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많은 곳에서 보도했다. LGBT(레즈비언, 게이, 바이섹슈얼, 트랜스젠더)나 퀴어 이슈를 다루지 않을 법한 사람도 관련 글을 썼다. 지난 6월7일 서울 신촌에서 진행한 퀴어문화축제 및 퍼레이드 행사를 말한다. 일군의 무리가 축제와 퍼레이드를 방해했고 이로 인해 상당한 화제가 되었다. 내게 그날은 정말 짜릿하고 또 역사적 순간이다. 하고 싶은 이야기도 많다. 그날 행사를 방해한 집단을 보수 기독교로 부르면 곤란한 이유와 ‘보수 기독교 vs LGBT’로 설명하면 위험한 이유, 6월4일 지방선거에서 당선된 직후 퍼레이드를 적극 막으려 한 서대문구청장 문석진씨의 행동, ‘빤스’ 논쟁 등은 다음을 기약하자. 지금은 그날의 짜릿한 5시간을 이야기하고 싶다.
<font size="3">사용 승인 취소하고 반대집회는 승인하고</font>사건의 발단은 퍼레이드 행사 예정일 2주 전, 서대문구청이 장소 사용 승인을 취소한 것이다(취소했다고 해도 당일 행사 자체는 신고했기에 적법했다). 그리고 행사 이틀 전 구청은 ‘신촌동성애반대청년연대’(반청련)의 반대집회를 승인했다. 행사 당일 퀴어문화축제 및 퍼레이드를 준비하는 이른 아침부터 반청련 등은 LGBT와 퀴어를 혐오하는 발화를 하며 행사장을 돌아다녔다. 퍼레이드 경로는 이미 오래전 축제 홈페이지에 공지되었기에 반청련 등은 퍼레이드 출발 지점에 행사장을 마련하고선 거리를 점거했다. 예정된 경로를 사용할 수 없기에 기획단은 경로를 수정했다. 그리고 사전 공지한 시간에 퍼레이드를 시작했다. 서둘러 달려온 일군의 무리(‘예수재단’ ‘대한민국어버이연합’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고 있으니 그냥 반청련이라고 하련다)가 퍼레이드 행렬을 막고선 도로에 드러누웠다. 뒤늦게 모인 동류의 무리가 연좌농성을 했다. 그리고 그날 퍼레이드는 15년 역사상 처음으로 5시간 동안 진행되었다.
이날 오후 5시30분 즈음 출발해서 밤 10시30분 즈음 끝날 때까지 초반에 잠깐 걸었고 4시간 가까이 도로에 정체했고 1시간 가까이 걷고 뛰었다. 5시간에 걸친 퍼레이드 중 내가 가장 즐거웠던 시간은 정체된 4시간이었다. 퍼레이드를 위해 4시간 동안 도로를 점거하는 순간이 오리라고 그 누가 상상했을까? 행사가 끝난 뒤 듣기론, 반청련 등과 직접 대치한 퍼레이드의 선두에선 긴장감이 팽배했다고 한다. 선두가 아닌 곳에선 중간중간 쉬어가며 춤추고 노래하며 즐겼다. 배가 고플 땐 근처 가게에서 음식을 사먹었고, 어떤 사람은 근처 카페에 가서 일행과 이야기를 나누며 퍼레이드에 참가했다. 퍼레이드에 처음 참가한 어떤 사람은 왜 반청련 등과 부딪히며 싸우지 않느냐고 물었다. 우리는 그 자리에 축제의 형식으로 모였다. 반청련 등과 치고받고 싸운다면 그것이 어찌 축제고 퍼레이드겠는가. 우리를 혐오하고, 무려 반대하는 집단과 똑같은 수준으로 행동하며 그들과 동급이 되기보다 춤추고 노래하고 때때로 쉬며, 피곤하거나 다른 일정이 있으면 먼저 자리를 뜨기도 하면서 우리는 퍼레이드를 계속했다. 이게 뭐냐고? 이게 뭐긴, 우리의 투쟁 방식이지.
우리가 애도의 형식으로 모였다면, 애도를 빌미로 모인 반청련처럼 타인을 부정하고 비난하고 혐오하는 일 없이, 차분하고 품위 있게 애도했을 것이다. 우리는 축제의 형식으로 모였고 축제의 품위를 지키며 투쟁했다. 이것이 우리가 투쟁하는 방식이다. 여기서 분명하게 할 것이 있다. 만약 반청련 등이 나오지 않았다면 올해도 지난해처럼 그저 즐거운 자리였을 것이다. 하지만 반청련 등이 행사를 방해했고 그리하여 그 자리는 정치적 투쟁의 장소로 바뀌었다. LGBT나 퀴어 등 소수자라는 존재 자체가 아니라 우리를 적대하고 억압하는 사회·문화적 조건이 우리를 정치적 존재로, 저항과 투쟁의 존재로 구성한다. 축제는 그저 축제일 수 있었지만 반청련, 서대문구청장 등이 방해하면서 축제 본연의 의미인 정치적 투쟁의 장으로 의미가 확장되었다.
<font size="3">끝까지 지킨 것, 자긍심과 존엄</font>밤늦은 시간에 퍼레이드가 끝났다. 그것도 축제 기획단의 절묘한 판단으로 최초 계획한 경로를 걸었다. 기뻤다. 퍼레이드가 일종의 보여주기 행사라면 이번 퍼레이드는 무려 5시간에 걸친 보여주기였다. 낮 혹은 저녁에 외출한 사람부터 늦은 밤 그 자리에 있던 사람 모두에게 우리를 드러냈다. 1시간의 퍼레이드도 좋지만 5시간의 퍼레이드도 좋았다. 물론 어떤 사람은 계획된 시간에 맞춰 어떻게든 퍼레이드를 끝내는 운영의 묘가 필요했다고 말할 수도 있다. 나는 계획한 시간에 맞추려 무리하지 않고 우리의 가치를 지켜서 더 좋았다고 말하고 싶다. 퍼레이드가 무슨 대형 기획사에서 진행하는 상업행사도 아니지 않는가. 퍼레이드는 우리의 존재를 공공연히 드러내는 행사일 뿐만 아니라 우리의 자긍심, 존엄, 그리고 정치학을 공공연히 주장하는 자리다.
행사가 끝난 뒤 듣기론, 행사를 방해한 반청련 등은 퍼레이드의 차량을 포기하고 사람만 조용히 걷는다면 길을 열어주겠다고 제안했단다. 만약 이 제안을 받아들여 퍼레이드의 일부인 차량을 포기하고 계획한 시간에 맞춰 행사를 진행했다면 나는 부끄러웠을 것이다. 물론 상황에 따라 차량을 포기할 수도 있다. 협상을 해야 할 땐 해야 하고 그 과정에서 무언가를 포기할 수도 있다. 하지만 모든 것을 협상의 대상으로 삼아도 끝까지 지켜야 하는 가치가 있다. 그 가치까지 협상의 대상으로 내놓는다면, 그런 곳은 그냥 없어지는 것이 낫다. 이번 기획단이 차량을 포기하지 않으며 끝까지 지킨 것, 늦은 시간까지 퍼레이드에 함께한 참가자가 지킨 것은 우리의 자긍심이며 존엄이다. 우리는 자긍심과 존엄을 지켰고, 그래서 그날의 퍼레이드가 정말 자랑스럽고 특히 기획단과 자원활동가들에게 고맙다. 축제 기간 내내 기획단과 자원활동가들은 정말 헌신적으로 일하며 엄청난 일을 해냈다.
퍼레이드가 끝나고 축제와 함께하는 공식 영화제인 퀴어영화제도 성황리에 끝났다. 많은 사람이 헷갈리는데, 2014년에 열린 서울LGBT영화제는 축제의 공식 영화제도 아니고 14년 역사의 영화제도 아니다. 축제의 공식 영화제는 1회부터 6회까진 무지개영화제였고, 7회부터 13회까진 서울LGBT영화제였다. 14회인 올해부턴 퀴어영화제로 명칭을 바꿨다. 많은 사람이 영화제의 공식 명칭보다 퀴어영화제로 더 많이 불렀으니 지금의 이름이 입에 잘 붙고 좋다. 일부가 축제 및 영화제 전체 구성원과 논의도 없이 이름과 역사적 성과를 전유해 만든 서울LGBT영화제는 그냥 올해 처음 생긴 영화제다.
<font size="3">애걔걔, 한 달 80만원? </font>이 말은 꼭 덧붙여야겠다. 15년을 진행했지만 퀴어문화축제의 한 달 후원금은 80만원이 안 된다고 한다. 퀴어문화축제 후원계좌는 우리은행 196-211605-13-101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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