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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어터지는 지하철에 모두를 위한 민주주의가 도착할 때까지

12·3 내란의 밤 물리친 시민의 민주주의…왜 ‘출근길 지하철 시위’에서는 작동하지 않나
등록 2026-01-22 22:48 수정 2026-01-28 12:23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활동가들이 2024년 5월14일 서울의 한 지하철 역사 안에서 시민불복종운동 다이인(DIE-IN·차별·폭력·방치로 인한 죽음과 생존의 위기를 몸으로 드러내고자 죽은 사람처럼 드러눕는 행동)을 하고 있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제공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활동가들이 2024년 5월14일 서울의 한 지하철 역사 안에서 시민불복종운동 다이인(DIE-IN·차별·폭력·방치로 인한 죽음과 생존의 위기를 몸으로 드러내고자 죽은 사람처럼 드러눕는 행동)을 하고 있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제공


2024년 12월3일 밤 비상계엄이 선포되자 국회로 달려가 맨몸으로 무장한 계엄군을 막은 시민들이 있었다. 이들의 시위 덕에 다음날 새벽 국회는 비상계엄을 해제할 수 있었다. 12월14일 국회는 두 번의 상정 끝에 내란을 저지른 현직 대통령의 탄핵소추안을 가결했다. 이때 국회를 움직인 원동력도 결국 시민들의 집회였다. 헌법재판소는 2025년 4월4일 “피청구인 대통령 윤석열을 파면한다”고 선고한다. 국회를 움직인 시민들은 파면 선고까지 추위를 온몸으로 버티며 광장을 지켰다.

유독 커지는 혐오의 목소리

탄핵 집회는 시민들이 광장에서 만나 연결되어 서로를 격려하는 장이었다. 성별, 성적지향, 성별 정체성, 장애, 연령, 이주 지위 등이 교차하는, 모든 사람을 위한 더 넓은 민주주의의 요구가 광장을 채웠다. 2016년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소추안 가결과 2017년 파면 선고도 시민들의 집회와 시위가 이끌었다. 1987년 6월 민주항쟁, 1980년 5·18 민주화운동, 1960년 4·19 혁명…. 한국이 가진 집회·시위의 역사는 유구하다.

헌법은 ‘모든 국민은 집회의 자유를 가진다’(제21조 1항)고 선언하며 평화적인 집회의 자유를 보장한다. 헌법의 최종적 해석을 담당하는 헌법재판소는 2003년 10월30일 낸 결정문(헌법재판소 2003년 10월30일 선고, 2000헌바67, 83 결정)에서 집회의 자유가 가진 헌법적 기능과 관련해 ‘시민들이 자신의 의견과 주장을 집단적으로 표명해 여론 형성에 영향을 미치고, 이를 국정에 반영하도록 촉구하는 수단’이라고 설명했다.

집회·시위의 헌법적 가치는 현장에 고르게 닿지 않는다. 사회적 소수자의 집회·시위에 대해서는 항의와 혐오의 목소리가 유독 크게 들릴 때가 많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 ‘출근길 지하철 탑승 시위’(탑승 시위) 현장에서는 “왜 하필 지하철이냐” “왜 하필 출근 시간이냐” “왜 시민의 불편을 초래하느냐”는 항의와 욕설이 튀어나올 때가 많다. 항의와 욕설은 언론을 통해 사회적으로 증폭된다.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장소, 아무도 없는 시간에 집회하도록 강요받는 사회에서는 집회의 자유가 사실상 아무런 의미가 없다. 집회의 자유가 가진 기능 중 하나는 개인이 타인과 사회 공동체로부터 고립되지 않도록 보호하는 것이다. 헌법이 선언한 집회의 자유는 구체적으로 “집회의 시간, 장소, 방법과 목적을 스스로 결정할 권리”를 보장한다.

유엔 자유권위원회가 말하는 ‘비폭력’이란

2001년 1월22일 경기도 시흥시 오이도역에서 휠체어 리프트가 추락해 장애인 부부 중 한 명이 사망하고 한 명이 크게 다치는 참사가 발생했다. 지하철을 타기 위해 목숨을 걸어야 하는 현실에 분노한 장애인들은 같은 해 2월 서울역 지하철 선로를 점거하고 장애인 이동권 보장을 요구했다. 인권운동가 홍은전은 이때를 두고 “한국 사회라는 역사의 무대에 중증장애인이 충격적으로 등장한 첫 순간”(한겨레 2021년 11월14일 칼럼)이라고 표현했다. 이후 20년이 흐른 2021년 12월3일 세계 장애인의 날을 맞아 시작된 전장연의 탑승 시위는 ‘한국 사회에 중증장애인이 충격적으로 등장한 두 번째 순간’이라 할 수 있다.

전장연 활동가들이 2022년 10월25일 서울 용산구 삼각지역에서 출근길 지하철 탑승 시위를 벌이고 있다. 전장연 제공

전장연 활동가들이 2022년 10월25일 서울 용산구 삼각지역에서 출근길 지하철 탑승 시위를 벌이고 있다. 전장연 제공


집회는 본질적으로 소란스럽다. 평화적 집회는 아무런 불편도 초래하지 않는 집회가 아니다. 지하철 역사라는 공간과 아침 8시라는 시간은 소수자인 장애인이 평화적이면서도 효과적으로 장애인 권리 보장을 외칠 수 있는 환경이었다.

유엔 자유권위원회는 2020년 낸 논평에서 ‘평화적’ 집회를 ‘비폭력’ 집회라고 정의했다. 여기서 ‘폭력’은 상대방에게 부상이나 사망, 심각한 재산상 피해를 초래할 가능성이 있는 물리적인 힘을 뜻한다. 전장연의 탑승 시위에서 드러난 지하철이나 보행자의 흐름을 다소 방해하는 행위는 유엔 자유권위원회에서 정의한 ‘폭력’에 해당하지 않는다. 평화적 집회는 의도적으로 혼란과 불편을 야기할 수 있기에 동료 시민의 관용을 필요로 한다. 혼란과 불편을 감수하고라도 지켜야 하는 헌법적 가치가 ‘집회의 자유’이기 때문이다.

질서유지나 공공복리가 더 중요하니 탑승 시위를 제한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유엔 자유권위원회는 논평에서 “‘질서유지’나 ‘공공복리’는 매우 모호한 말이어서 이를 근거로 집회의 자유를 광범위하게 제한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또 “공공질서란 사회가 제대로 작동하도록 보장하는 규율의 총합이자 사회가 작동하는 기본 원리이기에 평화적 집회의 권리를 포함한 인권에 대한 존중을 필연적으로 수반한다”고 강조했다. 평화적 집회가 공공질서의 또 다른 모습이라고 판단했다. 이는 “헌법이 집회의 자유를 보장한 이유는 관용과 다양한 견해가 공존하는 다원적인 ‘열린 사회’를 향한 헌법적 결단”이라고 선언한 헌법재판소의 입장과 같다.

“대한민국은 과거 독재자와 부패한 지도자들에 저항하고 사회의 활기를 북돋우며 사회적 변화를 유도하고 민주화를 촉진하였던 자랑스러운 집회와 시위의 역사가 있다.” 2016년 한국을 방문한 유엔 특별보고관은 한국의 어두웠던 근현대사에서 집회의 자유가 어떤 역할을 했는지 명징하게 밝혔다.

 

2021년 12월6일 전장연의 출근길 지하철 선전전을 앞두고 봉쇄된 혜화역 엘리베이터. 전장연 제공

2021년 12월6일 전장연의 출근길 지하철 선전전을 앞두고 봉쇄된 혜화역 엘리베이터. 전장연 제공


모두를 위한 민주주의에 도착해야

한국은 자랑스럽고 찬란한 집회·시위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이제 그 역사를 사회적 소수자의 집회·시위로 확장해야 한다. 어쩌면 집회·시위를 바라보는 시민들의 시선은 이미 성숙했고 오히려 경찰과 법원이 더 뒤처졌을 수 있다. 전장연 활동가들과 함께 현행범으로 체포돼 불법 구금되는 불편을 감내한 시민이 있다. 서울교통공사가 2023년 1월2일 삼각지역에서 지하철을 무정차 통과시키자, 항의성 민원을 제기한 시민이 있다. 묵묵히 휴대전화에 ‘연대한다’는 메시지를 띄워 보여주던 시민이 있다. 어쩌면 전장연을 향해 혐오의 인식을 드러내는 이들은 소수일지도 모른다.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는 더 넓고 깊어질 수 있다. 전장연이 집회를 통해 말하는 부정의와 불평등의 경험을 경청하고, ‘장애인이 교육받고 노동하며 지역사회에서 함께 살아갈 권리’를 어떻게 보장할지의 과제에 집중하면 그런 사회는 곧 가능하다.

 

최현정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집회 지원단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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