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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기를 들고 진도체육관과 팽목항 등 비통한 현장을 담는 세월호 참사 시민기록위원회 사진기록단 이상임씨
등록 2014-08-29 15:10 수정 2020-05-03 04:27
지난 8월 초 전남 진도체육관에 머물고 있는 경기도 안산 단원고 실종 학생 어머니가 학교에서 보내준 수련회·체육대회 등 사진 파일을 열어 아이의 모습을 찾아보고 있다. 이상임 제공

지난 8월 초 전남 진도체육관에 머물고 있는 경기도 안산 단원고 실종 학생 어머니가 학교에서 보내준 수련회·체육대회 등 사진 파일을 열어 아이의 모습을 찾아보고 있다. 이상임 제공

아직 나는 너~를 사랑하고 있나봐/ 아마 나는 너~를 잊을 수가 없나봐

영원히 영원히 내가 사는 날까지/ 아니 내가 죽어도 영영 못 잊을 거야

(나훈아 )

휴대전화 너머로 익숙한 통화연결음이 흘러나온다. 한참을 듣고 있던 이상임(57)씨가 그만 울어버렸다. 지난 6월 중순, 전남 진도군 진도체육관 앞이었다. 금쪽같은 딸내미를 잃은 아버지의 그리움은 통화연결음에까지 녹아 있었다. 세월호 참사 시민기록위원회 사진기록단 일원인 그는 그렇게 진도를 찾았다. 사흘 동안만 머물다 집에 돌아가려 했던 진도 여정은, 지금까지 기약 없이 이어지고 있다. 지난 8월18일 늦은 밤, 경기도 성남시 분당에서 상임씨를 만났다. 교황 방한 기간에 맞춰 서울 광화문에서 세월호 유가족 상황을 기록한 뒤, 잠시 집에 들른 참이었다.

일상 기록자에서 비극의 기록자로

자칭 ‘평범한 아줌마’였던 상임씨가 카메라를 든 건 2010년부터다. 나이가 더 들면 귀촌을 하고 싶었다. 경기도 양평에 땅을 마련해 주말마다 농사를 지었다. 밭에서 생명을 틔운 잡초 잎사귀엔 아침마다 이슬이 맺힌다. 그 모습이 그렇게 예쁠 수 없었다. 기록하고 싶었다. 조그마한 디지털일안반사식(DSLR) 카메라를 갖게 되면서 사진의 매력에 빠져들었다. 그가 주로 눈여겨본 곳은 골목길이다. 세련되진 않았지만 사람다운 삶이 펼쳐지는 동네 골목길. 유년의 추억을 되새길 수 있는 장소다. 골목길에서 만난 할머니들, 아이들과 어울리는 시간이 소중했다. 이렇게 작업한 사진을 모아 지난해 가을 ‘골목, 그 삶의 이야기’라는 개인전을 열었다.

이러한 일상은 잠시 멈춰서 있다. 상임씨는 일주일 중 대부분을 진도체육관에서 실종자 가족들과 함께 생활한다. 매일 밤 자정이 넘어서야 가족들은 잠자리에 든다. 수면제가 있어야 겨우 눈을 붙이는 이들이 있다. 한 아버지는 최근 며칠째 악몽에 시달려 낮에 맥없이 누워 있었다. 체력이 약해지니, 링거 주삿바늘을 꽂아도 혈관이 툭 하고 터져버린다. 실종자 열 명 가운데 아직 부모 품으로 돌아오지 못한 안산 단원고 학생은 다섯 명. 매일 아침 7시30분 버스를 타고 팽목항에 나가는 어머니가 있다. 아이 밥상을 차려주기 위한 발걸음이다. 아버지들은 거의 매일같이 수색 작업을 지원하는 바지선에 올라 밤을 지새운다. 그렇게 하염없이 기다리는 것이다. 팽목항에서 해경 경비정을 타고 다시 1시간 남짓 이동하면, 세월호가 가라앉은 사고 해역이 모습을 드러낸다. 그곳엔 두 척의 바지선이 있다. 세월호 선수 쪽엔 보령호가, 선미 쪽엔 88호가 떠 있다. 쇠약해진 몸으로 매일 힘들게 88호에 오르던 한 아버지가 있었다. 상임씨가 까닭을 물었다. “아이가 그쪽에 있을 것 같아서….”

가족들과 함께 수시로 바지선에 오르는 상임씨는 아직 수색이 끝난 것이 아니라고 강조한다. “사람들은 수색이 다 끝난 줄 알지만, 완전히 마무리된 상태가 아니에요. 최근에 뭍으로 올라온 희생자들도, 더 이상 주검이 없다고 했던 공간에서 발견된 거예요. 배 안에 짐이 많이 쌓여 있는 상황이기도 하고요. 사람들은 ‘이제 그만하지’라고 하지만, 아직 다 되지도 않았는데 그만하라고 하는 거예요. 마지막 한 사람까지 찾기 전엔 끝낼 수 없는 거죠.” 기상 조건이 따라주지 않으면 수색 작업이 진행되지 않는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시간, 가족들은 잠시 안산에 다녀오기도 한다. 그러나 집 안으로도, 합동분향소로도 차마 들어가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곳에 발을 디디면 그만 무너질 것 같아 겁이 난다는 것이다.

‘기록되지 않은 사건은 다시 일어난다’

비극의 현장에 카메라를 들이대는 건, 무척이나 고통스러운 일이다. 사진 속 어머니는 자식의 주검이 운구되자 오열한다. 상임씨 또한 울면서 이 사진을 찍었다. 함께 생활하는 이들의 비통함을 기록하면서, 객관을 유지한다는 건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기록해야 한다고 했다. “‘기록되지 않은 사건은 다시 일어난다’는 말이 있더라고요. 이런 일이 또다시 일어나지 않게 하려면 세월호 피해자들이 얼마나 아픈지 그런 것들이 기록되고 알려져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가 애착을 느낀다는 사진은 언뜻 평범해 보인다. 8월 초 한 어머니가 노트북 속 사진을 들여다보고 있는 장면이다. 어머니 눈가엔, 얼핏 눈물 자국이 보인다. “학교에서 보내준 수련회와 체육대회 사진 파일을 열어, 내 아이가 어디에 있는지 눈이 빠지게 들여다보는 모습이에요. 아이 모습이 나오면 화면에 손대고 쓰다듬고…. 얼굴이 크게 잡힌 다른 아이들을 부러워하면서도 ‘별게 다 부럽다’고 눈물짓는 모습이 참 가슴 아팠어요.”

진도체육관 가족들이 늘 아파하거나 울고만 있는 건 아니다. 때로는 장난도 치고, 웃기도 한다. 상임씨는 그렇게라도 견뎌내는 사람들이 고맙다고 했다. 이러한 일상까지 기록하고 싶기도 하다. 그러나 자칫 사진 한 장이 실종자 가족들에 대한 왜곡된 인상을 주게 될까봐 카메라를 들지 않는다. 가끔 웃는 것마저 죄스럽다고 하는 아버지가 있다. 가족들은 늘 조심스럽다. 참사 발생 100일 즈음, 진도체육관을 비워달라는 이야기가 나왔다. ‘높으신 분들’이 체육관을 찾을 때마다 진도군민에게 혜택을 주어야 한다고 호소했다. 혹시나 수색 작업에 참여하는 잠수사들이 건강을 해칠까봐 노심초사한다. 이런 상황을 가까이에서 지켜보기에, 안타까움도 크다.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에요. 내 아이가 사고 현장에 있었을지 모른다고 생각해주면 좋겠어요. 가족들이 원하지도 않는 의사자 지정이나 보상 때문에 농성을 한다고, 상처 주는 말을 하지 않았으면 해요. 왜 그런 사고가 일어났는지, 왜 아무도 구조될 수 없었는지 그 이유를 알고 싶을 뿐이에요.”

상처 줄까 뗄 수 없는 발걸음

8월19일 비가 부슬부슬 내리던 아침, 상임씨는 다시 진도로 향했다. 그곳 사람들은 이렇게 아픈데, 세상은 아무렇지도 않게 돌아가는구나 싶어 서글퍼진다.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일상으로 돌아갈 수 없을 것 같다는 걱정도 앞선다. 그럼에도 다시 진도로 향했다. 진도체육관에 남는 최후의 1인이 되는 것. 이대로 잊혀지는 것. 가족들이 무엇을 가장 두려워하는지 알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떠나면 ‘저 사람도 떠나는구나’ 상처를 줄까봐 떠날 수 없어요. 이분들이 받아준다면, 아픔을 이겨나가는 과정까지 함께하고 싶어요.” 진도체육관 가족들에겐 소박한 바람이 하나 있다. 바다 속 피붙이들이 누가 먼저랄 것 없이 함께 손잡고 나오는 것, 그리고 함께 안산으로 향하는 것. 인터뷰를 마친 상임씨와 이렇게 헤어졌다. “우리 다음엔 안산에서 만나요.”

성남=박현정 기자 sara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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