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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뚝콩’이 삶의 뿌리를 내리도록

스타케미칼 차광호씨가 굴뚝에서 키운 강낭콩 8알… 하늘과 땅에서, 그가 땅의 노동자로 돌아오는 날을 기다리며
등록 2015-04-09 10:28 수정 2020-05-03 04:27

4월1일이 지났습니다. 오지 않길 바랐던 날입니다. 이날로 경북 구미 스타케미칼 굴뚝의 차광호(해고자복직투쟁위원회 대표)는 김진숙(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의 최장기 고공농성 기록(309일)을 넘어섰습니다. 이제 그의 굴뚝은 날마다 새 기록을 쓰게 됩니다. 잔인하고 끔찍한 기록입니다. 시간은 언제나처럼 무심히 흐릅니다. 차광호는 “차분하고 조용하다”고 했습니다.
4월1일 서울 목동 스타플렉스(스타케미칼 모회사) 사옥 앞에서 금속노조가 결의대회를 열어 사태 해결을 촉구했습니다. 최근 있었던 교섭에서도 사 쪽의 ‘불가’ 입장은 바뀌지 않았습니다. 대구지방법원 김천지원은 사 쪽이 제기한 업무방해금지 가처분을 받아들였습니다. 3월30일부터 차광호와 그의 동료 10명은 하늘과 땅에서 매일 50만원씩을 내야 합니다. 차광호의 하늘은 가팔라지기만 할 뿐입니다.

❶~❻ 차광호씨가 지난해 8월 굴뚝에서 강낭콩을 심어 수확하기까지의 사진. ❼ 수확한 8알의 강낭콩 중 차광호씨가 4월1일 굴뚝에 심은 콩. ❽ 나머지 4알을 이 같은 날  사무실에서 심었다. ❶~❼ 차광호 제공. ❽류유종 기자

❶~❻ 차광호씨가 지난해 8월 굴뚝에서 강낭콩을 심어 수확하기까지의 사진. ❼ 수확한 8알의 강낭콩 중 차광호씨가 4월1일 굴뚝에 심은 콩. ❽ 나머지 4알을 이 같은 날 사무실에서 심었다. ❶~❼ 차광호 제공. ❽류유종 기자

콩을 심었습니다. 차광호가 굴뚝에서 키워 얻은 콩입니다. 지난해 8월 1차 희망버스가 왔을 때 땅의 기원을 담아 하늘에 올린 강낭콩입니다. 그는 화분에 콩을 앉히고 물을 주고 마음을 주며 가꿨습니다. 한 포기가 살아남아 딱 8알의 콩을 남겼습니다. 늦게 심어 생장 시간이 짧았던 강낭콩은 작고 얇고 허약합니다. 차광호는 “씨알을 맺어준 것만으로도 고맙다”고 했습니다.

지난 3월21일 굴뚝농성 300일 문화제가 있던 날. 은 굴뚝에서 귀한 씨앗 4개를 내려받았습니다. 4월1일 굴뚝농성이 310일째 되던 날. 차광호와 은 각각 4알씩의 강낭콩을 심었습니다. 최장기 고공농성이 시작된 날부터 하늘과 땅은 다시 농사를 시작했습니다. 차광호의 ‘굴뚝콩’이 죽지 않고 삶을 퍼뜨릴 수 있도록 마음을 더해주시기 바랍니다. 하늘의 강낭콩은 차광호에게 생명의 기운을 전하고, 땅의 콩은 땅의 존재들에게만 허락된 뿌리를 얻었으면 좋겠습니다. 그가 땅의 노동자로 돌아오는 날, 하늘의 콩도 땅의 콩과 재회해 땅에서 살아갈 것입니다.

이문영 기자 moon0@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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