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시대의 새로운 표준’. 코로나19 바이러스는 짧은 시간에 인간 세계를 송두리째 뒤흔들었다. 인류의 생활양식은 예전과 똑같은 궤도로 돌아가지 못할 것이다. 이른바 ‘코로나 뉴노멀’ 시대의 개막이다. 무엇보다 인간과 인간의 물리적 접촉은 더 이상 무조건적인 덕목이 아니게 됐다. ‘접촉 축소’라는 시대적 요구는 자동차와 비행기의 이동을 줄게 해 의도치 않은 맑은 하늘과 깨끗한 공기를 안겨줬다. 화석 연료로 지탱하는 지금의 에너지 구조는 더 이상 ‘이대로’를 외칠 수 없는 영역으로 이동하는 중이다. ‘작은 정부론’에 시달리던 국가는 영역을 확장해나갈 태세다. 코로나19 대응에 미숙함을 드러낸 미국과 중국, 두 국가는 국제적인 지도력을 잃었다. 지(G)2 시대가 저물고 지(G)0 시대가 열렸다. 새롭게 모습을 드러내는 ‘코로나 뉴노멀’이 정의와 평등의 얼굴을 갖게 하기 위해 세계시민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_편집자주
혼자인 우리가 세상과 만나기까지 거치는 것들의 목록, 대수롭지 않다. FAANG(페이스북·애플·아마존·넷플릭스·구글)이니 MAGA(마이크로소프트·애플·구글·아마존)니 하는 것들. 플랫폼에 들어서는 데 별달리 비용이 들지도 않는다. 앱을 열어서 쓱 스크롤해 일하고, 교류하고, 의견을 나눈다.
록펠러, 카네기 같은 ‘거인의 시대’
평범한 수억 개의 일상이 쌓아 지은 기술 대기업의 성과는 놀랍다. 애플과 구글은 휴대전화 운영체계의 99%를 제어하고, 소셜네트워크 통신의 77%가 페이스북(과 자회사) 플랫폼을 거친다. 미국에서 구글은 검색 광고시장의 88%를 차지한다. 어제오늘 일이 아니긴 하지만 코로나19 앞에 이들의 성과는 한층 더 확정적이다. “비대면 플랫폼이 주도하는 새로운 사회 진입에 논란의 여지는 없겠다.”(박석중 신한금융투자 해외주식팀장, 책 <코로나 투자 전쟁>)
미국 석유시장의 90%를 차지한 록펠러 같은, 영국 전체보다 많은 철강을 생산한 카네기 같은 19세기 후반 ‘거인의 시대’가 떠오른다. 그 얼굴, 실리콘밸리 괴짜 최고경영자(CEO)들로 변해 있을 뿐이다. 100년 전 거대 기업에 대한 우려는 경제 독점에 집중됐다. 진입장벽이 높은 독점 기업을 반독점법으로 쪼개는 방식으로 대응했다. 마찬가지로 21세기 기술 대기업들도 쪼개고 덩치를 줄여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논란의 여지는 있다. 역사 속 영원할 것만 같던 독점 기업은 (적어도 미국 사회에서는) 어차피 예상치 못한 혁신으로 파괴되며 시대를 거쳐 바뀌어갔다. 뚫을 수 없을 듯한 장벽을 뚫고 우회하는 것이 혁신이고, 그 동력을 독점이 낳을 수 있다는 반론도 나온다. “기업 규모가 커지면서 공공법인의 지위에 가까워지려 하며 스스로 사회화하려고 했던”(존 메이너드 케인스, <자유방임주의의 종언>) 향수를 자극하는 측면도 있다. 이 위기 와중에 10만 명을 채용하는 제프 베이조스(아마존 CEO), 정부가 포기한 우주 개척을 추진하는 일론 머스크(테슬라 CEO)는 그 향수를 노골적으로 자극한다.
그럼에도 우려는 크다. 이들 기술 대기업이 제시하는 도구가 경제 전반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 생산을 위해 자원과 노동을 끌어모으는 방식을 아주 ‘효율적’으로 만든다. 굳이 공장이나 사무실을 지을 필요가 없어진다. 설비투자는 줄고 지식재산 투자가 늘어나는 흐름은 선진국 대부분에서 나타난다. 대면 소통을 줄이고 업무 과정은 최대한 축약한다. 여전히 생산활동이 필요한 공간에선 (한때 공상과학영화에 나왔던 것처럼) 인간과 닮지는 않았어도, 인간과 비교가 안 될 만큼 뛰어난 인공지능이 자리를 잡는다. 줄고, 축약되며 효율이 극대화된 곳곳, 원래는 사람이 있었다. 공장을 짓고, 소통을 돕고, 공장에 모여 물건을 만들던 사람.
어디까지나 일을 전제로 한 20세기 복지국가
‘기술적 실업’에 대한 공포의 역사는 19세기로 거슬러 올라갈 만큼 깊다. 다만 20세기 내내 그런대로 극복해왔다. 더는 어렵다는 의견이 많다. 코로나19로 맞닥뜨린 경제위기는 자동화와 그에 따른 실업 속도를 가파르게 밀어붙일 조짐이다. “로봇의 침투는 점진적이지 않다. 자동화는 경제충격처럼 좋지 않은 시기에 집중돼 폭발적으로 나타난다.”(미국 브루킹스연구소, ‘The robots are ready as the COVID-19 recession spreads’) 실업과 소득 감소는 차별적이기도 하다. 기계에 밀려나거나, 기계와 경쟁하려고 몸값을 낮추는 노동자가 한켠에 있다. 다른 쪽에선 기술을 진보시키는 소수 개발자의 몸값이 치솟는다.
해법은 ‘노동 없는 시대의 복지제도’(대니얼 서스킨드 영국 옥스퍼드 베일리얼 칼리지 경제학과 선임연구원, <노동의 시대는 끝났다>)를 어떻게 구성해내는지에 달렸다. 현대의 복지제도조차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20세기 복지국가는 어디까지나 일을 전제로 했다. 처단해야 할 거악에 빈곤과 질병뿐만 아니라 ‘게으름’을 포함한다.(1942년, 영국 ‘베버리지 보고서’) 어쩔 수 없는 이들을 돕되, 능력이 있는 한 노동시장으로 복귀시키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그러므로 ‘대가 없이 돈을 쥐여주면’ 되는 쉬운 문제일까. 사람들 스스로 일 없는 여가를 “끔찍한 선물”로 여긴다는 연구(마리 야호다, <실직상태 지역의 사회학>)는 충격적인데, 또 그럴 법하다. 일에 대한 오랜 관념을 뒤엎거나, 일을 대신해 삶의 의미를 찾을 무언가를 ‘기술적 실업자’에게 쥐여줄 수 있어야만 한다.
“대기업의 정치적 힘을 제한하는 기관을”
기술 대기업에 대한 또 다른 우려는 ‘정치적 영향력’이다. 대니얼 서스킨드는 자신의 동생 제이미 서스킨드가 쓴 <미래정치학>을 인용해 짚는다. “기술 대기업들은 자유의 한계를 정할 것이다. 민주주의 미래도 결정할 것이다. 사회정의가 무엇인지도 결정할 것이다.” 자율주행차 속도를 기술 대기업이 결정하고, 유권자가 받아봐야 할 정보를 알고리즘으로 솎아내고, 올바름에 대한 합의도 주어진 정보의 틀 속에서 이룬다. “(기술) 대기업의 정치적 힘을 제한하는 임무를 맡는 새로운 기관을 세워야 한다”(대니얼 서스킨드)고 주장한다.
감염병 탓에 한층 속도를 높인 ‘혼자의 미래’ 속, 기댈 만한 곳은 결국 또다시 ‘국가’다. 어찌할 수 없는, 필요하기도 한 자동화의 효율을 훼손하지 않으면서도 거기서 탈락한 이들의 소득과 자존감을 국가는 지켜낼 수 있을까. 기업이 자기 영역을 뛰어넘는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할 때 국가는 한발 앞서 알아채고 통제할 수 있을까. 코로나19 이후, 기술과 일상을 완전히 한 몸처럼 인식하게 된 세상에서 피해갈 수 없는 물음이다.
방준호 기자 whor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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