굴뚝을 올려다보며 휴대전화 발신 버튼을 눌렀다.
“배고프지 않나.”
70m 하늘(경기도 평택시 칠괴동)에서 답했다.
“오늘 점심부터 밥을 먹으려고 한다.”
기대하지 못했던 말이었다.
“밥 먹을 수 있을 변화가 있었나.”
이창근 금속노조 쌍용자동차지부 정책기획실장이 내려다보며 말했다.
“있었다.”
1월21일 오전 11시50분께였다.
굴뚝으로 올라가던 밥과 물통이 8일째(농성 40일째) 허공에서 대롱거리던 날이었다. 굴뚝을 감싼 하늘은 흐렸다. 오후엔 비가 내릴 것이라고 기상청은 예보했다. 몸 덥힐 온수 탕파가 굴뚝 상단에 결박당한 채 내려올 줄 몰랐다. 아난드 마힌드라 회장(쌍용차 대주주인 마힌드라&마힌드라그룹)이 공장을 방문한 1월14일부터 이창근·김정욱(사무국장)은 음식과 물품을 받지 않았다.
밧줄은 하늘 노동자에게 생명을 공급하는 끈이었다. 고공의 안위와 땅의 염려를 이어주는 유일한 선이기도 했다. 그 줄을 묶어버림으로써 두 사람은 6년 동안 해고자들을 결박해온 사슬을 풀려 하고 있었다. 그들은 생라면과 육포 등으로 일주일을 버텨왔다. 회장이 읽을 수 있도록 은박 매트 위에 청테이프를 붙여 쓴 다급한 글귀(“Let’s talk”)가 고공의 바람에 쓸려 비뚤어져 있었다. 이창근 실장은 2시간 전에 진행된 ‘어떤 소식’을 전하며 말했다.
“8일 만에 먹게 될 밥이다. 체하지 않게 잘 씹어 먹겠다.”
오전 10시. 김득중 쌍용차 지부장은 평택공장 안으로 들어가 이유일 사장을 만났다. 김규한 기업노조 위원장과 3자 면담이었다. 2009년 8월 이후 5년5개월 만에 노-노-사는 ‘교섭 시작’ 방침을 합의했다. ‘해고자 복직과 손배가압류 문제, 쌍용차 정상화와 26명 희생자 유가족 지원대책’이란 4대 의제도 정했다. 마힌드라 회장이 김득중 지부장을 만나 “2009년의 아픔을 잘 알고 있고 해결을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하자”고 말한 지 일주일 만이다. 전날 쌍용차 경영진은 지부에 연락해 만남을 제안했다. 노사는 이른 시일 안에 담당자와 일정을 정해 실무교섭을 진행할 계획이다.
마힌드라 회장의 방한이 소통 막힌 장벽에 균열을 냈다. 이유일 사장과 만난 직후 김득중 지부장은 “교섭은 일주일 전 마힌드라 회장과의 면담으로 이미 시작됐다”고 해석했다. “오늘 만남으로 구체적인 대화와 실무교섭을 위한 공식 자리가 마련된 것”이라고 했다. 굴뚝의 견해도 같았다.
“신차발표회(1월13일) 때 마힌드라 회장의 발언이 너무 원론적이고 실망스럽다는 해석이 많았다. 나는 달리 받아들였다. 회장이 희생자들을 향한 공감과 슬픔을 표했다. ‘교섭하자’는 분명한 메시지였다. 회사는 발언을 냉랭하게 해석했지만, 회장의 말엔 의지가 깔려 있었다. 특히 세계가 지켜보는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그는 ‘우는 아이의 손을 잡겠다’고 했다. 우리가 더는 울지 않도록 손을 내밀겠다는 의미였다. 되돌릴 수 없는 방향이 잡힌 것이다.”(이창근)
낮 1시30분. 점심을 올릴 시간이 되자 김득중 지부장과 조합원들은 식사와 방한·방수 용품을 들고 회사로 들어갔다. 회사 직원들이 밥과 국, 반찬 그릇을 하나하나 열어보며 확인했다. 물품도 일일이 체크했다. 모든 내용물을 수첩에 기록하고 사진을 찍었다.
오후 2시가 넘고 3시가 돼도 밥은 올라가지 않았다. 2시에 공표할 예정이던 지부 보도자료(합의 내용 발표)의 사소한 표현을 사 쪽이 문제 삼았다. 2시간30분을 넘겨서야 지부는 늦은 점심을 하늘에 띄울 수 있었다. ‘8일 만의 점심’으로 맨밥과 시금치 된장국을 준비했다. 참나물과 고추무침, 멸치볶음도 보탰다. 소화 기능 저하를 걱정해 죽도 챙겼다. 굴뚝 식사를 맡아온 심리치유센터 와락의 권지영 대표는 “위에 부담을 주지 않을 편안한 음식들로 도시락을 쌌다”고 했다. 송전탑 농성(2012년 11월20일~2013년 5월9일) 때 171일간 ‘하늘 밥’을 지었던 노하우가 해고자 가족들에겐 쌓여 있다. “고공농성자들은 운동이 부족해 소화가 잘되는 음식이 필요하다”고 권 대표는 말했다.
노동계는 과거 어느 때보다 해고자 복직이 현실에 가까워졌다고 보고 있다. 마힌드라 회장은 티볼리 발표장에서 김규한 위원장에게 물었다.
“굴뚝농성이 젊은 층의 티볼리 구매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는가.”
쌍용차 해고자 사태에 쏠리는 국민적 관심이 지난 6년을 거치는 동안 ‘경영적 변수’로 인정할 만큼 커졌다는 사실을 그는 알고 있었다. 고공농성은 외국에서도 ‘티볼리’를 걸고 응원 시위(‘이창근·김정욱이 만든 티볼리를 타고 싶어요’)가 이어질 정도로 반향이 컸다. 많은 누리꾼들이 대주주의 눈이 굴뚝을 주시하도록 이끌었다. 세계적 석학들(가야트리 스피박·슬라보이 지제크·노엄 촘스키)도 힘을 보탰다. 박점규 비정규직없는세상만들기 집행위원은 “굴뚝농성에 보태진 사회적 관심은 해고자 문제를 풀지 않으면 쌍용차의 경영도, 노사관계도, 회사도 정상화될 수 없다는 점에서 대주주가 선택의 기로에 서게 만들었다”고 했다.
티볼리의 판매 호조도 긍정적 신호다. 출시 전부터 현재까지 5천여 대가 계약됐다. 애초 예상치를 웃돌고 있다고 쌍용차 쪽은 전했다. 이유일 사장이 밝힌 올해 목표 판매량은 3만8500대다. 회사는 티볼리의 성공이 해고자 복직의 선결 조건이라고 강조해왔다. 2009년 당시 정리해고자 수는 159명이다. 징계해고자와 불법파견 판정을 받은 비정규직 노동자를 더하면 187명(쌍용차 지부가 요구하는 복직자 수)이다. 합의 당시 공장에 남아 있던 희망퇴직자 수는 353명(회사가 우선 복직 대상자로 계산하는 희망퇴직자 수는 자발적으로 그만둔 사람을 포함해 1600여 명)이었다. 모두 540명이 된다. 현재 티볼리의 한 달 계약 물량은 200~250대에 이른다. 지금 속도가 유지될 경우 2015년 판매량은 목표치의 2배를 넘는다. 생산량을 늘리려면 사람도 늘려야 한다.
이유일 사장의 거취도 해석을 낳는다. 그는 1월21일 노사 대화를 마친 뒤 서울로 이동해 티볼리 시승식에 참석했다. 그는 기자들과 만나 “임기를 마치는 3월에 대표이사직에서 물러날 것”이라고 밝혔다. 사퇴 뒤 계획은 따로 언급하지 않았다. 회사 고문이나 이사회 의장, 혹은 좀더 큰 자리를 맡을 가능성도 회자된다. ‘마힌드라 회장이 대립적 노사관계를 원치 않는다’는 노동계의 판단이 맞다면 강경 일변도였던 쌍용차 경영진은 대주주의 의지와는 반대로 움직여온 셈이 된다. 그가 마힌드라 회장의 재신임을 받기 위해선 해고자 문제는 반드시 풀어야 할 숙제란 분석이 나온다. 퇴임 전 합의 도출을 기대하게 만드는 배경이다. 쌍용차 사 쪽 관계자도 “사퇴 방침을 정한 사장님이 지부와 만나 교섭 시작을 합의한 것을 보면 그런(퇴임 전 해고자 문제 해결) 의지가 있으신 것 아니겠느냐”고 했다.
복직자 수와 복직 시기, 비정규직 해고자 포함, 희생자 명예회복 방식 등이 교섭의 쟁점으로 꼽힌다. 65개월을 건너온 노-노-사는 면담 시작 1시간여 만에 4대 의제를 확정했다. 마힌드라 회장의 의지가 읽힌다고 할 수 있다. 그만큼 실무교섭은 큰 난기류에 휩쓸리지 않을 것이란 전망도 있다.
구체적 합의점을 찾을 때까지 굴뚝농성은 계속된다. 농성 해제를 대화의 선결 조건으로 요구해온 사 쪽이 한 걸음 물러섰다. 노사교섭의 방향이 고공농성 해소가 아닌 해고자 복직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점도 시사하는 바가 있다. 지부는 설 연휴 전에 해결점을 찾아 하늘이 착륙할 수 있도록 하자고 요구한다.
“많은 아픔과 고통을 겪으며 긴 시간을 돌아왔다. 대화가 너무 늦게 시작됐다는 아쉬움도 있지만 노사가 좋은 해결점을 찾아 웃으면서 마무리할 수 있었으면 한다.”
김득중 지부장은 희망했다. 사 쪽 관계자는 “3자가 만나 대화의 물꼬를 튼 만큼 4가지 의제도 하나씩 해결할 수 있도록 서로 노력해야 한다”며 “회사도 최선을 다하겠다”고 했다.
굴뚝에서 이창근 실장은 “이제야 링에 올랐다”고 했다. “지금까지는 교섭을 위한 장외 싸움이었다. 마침내 본게임이 시작된다. 링에 올랐다면 서로가 규칙에 따라 경기해야 한다. 글러브를 빼고 하는 복싱은 반칙이다. 상호 신뢰를 전제로 한다. 치열하게 싸우면서 양보와 타협도 해야 한다. 사회적 연대가 더욱 본격화돼 힘을 실어줘야 하는 이유다.”
오후 4시. 지부장과 조합원들이 회사 직원, 보안경비와 함께 굴뚝 3분의 1 지점까지 계단을 타고 올라갔다. 묶어둔 줄을 굴뚝에서 풀어 내렸다. 동료들이 방한용 은박매트를 매달아 도르래를 잡아당겼다. 굴뚝 위에서 이창근 실장이 난간 한쪽에 다리를 걸치고 줄을 끌어올렸다. 입었던 옷을 벗어 내리고, 갈아입을 옷을 올리고, 빈 그릇과 교체할 물품을 내리고, 먹을 밥과 씻을 온수를 올렸다. 오전까지 비뚤어져 있던 푸른 글자들(“Let’s talk”)도 바로잡았다. 공장 옆 지원천막에서 하늘로 솟는 밥을 지켜보며 부인 이자영씨가 말했다.
“전화 통화를 할 때마다 남편은 늘 ‘나쁘지 않다’고만 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언제쯤 좋다고 할 거냐’고 물었다. 남편은 내가 걱정할까봐 ‘나쁘다’는 말은 하지 못했다. 좋은 게 없으니 ‘좋다’는 말도 못했다. 오늘 교섭 시작을 합의했다는 소식이 들려 다행이다. 남편이 ‘좋다’고 말할 수 있는 날이 빨리 오길 기다리고 있다.”
멈춰 있던 밥줄이 다시 움직이는 장면은 상징적이었다. 묶어둔 밥줄 매듭이 풀리면서 가느다란 선 위로 하늘과 땅이 통하는 미세한 길이 뚫렸다. 험난한 시간을 거쳐 붙잡은 노사교섭의 끈이 공장 안팎을 이어 복직의 길을 열어주길 해고자들은 바라고 있다. 이틀 뒤. 공장 밖에서 확산되던 ‘쌍차 챌린지’(이창근·김정욱 응원문구와 함께 후원금 입금 뒤 3명 지목·소셜네트워크서비스로 전파)가 담장을 넘어 공장 안 노동자들과 접속했다.
평택=이문영 기자 moon0@hani.co.kr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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