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시대의 새로운 표준’. 코로나19 바이러스는 짧은 시간에 인간 세계를 송두리째 뒤흔들었다. 인류의 생활양식은 예전과 똑같은 궤도로 돌아가지 못할 것이다. 이른바 ‘코로나 뉴노멀’ 시대의 개막이다. 무엇보다 인간과 인간의 물리적 접촉은 더 이상 무조건적인 덕목이 아니게 됐다. ‘접촉 축소’라는 시대적 요구는 자동차와 비행기의 이동을 줄게 해 의도치 않은 맑은 하늘과 깨끗한 공기를 안겨줬다. 화석 연료로 지탱하는 지금의 에너지 구조는 더 이상 ‘이대로’를 외칠 수 없는 영역으로 이동하는 중이다. ‘작은 정부론’에 시달리던 국가는 영역을 확장해나갈 태세다. 코로나19 대응에 미숙함을 드러낸 미국과 중국, 두 국가는 국제적인 지도력을 잃었다. 지(G)2 시대가 저물고 지(G)0 시대가 열렸다. 새롭게 모습을 드러내는 ‘코로나 뉴노멀’이 정의와 평등의 얼굴을 갖게 하기 위해 세계시민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_편집자주
코로나19가 우리 삶에 균열을 낸 뒤, 우리 일상은 조금씩 바뀌었습니다. 일상이 바뀌자, 직업관이 바뀌고 가치관이 바뀌었습니다. 삶의 자전축 자체가 바뀐 사람들도 있습니다.
자연스럽게 채식, 자연스럽게 ‘탈코’
“이제 육류 일체, 우유, 달걀을 먹지 않습니다.”
영국 이스트본에 사는 이린아(16)양은 코로나19 이후, 육식을 끊었습니다. 어떤 계기가 있었냐고요? 린아는 의외로 “그냥 시작했다”고 대답했습니다. 코로나19가 각성시킨 것도 있지만, 학교에 가지 않으며 보낸 시간이 평소 하고 싶었던 일을 시작할 조건을 만들어준 거죠.
“왜 육식을 끊었냐고요? 우리 집에는 고양이가 두 마리 있어요. 육류를 먹지 않는 건, 내가 고양이를 먹지 않는 것과 같은 이유죠. 식육동물의 공장식 사육이 야기하는 온갖 문제는 일찍이 알고 있었는데, 이번에 코로나19로 학교를 안 가니 삼시세끼를 집에서 먹으며 좀더 쉽게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린아는 이 결심이 너무 쉬운 일이어서 인생이 크게 바뀌지도 않았다고 합니다. 육류 말고도 먹을 것은 아주 많다고요. “한식이나 아시아 음식은 고기와 유제품, 달걀이 없어도 얼마든지 다양하게 만들 수 있어요. 엄마가 채식 요리를 만들어주기도 하지만, 일주일에 이삼 일은 직접 만들어 먹어요. 덕분에 요리 실력도 제법 늘었고 피부도 아주 좋아졌고요.”
린아처럼 오랫동안 망설이던 일이 코로나19를 계기로 실현되기도 합니다. 서울의 한 전자회사를 다니는 신수지(32)씨는 마스크를 쓰면서 점차 화장을 덜 하다가 아예 ‘꾸밈노동’에서 벗어나게 됐습니다. “처음엔 화장하니까 마스크에 파운데이션과 립스틱이 묻는 게 비위생적이더라고요. 그래서 마스크 위로 이마와 눈만 화장했는데, 언젠가부턴 이런 내 모습이 우습더라고요. 아예 화장하지 않고 회사에 갔는데, 밥 먹을 때 마스크를 벗는 게 두려웠어요. 마스크를 가로로 찢어서 숟가락을 입에 넣고 싶은 심정이었죠.”
수지씨는 자신의 민낯을 보고도 자신을 알아보는 사람이 신기했습니다. 자기 눈엔 화장을 한 얼굴과 하지 않은 얼굴이 너무나도 다른데, 타인의 눈엔 별 차이가 없었던 거죠.
“진짜 내 얼굴이 뭔지 알게 됐죠. 나를 꾸미는 데 얼마나 많은 시간을 썼는지도 깨달았어요. 출근 시간에 꾸밈노동에 시간을 투자하지 않아도 되니, 제 시간이 생겼어요. 출근 전 커피를 내려 마시며 하루 계획을 세우는데, 그 시간이 가장 행복해요. 마스크를 벗어도 되는 날이 와도 예전으로 돌아가진 않을 거예요.”
도전이 아니라 안전 중심이 된 ‘여행’
코로나19로 ‘밥벌이’에 직격탄을 맞고 직업관이 바뀐 사람도 있습니다. <엄마, 일단 가고 봅시다!> 등을 쓴 전업 여행작가인 태원준(38)씨는 1월 ‘100일 100도시 여행’을 기록하러 유럽으로 떠났습니다. 매일 자신의 블로그에 실시간으로 여행기를 전하고 있었죠. 그러다 유럽에서 코로나19 확진자가 폭증하면서 42일 만에 여행을 중단하고 한국으로 되돌아왔습니다.
“포르투갈에서 한국행 비행기 표를 구할 수 없었어요. 국경도 폐쇄됐고, 솅겐조약(유럽연합 회원국 사이에 체결된 국경 개방 조약)도 파기됐죠. 국제 미아가 될 상황이었어요. 그때 블로그, 이메일, 쪽지로 많은 분이 걱정해줬어요.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분들이요. ‘빈곤 속 풍요’를 느끼며 한국으로 왔죠.”
당분간은 떠날 수 없어 여행에 관한 글을 쓸 수 없고, 사람들이 모일 수 없으니 여행에 관한 강연도 할 수 없는 원준씨는 앞날이 막막합니다. 그래도 그는 인간은 여행을 계속할 수밖에 없다고 믿습니다. 다만 여행작가로서 관점이 조금 달라졌습니다. 자신에게 보내준 보이지 않는 이들의 따스한 온기를 되돌려줄 사명감이 생겼으니까요.
“그동안은 도전 위주의 여행을 했고, 모험을 중시하는 어조로 글을 썼죠. 그래야 독자가 열광하니까요. 하지만 이제는 안전과 치안 위주의 여행을 할 거예요. 독자 입장에선 재미없다고 느낄 수도 있지만, 우리 모두의 안전이 얼마나 중요한지 이제 깨달았잖아요.”
서울의 한 대학교 시간강사인 유혜영(36)씨는 재난 위기가 절대 공평하게 오지 않음을 절감했습니다. 특히 비정규직 신분에게는요. “한 고등학교에서 일주일에 6시간씩 심화 과목 강의를 하는데, 학교 쪽에서 온라인수업으로 바꾸면서 4시간 수당만 준다고 통보했어요. 온라인수업이 더 품이 많이 드는데도 말이죠. 그 수당이 내 생계에 필요한 돈이라면 어땠을까 싶더라고요. 나 같은 사람이 많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더 화가 났죠.” 혜영씨는 제도적으로 보호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더욱 생각하게 됐습니다. 기본소득제 도입에 대해서도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됐고요.
책 매개 온라인의 만남
재난의 경험으로 새로운 활로를 찾은 사람도 있습니다. 서점 리스본의 정현주 대표의 이야기입니다. “우리 서점의 경우 사람과 사람 사이 만남을 소중히 여겼는데 갑자기 펼쳐진 비대면의 세상에서 온라인으로, 그러나 여전히 다정하게 연결되는 방법을 찾고 싶어졌습니다. 물론 책을 중심으로요. 온라인 모임을 시도했어요. <걷기의 인문학>을 읽으면서 매일 자신이 얼마나 거리를 걸었는지 기록하는 모임이 있고, 매일 자신이 읽은 책에서 한 문장씩 발췌해 공유하는 모임도 있는데 반응이 좋았어요. 이처럼 관심사가 같고 취향이 맞는 사람들을 연결해주는 기능을 서점이 할 수 있다는 것을 이번 경험을 통해 절실히 느꼈죠.” 온라인 활동이 활발해지자 매장의 수익이 덩달아 좋아졌습니다.
이제 코로나19 이전으론 돌아갈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세상이 멈추는 것을 보는 엄청남 경험을 하니 그동안 안 된다고 여겼던 게 다 ‘사소한 장애’였다는 생각이 들었고, 세상을 ‘만들고 싶다’는 의지 같은 게 생겼다”는 <후아유> 저자 이향규씨의 말처럼요.
신지민 기자 godjim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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