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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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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찾아주세요! 우리의 복지”

송파 세 모녀 죽음 뒤, 정부는 다시 생색내기 특별조사
정작 ‘긴급복지지원법’ 예산은 그대로, 운영은 마음대로
등록 2014-03-27 17:16 수정 2020-05-03 04:27
청년은 노인이 되고, 노인은 청년이 됐다. 전다은(28) 인턴기자와 김봉중(63) 서울인생이모작지원센터 시니어기자가 서로의 일상을 살아봤다.

청년은 노인이 되고, 노인은 청년이 됐다. 전다은(28) 인턴기자와 김봉중(63) 서울인생이모작지원센터 시니어기자가 서로의 일상을 살아봤다.

내복이 거추장스러워 봄인가 했더니 여기저기서 부고가 들려온다. 한 평 후미진 방에 삶을 구겨넣은 쪽방 주민들이 요사이 하루가 멀다 하고 목숨줄을 놓았다. 고독사라고 하던가? 인기척이 없는 게 이상하다 싶어 옆방 동료가 문을 따고 들어가면 숨을 거둔 지 며칠이 됐는지 온몸의 수분은 죄다 마른 상태. 이이가 그이가 맞나 할 만큼 알아보기 힘든 상태로 발견되곤 한다. 몇 년간 나와 씨름했던 그 형도 지난주 그런 죽음을 맞았다.

익숙한 죽음, 예정된 행사

그 형이 짊어졌던 무게를 알기에, 완벽하게 외로웠을 마지막 순간이 그려지기에 눈물이란 게 쏟아져야 정상이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그 형의 얼굴처럼 내 눈은 바싹 말라 뻑뻑하기까지 하다. 이성만 빠르게 움직인다. 유족이 나타날까? 안 나타나면 우리끼리 빈소를 차려야 하나? 영정으로 쓸 만한 사진이 있었던가…. 슬퍼할 겨를도 없이 나는 행사를 치르려 한다. 왜 이렇게 됐을까? 가까운 이들의 죽음이 일상이 되어서? 아니면 그들을 단지 일로서 만났던 것인가? 모르겠다. 이런 내 모습이 탐탁지 않을 뿐이다.

죽음에 대한 불감증은 비단 나만의 문제는 아닌 것 같다. 죽음에 대해 슬퍼할 겨를도 없이 무언가 일을 꾸미기 급급한 모습은 정책 당국도 마찬가지로 보인다. 지난 2월 발생한 서울 송파구 세 모녀의 죽음은 우리 모두를 일순간 정적 속으로 몰아넣었다. 그건 정부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지나치게 도덕적이던 세 모녀의 죽음은 그동안 부정 수급 운운하며 빈곤층을 무임승차자로 호도했던 정부에 적잖은 당혹감을 주었다. 이내, 정부는 ‘복지사각지대 특별조사 관련 시·도 복지국장 회의’를 열고 시민들께 호소했다. “찾아주세요! 알려주세요! 소외된 우리의 이웃!” 익숙한 구호다.

2011년 4월, ‘공중화장실 삼남매’ 사건이 발생하자 정부는 보름 뒤 “찾아주세요! 알려주세요! 소외된 우리의 이웃!”이란 문구를 걸고 복지사각지대 전국 일제조사를 했다. 행사는 이듬해까지 이어졌다. 그러나 이런 캠페인은 빈곤을 완화하지 못했다. 성과라고 발표한 것들도 궁색하기만 했다. 캠페인 자체가 가지는 한계 때문만은 아니다. 정부는 그동안 ‘사각지대 발굴-부정 수급 색출’이란 냉·온탕을 오갔을 뿐 빈곤 해결을 위한 진정성 있는 대책을 내놓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번으로 세 번째다. 송파 세 모녀 사망 사건의 후속 대책인 “찾아주세요! 알려주세요! 소외된 우리의 이웃!” 캠페인은 과연 성과를 보게 될까? 복지제도의 접근성 향상은 물론 중요하다. 상담을 하다보면 몰라서 제도의 문 밖에서 고생하는 사람을 참 많이도 만나기 때문이다. 그러나 더 안타까운 것은 명색은 있되 실체가 없는 복지제도다. 복지제도를 선전하는 것도 중요하나, 이는 제대로 된 복지제도를 만들고 나서 할 일이다. 그렇지 않으면 오히려 실망과 좌절만을 더할 뿐이다.

잇단 빈곤의 잔혹사를 보며 ‘긴급복지지원법’이 머릿속에 맴돌았다. 2004년 대구 지역의 한 가정집 장롱 속에서 4살 유아가 영양실조로 사망한 채 발견된 사건이 바로 이 법률의 배경이었기 때문이다. 당시 법안 심사보고서는 “사각지대가 존재하며 빈곤층 중에도 재산 및 부양의무자 기준 때문에 혜택을 받지 못하는 비수급자가 광범위하게 존재”하는 현실을 들어 법 제정의 필요성을 설명했다. 또한 이 법률은 “위기 상황에 처한 사람에게 일시적으로 신속하게 지원하는 것”을 기본 원칙으로 삼았다. 따라서 여타 복지제도와 달리 ‘선 지원 후 처리’ 방식으로 지원된다. 제3자라도 위기에 처한 가구를 발견하면 지원을 요청할 수 있고, 지방자치단체는 8시간 이내 현장 확인을 한 뒤 지원을 실시해야 한다. 재산과 소득, 위기 상황의 적합성 여부는 차후에 따지도록 하고 있다. 쉽게 말해 사람부터 살리자는 제도다. 세 모녀 같은 죽음, 4살 유아의 아사(餓死) 같은 죽음을 막기 위해 위기에 신속하게 개입하자는 제도다. 취지는 그렇다.

법률은 신속, 행정은 느긋

엊그제 퇴거 위기에 처한 모자가정을 만나 긴급복지지원법에 따른 주거 지원을 신청하고자 구청에 전화를 걸었다. 임대주택에 살고 있는 그는 딸이 두 차례 입원과 수술을 하게 되자 일손을 놓았다. 보호자로서 딸의 검사와 수술에 따른 각종 동의와 간병으로 곁을 지켜야 했기 때문이다. 병원비 지출은 물론 수입이 사라지자 몇 달치 월세가 밀렸다. 더욱이 살고 있는 집이 임대주택이기에 3개월 체납을 넘긴 현재는 제도적으로 쫓겨나도 아무 말 못하고 짐을 싸야 할 형편이다. 그러나 해당 구청은 긴급지원을 할 수 없다고 한다. 쫓겨난 뒤에 신청하면 고시원비를 내줄 수는 있지만 지금은 해줄 수 없다고 한다. 그런 사후 약방문이 어디 있냐고 따졌지만 지금까지 그렇게 지원한 선례가 없어 안 된다고 한다. 또 그렇게 할 경우 지원할 사람이 한둘이겠느냐고 덧붙인다.

현실은 이렇다. 법률은 ‘신속’을 강조하나 행정은 너무도 느긋하다. ‘선 지원 후 처리’는 원칙일 뿐 접수 단계에서 담당자의 말 한마디에 가부가 결정되는 게 태반이다. 이뿐 아니라 요즘에는 긴급지원제도가 복지정책에서 배제되는 것 아닌가 하는 우려마저 든다. 2012년 3월, 정부는 긴급지원 대상에 휴·폐업 자영업자, 실직자, 노숙인 등을 편입시켰다. 대상을 늘린 것이다. 그런데 예산은 전년 예산인 588억원에서 하나도 증액되지 않았다. 더 많은 수를 똑같은 돈으로 지원하라는 것이다. 아예 2014년 예산은 499억원으로 오히려 90억원가량 감액됐다. 예산 문제는 곧 실적으로 드러난다. 홈리스가 밀집한 서울 중구의 경우 긴급지원제도 변경 뒤 1년7개월 동안 노숙인을 지원한 경우는 단 1명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비단 예산 규모만의 문제는 아니다. 국비와 지방비가 각각 절반씩 투여되는 예산 조달 방식도 긴급지원제도를 사장시키는 데 큰 몫을 하고 있다. 특히 노숙인의 경우 특정 지역에 밀집돼 있는데다, 지자체 처지에서는 이들을 구민으로 인정할 리 만무한 상황에서 긴급지원을 받기란 노숙에서 벗어나는 것만큼 힘든 일이다.

시민에게 호소하지 말라

잇단 빈곤의 잔혹사를 경험한 우리는 모두 상처를 받았다. 나도, 우리도, 정부도 그 죽음에 책임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행사 치르듯 그들을 보내지는 말자. 안타깝지만 연쇄적인 죽음이다. 그 저변에는 제 이름값 못하는 기초보장제도와 긴급지원제도가 자리한다. 찾아달라며 호들갑 떨지 말자. 지금 필요한 것은 특단의 대책이 아니라 법률에 근거한 제도의 정비다. 기초보장제도의 넓은 사각지대와 부양의무자 기준의 문제로 긴급복지지원법이 제정됐다면 사각지대를 해소하고 부양의무자 기준을 없앨 일이다. 어린 생명의 죽음에 빚져 긴급지원제도를 얻었다면 적정 예산을 확보하고, 각종 장벽으로 빼곡한 지침을 개정할 일이다. 시민들에게 호소하지 말라. 칼자루는 그대들이 쥐고 있음은 그대도 우리도 다 아는 사실 아닌가?

이동현 홈리스행동 상임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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