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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고업체 사장 “죽어서 내려오라고 해요”

기아차 사내하청 고공농성자 최정명·한규협씨, 폭염 속 밥·물·배터리 차단당해… 광고업체 명보애드넷 6억7천만원 손해배상 소송도 제기
등록 2015-08-18 16:27 수정 2020-05-03 04:28
기아자동차 비정규직 노동자 최정명·한규협씨가 “모든 사내하청 노동자 정규직화”를 요구하며 6월11일부터 국가인권위원회 건물 옥상 광고탑에서 고공농성을 벌이고 있다. 한겨레 이정용 선임기자

기아자동차 비정규직 노동자 최정명·한규협씨가 “모든 사내하청 노동자 정규직화”를 요구하며 6월11일부터 국가인권위원회 건물 옥상 광고탑에서 고공농성을 벌이고 있다. 한겨레 이정용 선임기자

하늘에 닿아야 할 밥이 땅에서 폐허처럼 뿌려졌다.

“밥 가지고 이러시면 안 되잖아요.”

“절대 (음식) 못 올려요. 내려와서 먹으라고 해요.”

“사장님도 가족이 있잖아요. 밥은 먹게 해주세요.”

“정몽구 집 앞에 가서 (농성)하든지 기아자동차 굴뚝에 올라가서 죽어요. 왜 여기서 이래요.”

“할 수 있는 건 다 해봤지만 더는 방법이 없으니까요.”

“계속 (고공농성) 하려면 돈(광고탑 사용료) 가지고 와요. 그럼 연말까지 해도 돼요.”

“이 더위에 죽으란 거예요?”

“죽어서 내려오라고 해요.”

“어떻게 그런 말을 하세요.”

황폐한 고성이 8월11일 국가인권위원회(서울 중구) 건물 13층을 울렸다. 옥상(14층) 광고탑으로 밥을 올리려는 고공농성자의 아내를 광고업체(명보애드넷) 사장이 제지했다. 옥상 출입문은 이중으로 잠금장치를 달았고, 출입문 앞엔 굵은 쇠사슬을 걸어 자물쇠를 채웠다. 옥상 위에서 경계근무를 서던 경찰들은 출입문 계단 앞에 도열했다. 경찰의 근무 위치가 광고업체의 방침(옥상 전면통제)을 따르고 있었다.

최정명씨의 아내 권현숙(오른쪽 사진 오른쪽 두 번째)씨가 8월11일 남편에게 올려주기 위해 준비해온 음식이 계단에 뿌려졌다. 광고탑 운영업체 사장(맨 오른쪽)은 고공농성에 따른 피해를 호소하며 음식 반입을 막았다. 류우종 기자

최정명씨의 아내 권현숙(오른쪽 사진 오른쪽 두 번째)씨가 8월11일 남편에게 올려주기 위해 준비해온 음식이 계단에 뿌려졌다. 광고탑 운영업체 사장(맨 오른쪽)은 고공농성에 따른 피해를 호소하며 음식 반입을 막았다. 류우종 기자

기아자동차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고공농성 62일째 날이었다. 폭염이 하늘과 땅을 달궜다. 최정명·한규협(화성지회 사내하청분회)씨는 전날부터 음식과 물 반입을 차단당했다. 인권위 건물에 나와 있는 광고회사 직원들이 1층에서부터 고공농성자 가족·동료들의 동선을 체크하며 옥상행을 막았다.

최정명·한규협씨는 7월25~31일에도 음식을 제대로 올려받지 못했다. 가족에게만 음식 반입을 허용해 반발을 샀던 광고업체는 8월10일부턴 음식과 생필품 전달 자체를 금지했다. 광고탑엔 여분의 음식이 남아 있지 않았다. 물은 하루 버틸 양에 불과했다. 배터리가 바닥난 한규협씨의 휴대전화는 꺼져버렸고, 최정명씨에겐 소량의 전원만 남아 있었다. “음식보다 통신 두절이 더 염려된다. 하늘에서 어떤 위험한 상황이 벌어져도 땅에선 알 수 없다”며 동료들은 걱정했다.


<i>광고탑엔 여분의 음식이 남아 있지 않았다. 물은 하루 버틸 양에 불과했다. 배터리가 바닥난 한규협씨의 휴대전화는 꺼졌다. 어떤 위험한 상황이 벌어져도 땅에선 알 수 없다. </i>

지난해 9월 1심 재판부는 기아차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불법파견 사실을 인정했다. 사 쪽은 항소했고 정규직 노동자가 다수인 금속노조 기아차지부와 ‘465명 신규채용’ 방식에 합의했다. 두 노동자는 ‘모든 사내하청 노동자의 정규직화’를 요구하며 지난 6월11일 광고탑 농성을 시작했다.

“오죽하면 (광고탑에) 올라갔겠어요.”

최정명씨의 아내 권현숙씨가 업체 사장에게 호소했다.

“우린 오죽하면 이러겠어요. 당신들 때문에 우리가 얼마나 피해를 보는 줄 알아요?”

사장은 열쇠를 내주지 않았다. 법원은 명보애드넷이 낸 업무방해금지 가처분 신청을 받아들였다. 두 하늘 노동자에게 7월16일부터 매일 100만원씩 부과되고 있다. 명보애드넷은 6억7천만원짜리 손해배상 소송도 제기했다.

권현숙씨가 음식을 바닥에 쏟으며 소리쳤다.

“이 아까운 밥을 이렇게 해야 되겠어요? 매일 와서 이렇게 해야겠어요?”

그는 뿌려진 밥과 국을 바라보며 울었다. 그 황망 중에도 엄마를 찾는 7살·12살 아이들의 전화는 주기적으로 걸려왔다. 두 아이는 아빠의 고공농성 사실을 몰랐다. 아빠가 너무 바빠 석 달째 집에 못 온다고만 알고 있었다. 아빠에게 밥을 전하지 못한 엄마와 아빠의 동료들이 인권위원장 면담을 요구하며 연좌했다. 위원장들은 부재 중이었다. 이임을 앞둔 현병철 위원장은 연가를 내고 퇴근했으며, 이성호 신임 위원장은 인사청문회를 받고 있었다.

밥이 밥의 이름으로 차단당했다. 경영난을 내세운 밥이 생명을 지탱할 밥의 반입을 막았다. 밥의 충돌 속에서 ‘인권’은 밥을 구제하지 못했다. ‘인권의 보루’ 안에서 벌어지는 ‘인권 공백’ 사태에 ‘인권 관료들’은 무력했다.

이튿날에도 땅과 하늘은 고온으로 끓었다. 한규협씨의 아내 김소희씨가 음식 봉지를 들었다. 남편과의 통화는 나흘 전이 마지막이었다.

전날처럼 밥은 1층에서부터 막혔다. “사람이 죽을 수도 있다”는 다급함은 “죽어서 내려오면 된다”는 완고함 앞에서 나아가지 못했다. 몸싸움이 벌어졌다. 업체 사장과 직원들이 1층 엘리베이터를 가로막았다. 엘리베이터에 오르려는 김소희씨를 사장이 힘으로 끌어내 밀쳤다. 김소희씨는 비명을 지르며 바닥에 쓰러졌다. 광고업체 쪽과 노동자들 사이에 고함과 욕설이 오갔다. 몸을 일으킨 김소희씨가 닫혀버린 엘리베이터 문을 붙잡고 울었다. 인권위원장실로 통하는 문도 잠겨 있었다. 하늘로 오르지 못한 밥은 건물 밖 뙤약볕 속에 부려져 상해갔다.

인권위는 이날 오후 첫 입장문을 냈다. 고공농성 63일째에 나왔다. “경찰 측에서는 옥상 농성자들에 대한 음식물 등의 반입, 필요한 의료 조치가 원활하게 이루어질 수 있도록 경찰관직무집행법 등 관련 규정에 의거 구체적이고 적극적인 조치를 강구할 것을 요청한다”고 했다. 일부 상임위원들의 반대로 긴급구제 결정은 기각됐다. 고공농성 시작 이후 4차례의 긴급구제 신청이 모두 거부됐다. “경찰에 책임을 떠넘긴 것 외에 사실상 인권위가 한 일이 뭐냐”며 노동자들은 분노했다.

8월13일 오전 고공농성자 가족과 노동자들은 인권위 건물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생존 보장”을 촉구했다. 명보애드넷은 가족한테만 옥상 진입을 허용했다. 광고탑 위의 두 노동자는 “지속적인 음식 제공이 아니면 먹지 않겠다”며 거부했다. “주면 먹고 안 주면 못 먹는 강아지가 아니”라며 그들은 밥줄을 내리지 않았다. 신임 인권위원장이 임기를 시작한 날이었다.

인권위로부터 공을 넘겨받은 경찰은 가족과 노조의 면담 요구에 응하지 않았다. 광고업체가 밥의 길을 막고 인권위가 밥의 표류에 무감한 사이 ‘밥의 원청’(기아자동차)은 멀찍이 떨어져 다만 초연하다.

이문영 기자 moon0@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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