건 쉽지 않다. 과긴장하고 살지만 대부분은 만성적인 피로와 무능력감에 빠지기 십상이다.
현재 청년들(을 선두로 하며 모두)에게 요구되는 ‘능력’ 개념이 대다수에게 불가능하고 그들을 무력감과 좌절감에 빠뜨린다는 것을 직시했으면 좋겠다. 모두가 그 능력을 갖게 국가가 도와주겠다고 약속하는 정치가가 아니라, 모두가 저런 ‘능력자’가 되는 게 불가능함을 대면하는 정치가의 출현이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거대 양당에서 나오지 않는다면 소수 진보정당에서라도 그래야 한다. 모두를 초국적 비즈니스‘맨’이 되게 해주겠다는 정치가 아니라, 경계 없이 질주하며 사람을 과긴장 상태로 만들어 파괴하는 ‘능력’을 문제 삼는 정치의 출현을 고대한다.
엄기호 사회학자·청강문화산업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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