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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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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용차 굴뚝 ‘결정적 열흘’

김정욱 89일 만에 고공농성 해제… 3월14일 희망행동→3월17일 대표교섭→
3월22일 이창근 농성 100일→3월24일 주주총회, 퇴임하는 이유일 사장 결자해지할까
등록 2015-03-17 18:27 수정 2020-05-03 09:54

소리가 소리를 잡아먹었다.
“꽉 잡아.”
굴뚝에서 이창근(금속노조 쌍용자동차지부 정책기획실장)이 소리쳤다. 투두두두두 귀를 때리는 바람이 목소리를 잘게 찢어 삼켰다. 허공에 매달린 김정욱(사무국장)이 얼굴을 들어 굴뚝을 올려다봤다. 그의 입을 가린 하얀 마스크가 언뜻 보였다. 그가 굴뚝을 향해 무슨 말을 했는지, 마음 담은 무언의 눈길만 올려보냈는지, 난폭한 바람은 전해주지 않았다.
“꽉 잡아, 꽉.”

지난 1월21일 쌍용자동차 평택공장 굴 경찰, 보험회사가 쌍용차지부와 뚝 위의 김정욱 쌍용차지부 사무국장(왼쪽)과 이창근 정책기획실장의 모습. 김진수 기자

지난 1월21일 쌍용자동차 평택공장 굴 경찰, 보험회사가 쌍용차지부와 뚝 위의 김정욱 쌍용차지부 사무국장(왼쪽)과 이창근 정책기획실장의 모습. 김진수 기자

이창근이 다시 소리쳤다. 투두두두두 귀를 때리는 바람이 목소리를 썰어 고공에 뿌렸다. 굴뚝 사다리에서 김정욱이 바람에 흔들렸다. 하늘처럼 가파른 땅으로 귀환하는 것인지, 땅의 모습을 한 하늘로 솟구치는 것인지, 김정욱은 점점 멀어지고 점점 작아졌다. 중력을 거슬러 하늘에 떠 있던 노동자를 땅은 다시 망망한 심연으로 잡아당겼다.

자신의 몸을 굴뚝에 올렸던(2014년 12월13일) 철제 사다리를 김정욱은 89일 만에 느리게 되밟았다. 수직의 사다리는 100일째 하늘살이가 열하루 모자라기까지 조금도 완만해지지 않았다. 사다리의 소실점 끝에서 김정욱은 굴뚝 난간(40m 지점)에 닿았다. 동료들이 하늘로 손짓하며 매끼 밥을 올려주던 공간이었다. 밥을 매달아 70m 고공으로 승천시키던 밧줄이 김정욱의 몸을 묶어 그의 하강을 지탱했다.

“바람이 많이 부는 해넘이 풍경을 굴뚝에서 봅니다.”

김정욱은 이틀 전(3월9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굴뚝에서의 마지막 글을 남겼다. 봄의 도래를 가로막는 억센 바람을 맞으며 그는 말없이 하늘 저편을 바라봤다.

“로프 풀어.”

이창근이 소리쳤다. 밧줄을 몸에서 푼 김정욱이 162개의 계단을 딛고 땅으로 내려갔다. 굴뚝 위에서 이창근이 헐거워진 밧줄을 끌어올렸다. 굴뚝엔 그만 남았다. 3월11일 오후 2시10분께였다.

‘착륙’한 김정욱은 병원에 입원해 치료를 받았다. 해고 전 공장에서 다친 허리가 고공농성으로 악화됐다. 호흡곤란과 어지럼증도 호소했다. 체포영장(주거침입 및 업무방해 혐의)을 발부받은 경찰은 이튿날 병실에서 그를 조사했다. 3월13일 자정을 넘겨 검찰은 구속영장을 청구(법원에서 기각)했다.

‘혼자로서’ 이창근은 SNS에 썼다. “오르는 결심보다 내려가는 결심이 더 어렵다. …김정욱 사무국장께서 쌍용차 최종식 신임 사장님을 뵙고 사태 풀겠다는 믿음 하나로 방금 땅을 밟았습니다.” 김득중 쌍용차지부장도 입장문을 냈다. “5번의 실무교섭과 이유일 사장과의 본교섭에도 26명 희생자 문제와 해고자 복직에 대한 교섭이 해결의 실마리를 열지 못하는 상황에서 김정욱 사무국장이 교섭의 돌파구를 열기 위해 굴뚝에서 내려가겠다는 결단을 내렸다.” 지부장은 “병원 치료를 마치면 회사에 연락해 신임 사장과의 만남을 요청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스타케미칼 사 쪽, 원료탱크 철거 시도


신기록 경신을 막아라?

굴뚝농성 300일(3월22일)을 눈앞에 두고 스타케미칼(경북 칠곡 구미국가산업단지) 사 쪽이 원료탱크(사일로) 철거를 시도했다. 지난 3월11일 “대전에서 왔다”는 철거업자들이 스타케미칼에 도착했다. “원료탱크 철거를 위한 사전답사”라며 다음날 철거 계획을 밝혔다. 공장 앞에서 천막농성 중이던 해고자들이 긴급 집결했다. 스타케미칼의 모기업인 스타플렉스 서울 사옥(목동 CBS 건물) 앞에서 농성 중인 해고자들도 급히 내려왔다. 긴장감이 고조됐다.
공장 안엔 폴리에스테르 원사 생산에 필요한 3천t급 원료 저장탱크가 3개 있다. 원료탱크들이 철거되면 공장 재가동은 불가능해진다. 공장 전반과 농성천막 철거 수순이라고 해고자들은 판단했다. 공장에 전기를 공급하던 송전탑은 이미 지난 1월 하순 철거됐다. 45m 굴뚝 건너편에서 고공의 송전탑에 올라 해체 작업을 벌이는 전기노동자들을 바라보며 당시 차광호(해고자복직투쟁위원회 대표)는 “살점을 뜯어내는 아픔을 느꼈다”고 했다. 송전탑 철거 열흘 전(1월13일) 예정돼 있던 3차 교섭은 사 쪽의 일방적인 중단 뒤 지금까지 재개 조짐이 없다. 차광호는 우려했다.
“사일로의 특성상 따로 떼어내 다른 공장에 이식하는 건 불가능하다. 고공농성 300일째를 앞두고 회사가 고철로 팔아버리려는 듯하다. 공장 재가동 의사가 없다는 뜻을 우리에게 명확하게 보여줘 사태를 마무리할 생각인 것 같다.”
철거 당일인 3월11일 구미와 경주의 노동자들까지 결합했다. 작업을 시작하려는 철거업자들의 정문 진입을 차단했다. 노동자들은 밤을 새워 공장을 지켰다. 작업을 가로막힌 철거업자들은 3월12일 도구를 챙겨 떠났다.
차광호의 굴뚝농성은 ‘절망의 기록 경신’을 앞두고 있다. 10명의 해고자들(차광호 포함 해복투 전체 인원 11명)은 전국을 다니며 300일 문화제(3월21~22일) 참여를 호소하고 있다. 300일을 채운 날부터 다시 열흘(4월1일)이 지나면 차광호는 김진숙(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이 쓴 309일 최장기 고공농성을 날마다 갈아치우게 된다. ‘끔찍한 신기록’의 출현 앞에 한국 사회는 여전히 무감하다.
사 쪽은 스타케미칼 부지와 설비를 분리해 매각을 추진하고 있다. 옛 한국합섬을 인수해 재가동한 지 19개월 만에 폐업청산을 발표했다. 해고자들은 말한다. “폐업청산한다던 공장은 아직 폐업신고조차 하지 않고 있다. 결국 청산된 것은 고용뿐이다.”

65개월 만의 노-노-사 교섭 합의(1월21일) 이후 50여 일이 되도록 사태 해결의 물꼬가 트이지 않고 있다. 3월14일부터 해고자들은 ‘결정적 열흘’을 맞고 있다. 열흘의 경과에 따라 7년의 고통은 종지부를 찍을 수도 있고 다시 지체될 수도 있다. 지부장은 “우리에게 시간이 얼마 남아 있지 않다”며 회사의 결단을 촉구했다.

쌍용차지부는 3월14일 ‘희망행동’을 배치했다. 전국에서 시민·연대자들이 모여 교섭 타결을 촉구하며 힘을 모았다. 5차례의 실무교섭 동안 사 쪽은 진전된 안 자체를 제시하지 않았다. 지부의 요구로 3월10일 대표교섭(이유일 사장-김득중 쌍용차지부장-김규한 기업노조위원장)이 열렸다. 회사는 경영 상황과 티볼리 수요에 따른 인력운영 방안을 설명했다. 일부 의견 접근이 없진 않았으나 타결에는 이르지 못했다.

3월17일 오전 두 번째 3자 대표교섭이 예정돼 있다. 이유일 사장이 퇴임 전 참석하는 마지막 교섭일 가능성이 크다. 쌍용차지부로선 이날 큰 틀의 합의라도 이뤄내야 한다. 이 자리엔 최종식 차기 사장도 참석한다. 사태 해결을 새 경영진에게 넘기기보다 ‘묶은 자가 풀 것’을 해고자들은 요구하고 있다.

지난 1월21일 쌍용자동차 평택공장 굴 경찰, 보험회사가 쌍용차지부와 뚝 위의 김정욱 쌍용차지부 사무국장(왼쪽)과 이창근 정책기획실장의 모습. 김진수 기자

지난 1월21일 쌍용자동차 평택공장 굴 경찰, 보험회사가 쌍용차지부와 뚝 위의 김정욱 쌍용차지부 사무국장(왼쪽)과 이창근 정책기획실장의 모습. 김진수 기자

3월22일이면 이창근의 굴뚝농성은 100일째를 맞는다. 하늘에 올라서가 아니라 다시 내려설 수 없어 하늘 노동자는 몸과 마음을 다친다. 3월24일은 쌍용차 주주총회일이다. 이유일 사장이 직을 내려놓는 날이다. 그는 2009년 침몰하던 쌍용차의 법정관리인을 맡아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옥쇄파업과 해고 사태의 책임자기도 하다. 그가 홀가분하게 부회장 의자에 앉을지도 열흘의 노력에 달렸다.

6차례의 교섭 동안 노사는 4가지 의제를 두고 줄의 양쪽 끝을 당겨왔다. 해고자 복직 문제는 시기와 대상이 쟁점이다. 쌍용차지부가 첫 ‘요구안’에서 제시한 복직 시한은 올해 상반기였다. 사 쪽은 그때까지 복직은 불가능하다는 입장을 밝혀왔다. 교섭이 거듭되면서 시간 단축을 두고 노-노-사가 의견을 각축하고 있다.

쌍용차지부는 해고자(정리해고자 20명·징계해고자 159명·비정규직 해고자 8명) 187명의 일괄 복직을 주장하고 있다. 사 쪽은 ‘티볼리 성공’으로 신규 인력이 발생할 때 희망퇴직자(353명)와 자발적 희망퇴직자(1535명)의 복직부터 고려하겠다고 말해왔다. 티볼리는 출시 27일 만에 ‘1만 대 계약’을 이뤘다. 올해 판매목표(3만8500대)를 고속으로 달성하고 있다. 판매 호조에 고무된 회사는 영업 인력 300여 명을 공개 채용 중이다. 2016년까지 영업소를 200개까지 확대해 고객 접점을 넓힌다는 계획도 내놨다. 회사가 내건 복직의 전제조건이 해소되고 있다는 뜻이다. 해고자 복직을 바라는 사회적 열망이 예상을 뛰어넘는 시장의 반응에 반영돼 있다는 시각이 많다.

비정규직 해고자 복직 인원을 놓고도 이견이 있다. 지부는 불법파견 1심 판결에서 승소한 4명과 소송 중인 4명 모두의 ‘정규직 복직’을 요구하고 있다. 사 쪽은 판결이 나지 않은 해고자들의 정규직화에 대해선 부정적이다.

손해배상과 가압류 철회도 중요 의제다. 2009년 이후 회사와 경찰, 보험회사가 쌍용차지부와 조합원 및 시민에게 청구한 금액은 190억원에 이른다. 사 쪽은 “손해배상 청구권 포기는 업무상 배임”이라며 거부해왔다. 사 쪽의 퇴거단행 가처분 신청으로 2월20일부터 김정욱·이창근에게 매일 간접강제금 100만원(개별 50만원)씩이 쌓이고 있다.

지부가 가장 앞세우는 쟁점은 희생자 명예회복 및 지원대책이다. 26명 희생자에 대한 아난드 마힌드라 회장과 사 쪽의 사과·유감 표명을 촉구하고 있다. 재발 방지 대책과 유가족 생활안정기금 마련도 요구사항이다. 희생자를 기리고 유가족을 보듬는 일은 쌍용차가 대립에서 상생으로 가는 필수 절차라고 해고자들은 판단하고 있다. 추가 희생자 발생 방지와 명예회복을 위한 기구로 이창근은 ‘분홍도서관’을 제시하고 있다. 그는 “분홍도서관은 쌍용차 노와 사가 지난 7년의 시간 동안 들고 싸웠던 방패와 창을 녹여 만든 도서관”이라고 했다.

혼자 남은 깜깜한 하늘에서 그는 벌써 분홍의 벽돌을 쌓고 있다.

이문영 기자 moon0@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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