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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으로 휜 쇼트트랙 스케이트 날, 곡선과의 진땀나는 사투

트랙의 48%가 곡선인 쇼트트랙 주로… 스피드와 안정성 둘 다 챙기는 1㎜의 과학
등록 2026-02-26 21:48 수정 2026-02-27 15:28
김길리가 2026년 2월19일(한국시각) 열린 2026 밀라노·코르티나담페초 겨울올림픽 쇼트트랙 여자 3천m 계주 결승에서 이탈리아 선수를 따돌리고 1위로 달리고 있다. 밀라노/연합뉴스

김길리가 2026년 2월19일(한국시각) 열린 2026 밀라노·코르티나담페초 겨울올림픽 쇼트트랙 여자 3천m 계주 결승에서 이탈리아 선수를 따돌리고 1위로 달리고 있다. 밀라노/연합뉴스


 

사람들이 요즘 티브이(TV)를 잘 보지 않아서인지 아니면 제이티비시(JTBC)의 독점 중계 때문인지는 명확하지 않으나 2026 밀라노·코르티나담페초 겨울올림픽은 큰 관심을 받지 못한 듯하다. 그러나 얼음장 같은 무관심 속에서도 선수들은 묵묵히 성과를 냈다. 특히 쇼트트랙은 총합 7개의 메달을 가져오며 이번 대회에서도 효자 노릇을 톡톡히 수행했다. 이를 기념하는 의미에서 쇼트트랙 경기에 숨겨진 ‘장비발’에 관해 알아보자.

 

종목 따라 제각각인 스케이트 날 모양

 

등산, 육아, 요리 등 온갖 분야에서 ‘장비발’을 외치는 시대다. 쇼트트랙 선수에게 가장 중요한 장비란 다른 빙상 선수와 마찬가지로 단연 스케이트화일 것이다. 장인은 도구를 탓하지 않는다지만 선수는 누구보다 도구에 엄격한 법. 선수들의 발밑을 유심히 들여다보면 실제로 종목에 따라 스케이트 날 모양이 제각각임을 발견할 수 있다.

스피드 스케이팅화의 날은 길고 곧게 뻗어 있다. 뒤쪽 날이 부츠에서 분리되도록 설계돼 선수들이 발을 내디딜 때마다 박수 치는 것 같은 소리가 난다. 피겨 스케이팅화의 날은 짧고 두꺼우며, 앞부분에 ‘토’(Toe)라는 이름의 톱니가 달려 있다. 화려한 점프를 선보일 때 피겨 스케이팅 선수는 토를 빙판 위에 찍으면서 도약한다. 쇼트트랙 스케이팅화의 날은 이들과는 완전히 다른 형태를 띤다. 날이 일직선이 아니라 왼쪽으로 미세하게 휘어져 있다. 날이 부착된 위치도 신발의 중심이 아니라 왼쪽으로 치우쳐 있다. 쇼트트랙 선수들은 왜 잘못 만든 것처럼 보이는 이런 휘어진 모양의 날을 사용할까?

이는 쇼트트랙 경기의 트랙 형태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쇼트트랙 선수는 총 길이가 111.12m인 타원형 트랙에서 실력을 겨룬다. 트랙 길이가 400m인 스피드 스케이팅에 견주면 심히 짧은데, 심지어 그중 53.81m가 곡선주로다. 사실상 절반 가까운 구간이 코너길인 셈이다. 하여 쇼트트랙 경기에서는 코너를 얼마나 효과적으로 돌 수 있느냐가 관건이 된다. 코너를 도는 방향인 왼쪽으로 날을 휘게 하는 벤딩 작업은 이를 위한 것이다.

벤딩 작업이 된 스케이트 날은 코너를 돌 때 몸이 바깥쪽으로 밀리는 현상을 방지해준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코너길은 휘어 있다. 그러므로 만약 스케이트 날이 일직선이라면 코너를 돌 때 날의 앞부분이나 뒷부분의 아주 좁은 면적만 얼음에 닿게 될 것이다. 하지만 날을 왼쪽으로 휘어놓으면 선수가 몸을 안쪽으로 기울였을 때 날이 빙판에 착 달라붙는다. 날을 빙판에 깊고 길게 박을수록 선수는 몸을 바깥쪽으로 밀어내려는 원심력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다. 선수가 원심력을 버티려는 힘은 일정하므로 날이 얼음에 닿는 길이가 길수록 그 힘이 분산되기 때문이다. 힘이 제대로 분산되지 못하면 얼음이 깨지거나 날이 옆으로 밀려버리면서 선수도 엉겁결에 아웃코스로 나자빠지게 될 것이다.

 

바닥과 닿는 면적 최소화하는 ‘로그 작업’

 

스케이트 날이 왼쪽에 치우친 위치에 부착된 것도 비슷한 이유에서다. 쇼트트랙 스케이팅화의 날은 왼발의 경우 새끼발가락 쪽에, 오른발의 경우 엄지발가락 쪽에 가까이 붙어 있다. 이는 코너를 돌 때 왼쪽으로 기우는 몸의 중심을 잡는 데 도움을 줄 뿐만 아니라 스케이팅 부츠가 얼음에 닿아 넘어지는 것 또한 방지해준다. 말하자면 쇼트트랙 스케이팅화는 가장 빠른 직진을 포기하는 대신 가장 완벽한 곡선을 선택한 장비인 셈이다.

하지만 안정만을 추구해서는 결코 이길 수 없다. 벤딩과 날의 부착 위치가 안정성을 위한 기술이라면 스피드를 위한 기술도 있다. 쇼트트랙 스케이팅화의 날은 옆에서 보면 평평하지 않고 가운데가 볼록한 곡선 형태로 되어 있다. 마치 둥근 구슬의 단면 같기도 하고 초승달 같아 보이기도 한다. 날을 이렇게 둥글게 깎는 작업을 ‘로그’라고 한다.

로그 작업을 하는 데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하나는 날이 얼음과 닿는 면적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다. 앞서 원심력에 대항하기 위해 날이 얼음에 많이 닿아야 한다고 했는데, 그것과 모순되는 이야기 아니냐고? 맞으면서도 틀린다. 안정성은 미끄러지지 않기 위해 분명 중요하다. 그런데 유의해야 하는 것은 그 안정성을 제공하는 힘이 마찰력이라는 점이다. 미끄러지는 물체의 속력을 줄이는 바로 그 마찰력 말이다. 쇼트트랙 선수는 원심력에 의해 튕겨나가지 않을 정도의 마찰력을 확보해야 하지만, 그것으로 인해 희생되는 스피드는 최소화해야 한다. 그래서 벤딩된 날 전체가 빙판에 닿아 과도하게 속도를 줄이지 않도록 로그 작업을 하는 것이다.

물론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로그 작업을 하는 두 번째 이유는 효과적인 방향 전환을 위해서이다. 스케이팅화의 날이 완전히 평평하면 직선에서 가속을 얻는 데는 유리하지만 방향 전환을 하는 데는 불리하다. 반대로 날이 둥글면 얼음과 닿는 점이 작아져 회전하기가 훨씬 수월해진다. 우리가 운동장에서 좌향좌할 때 발끝을 세워서 하면 훨씬 쉬운 것이나 마찬가지다. 선수마다 정해진 트랙이 없는 쇼트트랙의 특성상 재빠른 방향 전환과 이어지는 빠른 가속은 그야말로 성적을 좌우하는 최중요 요인이다. 로그 작업의 성패가 메달 색을 결정한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스케이팅화의 날 입장에서 보면 쇼트트랙 경기는 완전히 곡선과의 싸움이다. 0.01초 차이로 메달이 갈리는 승부의 세계에서 쇼트트랙 선수들은 자신의 주행 스타일에 따라 벤딩과 로그의 정도를 정밀하게 조정한다. 그래도 모두가 지켜야 하는 것은 있다. 여러 선수가 동시에 레이스를 펼치는 종목 특성상 안전을 위해 날의 뒤끝을 둥글게 깎아야 한다. 또한 곡선을 가파르게 돌아야 하므로 부츠가 복숭아뼈 위까지 감싸도록 해서 부상을 예방한다.

‘장비발’에 아낌없는 박수를

 

2026 밀라노·코르티나담페초 겨울올림픽에서 우리 쇼트트랙 선수들이 보여준 눈부신 질주는 이러한 1㎜ 스케이트 날의 과학 위에 세워진 결과물이다. 코너에서 선수들이 몸을 바닥에 닿을 만큼 기울일 때 선수들의 발밑에서는 왼쪽으로 휜, 둥글게 깎인 스케이트 날이 승리의 길을 만들기 위한 보이지 않는 사투를 벌이고 있었다. 아는 만큼 보이고 보이는 만큼 짜릿한 것이 스포츠의 묘미라면, 쇼트트랙은 그 어떤 종목보다 과학의 맛이 진하게 느껴지는 종목임이 틀림없다. 노력한 선수들과 그들의 발을 지탱해준 ‘장비발’에 아낌없는 박수를 보낸다.

 

서윤빈 소설가

 

*세상 모든 콘텐츠에서 과학을 추출해보는 시간. 공대 출신 SF 소설가가 건네는 짧고 굵은 과학잡학. 3주마다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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