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노들야학에 홀딱 빠진 것은 23살 때의 일이었다. 부모가 반대하는 남자와 사랑에 빠져 야반도주하는 여인처럼 나는 급작스럽게 임용고사를 제쳐두고 장애계에 입문해 아버지 등에 칼을 꽂았다. 서울 왕십리에서 가장 싼 고시원에 방을 얻고 ‘교육학도’로서 비판해 마지않던 학원 시장에서 알바를 했다. 살면서 가장 심장이 요동치던 때였다. 요동치는 심장을 따라 산다는 것은 행복하지만 고단한 일이었다.
그것은 마약, 종교 혹은 연애야학에는 나 같은 이가 많았다. 누구네 아버지는 야학에 불을 지르겠다고 협박했고 누구네 엄마는 아들의 마음을 앗아간 노들인지 뭔지에다 “딱 너 받는 쥐꼬리만 한 월급만큼만 충성하라”고 미움을 표현했다. 우리는 이 작은 학교를 이끌었던 절반의 주체인 ‘비장애인’들이었다. 이것은 물론 “요즘 세상에도 야학이 있어요?” 하는 그런 시절의 이야기다.
우리는 왜 그렇게 노들에 목을 매었고 간도 쓸개도 다 빼줄 듯이 굴었나. 어쩌자고 그렇게 유치한 애정 고백을 경합하기 위해 백일장을 열었고, 심지어 그 연적들마저도 사랑해버렸나. 정작 노들은 우리 비장애인들을 노예처럼 부렸고, 한겨울에 다 큰 남자에게 쫄쫄이 하나 입혀 무대에 올리는 만행도 서슴지 않았으며, 허구한 날 침낭 하나 안긴 채 차가운 아스팔트로 내몰기 일쑤였는데.
어떤 이는 그것을 두고 마약이라 했고 어떤 이는 종교, 어떤 이는 연애라고도 했다. 공통점이 있다면 딱 떨어지게 설명이 잘 안 된다는 것. 나는 오래전부터 거기에 어떤 중요한 메시지가 있을 거라고 생각해왔다. 일명 비장애인이 노들야학에 미치는 이유. 혹은 노들야학이 비장애인에게 미치는 영향. 그러나 이 과제는 나에게 지극히 어려운 것이며 그것을 푸는 이 글은 다분히 편파적일 수밖에 없음을 미리 밝혀둬야겠다. 노들은 나에게 마약이고 종교이고 연애였으므로.
우선 ‘노들장애인야학’의 정체부터 한마디로 설명하기 어렵다. 1993년 출발 당시 그것은 분명히 교육받지 못한 장애인을 위한 학교였으나 2001년 이동권 투쟁 발발 이후에는 투쟁 현장이 있을 때마다 그 타격 대상에 알맞게 사람을 파견하는 용역 집단처럼도 보였고, 요즘 들어서는 잃어버린 가족을 찾아주거나 부모가 반대하는 결혼을 추진해주기도 하는 정체불명의 흥신소나 종합기획사 같기도 하다. 나는 지난 1년 동안 야학의 20년 역사를 정리하면서 그 모호한 정체성을 걷어내보려고 용을 썼지만 결국 실패했다. 그리고 이제야 어렴풋이 깨달았다. 야학이 ‘모호함’을 그 정체성으로 삼고 있다는 사실을. 노들에 어떤 힘이 있다면 바로 거기서 나오는 것임도. 이유는 그 구성원들이 노들야학을 ‘하는’ 특유의 방식 때문이다.
나는 ‘노들야학을 한다’는 일이 일종의 ‘몸으로 말해요’이자, ‘빨강이란 낱말 없이 빨강의 속성을 설명하기’ 같은 게임의 방식과 비슷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너의 마음속에 몽글몽글 피어오르는 것 혹은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것을 표현하되 절대 ‘사랑’이나 ‘혁명’ 따위의 말을 쓰지 않을 것. 100마디 말이어도 좋고 단 한 번의 눈빛이라도 괜찮다. 그러니 사람들은 ㄱ, ㄴ에도 무언가를 녹이고 화장실 활동보조를 할 때도 무언가를 드러내고 추운 밤 노숙농성을 함께 하는 옆 사람에게도 어떤 것을 표현할 수 있다. 사람마다 다르고 정답도 없다. 더 사랑스럽고 더 혁명적인 것은 무궁무진하다. 가장 사랑스럽고 가장 혁명적인 것은 아직 표현되지 못한 것이다.
에스키모의 언어에 ‘눈’을 가리키는 단어가 수십 가지로 발달해 있듯이, 노들에는 ‘사람’이나 ‘고통’을 표현하는 언어와 몸짓이 다양하게 분화되어 있다. 그것은 이 문화권이 ‘말할 수 없는 고통’ 혹은 ‘몸으로 말하는 고통’을 읽고 듣는 감각이 예민하게 발달해 있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그것이 이 학교가 가르치는 가장 중요한 덕목이라고 생각한다. 스물셋, 나를 가장 놀라게 했던 것은 장애인이 처한 열악한 현실 자체라기보다 그것을 표현하고 바라보는 그들의 풍부한 어휘와 섬세한 태도였다. 그것은 낯설고 아름답고 강렬했다.
‘사람’ ‘고통’을 표현하는 다양한 언어, 몸짓평범한 비장애인으로 살아온 나에게 삶은 ‘선착순 달리기’ 같았다. 고등학교 2학년. 10등까지 가려낸 뒤 교사는 다시 호각을 불었다. 뛰어! ‘나머지들’은 또 달렸다. 꼴찌 그룹이 만들어질 때까지 달리기는 계속되었다. 뒤처진 친구들을 보며 안도하는 내가 싫었지만 그러고도 나는 끝내 죽을힘을 다해 잘도 뛰었다.
그렇게 달려서 도착한 대학교 4학년. 나는 또다시 거대한 달리기의 출발점에 서 있었다. 임용의 문은 좁고 달리는 사람은 넘쳤다. 책 읽으며 나누었던 좋은 가치들은 모두 합격 이후로 유예되었고 사람들은 옆 사람을 경계하며 미친 듯이 자기를 착취했다.
나도 도서관에 자리를 배정받고 노량진 학원에도 다니기 시작했다. 좀처럼 시동이 걸리지 않아 오래 고생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할 수 있는 것이 없었으므로 조금만 더 버티다보면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또 달리게 될 것이었다. 어쩌면 제법 잘 달릴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노들을 만나지 않았다면 말이다.
누구는 가산점 1점을 위해 각종 자격증을 따는데 누구는 아직 제 이름 석 자도 배우지 못했다고 했다. 어떤 이는 평생 죽을힘을 다해 달려왔는데 어떤 이는 평생 같은 자리에 누워 창밖만 바라보았다고 했다. 처음엔 그저 연민이나 분노인 줄 알았다. 나를 잠시 멈춰서게 한 그 힘은. 그러나.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을 것 같았던 그들이 벼랑 끝에서 스스로 몸을 던져 길을 만드는 것을 본 뒤 나는 깨달았다. 그것이 아름다움임을. 인간이란 존재는 어떠한 조건 위에서도 존엄함을 포기하지 않는 한 그러하다는 것을. 그래서 그들을 믿어도 좋다는 사실을.
우리가 지켜주지 못해 안달했던 것은 아마 그것이었을 것이다. 연약해서 더 날카롭게 빛나던 그 아름다움을 지켜주고 싶어서 누구는 장애인이 일할 수 있는 공장을 만들었고 누구는 그들의 이야기를 마음껏 펼칠 수 있도록 극단을 만들었다. 어떤 이들은 구청 앞에서 불을 피워 ‘활동보조서비스 더 있었더-라면’을 끓여먹었고, 어떤 이들은 제 스스로 감옥에 들어간 교장이 외로울까봐 구치소 앞으로 몰려가 소란을 피웠다. 그리고 어떤 이는 제 몸으로 지하철을 막겠다는 학생 하나를 선로에 내려주었고 그 죄로 구속되었다.
노들은 아마 알고 있었을 것이다. 자신 앞에 무릎을 꿇고 유치한 연서를 읊어대기 시작한 이들이 벌이게 될 어마어마하게 비효율적이고 위험한 일들을. 그 폭발적 힘이 오직 그 자신들 속에서 나오게 되리라는 것을. 그리하여 노들은 보여주고 싶었을 것이다. 너희 안에는 이미 게바라도 있고 프레이리도 있다는 것을. 그러니 너희 자신을 믿어도 좋다는 사실을.
도우기 위해 왔다면 시간 낭비 그러나…오래전 내가 선착순 달리기의 대열에서 빠져나오기로 결정하고 도서관 자리를 정리하던 날. 책상 위에는 노들이 나에게 건넨 이 문구가 적혀 있었다.
“만약 당신이 나를 도우기 위해 이곳에 오셨다면 당신은 시간을 낭비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만약 당신이 여기에 온 이유가 당신의 해방이 나의 해방과 긴밀하게 결합되어 있기 때문이라면, 그렇다면 함께 일해봅시다.”
모든 건 거기서부터 시작되었으리라. 내가 너를 믿어도 좋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그리고 내가 나를 믿어보기로 결심했을 때, 그래서 그 아름다움에 나를 던져보기로 마음먹었을 때. 그런 존재는 누구도 말릴 수 없다. 사랑과 믿음과 중독의 속성이 그러하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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