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우릴 보러 와요, 희망버스 타고 와요

거제도, 부산, 서울의 고공농성자들, 9월12일 출발하는 희망버스 가는 길 따라 서로의 하늘을 응원하다
등록 2015-09-08 16:43 수정 2020-05-03 04:28
고공농성자들로 빈틈없이 붐비는 하늘 아래로 9월12일 다시 희망버스가 달린다. 거제도 대우조선해양(사내하청 해고노동자 강병재)과 부산시청 앞(생탁·택시 노동자 송복남·심정보), 서울 국가인권위원회 건물(최정명·한규협)에 고공이 솟은 지 각각 157일째와 150일째, 94일째가 되는 날이다. 이날 오전 정몽구 현대·기아자동차 회장 자택(서울 용산구 한남동) 앞을 출발한 희망버스는 거제를 거쳐 부산으로 향한다. 희망버스의 주행 경로대로 고공이 고공을 응원하는 글을 에 보내왔다. _편집자서울의 최정명·한규협이 거제의 강병재를 응원하며
국가인권위원회(서울 중구) 옥상 광고탑에서 고공농성 중인 기아자동차 사내하청 노동자 최정명(오른쪽)·한규협 씨가 광고탑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다. 한겨레 신소영 기자

국가인권위원회(서울 중구) 옥상 광고탑에서 고공농성 중인 기아자동차 사내하청 노동자 최정명(오른쪽)·한규협 씨가 광고탑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다. 한겨레 신소영 기자

서울시청(서울 중구) 옆 국가인권위원회 전광판 75m 높이에서 고공농성을 시작한 지 86일(9월4일 기준)이 되어갑니다.

농성 기간이 길어질수록 저와 한규협 동지의 건강과 안전에 대한 걱정이 깊어지나봅니다. 처음 두 달 정도는 고공의 어지럼증 때문에 고생했는데 꾸준히 운동하다보니 이제 많이 나아졌습니다.

하지만 추락의 두려움과 식수·음식 차단에 대한 불안감은 노력해도 쉽게 떨쳐지지 않습니다. 난간이나 안전시설이 없다보니 75m 높이가 주는 공포 때문에 잠을 자다가도 흠칫 놀라 깨기 일쑤이고, 발아래에서 유유히 날아다니는 새들과 잠자리 떼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웃다가도 섬뜩한 소름이 돋기도 합니다.

고공농성을 하며 식수와 식사가 차단당하는 경우는 드물 텐데, 하물며 국가인권위 건물 위에서 두 번에 걸쳐 2주일을 굶다보니 당황스럽기까지 합니다. 전광판 업체 사장 뒤에 숨어 농성을 그만두도록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현대·기아차를 보며, 10년 넘게 불법을 저지른 현대·기아차답게 탄압의 방법도 잔인하기 이를 데가 없다는 생각이 드네요. 전쟁포로에게도 물과 밥은 주는 법인데 물이라도 올리게 해달라는 가족들에게 광고업체 사장이 ‘죽어서 내려오라’(제1075호 ‘광고업체 사장 “죽어서 내려오라고 해요”’ 참조)는 말까지 해가며 사람을 울리는 걸 보니 인간의 잔인함이 어디까지일까 분노가 입니다.

저희가 고공농성을 시작한 이유는 ‘법을 지키라’는 지극히 당연한 요구입니다. 법원은 ‘현대·기아차 사내하청은 불법파견이니 전원 정규직으로 전환하라’고 판결했습니다. 1~3심까지 7차례나 일관되게 직접·간접 공정 상관없이 사내하청 노동자들을 전원 정규직화하라고 판결했음에도 정몽구 회장과 기아차는 무시하고 있습니다. 대법원 판결이 나면 소송 당사자 한 사람에게 해당되는 판결이라 우기고, 1400여 명(기아차 468명·현대차 934명)에 이르는 소송자 전원이 승소하면 대법까지 가야 한다고 우깁니다.

급기야 기아차 특별교섭에서 회사는 ‘소송자 전원이 정규직’이라는 법원 판결을 무시하고 소수의 인원만 신규 채용하겠다는 입장을 던졌습니다.

땅에서 할 수 있는 방법은 다 해봤습니다. 집회, 선전전, 정몽구 회장 집 앞 노숙농성까지…. 아무 소용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정말 마지막이라는 심정으로 ‘하늘 감옥’인 이곳으로 올라왔습니다. 정몽구 회장은 불법파견을 십수 년간 저지르고 있습니다. 고공농성 이후 기아차는 휴일에 집까지 찾아오고, 전광판 업체는 6억7천만원의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하며 매일 100만원씩 강제이행금을 물렸습니다. 기아차는 급기야 소속 하청업체를 통해 저와 한규협 동지를 일방적으로 해고했습니다. 정몽구 회장을 이번 국정감사에서 꼭 증인으로 세워 그 죄를 묻고 처벌을 받게 해야 합니다.

느리지만 변화도 나타나고 있습니다. 고공농성 해제 전에는 절대 특별교섭에 나오지 않겠다던 기아차 사 쪽이 마침내 교섭 테이블에 앉았습니다. 물론 특별교섭은 많은 진통과 인내를 요구합니다. 하지만 현장 조합원들의 염원이 모이고 매주 문화제에서 촛불들이 모이고 각계각층의 지지와 응원이 모여 교섭의 국면을 만들었듯, 깨어 있는 시민들의 지지와 사회적 여론으로 정규직 전환의 꿈이 현실이 될 것이라 믿습니다.

비정규직의 고혈을 짜서 채운 기아·현대차의 곳간은 넘쳐나지만 정몽구 회장은 법원 판결을 지킬 의지가 없습니다. 보다 못한 시민들이 일어나 희망버스로 모이고 있습니다.

시민 여러분! 희망버스를 타고 거제도로 가주십시오. 그곳에 149일째(9월4일 기준) 홀로 외롭게 크레인 위에서 사투를 벌이고 있는 강병재(대우조선해양하청노동자조직위원회 의장) 동지가 있습니다. 홀로 고공농성 중이기에 그 긴 시간을 버텨내느라 두 배의 힘이 들 것입니다. 희망버스에 싣고 간 희망을 강병재 동지에게 전해주십시오. 나눌수록 커지는 희망을.

최정명 기아자동차 화성지회 사내하청분회 대의원거제의 강병재가 부산의 송복남·심정보를 응원하며
경남 거제도 옥포조선소에서 크레인 농성을 하고 있는 대우조선해양 사내하청 해고노동자 강병재(하청노동자조직위원회 의장)씨가 휴대용 확성기를 이용해 발언하고 있다. 류우종 기자

경남 거제도 옥포조선소에서 크레인 농성을 하고 있는 대우조선해양 사내하청 해고노동자 강병재(하청노동자조직위원회 의장)씨가 휴대용 확성기를 이용해 발언하고 있다. 류우종 기자

지난 4월9일 어둠이 자욱한 새벽에 펼침막과 확성기, 시너, 옷 몇 벌을 짊어지고 대우조선해양 옥포조선소 N안벽 80m 높이의 크레인에 올랐다. 바다 추위가 둘러싼 크레인의 가파른 계단을 사력을 다해 올랐을 땐 땀으로 온몸이 젖어 있었다.

2011년 88일 송전탑 농성(하청노동자 연대조직 결성을 주도하다 해고된 뒤 3월7일~6월2일 고공농성) 때 합의한 ‘복직 확약’ 이행을 촉구하고 비정규 하청노동자의 현실을 알리려는 나의 두 번째 고공농성(제1072호 ‘아빠가 하늘에 새털처럼 걸려 있다’ 참조)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가파른 크레인 위에서 유일한 말벗은 까마귀다. 바닷가의 그 흔한 갈매기마저 나를 쳐다보기만 할 뿐 크레인에 놀러오지 않는다.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고 누군가와 말을 주고받아야 덜 외로운 법인데, 고립된 크레인 위엔 나의 외로움을 함께할 생명체가 없다.

한 달 두 달 고공농성이 길어지면서 우울증은 심해지고 있다. 이러다 말을 못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두렵기까지 하다. 외로움과 고립감 때문에 혼잣말로 중얼거리거나 일부러 유행가를 소리 내어 부르기도 한다. 얼마나 많은 노동자들이 들어주는지 알 수 없지만, 확성기를 들고 고공농성의 정당성과 하청노동자의 울분을 토해내며 버티고 있다.

한여름엔 크레인 위로 철판을 녹일 것 같은 살인적인 더위가 엄습했다. 그늘이라곤 크레인 기둥의 그림자밖에 없는 곳에서 온몸을 작게 만들어 그림자 속에 숨고 싶었지만 뜨거운 태양열을 피할 수 없었다. 결국 등껍질이 벗겨지는 화상을 입고 일사병에 걸렸다. 바람은 왜 그리 세게 부는지 바람을 많이 맞은 날엔 여지없이 두통에 시달렸다. 크레인 붐대(좌우로 움직이는 크레인의 가로축)를 돌리는 태풍은 그 자체로 공포였다. 나의 작은 몸 정도야 충분히 날려버릴 기세의 태풍이 지진처럼 크레인을 흔들었다.

내가 하늘에 매달려 있는 중에도 대우조선 안에선 사고가 잇달았다. 지난 7월31일 60여 명을 태운 45인승 통근버스가 5m 아래로 추락했고(1명 사망), 8월24일 유독성 인화물질을 안고 건조 중이던 LNG(액화천연가스) 선박에서 불이 나 하청노동자 2명이 숨졌다. 위험에 내몰린 ‘이등국민 하청노동자들’은 그렇게 끊임없이 죽고 있다. 회사가 산업안전 관련 법만 지켰어도 죽지 않았을 생명들이다.

해고된 지 7년이다. 남들은 묻는다. 땅에서 싸우면 되지 왜 두 번씩이나 고공노성을 하냐고.

나도 땅에서 싸우고 싶다. 해고 이후 안 해본 싸움이 없다. 그렇게 싸워도 한국 사회는 하청노동자의 요구에 무관심했다. 비정규직 하청노동자가 이 땅의 거대한 침묵과 싸우려면 죽기를 각오하고 하늘에 오를 수밖에 없었다. 까마귀와 친구하며 하늘 벼랑에 서지 않으면 하청노동자의 현실을 알릴 길이 없다.

정치권의 반응도 형식적이다. 복직 확약을 이행하지 않는 기업에 정치적인 힘을 동원하지 않는다. 그나마 새정치민주연합 을지로위원회의 중재로 열린 형식적인 두 차례 교섭이 전부다.

희망버스를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전국의 고공농성과 장기투쟁 사업장을 응원하고 사회적인 힘을 모으기 위해 시동 거는 희망버스가 너무 고맙다. 대우조선해양을 찾은 희망버스는 부산시청 앞 광고탑에서 고공농성 중인 생탁·택시 노동자들에게로 향할 것이다.

생탁 투쟁 하면 ‘휴일에도 고구마를 먹으며 일했고 식대가 1천원에도 못 미쳤다’는 노동자들의 증언이 떠오른다. 택시의 공공성과 노조 인정을 요구하며 택시 노동자가 찜통 같은 광고탑 안에서 시뻘겋게 익으며 싸우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대한민국이 이래도 되나. 인간다운 삶을 위해 고공에서 외치는 노동자들의 절규를 땅에서 받아안아야 한다.

거제의 크레인 위에서 흔들리며 부산의 송복남·심정보 동지를 응원한다.

강병재 대우조선해양하청노동자조직위원회 의장부산의 송복남·심정보가 서울의 최정명·한규협을 응원하며
생탁·택시 노동자 송복남(오른쪽)·심정보씨가 부산시청 앞 광고탑 위에서 ‘복수노조 인정·교섭창구 단일화 철폐’ 등을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생탁·택시 노동자 송복남(오른쪽)·심정보씨가 부산시청 앞 광고탑 위에서 ‘복수노조 인정·교섭창구 단일화 철폐’ 등을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4월16일 부산시청 앞 광고탑에 오른 뒤 만 5개월이 차갑니다. 봄바람이 불 때 올라와서 폭염에 시달리다 이제 가을의 기운을 담은 바람을 맞고 있습니다.

이곳 광고탑 내부엔 수리·보수 작업을 위한 세로 80cm, 가로 3m 정도의 공간이 있습니다. 위로는 머리를 들지 못할 높이(약 160cm)에 철제 빔이 있고요. 철망으로 만들어진 바닥 밑으론 도로를 오가는 차들이 보이고, 그 차들이 내뿜는 소음과 매연이 그대로 광고탑 안으로 들어옵니다. 저와 심정보(공공운수노조 택시지부 부산지회 조합원) 동지가 처음 광고탑에 올랐을 땐 기온이 4~5℃까지 떨어지는데다 자동차 소음과 매연, 광고탑 진동으로 거의 밤잠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저는 45일째 즈음부터 대상포진으로 극심한 통증을 견뎌야 했고, 심정보 동지는 심한 습진으로 고통을 호소했습니다. 7~8월에는 광고탑 내부 온도가 45℃를 넘어서면서 저희 모두 열사병에 걸려 10여 일간 음식을 먹지 못한 채 두통과 무기력에 시달렸습니다. 이젠 장염과 배앓이까지 겪고 있습니다. 지난 6월 초에는 칫솔을 흉기라며 광고탑에 못 올리게 하는 경찰의 과잉 물품 검사에 항의해 무기한 단식에 돌입하기도 했습니다. 비가 오면 저희는 광고탑 내부에 비닐을 네댓 군데 쳐서 비를 피하지만, 밑에서 광고탑을 지키는 동지들은 천막 하나 없이 비닐 한 장만 덮은 채 고스란히 비를 맞습니다. 그 모습을 내려다보는 저희의 마음은 처절합니다.

극한의 환경 속에서도 저희가 하늘 감옥에 살고 있는 이유(제1076호‘생탁 노동자들이 타들어갑니다’ 참조)는 간단합니다. ‘단체교섭 창구 단일화’ 방침을 철회하라는 것입니다. 근로기준법 위반, 부당노동행위, 부당해고, 임금체불 등 불법을 저지르는 생탁 사장은 단 한 명도 처벌받지 않고 있습니다. 시민과 택시노동자의 안전을 위협하는 불법 사납금제는 여전히 시행되고 있습니다. 대법원이 판결한 전액관리제(월급제) 시행과 부가세 경감분의 현금 지급은 이행되지 않았습니다. 법을 어기고 있는 택시 사업주가 처벌된 적도 없습니다.

택시를 운전하던 심정보와 막걸리를 만들던 송복남이 함께 광고탑에 오른 이유는 이런 현실에 대한 분노로부터 시작됐습니다. 복수노조 허용은 택시 사업장에서 민주노조를 만들 수 있는 희망이었습니다. 그러나 교섭창구 단일화는 어렵게 만든 민주노조를 현실에서 무력화했습니다. 소수노조의 권리는 어용노조와 사 쪽에 짓밟혔습니다. 지방노동위원회와 중앙노동위원회를 통해 ‘공정대표 의무 위반’(교섭 대표노조가 교섭창구 단일화 절차에 참여한 노조와 조합원의 이익을 차별 없이 공정하게 대표해야 할 의무) 판정을 받아도 소용이 없었습니다.

생탁 노동자들은 연차·특근 수당도 없이 한 달에 한 번 쉬면서 휴일근무 땐 고구마를 먹으며 일해야 했던 현실을 바꾸려고 노동조합을 만들었습니다. 파업 10일 만에 사 쪽은 다수의 노동자들을 빼내 복수노조를 만들었습니다. 이후 1년 동안 교섭 해태로 일관하던 사 쪽은 교섭창구 단일화를 이용하여 소수가 된 노동자들의 교섭권을 빼앗았습니다. 다수 노조와 단체협약을 체결한 뒤 생탁의 모든 문제가 해결된 양 부산 지역 주요 일간지에 광고를 하고 있습니다. 파업 500여 일이 지나가도 저희는 투쟁을 멈출 수 없습니다. 더 이상 호소할 곳도 없습니다. 오로지 생탁과 택시가 업종을 넘어 하나의 뜻으로 광고탑에 올라갈 수 있었던 것은 그동안 민주노조를 지키기 위해 투쟁했던 조합원들에 대한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9월12일 희망버스가 달린다고 합니다. 희망버스가 서울 국가인권위원회 건물 광고탑 위에서 농성 중인 기아자동차 비정규직 노동자 최정명·한규협 동지에게도 희망의 불씨가 되기를 간절히 빌어봅니다. 정몽구 회장은 ‘사내하청은 정규직’이라는 대법원 판결에도 법을 무시하고 있고, 두 노동자의 소속 회사는 그들의 고공농성에 해고 통보로 답하고 있습니다. 최정명·한규협 동지에게 힘찬 응원을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희망은 다른 누군가가 아닌 세상을 바꾸려는 우리 모두의 힘으로 만들어진다고 생각합니다.

희망을 만드는 최정명·한규협 힘내라! 우리는 강하다!

송복남 부산일반노조 부산합동양조(생탁) 현장위원회 총무부장

희망버스 참가문의 ▶ 비정규직 없는 세상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