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맞춤형 교육시대, AI “너라면 풀 수 있어, 왜 포기하니”

[코로나 뉴노멀]
1부 1장 온택트의 발견
등록 2020-06-02 16:31 수정 2020-09-10 21:19
2019년 인공지능(AI) 선도학교인 부산컴퓨터과학고등학교 학생들이 AI를 활용해 수업하고 있다. 부산시교육청 제공

2019년 인공지능(AI) 선도학교인 부산컴퓨터과학고등학교 학생들이 AI를 활용해 수업하고 있다. 부산시교육청 제공


‘새로운 시대의 새로운 표준’. 코로나19 바이러스는 짧은 시간에 인간 세계를 송두리째 뒤흔들었다. 인류의 생활양식은 예전과 똑같은 궤도로 돌아가지 못할 것이다. 이른바 ‘코로나 뉴노멀’ 시대의 개막이다. 무엇보다 인간과 인간의 물리적 접촉은 더 이상 무조건적인 덕목이 아니게 됐다. ‘접촉 축소’라는 시대적 요구는 자동차와 비행기의 이동을 줄게 해 의도치 않은 맑은 하늘과 깨끗한 공기를 안겨줬다. 화석 연료로 지탱하는 지금의 에너지 구조는 더 이상 ‘이대로’를 외칠 수 없는 영역으로 이동하는 중이다. ‘작은 정부론’에 시달리던 국가는 영역을 확장해나갈 태세다. 코로나19 대응에 미숙함을 드러낸 미국과 중국, 두 국가는 국제적인 지도력을 잃었다. 지(G)2 시대가 저물고 지(G)0 시대가 열렸다. 새롭게 모습을 드러내는 ‘코로나 뉴노멀’이 정의와 평등의 얼굴을 갖게 하기 위해 세계시민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_편집자주

신나라가 다니는 뉴노멀초등학교 5학년1반의 과학 시간. “오늘은 화재를 예방하는 방법을 찾아볼까요?” 선생님이 던진 문제에 학생들이 바빠진다. 신나라가 속한 모둠에서도 논의가 이어진다. “화재가 왜 발생할까?” “화재가 발생한 주요 연도는 언제지?” “주방의 어떤 기구에서 불이 많이 날까?”

이제 답을 찾아갈 시간. 신나라는 태블릿PC를 꺼내 공공데이터가 모인 포털 사이트에 접속한다. 맡은 역할에 따라 화재가 일어나는 원인에 대한 정보를 수집한다. 다양한 정보는 공공 파워비아이(데이터 시각화 소프트웨어)에 탑재돼 유의미한 결과로 만들어질 때까지 다각도로 변환된다. 신나라의 모둠은 필요한 정보를 정리해 파워포인트(시각 자료를 만드는 소프트웨어)로 만든 뒤, 다음 수업 시간에 발표한다. 다른 모둠에선 화재를 예방하는 기구에 대한 아이디어를 소개한다.

다음은 신나라가 좋아하는 영어 시간. 책상에 놓인 대화형 인공지능(AI) 스피커 ‘구글홈 미니’를 켜고 태블릿PC의 인공지능 앱 ‘구글 어시스턴트’와 연결한다. “How are you today?(오늘 기분 어때?)” “I feel good because the weather is nice today.(날씨가 좋아서 기분이 좋아.)” AI 스피커의 재치 있는 답에 웃음이 터진다. 영어로 잘 이야기를 못해도, AI 스피커 앞이라 부끄럽지 않다. AI 스피커의 발음을 유심히 들으며 최대한 따라하려고 노력한다.

10년 예상했으나 “5년 안에도 가능할 것”

신나라가 가장 피하고 싶은 수학 시간. 오늘도 ‘평균과 가능성’ 단원이다. 다른 친구보다 진도가 늦다. 신나라는 잘 이해되지 않는 부분의 강의를 반복해 들으며 공부한다. 그런데도 세 문제나 틀렸다. 틀린 문제와 비슷한 유형이 다시 출제된다. 반복 학습 끝에 드디어 과제 성취도 100%에 도달했다. 격려 배지를 받은 신나라는 무척 신이 났다.

2020년, 한국 교실의 풍경이다. AI를 활용한 공교육은 이미 현실이 됐다. 다만 아직은 실험 단계다. 1~2년 전부터 부산의 AI 연구학교 같은 지역별 시범학교에서 일부 교육과정에 AI를 학습도구로 활용하는 정도다. 그래도 코로나19로 풍부해진 ‘미래 교실’에 대한 사회적 상상력에 학교들은 희망을 걸고 있다. AI 교육에 가장 앞선 편인 부산시교육청의 손제득 미래인재교육과 장학사는 “‘포스트 코로나’를 계기로 우리가 예측했던 것에 대한 트랜스포메이션(혁신)이 빠르게 일어나고 있다”며 “지금까지는 AI 기반 교육 보편화에 10년은 걸릴 거라 생각했는데, 부분적으로는 5년 안에도 가능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인간처럼 스스로 학습하고 사고하는 프로그램’이라는 AI의 알 듯 말 듯한 뜻처럼, AI 교육에 대해서도 딱 부러지는 설명은 없다. 전문가들은 AI 교육을 네 가지 정도로 정리한다. △교사가 AI를 학습 도구로 활용해 수업하는 교수 방식 △학생이 불확실성이 커진 미래에 좀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도록 돕는 기본 소양 △AI 개발자 또는 AI를 다른 산업과 융합하는 인재를 양성하는 과정 △AI 교사가 직접 가르치는 수업 등이다. 이 중 교육의 핵심 목표를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AI 기반 교육’ ‘AI 활용 교육’ ‘AI 융합 교육’으로 불리기도 한다.

AI 교육의 강점은 ‘맞춤형 교육’(어댑티드 러닝)이다. 무크(개방형 온라인 교육), 디지털교과서 등 ‘에듀테크’(AI, 빅데이터 등을 활용한 차세대 교육)와 마찬가지로 학생의 학습 수준과 진로, 흥미 등에 따라 풍부한 영상과 다양한 콘텐츠가 제공된다. 입시를 목적으로 교사가 일방적으로 진도를 나가며 획일적인 지식만을 전달하던 지금의 수업과는 확연히 다르다. 교육 목표와 과정을 설계하는 주도권도 교사가 아닌 학생에게 있다.

스마트 패드에 나타난 웅진씽크빅 ‘AI 수학’의 결과지. 학생별 빅데이터를 분석해 총 13단계 난이도 중 최적의 학습을 제공한다. 사교육 시장에는 AI 교육이 널리 퍼져 있다. 웅진씽크빅 제공

스마트 패드에 나타난 웅진씽크빅 ‘AI 수학’의 결과지. 학생별 빅데이터를 분석해 총 13단계 난이도 중 최적의 학습을 제공한다. 사교육 시장에는 AI 교육이 널리 퍼져 있다. 웅진씽크빅 제공


교육 목표 설계 주도권이 학생에게

지금은 교실에서 학생이 교사의 수학 수업을 한 번 못 따라가면 학원에 가지 않는 이상 ‘수포자’(수학 포기자)가 되어야 하지만, 미래 교실에선 학생이 수준에 맞는 강의를 반복해 들으며 수학 공부를 붙들 수 있다. 자체 AI 연구센터나 에듀테크 연구소를 보유한 에듀테크 기업들이 이미 사교육 시장에 제공하는 흔한 서비스다. 일부 기업은 학생의 데이터 분석을 토대로 “충분히 문제를 풀 수 있었음에도 고민하지 않고 포기하거나, 문제를 제대로 읽지 않고 오답을 내면 AI 선생님이 나쁜 습관을 고치도록 지도”(웅진씽크빅 관계자)해주기도 한다.

미래 공교육에서도 개별화 교육에는 한계가 없다. “오늘은 이성적 영역이 저조하니 수학 수업은 다음에 할까요?” 학생의 몸과 마음 상태에 따라 학습의 내용과 양을 조절하는 수업까지 가능하다고 전문가들은 예상한다. 스마트교육학회 회장인 조기성 서울 계성초등학교 교사가 그리는 미래의 등교 모습은 이렇다. “(언젠가는) 학생이 등교한 순간 학생의 건강상태와 컨디션이 비콘(위치 발신기)에 연계돼 학생건강시스템에 전송되고, 교사는 그에 따라 학습 분량이나 내용을 체크해준다. 여기에 학생 스스로 인식하는 신체 컨디션과 조합해 개인별 맞춤 교육과정이 만들어진다.”

맞춤형 교육의 목표는 입시가 아니라 학생의 논리적 사고력과 문제해결 능력 확대다. 실제 지난해 부산에선 고등학생들이 빅데이터와 AI를 활용해 교실을 넘어 ‘어린이집 정원 미달’이라는 사회문제의 실마리를 찾기도 했다. 학생들이 국공립·민간어린이집 같은 ‘어린이집 유형’보다 ‘교사 수’가 어린이집 정원 충족률에 더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결과를 도출해낸 것이다. 놀라운 분석 내용을 전해들은 부산시청은 국공립 어린이집을 무조건 확충하기보다 유형과 상관없이 교사 수를 늘리는 방안도 함께 검토하기로 했다.

AI 교육은 교사에게도 획기적인 변화다. 서술형 문제와 수행평가 모두에서 학생 평가를 도와주고 과제를 채점해주며 학습자의 오류를 분석해 당사자에게 피드백도 해준다. 학생 관리도 수월하다. 학생 활동을 실시간으로 알려주고 교사가 직접 개입해야 할 순간과 방법도 제시해준다. 학생별로, 모둠별로 수업을 계획하고 진행하는 작업 역시 AI의 도움을 받으면 된다. 물론 선택은 교사 몫이다. 부산 AI 연구학교인 연포초등학교의 이영은 교사도 “(교실에) 보조교사가 있는 느낌을 받았다”고 한다.

교사는 줄어든 행정·교육 업무만큼 학생별 교육과정을 더 정교하게 설계하고 개별 지도가 필요한 학생과는 좀더 시간을 함께할 수도 있다. 이미 핀란드 초등학교에선 ‘로봇’ 교사가 어학을 가르치고, 프랑스의 소프트웨어 교육기관인 ‘에콜42’에는 교사와 교실 자체가 없지만 한국에선 ‘교사 무용론’보다 ‘교사 역할 변화론’을 주장하는 목소리가 더 크다. 신나민 동국대 교수(교육학)는 “교사들이 본업이라 생각했던 지식 전달은 여러 프로그램이 해줄 수 있으니, 교사는 학생이 제대로 학습하는지 지켜봐주고 관리해주는 ‘학습 컨설턴트’가 될 것”이라면서도 “(학생과 학부모가) 기계가 아닌 사람에게 여전히 원하는 게 있어 교사의 역할이나 수가 절대 줄어들지는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교실에 보조교사 있는 듯”

AI 교육이 교실에서 이뤄진다고 해도, 모든 학생이 저절로 수업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며 자기주도학습을 하리라는 보장은 없다. 무크나 디지털 교과서 등 에듀테크가 학생들의 학업성취도나 자기주도학습 능력 등을 높이는 데 유의미한 효과가 있다는 근거도 없다. 신나민 교수는 “학생들이 수업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려면 동기와 역량이 있어야 하고, 그러려면 교사의 무수한 노력과 교수 프로그램이 설계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걱정되는 점도 있다. 맞춤형 교육 목적이더라도 학생들의 개인정보를 수집·분석하는 과정에 정보 인권이 침해되고, 과도한 노출로 스마트기기에 중독되며, AI 활용 능력이 다른 사람의 권리를 침해하는 것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그중에서도 AI 기술을 익숙하게 활용하는 학생과 그렇지 못한 학생과의 격차 문제가 크다. AI 교육이 보편화하면 모든 학생에게 태블릿PC나 노트북이 지급되겠지만, 더 좋은 고성능 컴퓨터가 집에 있고 더 좋은 학습용 애플리케이션이나 프로그램을 활용할 수 있다면 그 학생의 학습 성과가 더 뛰어날 확률이 높다. 다만 시범적으로 AI 기반 교육을 하는 교실에선 특별한 문제가 생기고 있지는 않다. “처음에는 기본적인 도구(태블릿PC 등)의 활용 능력이 달랐다. 그런데 정말 좋았던 점이 아이들이 서로 보고 금세 배운 것이었다. 몇 개월 지나니 목표 수준 이하 학생이 없었다. 오히려 상위권 학생들과 데이터를 공유하며, (그렇지 않은 아이도) 보고 배웠다.”(이영은 교사)

코로나19를 계기로 정부 차원의 AI 교육 정책이 본격적으로 마련되고 있다. 올해 10월 교육부가 발표할 예정인 초·중·고 단계별 ‘AI 교육 종합방안’ 준비가 문재인 대통령의 ‘비대면 교육’(5월10일 취임 3주년 특별연설) 강조로 탄력받고 있다. 지금도 AI가 실시간으로 맞춤형 영상을 추천하는 식으로 원격수업에 기여하고 있지만, 결국에는 클라우드(인터넷 서버에 문서·사진·음악 등의 파일·정보를 저장하는 것) 시스템만 있으면 언제 어디서든 공부할 수 있는 AI 교육이 원격교육을 완성하게 된다.

통제 관점의 교실에서 벗어나야

미래 교육을 위해선 정부의 보수적인 인식 전환과 전폭적인 재정 투입이 시급하다고 교사들은 말한다. “교실에 무선망(WI-FI)을 깔지 않고, 학생들의 휴대전화를 걷으며, 교사들은 지메일 같은 상용 전자우편도 못 쓰도록 막아놓은 통제적 관점의 디지털 환경”(전대원 경기도 위례한빛고등학교 교사)과 “(맞춤형 교육의 기본인) 공공 학습 데이터는 전무하고, 쌓일 수 없”(조기성 교사)는 구조를 바꾸는 게 전제조건이다. 미래 교실의 문은 언제나 열릴까.

서보미 기자 spring@hani.co.kr

※한겨레21 '코로나 뉴노멀' 통권1호를 e-북으로도 보실 수 있습니다.(클릭하시면 '알라딘' e-북 구매 링크로 연결됩니다)

코로나 뉴노멀
1부 코로나 뉴노멀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