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잘못은 없다.”
광주지법 형사11·13부(재판장 임정엽)가 지난 6월10일부터 심리한 세월호 재판을 한마디로 정리하면 이렇다. 재판부는 세월호 선원 15명과 청해진해운·우련통운 임직원 11명을 각각 12차례, 5차례 공판했다. 그동안 책임지겠다는 사람은 한 명도 나타나지 않았다.
침몰 원인으로 밝혀진 상습 과적과 부실 고박(고정)을 두고는 세월호 선장끼리 책임을 떠넘겼다. 승객 구조 책임을 두고는 세월호 선원과 해양경찰이 서로에게 삿대질했다. ‘모르쇠’ 대표주자는 이준석(69) 선장이다. 그는 귀가 잘 안 들리는 듯 동문서답으로 답변하거나 느닷없이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것 같다”고 고백했다(8월29일). 재판을 지켜본 세월호 유가족은 “뻔뻔한 낯짝에 물병을 던지고 싶은 심정”이라고 했다. 오는 11월 실체적 진실이 가려질 세월호 재판을 지상중계해온 이 ‘네 탓’ 공방을 중간 정리했다.
선장 책임으로 몰아세울 ‘계획’까지#공방1- 이준석 vs 신아무개정식선장은 누구?이준석 선장은 “나는 교대선장”이라며 정식선장은 신아무개(47)씨라고 말했다. “나이가 많고 촉탁직이기 때문에”라고 설명했다(8월29일). 그동안 언론 보도에서도 그렇게 알려졌다. 하지만 신 선장은 “이씨가 실질적인 선장이고 자신은 선장 발령을 받지 않은 견습선장”이라고 주장했다(8월26일). 이 선장은 다른 곳으로 갈 일이 없지만 신 선장은 젊어서 경력이 필요해 선원수첩에 ‘선장’이라고 적었을 뿐이라고 했다.
신 선장의 이러한 주장은 청해진해운 해무팀 직원들도 뒷받침한다. 홍아무개(43)씨는 “신 선장의 급여가 기관장보다 낮고 선장실을 이 선장이 썼다”며 “이준석 선장이 세월호의 메인 선장”이라고 증언했다(8월22일).
검찰의 공소장을 보면, 이 선장의 선장 경력이 신 선장보다 오래됐다. 1972년 선원으로 출발한 그는 1985년부터 부산~제주를 운항하는 여객선 세모 고속훼리1호 선장으로 일했다. 청해진해운에는 2006년 11월 세월호 쌍둥이 배로 알려진 오하마나호 선장으로 입사해, 2013년 3월 세월호가 취항할 때 옮겼다. 2013년 8월 정년으로 퇴임한 뒤에도 세월호에 승선했고 신 선장이 휴가를 가면 홀로 몰았다. 승무 경력은 27년9개월. 1990년 대학 졸업 뒤 화물선, 여객선의 항해사와 선장으로 일하던 신 선장은 2012년 9월 청해진해운에 들어왔다. 오하마나호와 세월호에서 1등 항해사로 일하다가 2013년 8월 세월호 선장으로 ‘승진’했다. 승무 경력은 24년4개월.
이 선장과 신 선장이 “정식선장이 아니다”라고 주장하는 이유는 세월호의 상습 과적과 부실 고박에 대한 형사처벌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다.
#공방2- 이준석 vs 박아무개맹골수도 운항 책임은?4월16일 세월호 침몰 사고 당시 조타를 지휘했던 3등 항해사 박아무개(26)씨는 “선장 책임으로” 몰아세울 계획을 짰다. 검찰이 공개한 카카오톡 메시지를 보면, 박씨는 사고 뒤 대학 선배 2명에게 묻는다. “무조건 책임 회피식으로, 이기적일 수 있지만 선장 책임으로, 그런 식으로 말해야 해요.” 사고 당시 조타실에 선장이 없었다고 밝히며 “그게 문제예요. 선장이 재선 의무를 안 지켰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7월16일). 세월호에 승선한 지 4개월밖에 안 된 박씨는 사고 해역인 맹골수도를 이날 처음 홀로 운항했다.
이준석 선장은 “항해사가 무난히 잘할 것이라고 믿었다”고 해명했다. 또 “맹골수도는 (선장이 조타실에서 근무해야 하는) 협수로가 맞지만 사고가 난 지점은 폭이 6마일, 즉 11km 정도 되는 구간으로 상당히 넓은 해역”이라고 주장했다.
이러한 주장을 신 선장은 정면으로 반박했다. “선장이 박씨 홀로 맹골수도를 항해하게 한 것이 적절한가”라고 변호인이 묻자 “아니라고 본다. 나는 항상 같이 했다”고 진술했다. 오하마나호 박아무개(41) 선장은 “오하마나호에 이준석 선장이 승선할 때는 항상 맹골수도를 직접 조타 지휘했다. 협수로라서 선장이 해야 한다는 인식이 있었다”고 증언했다(8월27일).
‘초짜’ 항해사는 조타 방법에서 실수를 했다. 박씨는 조타수에게 통상적인 방법인 타각이 아니라 도수로 변침(항로 변경)을 지시했다. 이를테면 항해사가 “5도 변침”이라고 외치면 조타수는 5도만큼 타각을 실행하고 항해사는 다시 타각이 잘됐는지 레이더로 확인한 뒤 원래 상태로 되돌린다. 하지만 세월호 사고 당시 박씨는 “145도 변침”이라고 각을 지시했다. 조타수가 재량권을 발휘할 여지를 줬다는 얘기다. 박씨의 선배는 카카오톡 메시지로 “그건 니가 실수한 거야. 원래 그럼 안 돼. 귀찮더라도…”라고 썼다. 박 선장도 “타각 변침 지시가 일반적”이라고 증언했다.
게다가 사고 당시 키를 잡았던 조타수 조아무개(56)씨는 조타 실수 경험이 있었다. 신 선장은 “조씨가 예전에도 섬세히 조타를 잡아야 할 구간에서 급격히 변침해 사고가 날 뻔했다. 그 뒤 입출할 때는 키를 못 잡게 했다”고 밝혔다. 조씨는 사고 직후 “유난히 조타기가 빨리 돌았다”고 주장했지만 항해사 박씨는 조타기 고장은 “아니다”라고 잘라 말했다.
34년 동안 침몰사고 훈련받지 않은 해경 #공방4- 선원 vs 해경승객 구조 책임은 누구?“승객 구조는 해경의 몫이다.” 살인·살인미수 혐의로 기소된 이준석 선장과 1등 항해사 강원식(43)씨, 2등 항해사 김영호(47)씨, 기관장 박기호(54)씨의 일관된 주장이다. 이 선장의 변호인은 “배가 갑자기 기울었다. 선실을 나뒹굴어 꼬리뼈를 다쳤지만 바로 조타실로 이동해 1등 항해사, 3등 항해사와 상황을 파악했다. 해상교통관제센터(VTS)와 교신하고 구명장비 착용과 퇴선 방송을 차례로 지시했다. 할 수 있는 구호 조치는 다했다. 승객 구조는 구명정과 헬기 등 구명장비를 갖춘 해경에 의해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했다.”(6월10일) 김영호씨도 그랬다. “승객들을 바로 퇴선시켜 바다로 뛰어들게 할 수 있었는데 배가 없었다. 맹골수도는 우리나라에서 두 번째로 조류가 세고 수심이 40m나 된다. 실종 위험이 있어 퇴선 지시를 못했다. 9시35~40분 근처 해경을 확인하고 양대홍(45·사망) 사무장에게 무전기로 ‘퇴선하라’고 지시했다.”
하지만 서해지방해양경찰청 소속 511호와 512호 헬기, 제주지방해양경찰청 소속 513호 헬기에 탑승해 구조활동을 벌인 항공구조사 4명은 “출동 당시 여객선이 침몰하고 있다는 것만 알았을 뿐, 다수의 승객이 있다는 사실은 전혀 몰랐다”고 증언했다(8월13일). 511호 항공구조사 박아무개(45) 경위는 “교신은 구조사가 아니라 헬기 조종사들이 한다. 배 안의 상황 같은 정보는 조종사들이 듣는다. 만약 세월호 안에 승객이 많다는 사실을 조종사들이 들었다면 우리에게 전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승객이 있는 줄 았았다면 진입하려 시도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다른 항공구조사 김아무개(35) 경장도 “도착 직후 몇몇 승객이 밖으로 나오는 걸 보고 당연히 퇴선 조치가 있었을 것으로 생각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세월호 침몰 당시 제일 처음 사고 해역에 도착해 구조활동을 했던 김경일 해경 123정 정장은 “당황해서 (선내 진입 지시를) 깜빡 잊었다”고 진술했다(8월13일). 해경의 초동대처 부실에 대한 비판이 일자 그는 4월28일 기자회견을 자청해 “퇴선 방송과 선내 진입 지시를 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모두 거짓말이었다. 당시 구조일지를 찢고 일부 대원의 구조활동을 허위로 적어넣기까지 했다. 김 정장은 “현장에 도착했는데 승객이 갑판에 없어 당황했다”면서도 “‘배에서 탈출하라’는 퇴선 지시는 하지 않았다”고 했다. “생각을 못했다. 평소 그런 훈련을 안 해봤기 때문에 그런 것 같다. (해경에서 일한) 34년간 침몰사고 관련 훈련을 받은 적이 없다.” 방청석에선 탄식이 쏟아졌다.
생존 학생의 증언도 일치한다(7월29일). 아버지와 함께 증인석에 앉았던 단원고 여학생은 “갑판 위로 나갔을 때와 헬기에 탈 때, 잡아주고 앉혀준 것 외에 해경이 도와준 것은 없었다”고 했다. 또 다른 생존 여학생도 “배에서 나오는 동안 선원이나 해경의 도움을 받은 적 있느냐”는 검사의 질문에 단호하게 “아닙니다”라고 답했다.
오전 9시13분께 사고 현장에 접근했던 문아무개(63) 둘라에이스호 선장은 “무엇 때문에 많은 승객들을 탈출시키지 않았는지 좀 의아스럽다. (배 밖으로) 탈출만 시켰다면 전원 구조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8월20일). 그는 25년간 맹골수도를 100회 넘게 운항한 ‘베테랑’이다. “(둘라에이스호 안에) 구명뗏목(1척)과 구명줄, 구명정 등을 갖추고 있었다. 사고 당시 승객들이 구명조끼를 착용하고 (바다로) 뛰었으면 구조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구조만 됐다면 476명 승객 모두 갑판 등에 임시로 수용할 수 있는 공간도 충분했다.”
일부 선원, 승객 구조에 나서기도 #공방5- 선원 vs 해경구조됐다? 탈출했다?선원들은 위험에 빠진 승객 400여 명을 내버려둔 채 세월호를 서둘러 탈출한 게 아니라고 주장한다. “옆으로 다가온 해경에게 조타실에서 마지막으로 구조됐다”(이준석 선장)거나 “조타실에서 구조돼 해경 구명정을 탔다. 선원이라고 밝히고 승객들을 함께 구조했다”(김영호 2등 항해사)고 진술했다.
하지만 목포해경 이아무개(29)씨는 “먼저 구조한 사람이 선원인 줄 몰랐다”고 증언했다(8월19일). 다만 그 승객이 구조에 참여했다는 증언이 나왔다(8월19~20일). 해경 123정에 탑승했던 의경 김아무개(22)씨는 “객실 유리창을 깨고 5~6명을 구조했는데, 해경 2명과 승객 2명이 함께 있었다”고 했다. 이아무개(36) 경사도 “해경 2명이 몇 차례 시도하다가 기관장이 큰 망치를 가져오니 스즈키복(상하 일체형 작업복)을 입은 사람이 받아들고 두 번 때려 유리창을 깬 것으로 기억한다. 물에 빠진 사람을 배 위로 건지는 과정에서도 내 몸을 뒤에서 지탱해 도와줬다”고 밝혔다. 해경이 촬영한 당시 구조 영상을 확인한 결과, 그 승객은 주황색·하늘색 상의를 입은 선원들이었다. 현재 검찰의 공소장은 승무원 누구도 승객 구조 활동에 전혀 참여하지 않은 것으로 돼 있다.
#공방6- 김한식 vs 유병언최고경영자는 누구?김한식(72) 청해진해운 대표는 청해진해운의 최고경영자가 유병언(사망) 전 세모그룹 회장이라고 밝혔다(8월14일). 검찰은 법정에서 김 대표와 간부들이 2013년 11월 세월호 적자 경영의 책임을 지고 작성한 사직서를 증거로 제출했다. ‘세월호는 복원성 문제 등으로 적자 운행과 과적 시비를 피할 수 없어 매각해야 한다’는 내용의 구조조정안을 마련해 유 전 회장에게 보고한 뒤 김 대표 등 임직원들은 집단 사직서를 내려 했다고 설명했다. 김 대표의 사직서에는 “일신상의 사유로 사직하려 하니 재가해달라”는 문구가 들어 있었다. 재판부가 “누구에게 재가를 받으려 했느냐”고 묻자 김 대표는 “원래는 유(병언) 회장에게 제출하려 했다”고 답했다. 검찰은 수사와 기소 과정에서 유 전 회장을 청해진해운의 최고경영자로 지목했지만 청해진해운 임직원이 이를 직접 진술한 것은 처음이다.
유 전 회장이 청해진해운의 매출 일부를 빼돌려 사금고처럼 사용했다는 법정 증언도 나왔다(8월28일). 청해진해운 기획관리팀 김아무개(49) 부장은 “세월호 등의 매점을 직영 운영해 현금 매출 15~20%를 누락시켜 매월 2천만~3천만원의 비자금을 조성했다”고 말했다. ‘N계좌’로 불리는 비자금은 김한식 대표가 관리했는데 인출을 지시하면 5만원권으로 1천만~5천만원씩 찾아 쇼핑봉투에 넣어 전달했다고 했다. 청해진해운은 연간 40억원씩 적자를 내고 있었다.
2년 동안 사진·달력 구입비만 7억여원이 밖에도 청해진해운은 유 전 회장 일가에게 연간 7억원씩을 지급했다고 했다(8월28일). 검찰이 “유 전 회장의 연봉은 1억8천만원이고, 사진·달력 구입비, 형 병일씨와 아들 대균·혁기씨 등에게 준 고문료와 상표권 사용료 등으로 7억원을 지급했느냐”고 질문하자 청해진해운 기획관리팀 김아무개(50) 팀장은 “예”라고 답했다. 최근 4년간 청해진해운이 유 전 회장 일가에게 27억5천여만원을 지급했고, 2011~2012년에만 사진·달력 구입비로 6억9천만원을 쓴 것으로 검찰은 보고 있다.
광주=정은주 기자 ejung@hani.co.kr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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