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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다방을 잃은 자리, 사랑방을 상상하다

웹툰 ‘중도 빌라’와 ‘카페 보문’이 건네는 다정한 위로
등록 2026-05-28 19:09 수정 2026-06-01 12:00
‘중도 빌라’의 한 장면. 카카오페이지 화면 갈무리

‘중도 빌라’의 한 장면. 카카오페이지 화면 갈무리


초대형 커피 체인의 망동으로 분기탱천한 요즘이다. 나는 최근 갈 일이 없던 곳이라 너무도 쉽게 다신 안 가겠다고 분노와 함께 다짐했지만, 돌아보면 분노 외에도 여러 감정이 짚인다. 이른바 ‘카공족’을 비롯해 그곳을 어떤 이유로든 자주 찾다가 이번 사태로 발길을 끊은 분들에게 특히 괜한 마음이 쓰인다. 화만 난 게 아니라 편히 갈 곳까지 잃은 기분일 것이다. 너무 크고 넓게 퍼져서 커피숍이나 카페라는 말로 소화하기 어렵게 느껴지지만, 그들이 잃은 하나하나의 매장은 결국 차를 마시는 공간이다. 집과 일터 사이 딱 좋았던 단골 카페가 재개발 속에 사라졌던 경험을 떠올려보면, 나 역시 짐작 가는 상실감이다.

이 상실감의 자리에 겹쳐두고 싶은 카페 두 곳이 있다. 심우도 작가의 ‘중도 빌라’ 속 사랑방과 ‘카페 보문’ 속 동명의 카페다. 웹툰 속에 그려진 두 공간은 소박하고 아담하다. 그러면서도 카페를 찾는 이들이 어우러져 만들어내는 이야기는 대형 프랜차이즈 카페에서 모아내기 어려울 온도를 품고 있다. ‘심우도’는 심흥아 작가와 우영민 작가가 함께 쓰는 필명인데, 두 작가는 함께 작은 찻집을 운영한 경험이 있다. 직접 해본 사람만이 그려낼 수 있는 현실과 따뜻한 상상이 두 작품에 담긴 것은 우연이 아니다.

 

‘중도 빌라’의 한 장면. 카카오페이지 화면 갈무리

‘중도 빌라’의 한 장면. 카카오페이지 화면 갈무리


단골들이 이어준 카페

 

2016년작 웹툰 ‘카페 보문’ 속 카페 보문은 그림책을 그리는 프리랜서 선화의 단골 카페다. 동네에서 조금만 나가면 한 집 걸러 한 집이 카페지만, “그림이 잘 그려지는 곳” “편히 쉴 수 있는 곳”은 카페 보문뿐이다. 그런 가게가 며칠째 문을 열지 않아 선화는 마음 둘 곳이 없다. 매일같이 닫힌 문을 확인하다 가게가 망한 건가 싶을 즈음 어느 밤, 카페 보문 사장 언니가 선화의 집으로 찾아와 선화에게 부탁한다. 자기는 멀리 떠나니, 카페 보문을 대신 운영해달라고. 갑작스러운 부탁에 선화는 망설이지만 이내 그러겠다고 답한다. 둘은 한밤중에 카페에 들러 인수인계까지 마무리한다.

아침에 일어난 선화는 꿈이었다고 여긴다. 하지만 집 안 테이블 위에는 열쇠와 “고마워요”라고 쓰인 쪽지가 놓여 있다. 그날로 선화는 카페 보문의 새 주인이 되어 운영을 시작한다. 오랜 후에야 밝혀지지만, 카페 보문은 오래전 보문식당이었고 이후 10년간은 보문 찻집이었으며, 5년쯤 전부터 카페 보문이라는 이름으로 운영됐다고 한다. 감당하기 어려운 일이 생기면 찾아가라고 옛 주인 수연이 남겨둔 주소의 주인이 보문 찻집을 운영하던 이였음을 알고 나면, ‘보문’은 어쩐지 주인을 골라 물려주는 곳 같다는 짐작이 자연스럽다. 이문에 어두운 신비 속에서, ‘카페 보문’은 카페란 무엇이고 어떤 연결을 만드는 공간인지 생각하게 돕는다.

꿈결인 듯했던 인수인계 속엔 옛 주인 수연의 단골들에 대한 이야기도 있었는데, 첫날부터 사람과 고양이 단골들이 찾아와 새 주인 선화에게 용기를 심어준다. 카카오웹툰에 달린 댓글처럼 “가게를 맡겼다기보단 인연을 맡기고 떠난” 듯한 모양새다. 단골이라는 이름의 인연들은 서로에게 아낌이 없다. 시간을 들이고 손수 만든 것을 가져다주고 마음을 나눈다. 카페 운영이 어려워졌을 때는 단골들이 먼저 ‘요일 카페’를 제안해 선화의 짐을 덜어주기도 한다.

그래서일까. “제3의 장소의 단골손님들은 서로를 일가친척이나 오래된 친구처럼 대한다. 그들은 서로에게 필요한 물건을 물려주거나 빌려주기도 하고 누군가 곤경에 처하면 도와준다. 누가 며칠 동안 보이지 않으면 다른 사람이 그의 안부를 확인하러 돌아다닌다.” 언젠가 밑줄 쳐두었던 ‘제3의 장소’(레이 올든버그 지음, 김보영 옮김, 풀빛 펴냄, 2019)의 사회과학서답지 않은 문장이 떠올랐다. 제1의 장소는 집, 제2의 장소는 일터라 할 때, 제3의 장소는 비공식적인 공공모임이 이뤄지는 공간이다. 이 책의 묘사는 심우도의 두 카페에 모두 들어맞는다.

 

‘카페 보문’의 한 장면. 카카오페이지 화면 갈무리

‘카페 보문’의 한 장면. 카카오페이지 화면 갈무리


‘임대’라고 써둔 종이를 접어

 

최근 완결된 ‘중도 빌라’에서는 빌라 상가 공실에 자리한 사랑방이 제3의 장소다. 대여섯 가구가 입주한 중도 빌라의 주인 미자씨는 거의 1년째 공실인 1층이 임대되길 기다리던 터였다. 먼저 세상을 등진 남편이 공실을 보러 오는 꿈을 꾼 날, 청소라도 해둬야겠다 싶어 오랜만에 1층을 열었다. 그 참에 102호 할머니 복희씨와 미자씨 또래 며느리 순영씨가 들어와 담소를 나눈다. “아구구, 다리야~” 하나 있던 플라스틱 의자에 앉은 복희씨는 어째 볕 잘 드는 1층에서 떡을 먹자고 성화다. 못 이긴 순영씨는 떡과 차를 차려 온다. 미자씨가 돌보는 고양이도 괜히 열린 문으로 들어와 자리를 잡는다. “텅 비어 있던 공간에 세 노인과 고양이 한 마리, 고소한 떡고물 냄새와 따끈한 봄볕 한 줌이 더해졌다.” 서술자의 내레이션 사이로 그려진 풍경이 기분 좋은 상상을 부른다.

같은 날 오후엔 유치원 하굣길에 1층 공실이 열린 것을 발견한 202호 나라도 괜히 들어가고 싶다고 엄마에게 떼를 쓴다. 플라스틱 의자에 앉았더니 역시 유치원에서 귀가하던 302호 우주도 밖에서 궁금한 눈치다. 202호 모녀와 302호 모자는 그렇게 만나 친구가 되었다. 아이들은 어느새 ‘임대’라고 써둔 종이를 접어 비행기를 날린다. 미자씨의 공실은 이미 달라졌다. 내친김에 잠시 문을 열어두기로 한 미자씨는 이내 공실의 다른 가능성을 실감한다. 너나없이 보탠 쓸 만한 헌 가구와 화분이 들어차고 컵과 주전자와 라디오가 더해지니, 모두가 쉬고 만나고 노는 공간이 된 것이다. 덕분에 친구가 맺어진다. “미자 할머니는 나의 첫 번째 할머니 친구예요!” 미자씨와 친구 하기로 하며 사랑방을 가득 채운 나라의 말이다.

 

그 다정한 상상만이라도

 

“제3의 장소는 은퇴자와 현역이 교류할 수 있게 해주며, 가장 나이 든 세대와 가장 어린 세대가 서로 어울릴 수도 있는 곳”이라던 올든버그의 문장대로다. 긴장감 넘치는 사건이 아닌 소소한 삶의 편린과 함께, 공간이 조금씩 더 따뜻하게 들어차는 것이 가장 벅찬 이야기인 작품이다.

‘중도 빌라’ 사랑방과 ‘카페 보문’. 모두가 이런 카페를 가져야 한다는 것도, 이것만이 진짜 카페라는 것도 아니다. 다만 우리 일상에 이런 선택지가 있을 수 있다는 가능성, 그 다정한 상상만이라도 초대형 카페의 이름으로 벌어진 불쾌한 촌극에 덧대고 싶었다. 사실 둘러보면 유사한 실천도 우리 곁에 제법 존재한다. 크디큰 카페들에 가려져 눈에 띄지 않았을 뿐이다. 상상할 수 있는 가장 다정한 카페를 찾아 두리번거리기 안성맞춤인 때다.

 

조익상 만화평론가·서원대 웹툰콘텐츠학과 교수

 

*만화의 칸과 칸 사이, 칸새에서 출발하고 이야기를 나눕니다. 6주마다 연재.

‘중도 빌라’의 한 장면. 카카오페이지 화면 갈무리

‘중도 빌라’의 한 장면. 카카오페이지 화면 갈무리


 

‘카페 보문’의 한 장면. 카카오페이지 화면 갈무리

‘카페 보문’의 한 장면. 카카오페이지 화면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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