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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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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 앞 멈춰선 대검

사건 초기 움직임 ‘합격점’이지만 재난관리 컨트롤타워의 정점인
대통령 포함한 국가의 책임에 대한 추궁과 수사는 미비해
등록 2014-10-14 15:36 수정 2020-05-03 04:27
지난 10월6일 오전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에서 조은석 대검 형사부장이 세월호 참사와 관련한 수사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검찰은 세월호 참사를 두고 제기된 국가정보원 개입설, 암초 충돌설 등의 의혹이 사실과 다르다고 선을 그었다. 한겨레 김태형 기자

지난 10월6일 오전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에서 조은석 대검 형사부장이 세월호 참사와 관련한 수사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검찰은 세월호 참사를 두고 제기된 국가정보원 개입설, 암초 충돌설 등의 의혹이 사실과 다르다고 선을 그었다. 한겨레 김태형 기자

지난 10월6일 대검찰청의 세월호 수사 결과 발표를 끝으로 세월호 참사에 대한 검찰 수사는 일단락됐다. 새누리당과 새정치민주연합이 세월호 특별법 3차 합의안을 타결하자, 가시화된 진상조사위와 특검에 바통을 넘기며 무대에서 내려온 것이다. 이제 사고 원인과 책임 소재의 얼개를 밝힌 검찰 수사에 성적을 매겨보기로 한다.

<font size="3">눈물 닦아주고자 노력했다지만 </font>

먼저 사건 초기 검찰의 기민한 움직임에 대해서는 합격점을 줄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정부 조직 전체가 ‘멘붕’에 빠져 허둥지둥하는 동안 제 할 일을 찾아 바삐 움직인 곳은 검찰뿐이었다. 검찰은 참사 직후 검경 합동수사본부를 구성한 뒤 승무원들의 신병부터 확보했다. 당시 수사팀 관계자는 “승무원들이 멀쩡히 밖에 돌아다니면 돌에 맞아 죽는다. 지금 검찰의 역할은 첫째는 희생자 가족의 눈물을 닦아주는 일이고, 둘째는 우리 사회 법치주의의 틀을 유지하는 일이다”라고 말했다.

해결사로 나선 검찰은 서둘러 눈에 보이는 성과를 내야 했다. 분노한 여론이 수사 과정을 오랫동안 기다려줄 리 만무했다. 검찰은 구속된 승무원들에게 전담 검사를 배정해 진술 확보에 주력하는 한편, 이들의 카카오톡 대화 등 각종 자료를 압수수색해 사고 원인을 확인했다. 검찰은 곧 승객들을 버리고 제 한 몸 살리기에 급급했던 세월호 승무원 15명 전원을 구속 기소했고, 부실한 화물 고박과 운항 관리, 증축 과정의 책임을 물어 관련 업계 관계자와 공무원 23명을 추가 기소했다. 참사의 얼개는 수사 초기에 이미 드러났다.

특히 검찰은 세월호 운항의 총책임자인 이준석(69) 선장 등 4명에 대해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혐의를 적용했다. 세월호 참사 같은 재난 범죄에서 ‘고의’에 의한 살인죄를 적용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지만, 검찰은 이들에게 무거운 형사책임을 묻기로 한 것이다. 검찰로서도 쉽지 않았던 결정이다. 실제 당시 검찰 안에서는 살인 혐의 적용을 두고 논쟁이 벌어지기도 했다. 당시 수사 라인에 있던 한 검찰 간부는 “법률가의 양심을 걸고 살인죄 적용은 막을 것이다. 내가 아는 한 이 사안에 대해서는 살인죄를 적용할 수 없다. 법치주의는 어떤 경우에도 흔들릴 수 없는 헌법의 요청이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다른 검찰 간부는 “세월호 참사는 미증유의 사태다. 이런 사안에 대해 법논리를 따지는 것은 무감각한 법기술자의 마인드다. 퇴선 명령을 내렸다면 아이들은 살 수 있었다”며 살인 혐의 적용이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두 극단의 논리 사이에서 검찰은 유가족의 눈물을 닦아주는 쪽으로 결론을 내렸다.

그러나 지난 10월6일 내놓은 검찰의 최종 수사 결과 발표에 대해서는 ‘B’ 이상의 점수를 주기 어렵다. 노력은 했지만, 재수강을 면할 수 없는 수준이라는 뜻이다. 검찰은 세월호 참사에 대한 국가의 책임을 일부 인정하는 결론을 내놨다. 검찰은 사고 당시 현장 구조를 지휘한 해경 123경비정 김경일 정장(경위)을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로 추가 기소했다. 국가기관의 구조 실패가 희생자의 사망에 직접적 원인이 됐다고 본 것이다. 검찰은 또 민간 업체인 ‘언딘 마린 인더스트리’에 특혜를 주기 위해 수중 수색 구조를 미룬 최상환 해경 차장(치안정감) 등 해경 수뇌부 3명도 직권남용 등 혐의로 기소했다. 나름 해경 고위층까지 형사책임의 범위를 넓힌 것이다.

<font size="3">청와대·대통령은 왜 제외한 건가? </font>

특히 123정장의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는 법무부와 대검 사이에 알력이 벌어질 정도로 예민한 사안이었다. 정치적 중립성을 위해 독립해 있는 대검에 비해, 법무부는 청와대와의 거리가 상대적으로 가깝다. 세월호 참사로 곤경에 처한 박근혜 대통령의 정치적 입지를 고려할 때, 법무부로서는 국가기관에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를 적용하는 것을 막고 싶었음이 분명하다. 반면 수사 실무를 지휘하는 대검으로서는 곧이어 닥쳐올 특검과 진상조사위를 고려해 최대한 수사 성과를 내야 했다. 이런 두 기관의 입장차는 123정장의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에 대한 법리 논쟁으로 번졌다. 법무부는 “구조 실패에 업무상 과실치사를 적용한 전례는 없다”며 계속해서 부정적 견해를 냈고, 대검은 수차례 보고서를 만들어 외국의 적용례와 처벌 필요성을 강조했다고 한다. 당시 대검과 법무부의 실무 책임자들은 얼굴을 붉혀가며 논쟁을 벌인 것으로 전해졌다. 123정장과 해경 차장 기소는 이런 노력 끝에 따낸 ‘성과물’이었던 셈이다.

한 검찰 간부는 “안전행정부,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해경 등 정말 많은 곳을 샅샅이 수사했다. 청와대를 제외한 모든 곳을 수사했다고 보면 된다. 형사처벌 범위에 미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 이번 수사 결과 발표에서는 빠졌지만, 징계위원회 개최 등 다양한 방식으로 책임을 묻게 될 것이다. 검찰은 유가족의 눈물을 닦아주기 위해 열심히 수사했다. 이는 진심이다”라고 말했다. 진정성과 자부심이 느껴지는 목소리였다.

그럼에도 ‘재수강’이 불가피한 이유는 곳곳에 남아 있다. 먼저 세월호 참사의 국가 책임이 123정장에 그친다는 것은 납득하기 어려운 ‘꼬리 자르기’로 보인다. 당시 정부의 재난관리 컨트롤타워는 거의 붕괴된 지경이었다. 정부는 거듭된 실책으로 구조를 위한 ‘골든타임’을 놓쳐왔다. 탑승자와 실종자의 정확한 수를 파악하는 데만 며칠이 걸릴 정도였다. 당장 국민은 참사 당시 재난관리 컨트롤타워의 정점인 박근혜 대통령의 행적조차 알지 못하는 상황이다. 정부 조직이 붕괴되자, 의혹들이 생명력을 얻기 시작했다. 세월호 참사로 터져나온 의혹들은 갈래를 뻗어, 이제는 무엇이 진실인지 믿을 수 없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이름을 밝히기 꺼린 검찰 출신의 한 변호사는 “국민적 의혹이 일고 있는 상황에서 ‘죄가 안 되니 어쩔 수 없다’며 비켜서는 모습은 국가 최고 수사기관으로서 걸맞지 않은 행동이다. 적어도 국민에게 각종 의혹에 대한 합리적인 설명을 내놓았어야 했다. 그게 어려웠다면 합리적 설명을 내놓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이라도 보였어야 했다”고 말했다. “청와대를 제외한 모든 것을 수사했다”는 면피성 해명만 믿고 넘어가기는 어렵다는 의미다.

<font size="3">수사 결과 설명 요구에는 묵묵부답 </font>

검찰이 마련한 수사 결과 발표 브리핑 자체가 각종 의혹에 대한 해명에 치우쳤다는 점 역시, 검찰의 수사 의지를 끝까지 신뢰할 수 없는 이유 가운데 하나다. 검찰은 ‘세월호 선내 폐회로텔레비전(CCTV) 정지설’ ‘국정원 개입설’ ‘언딘 유착설’ 등 여전히 살아 있는 의혹에 대해 “객관적 자료에 따르면 사실과 다르다”며 선을 그었다. 검찰이 어떤 객관적 자료에 따라 이런 판단에 도달했는지는 미궁 속에 있다. 유가족이 참여한 조사위원회가 할 일이 여전히 많이 남아 있을 수밖에 없는 이유다.

검찰 수사는 애프터서비스(AS)에서도 좋은 점수를 주기 어려워 보인다. 세월호 참사 희생자·실종자·생존자 가족대책위원회는 지난 10월7일 검찰에 수사 결과를 직접 설명해달라고 요청했다. 그러나 검찰은 묵묵부답이다. 검찰 관계자는 “덥석 응하면 정치적으로 이용당할 가능성이 높아서 어떤 방식으로 접근해야 할지 논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검찰은 세월호 수사 초기 “요청이 있으면 언제건 수사 과정에 대해 설명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당시 베푼 선의가 이제 와 부담스럽다 고백하고 있는 셈이다.

노현웅 법조팀 기자 golok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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