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즈 환자를 죽음의 위기로 내몬 수동요양병원, 부실·불법 운영으로 순식간에 21명의 목숨을 앗아간 장성요양병원, 돈벌이에 눈멀어 홈리스를 환자로 둔갑시켜 병실을 채운 인천의 베스트요양병원과 H병원…. 요양병원들의 불법 행태가 속속 드러나면서 이들에 대한 개선 요구 여론도 높아지고 있다. 요양병원협회조차 정화운동을 펼치겠다 하니 현 시기가 요양병원의 위기임은 분명해 보인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껏 요양병원들에 흐린 날은 없었다. 짧은 요양병원의 역사에도 불구하고, 2008년 환자 수에 따라 급여가 책정되는 ‘일당정액수가제’와 노인장기요양보험제도가 도입되었다. 인력이나 시설 기준 또한 타 병원과 비교할 때 상당히 완화되도록 규정돼 있다.
인구 고령화라는 시대의 변이와 함께 이런 제도적 조건들은 요양병원의 흥행을 보증하기에 충분했다. 이는 곧 요양병원의 급증으로 이어졌다. 지난해 기준 2009년 대비 요양병원 증가율은 158%에 이른다. 같은 시기 병원 증가율이 15%였다는 점을 생각할 때 그 증가세는 놀라울 정도로 가파르다. 브레이크는 없었다. 그간 사건·사고가 없었던 것은 아니나 병원이 쥔 권력 앞에 환자나 보호자들은 무력할 수밖에 없었다. 장성요양병원이 보건복지부의 인증을 통과한 ‘인증기관’이었다는 점에서 드러나듯 복지부의 관리·감독도 자기방어 장치에 지나지 않았다.
‘아, 작은 서울역이네!’지난 1월 강화도의 베스트요양병원에 처음 방문하게 되었다. 지적장애 홈리스가 며칠 전 그 병원으로 실려갔다는 서울역 홈리스의 제보에 부리나케 병원으로 향했다. 병원 정문을 열고 로비에 들어서니 ‘아, 작은 서울역이네!’란 탄식이 저절로 나왔다. 거실을 오가는 사람들 중 대략 절반은 서울역·영등포역 등지에서 봐온 홈리스들이었기 때문이다. 조금 더 눈여겨보니 벽에 붙어 있는 안내문이 보인다. ‘일주일에 담배 3갑, 커피믹스 5개.’ 담배와 커피는 몸에 해로우니 기준을 세워 자제시키겠다는 것, 처음엔 그런 줄로 알았다. 하지만 실은 병원에서 환자들에게 담배와 커피를 제공한다는 의미였고, 친절하게도 그 옆에는 ‘구매 신청은 보호사실로 오세요’라는 안내문이 나란히 붙어 있었다. 더 피우고 마시고 싶으면 보호사실에 와서 사가라는 것이다. ‘술은 안 파니 다행이네’라고 냉소하며 원장과의 면담을 기다리자니 점심시간이다. 로비에 있던 사람들이 일렬종대로 줄을 선다. ‘뭐지, 이 익숙한 풍경은?’ 무료급식소 대열처럼 줄을 늘어서야 배식을 받을 수 있는 이곳이 과연 병원인가 눈을 의심해야만 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그때 밥을 지었던 이는 강아무개 아주머니였다. 60대 중반으로 환자이면서 식당에서 취사원으로 일하는 직원이기도 했던. 그로부터 한 달이 지나 그녀는 식당에서 숨을 거둔 채 발견되었다. 의사의 사체 검안도, 경찰 신고도, 가족에 대한 통보도 없이 그녀는 곧장 운구차에 실려갔다.
2013년 한 해 동안 베스트요양병원과 인천의 H병원에 입원한 홈리스는 무려 405명이나 된다. 이들을 이용해 받아챙긴 진료비 역시 22억원이란 어마어마한 액수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이들 병원 쪽은 홈리스들이 자발적으로, 입소문을 통해 왔다고 주장한다. 물론 사실이 아니다. 우리는 두 병원에서 ‘픽업자’로 일했던 전직 보호사를 여럿 인터뷰할 수 있었다. 또한 병원 쪽에서 환자를 데려가는 모습은 토요일을 제외하고 매일 목격할 수 있었다. 이들이 홈리스로 병원을 채울 수 있었던 것은 병원에 입원한 홈리스에게 ‘보호사’라는 직책을 주고 서울역과 영등포역에 나가 거리 홈리스를 데려오게 했기 때문이다. 이 일을 ‘픽업’이라고 부른다. 그들은 노숙하는 이들에게 면식을 이용해 다가가 기초생활수급권을 취득해주겠다는 말로 꾀거나, 술을 먹여 만취 상태로 만들어 병원으로 데려오곤 했다. 말 그대로 ‘픽업’이었다. 그냥 주워담다시피 했다고 하니 말이다.
퇴원 요구하면 신체 결박·코끼리주사단어 정리가 필요하다. ‘RT’라는 게 있다. 신체를 결박해 환자를 통제하는 행위를 말한다. ‘CR실’은 RT를 시행하는 장소로 출입문을 밖에서 잠그는 격리실이다. 끝으로 ‘코끼리주사’는 신경안정제 계열 주사제를 일컫는데 코끼리도 눕힌다는 의미에서 붙여진 말이라고 한다. 베스트병원의 환자 관리는 바로 이 세 장치를 핵심으로 이뤄진다. 환자 간 갈등이 있거나, 보호사의 통제에 불응하거나, 병원이 정한 기한 내 퇴원을 요구할 경우 병원은 신체 결박과 주사, 그리고 폭력을 통해 환자를 길들여왔다. 이러한 행위는 입원 홈리스 중 차출된 ‘보호사’에 의해 이뤄졌다. 규정상 신체억제대의 사용은 치료 목적상 불가피한 경우 의사의 지시에 따라 환자나 보호자의 동의를 받고 해야 함에도, 해당 병원은 그 또한 홈리스 출신인 사무국장의 지시하에 모든 행위가 자행되었다. 이뿐 아니다. 건강보험 본인부담금 면제, 퇴원 요구 묵살, 의료기관 이중 개설, 환자에 대한 부당 격리, 당직의료인 규정 위반, 향정신성의약품의 저장 및 취급 규정 위반 등 이들의 범죄행위는 그야말로 광대역이다.
홈리스들은 왜 요양병원을 선택했을까? 짐작하듯, 이들은 아파서 병원에 간 게 아니다. 노숙에 지친 몸을 쉬기 위해서, 기초생활수급을 받게 해주겠다고 하니, 무료로 먹여주고 재워준다니까 그러자고 한 것이다. 치료가 아니라 그저 거처로서 병원을 선택한 것이다.
그런데 보건복지부, 서울시는 이런 제안을 이들만큼 적극적으로 해본 적이 있던가? 아니, 제안할 만한 내용을 갖고나 있기는 할까? 긍정하기 어렵다. ‘노숙인 복지’가 시행된 지 16년에 이르지만 그 어떤 지원 영역도 제도화되지 않았다. 분야별 선정 기준을 만들고 적합 여부에 따라 지원을 실시해야 하건만, 노숙인 복지의 전 영역은 지원 물량을 못박아놓고 그 수량이 곧 기준이 되는 주먹구구식 행정을 되풀이하고 있다. 현실이 이렇다보니 복지 지원의 포괄지대보다 사각지대가 더 넓은 기형적 상황이 생겨난다. 복지가 손잡아주지 않으니 그 틈바구니를 베스트요양병원 같은 불법 세력들이 파고들어 노략질을 하게 되는 것이다.
복지가 손잡아주지 않는 빈틈 노리는 세력들따라서 불법을 저지른 요양병원에 대한 처벌을 넘어, 범행 환경을 조성한 복지부의 직무유기에 대한 책임을 끈질기게 묻는 것이 중요하다. 복지에 의해 버려지는 사람이 없도록 하는 것, 그것이 빈곤을 미끼로 한 범죄를 막는 가장 기본적인 안전장치로 기능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동현 홈리스행동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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