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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서든 너를 느낄 수 있단다

고 이승현군의 누나 이아름씨의 조금 특별한 제주 여행…‘길 위에서’ 만난 이들과의 따뜻한 조우
등록 2014-10-08 15:00 수정 2020-05-03 04:27
지난 9월29일 제주 강정 해군기지 공사현장 정문에서 생명평화 미사를 봉헌하고 있는 신부와 수녀의 모습을 사진으로 담고 있는 이아름씨.

지난 9월29일 제주 강정 해군기지 공사현장 정문에서 생명평화 미사를 봉헌하고 있는 신부와 수녀의 모습을 사진으로 담고 있는 이아름씨.

화창했다. 남부 지역의 햇살은 늦여름의 그것과 같았다. 고 이승현군의 누나 이아름(24)씨와 함께 9월27~30일 제주도를 찾았다. 아름씨는 지난 7월부터 8월까지 땡볕 여름을 길 위에서 보냈다. 세월호 침몰 진상 규명 등을 염원하며 동생 고 이승현군을 가슴에 품고 아버지 이호진씨와 다른 희생자 고 김웅기군의 아버지 김학일씨와 함께 경기도 안산~전남 진도 팽목항~대전까지 800여km를 걸었다. 도보 순례길에 만난 기자는 아름씨에게 물었다. “제주도, 혹시 가보고 싶지 않아요?” “잘 모르겠어요. 아직은 가기 싫은 것 같기도 하고.” 아름씨는 대답했다. 그 뒤 한 달여 시간이 지나고, 제주도로 함께 떠났다. 왜 마음이 바뀌었는지 몰랐다. 그의 여행 첫날 일기를 보고서야, 이해할 수 있었다.

이게 다 승현이 덕분이야 #9월27일 토요일

내가 언제쯤 다시 제주도에 갈 수 있을지 나 역시 알 수 없었고, 생각하기 싫었다. 제주도가 싫어서가 아니라 그곳에서 승현이를 느낄까 두려웠다. 하지만 생각해보니 나는 제주도가 아닌 이곳 안산에서도 우리 승현이를 오롯이 느끼고 있었다. 내가 제주도에 가서 승현이를 느낀다면 그것은 당연한 것이리라. 지금은 그렇지 않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어디에 가든 내 곁에 없는 승현이를 느끼는 것이 두려웠다. 하지만 지금은 언제 어디서든 내 곁에 있는 승현이를 느낄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한다. 내 곁에 숨 쉬고 있진 않지만 항상 나를 바라봐주고 지켜주는 승현이의 따뜻한 온기를 느낀다. 그래서 이번 제주도 여행이 우울하지 않을 것 같다. 첫날이지만 정말 좋았고 행복했기 때문이다. 내가 지금 이렇게 좋은 사람들과 좋은 곳에 있을 수 있는 것은 우리 승현이 덕분이다.#

제주에서의 첫 목적지는 제주항. 9월27일 오후 2시께 그곳을 찾았다. 사고만 없었더라면 승현이가 친구들과 왁자지껄 떠들고 장난치며 내디뎠을 그곳. 제주항에는 적막이 흘렀다. 육지로 나가는 배는 여전히 드나드는 듯했지만, 입항과 출항이 없던 때라 여행객은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아름씨는 바다를 보고 싶었다고 했지만, 정작 배가 정박해 있는 바다 쪽은 길게 바라보지 않았다. 그 눈빛에서 약간의 불안감이 느껴지는 듯했다. 첫 목적지를 잘못 선택했나 싶었다. 한숨 섞인 날숨을 몇 번 길게 내쉴 뿐이었다. 10분 남짓 됐을까? “다음 목적지로 가요”라고 재촉하듯 말했다. 바다에 뛰어들고 싶어서라고 설명했지만, 말로 하는 설명 뒤에 내내 조금 떨리는 눈빛이 마음에 걸렸다.

세월호 참사가 있은 뒤 유가족들 누구나 그랬겠으나, 아름씨의 생활 역시 많이 달라졌다. 곁을 함께 지켜준 사람들과 마음을 나누고, 도보 순례길에 만난 이들과 웃음을 나눈다. 도보 순례를 마치고 프란치스코 교황에게서 세례를 받은 아버지 이호진씨와 함께 초대를 받아 지역에 자주 나들이를 하기도 한다. 그사이 세월호 참사 직후 마음을 가득 채웠던 분노와 불안과 절망감은 조금씩 옅어지는 중이다. 활짝, 호탕하게 자주 웃는다. 그래도 죄스럽지 않다. 승현이는 아름씨 곁에 항상 있으니까.

#9월28일 일요일

어제도 바다에서 놀았지만 오늘은 더 놀기 좋은 곳에서 수영을 했다. 바다라서 수영장처럼 편하게 수영을 할 수는 없었지만 그래도 놀기에는 좋은 곳이었다. 물도 많이 먹었지만 정말 재미있어서 2시간 넘게 놀고 나왔다. 그리고 강정으로 향했다. 진도를 왔다갔다 하면서 알게 된 삼촌이 그곳에서 평화지킴이로 계시기 때문이다. 삼촌이 살고 있는 순례자의 집에 머물며 생명평화 미사도 보고 강정을 둘러볼 계획이다. 처음 와본 강정마을이지만 모두 좋았다. 조용하고 따뜻한 이곳이 좋았고, 노을이 예쁜 이곳이 좋았다. 아픔을 품고 있는 곳이지만 처음 온 나에게는 한없이 따뜻했다.#

따뜻한 그곳에서 일어나는 매일의 전쟁

따뜻한 곳이었다, 강정마을은. 9월28일 오후 6시. 저녁 노을이 예쁘게 지는 때였다. 해가 지자 검푸른 하늘에는 초승달이 떴다. 가느다란 눈썹달이었지만 빛은 맑고 강해서 바다 위에 잔잔하게 그 빛이 번졌다. 강정마을 앞바다, 구럼비 바위는 이제 볼 수 없었다. 고요할 줄만 알았던 그 바다는 전쟁이 일어나고 있었다. 바다로 향하는 산책길, ‘쾅’ 하는 폭음이 들려왔다. 방파제에 나가보니, 왼편 강정 해군기지 건설현장에서 폭음 전에 큰 물보라가 일었다. 바다에 무엇인가를 매립하는 것으로 추정됐다.

진도 팽목항에서 만난 강정마을 평화지킴이 전대협 삼촌과 함께 나선 길이었다. 그는 “마음이 아파서 이쪽에는 원래 잘 오지도 않아”라고 아름씨에게 말했다. 24시간 공사가 진행된다고 했다. 8년의 싸움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아름씨는 질문을 던졌다. “왜 이렇게 된 거예요? 누가 잘못한 거예요?” 쉽게 대답할 수 없었다. 세월호 참사 뒤 보여준 대한민국이라는 국가, 그 정부의 민낯을 봐온 아름씨였다. 아름씨의 모바일 메신저 자기소개란에는 이런 글이 적혀 있었다. ‘국민이 국가를 걱정하는 나라는 없다.’ 그럼에도 아름씨의 걱정은 커져만 간다.

#9월29일 월요일

오늘은 강정 해군기지 건설현장 정문에서 하는 생명평화 미사를 보고 왔다. 지난 이틀 동안 즐거웠던 마음이 이곳에 오니 한없이 무거워졌다. 사진으로 봤을 때는 몰랐는데 실제로 보니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문정현 신부님이 큰 덤프트럭 밑으로 들어가셔서 누우시는 걸 보니 마음이 아프고 죄송했다. 그 모습이 너무 절박해 보여서 눈물이 났다. 문규현 신부님께서 말씀하셨다. 공사를 조금이라도 늦추기 위해 이렇게 하는 것이라고. 대전에서 오신 사무국장님은 어차피 공사는 진행되고 언젠가는 완공되겠지만 우리는 그냥 우리의 할 일을 하는 것뿐이라고 말하셨다. 나도 생각했다. 이 모든 것들이 의미 있는 일이고, 시간이 지나면 기억될 것이고, 그러니 이분들은 충분히 가치 있는 일을 하고 계신 것이라고. 우리 할아버지 같은 신부님 두 분이 그곳에 계시는 걸 보니 든든하기도 했지만 너무 죄송했다. 마음이 무거웠지만 그래도 미사에 간 것을 후회하지 않는다. 이제야 온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반가운 이들을 만났다. 도보 순례를 하면서 만났던 이들이다. 아름씨는 달려가 그들을 안았다. 문정현·문규현 신부를 비롯해 천주교 대전교구 정의평화위원회 신부님들과 사무국장을 맡고 있는 정춘교씨, 아름씨를 항상 따뜻하게 맞아주는 스텔라 수녀님, 도보 순례길에 열린 작은 음악회에서 평화로운 오카리나 소리를 들려준 정미영씨까지. 그간의 안부를 서로 묻고, 손을 잡고, 인사를 나눴다. 그러나 반가운 마음은 오래가지 않았다.

아름씨는 눈물을 흘렸다. 9월29일에는 강정 해군기지 공사현장 정문에서 제주 평화의 섬 실현을 위한 천주교연대 출범 3주년을 기리는 생명평화 미사가 봉헌됐다. 경찰은 미사를 드리는 중에도 공사를 방해한다며 신부와 수녀들을 의자째 들어냈다. 강정마을을 지키는 문정현 신부는 결국 덤프트럭 밑으로 뛰어들었다. 보는 이들은 문 신부님이 다치지 않아서 가슴을 쓸어내리고 눈가가 붉어졌다. “왜 이렇게 눈물이 날까요?” 대답할 수 없는 질문을 아름씨는 계속 던졌다. 그럼에도 지치지만은 않았다. 다시 힘을 냈다. 그리고 아름씨는 안타깝고 슬픈 이 현실 속에서도 불행하지 않다 생각했다.

언제라도 나를 반겨줄 것 같은 제주#9월30일 화요일

오늘은 제주도 여행의 마지막 날이다. 평화지킴이 삼촌들과 비가 오면 볼 수 있다는 엉또폭포에 갔다. 지난밤에 비가 많이 오지 않아 폭포를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아름다운 곳이었다. 그곳에 있는 카페에 가서 차도 마시고, 정말 좋았다. 오전 11시부터 시작한 미사에 가서 신부님들을 한 번 더 뵈었다. 문정현 신부님과 문규현 신부님께서 꼭 안아주셨다. 문규현 신부님께서는 평화책방에서 맛있는 음료수도 사주셨다. 그리고 순례자의 집으로 돌아가서 아쉽지만 이번 여행을 마무리했다. 헤어지면서 삼촌들과 안으며 인사를 했다. 지내다가 힘들면 언제든지 또 오라고 삼촌들이 말했다. 다음에 다시 내가 제주에 간다면 지금의 좋은 기억을 갖고 갈 것이고 그렇다면 그때의 제주도 지금처럼 나를 반겨줄 것이라 생각한다. 제주도 여행에서 아름다운 추억을 많이 만들었다. 그래서 나는 불행하지 않음을 다시 한번 느낀다.#

제주=글·사진 이정연 기자 xingxi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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