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엔 시간이 지나면 아이가 그냥 지나갈 것이라고 믿었다. 비록 지금은 자신을 트랜스젠더라고 말해도 사춘기고 하니까 몇 달 지나면 잊어버리고 괜찮을 줄 알았다. 그래서 아이의 커밍아웃에 덤덤했다. 그런데 몇 달이 지나도 아이는 변하지 않았다. 그러자 화가 나기 시작했다. 무엇이 문제인지, 내가 무엇을 잘못한 것인지, 내게 왜 이런 일이 생기는지 밤새 고민했다. 다시 시간이 지나자 이젠 우리 아이가 혹시라도 자살할까봐 두려웠다. 트랜스젠더를 혐오하는 이 사회에서 아이가 자살하면 어떡하나 두려웠다. 그런 시간이 지난 지금 우리는 행복하게 살고 있다. 남들은 어떻게 받아들일지 몰라도, 우린 지금 행복하게 살고 있다….”
우린 행복하게 살고 있어요
커밍아웃은 일회적 사건이 아니다. 커밍아웃을 하는 사람도, 그 말을 듣는 사람도 어느 정도의 시간이 필요하다. 부정하고 분노하고 두려워하며 각자의 방식으로 그 말의 의미를 받아들일 시간이 필요하다. 그래서 커밍아웃은 긍정적 사건으로 마냥 축하하거나 찬양할 일도 아니고 두려워하며 피할 일도 아니다. 커밍아웃은 그냥 관계맺기의 일부다. 분명한 것은, 어느 mtf(male-to-female)/트랜스여성의 어머니가 말한 것처럼 많건 적건 시간은 필요하다는 점이다. 그리고 너무도 괴롭고 힘들고 또 즐거운 시간을 다른 사람과 나누는 자리도 필요하다. 내가 겪은 일을 위로받고 축하받는 자리 말이다.
지난 3월22일, 서울 홍익대와 신촌 사이 어느 카페에서 ‘트랜스젠더 피로연’이란 행사가 있었다. ‘트랜스젠더 삶의 조각보 만들기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진행한 행사였다. 피로연. 사전적 의미로 피로연은 ‘결혼이나 출생 따위의 기쁜 일을 널리 알리기 위하여 베푸는 연회’라고 한다. 행사 홍보를 위한 웹자보엔 사전적 의미와 함께 다른 설명도 적혀 있다. ‘피로연(명사), 정신이나 몸이 지쳐 힘든 상태를 위로하기 위하여 베푸는 행사.’ 그리하여 이 행사를 기획한 이들에게 피로연은 기쁜 일을 널리 알리며 함께 기뻐하는 자리일 뿐만 아니라 슬프고 힘든 일도 말하며 위로받는 자리였다. 그 자리에서 네 명의 트랜스젠더와 우연히 행사에 참여한 (트랜스젠더의) 어머니가 무대에 나와 이야기를 했다. 서두에 쓴 내용은 바로 그 어머니가 말씀하신 것을, 내 기억에 의지해서 다시 쓴 것이다.
이 행사에 참가하며 나는 여러 감정을 느꼈다. 우리의 삶, 비트랜스젠더와는 어쨌거나 삶의 양식이 다를 수밖에 없는 트랜스젠더의 삶을 축하하고 위로하는 자리라는 말에 기쁨과 슬픔을 느꼈다.
기뻤다. 트랜스젠더 온라인 커뮤니티에선 의료적 조치를 선택한 트랜스젠더가 살면서 겪는 다양한 국면을 축하한다. 정신과 병원에 예약했다는 게시글, 성전환증 진단서를 받았다는 게시글, 호르몬 투여를 위해 처음 병원을 찾았다는 게시글, 친한 사람이나 가족에게 커밍아웃했고 그 결과가 좋았다는 게시글 등에 축하의 댓글이 달린다. 각각의 국면은 트랜스젠더라면 자연스럽게 진행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각각의 일을 겪기 위해 정말 많이 망설이고 두려워하고 열망하고 기대한다. 그것이 무수한 고민과 갈등이 누적된 사건임을 알기에 우리는 축하한다. 의료적 조치와 관련한 순간만이 아니다. mtf/트랜스여성이라면 여성이나 트랜스젠더로, ftm(female-to-male)/트랜스남성이라면 남성이나 트랜스젠더로, 각자 자신이 원하는 젠더로 일자리를 구한 순간 등에도 축하를 건넨다. 의료적 조치를 하지 않기로 선택한 트랜스젠더에겐 또 다른 다양한 삶의 국면을 축하할 수 있다. 여성이나 남성 어느 쪽으로도 규정되지 않길 원하는 트랜스젠더가 낯선 사람에게 ‘모호한’ 젠더로 인식되었다면 이것 역시 축하할 일일 수 있다. 트랜스젠더 이슈와 직접 관련 있는 일로만 축하해야 하는 것도 아니다. 트랜스젠더가 트랜스젠더로만 사는 것은 아니니까.
경험의 공유에서 시작되는 위로슬펐다. 그날 어떤 발언자는 부모님께 커밍아웃을 앞두고 두려움과 기대, 최악의 상황과 최선은 아니어도 차선일 상황을 함께 고민하고 있는 당시의 감정을 얘기했다. 다른 많은 관계처럼 가족 역시 각 구성원이 살아가는 방식에 반발하고 욕하고 미워하고 또 화해하는 관계다. 우리는 단지 가족이란 이유로 각자의 삶을 즉각 포용하진 않는다. 원가족은 모든 것을 무작정 받아들여야 하는 관계가 아니다. 더구나 불화할 때 관계를 깨고 싶어도 독단적으로 깰 수도 없는 게 한국의 가족 문화다. 그래서 다른 어떤 관계보다 가족에게 커밍아웃하는 일이 더 어렵다. 그 발언자는 바로 이 찰나를 얘기했고 이 순간은 다른 많은 트랜스젠더의 경험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것은 트랜스젠더의 경험이다. 트랜스젠더의 어머니는 커밍아웃을 받아들이는 경험을 이야기했다. 아들로 낳았고 길렀다고 믿었던 사람을 딸로 받아들여야 했던 그 시간을 공유했다. 커밍아웃을 하는 트랜스젠더가 두렵고 또 괴롭다면 그 말을 듣고 받아들이는 가족이나 지인도 두렵고 또 괴롭다. 이 괴로움을, 이 감정을, 이 경험을 누구와 공유할 수 있을까? 피로연 행사가 모든 감정을 나눌 수 있는 자리는 아닐 것이다. 단 한 번의 발화로 그동안의 경험을 온전히 위로받을 순 없다. 하지만 그것을 시작하는 자리는 필요하다. 피로연은 바로 그 감정을 나누는 자리였다.
또 한 사람이 이야기했다. 어릴 때부터 자신은 개성이 강하고 튀는 존재로 다뤄졌고 많은 사람이 자신을 개성이 강한 사람으로 평가했다고 했다. 하지만 호적상의 성별을 변경한 뒤, 그 많은 개성과 튀는 부분은 가장 평범한 부분으로 바뀌었다고 했다. 그에게 개성이 강한 행동과 평범한 행동은 아마도 동일한 행동일 것이다. 그저 주변 사람의 평가가 바뀌었을 뿐이다. 그리고 강한 개성이 평범함으로 변한 순간 삶은 호적상의 성별을 바꾸기 전보다는 조금 더 편하게 변하겠지만, 또한 다른 사람처럼 조금도 편하지 않은 삶을 살아야 한다. 그러니 평범하다는 것은 결코 평범하지 않다는 뜻이다. 평범하다는 것은 급진적 행동의 다른 이름일 수 있으며 강한 개성은 평범함의 다른 이름일 수 있다. 이것을 피로연이 아니면 어디서 말할 수 있을까.
급진적이고도 평범한 삶을 찬양함우리 트랜스젠더는, 그리고 트랜스젠더와 친밀한 관계를 맺고 있는 많은 지인은 다양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 각자는 삶의 여러 국면에서 축하와 위로 받을 일을 겪는다. 그날 나는 익명의 참가자로 피로연에 참석하며 우리의 이 급진적이면서 평범한, 정말 평범하면서도 급진적인 삶을, 괴로우면서도 즐거운, 기쁘면서도 슬픈 삶을 찬양하고 싶었다. 그리고 우리 모두가 오래 살아가길 바랐다. 몇 년 뒤 죽음으로 소식을 전하지 말고, 몇십 년 뒤에도 같이 늙어가며 서로를 축하하고 위로할 수 있길 바랐다. 살자, 부디, 그리고 제발 살자. 살아서 축하하고 살아서 위로하자.
루인 트랜스/젠더/퀴어연구소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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