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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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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출구 스스로 내준 꼴

세월호 대책위원회 임원, 폭행 시비 사건으로 사퇴… 사건 현장에 있던

김현 의원은 발 빼고, 유가족 대응에선 특권층의 그림자가
등록 2014-09-23 14:46 수정 2020-05-03 04:27

‘세월호 참사 희생자·실종자·생존자 가족대책위원회 임원’ 9명이 9월17일 전원 사퇴했다. 이날 새벽에 벌어진 폭행 시비 사건 때문이다.
일부 진술이 엇갈리지만 경찰과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하면 사건의 전말은 이렇다. 김현 새정치민주연합 의원과 세월호 가족대책위 김병권(47) 위원장, 김형기(48) 수석부위원장 등 임원 5명이 9월16일 밤 9시부터 자정까지 서울 여의도의 한 횟집에서 식사하며 술을 마셨다. 술자리가 끝난 뒤 임원들은 경기도 안산으로 돌아가려고 대리기사 이아무개(52)씨를 불렀다.

“너 내가 누군지 알아”라는 고함 소리

대리기사 폭행 시비 사건에 휘말린 세월호 가족대책위원회 김병권 전 위원장(왼쪽)과 김형기 전 수석부위원장이 지난 9월19일 서울 영등포경찰서에서 조사를 받기 위해 경찰서에 들어서고 있다. 김명진 기자

대리기사 폭행 시비 사건에 휘말린 세월호 가족대책위원회 김병권 전 위원장(왼쪽)과 김형기 전 수석부위원장이 지난 9월19일 서울 영등포경찰서에서 조사를 받기 위해 경찰서에 들어서고 있다. 김명진 기자

이들은 차량을 찾으며 대화를 계속 나눴다. 30분간 기다리던 대리기사 이씨가 “안 가려면 돌아가겠다”고 말하자 김 의원 일행이 “의원에게 공손하지 못하다”고 비판했다. 화가 난 대리기사가 “국회의원이면 굽실거려야 하나, 국회의원이 뭔데”라고 따졌다. 승강이는 폭력으로 이어졌다. 맞은편에서 현장을 지켜보던 행인들이 휴대전화로 112에 신고했다. 이들은 싸움을 말리려고 다가왔지만 되레 뒤엉키면서 싸움이 커졌다. 대리기사와 행인들은 “일방적으로 맞았다”고 하지만, 임원 쪽은 ‘쌍방 폭행’이라고 주장한다. 김 위원장이 폭행당해 한쪽 팔에 깁스를 했고, 김 수석부위원장은 치아 6개가 부러졌다는 것이다.

이번 사건은 여러가지 면에서 씁쓸함을 안겨준다. 첫째, 김현 의원의 무책임한 태도. 김 의원은 9월16일 박근혜 대통령에게 “헌신짝처럼 내팽개쳐진” 유가족들을 위로하려고 저녁 자리를 마련했다고 한다. 이 자리에서 유가족들은 “죽고 싶다”는 절망감을 토로했단다. 하지만 폭력 시비가 일자 김 의원은 발뺌했다. 사건 현장을 본 행인들은 “야! 너 거기 안 서? 너 내가 누군지 알아”라는 여성의 고함 소리를 들었다고 했다. 그리고 한 20분간의 말싸움 끝에 여성과 같이 있던 남자들이 대리기사를 때리기 시작했다고 한다. 김 의원의 막말로 싸움이 일어났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하지만 김 의원은 “등을 돌린 채 대화를 나누던 상황에서 어느 쪽이 먼저 폭력을 행사했는지 보지 못했다”고 해명했다. 그들의 싸움일 뿐 자신은 모르는 일이라는 얘기다.

둘째, 경찰 조사에 응하는 유가족의 모습이다. 폭력 사건 당일(9월17일) 유가족과 다퉜던 대리기사 이씨와 행인 2명은 서울 영등포경찰서 형사계에서 새벽 5시까지 조사를 받았다. 하지만 ‘가해자’로 지목된 김병권 위원장과 김형기 수석부위원장은 치료를 받아야 한다며 이날 현장을 떠났다. 다른 임원 2명도 진술을 거부하고 집으로 돌아갔다. 특권층이 보이는 거만한 행동과 다를 바 없다. 김현 의원이 안전행정부와 경찰청 소관 상임위인 국회 안전행정위원회 소속이라서 가능한 ‘특혜’였다는 비판이 나오는 배경이다. 설령 일방적 폭행이 아니라 쌍방 폭행이라고 해도 분명히 형평성에 어긋난다. 만약 일방적인 폭력이라면 때린 사람은 말을 맞추도록 경찰이 놓아주고 맞은 사람만 조사한 꼴이다. 가족대책위 임원들은 이틀 뒤인 9월19일 자진 출두해 조사받았다.

특별법 협상 테이블에 잔뜩 낀 먹구름

셋째, 세월호 특별법 제정 협상에 짙은 먹구름이 꼈다. 여당은 박근혜 대통령의 ‘가이드라인’으로 발목이 잡혔고 야당은 탈당 소동을 빚다가 돌아온 박영선 새정치민주연합 원내대표 사태로 이미 협상력을 잃었다. 빠져나갈 핑계만 찾던 정치권에 폭행 시비는 더할 나위 없는 먹잇감이다. “세월호 특별법 협상은 물 건너갔다”는 전망을 여야에서 공공연하게 내놓는 이유다.

‘사면초가’에 빠진 세월호 가족대책위는 9월21일 총회를 열어 새 위원장 등 집행부를 재구성한다.

정은주 기자 eju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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