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시대의 새로운 표준’. 코로나19 바이러스는 짧은 시간에 인간 세계를 송두리째 뒤흔들었다. 인류의 생활양식은 예전과 똑같은 궤도로 돌아가지 못할 것이다. 이른바 ‘코로나 뉴노멀’ 시대의 개막이다. 무엇보다 인간과 인간의 물리적 접촉은 더 이상 무조건적인 덕목이 아니게 됐다. ‘접촉 축소’라는 시대적 요구는 자동차와 비행기의 이동을 줄게 해 의도치 않은 맑은 하늘과 깨끗한 공기를 안겨줬다. 화석 연료로 지탱하는 지금의 에너지 구조는 더 이상 ‘이대로’를 외칠 수 없는 영역으로 이동하는 중이다. ‘작은 정부론’에 시달리던 국가는 영역을 확장해나갈 태세다. 코로나19 대응에 미숙함을 드러낸 미국과 중국, 두 국가는 국제적인 지도력을 잃었다. 지(G)2 시대가 저물고 지(G)0 시대가 열렸다. 새롭게 모습을 드러내는 ‘코로나 뉴노멀’이 정의와 평등의 얼굴을 갖게 하기 위해 세계시민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 _편집자주
올봄, 전북 완주군 고산면 지역 학교들도 등교 개학을 미뤘다. 집에서 홀로 온라인수업을 듣는 학생들이 끼니를 제대로 챙겨 먹지 못할 것을 우려한 고산면 학부모들이 4월 완주군청을 찾았다. 군청 소개로 완주로컬푸드협동조합, 완주한우협동조합, 전주김제완주축협 식재료를 기부받을 수 있었다. 식재료 조리는 노인 일자리 창출 기관인 완주시니어클럽 어르신들이 맡아주기로 했다. 기부받은 식재료를 어르신들께 운반하는 과정엔 완주공공급식지원센터가 참여했다. 고산면 학부모들은 이렇게 만들어진 반찬을 각 가정으로 두 차례 날라 주었다. 마을 학생들 끼니를 위해 이웃 어른들이 나선 것이다. 완주군은 2008년부터 고령화, 소득 격차, 인구 감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주민, 고령·중소 농가가 주체가 돼 참여하는 로컬푸드(장거리 수송, 다단계 유통 과정을 거치지 않은 지역에서 생산된 농식품)와 마을공동체 활성화 정책을 펴오고 있다.
귀농·귀향 의향 증가 20.3%
사는 지역 이웃들과 연대·협력·관계맺기는 돈으로 환산하기 어려운 사회적 자본이다. 코로나19 위기를 계기로 이러한 로컬(지역) 가치는 더욱 주목받을 것이다. 국외나 장거리 이동이 어려워지면서 발을 디디고 있는 생활권에 관심이 높아질 수밖에 없다. 경기침체가 장기화하면 경쟁 대열에서 빠져나와 건강하고 주체적인 삶을 찾아 농어촌으로 이주하는 청년이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인구가 줄면서 복지와 생활 여건이 열악해져, 다시 인구가 감소하는 악순환을 겪는 지역에서는 사람이 절실히 필요한 상황이라 반가운 소식이다. 지난 20년간 지속가능한 마을 만들기 활동을 해온 임경수 협동조합 이장 대표는 “코로나19 이후 시골에 부모님 자산이 있거나 수도권에서 희망을 찾기 어려운 비정규직 청년 등 귀농·귀촌 인구가 늘어날 것을 기대한다”고 말했다.
원격근무 기술은 도시와 시골을 오가는 삶에 디딤돌이 되거나 도시로 이동하는 추세를 둔화시킬 수 있다. 일본 오사카시립대 대학원 창조도시연구과 준교수 마쓰나가 게이코는 2017년 출간한 <로컬 지향의 시대: 마을이 우리를 구한다>에서 “이전에는 일을 하는 데 장소가 매우 중요했지만 인터넷이 정착되면서 장소가 갖는 의미가 변화하고 있다”며 “경제·지리적 요인보다 살고 싶은 지역이나 마을이 선택받고 있다”고 짚었다.
최근 한국농촌경제연구원(KREI)이 도시에서 사는 만 19~70살 1011명을 조사해 내놓은 ‘코로나19 이후 농업·농촌에 대한 도시민의 인식과 수요 변화’를 보면, 코로나19 이전과 비교해 귀농·귀촌 의향이 ‘증가했다’는 이는 20.3%였다. ‘감소했다’는 응답은 8.2%에 그쳤다. 응답자 69.5%는 ‘식량의 안정적 공급, 생태계와 전통문화 보전 등 농업·농촌의 공익적 기능이 중요해졌다’고 했다. 마스크와 식료품 수급 불안을 겪으며 농식품 국내 생산과 자급 중요성에 공감하는 응답자는 84.2%였다.(올해 3월 소비자 1천 명 조사) 연구진은 “저밀도인 농촌이 다양한 가치의 삶을 추구하는 데 강점이 있으나, 열악한 생활환경이나 빈곤한 문화 여건은 여전히 귀농·귀촌을 저해하는 큰 약점”이라고 분석했다.
박현정 기자 sara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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