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느 해처럼 올해도 홈리스분들과 함께 전을 부치고 고기를 구우며 시끌벅적하게 추석을 보냈다. 오래된 주방 배수관이 막혀 싱크대를 사용할 수 없었기에 결국 추석 당일 차례상을 포기해야 했지만 길고 긴 연휴의 몇 시간만큼은 명절 같았다. 그래봐야 함께한 이는 스무남은 명에 지나지 않는다.
요양급여 부당이득 징수율 고작 8%
추석 날 밤에 찾은 역전의 모습은 평소와 다를 바 없었다. 술을 마시는 무리가 더 늘어난 것도 아니다. “주민 의견과 공청회 없는 노숙인시설을 결사반대한다” “비정상의 정상화를 위해 도로에 눕거나 앉아 있으면 단속합니다”라는 현수막도 그대로다. 지나는 이들의 행색이 멋스러워졌다는 것 말고는 다를 게 없다. 기념할 만한 날이 있고, 주중과 주말이 구별되고, 평소 만날 수 없는 지인들을 만나는 것, 이와 같은 일탈이 주는 활력으로 생은 지속된다. 그런 점에서 끝이 보이지 않는 똑같은 오늘을 살아가야만 하는 노숙생활은 더 고단하리라. 하지만 이번 추석 내내 거리에 계신 분들보다 더 마음 쓰이는 이들이 있었다. 잠자리를 대가로 자유까지 저당 잡힌 채 불법 유인된 요양병원 입원 홈리스들이다.
9월12일, 홈리스들을 유인해 부당이득을 챙긴 강화 베스트요양병원장과 사무국장의 첫 재판이 열렸다. 그런데 어찌된 영문인지 병원 쪽은 9월1일 자진폐업을 단행했다. 송사를 통해 잘잘못을 가려보기도 전에 문을 닫은 것이다. 병원 쪽이 잘못을 인정하고 백기투항이라도 한 것일까? 이유는 경제적인 것에 있어 보인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은 지난 7월 해당 병원에 대한 요양급여 지급을 보류한 바 있다. 또한 연이어 요양급여 환수예정 통보를 했고, 조만간 환수 절차를 개시할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미 환수 대상 병원은 공중분해된 상태다. 물론 해당 병원은 개인 설립으로 폐업과 환수는 직접적인 관계가 없다. 그러나 폐업과 동시에 자산 청산이 이뤄졌을 것임은 불 보듯 뻔하다. 따라서 보건복지부가 환수해야 할 대상은 이제 병원이 아닌 구속돼 있는 원장 최아무개씨 개인에 한정된다. 그의 명의로 얼마나 많은 부가 축적돼 있을지 모르나 과연 복지부가 15억원에 이르는 부당이득금을 환수할 수 있을지 심히 우려스럽다.
우리나라의 요양급여 부당이득금 징수율은 고작 8%(김현숙 새누리당 의원, 8월13일 보도자료)에 머문다고 한다. 문제 병원들이 부당이득금을 고스란히 쌓아놓지 않을 것이란 점을 감안하더라도 터무니없이 낮은 수치다. 베스트요양병원 사례가 과연 이 8%에 포함될 수 있을까? 복지부는 경찰 수사를 통해 해당 병원의 문제가 낱낱이 드러났을 때 바로 환수 조치를 해야 했다. 홈리스들을 유인해 착복한 15억원의 부당이득금을 속히 환수하고, 이 금액을 사회적 입원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홈리스들을 위한 복지 예산으로 활용해야 했다. 후천성면역결핍증(HIV/AIDS) 감염인이라는 이유로 단 한 곳의 요양병원도 허락되지 않는 이들을 위한 공공병원 마련의 종잣돈으로 삼아야 했다. 기초생활보장 수급자들에게는 부정수급 운운하며 환수 조치의 칼날을 휘두르는 복지부가 유독 병원에는 자애로운 이유는 무엇인가? 공급자의 해이는 용인될 수 있다는 것인가?
입원기간 길수록 요양급여 쌓여경찰행정이나 범죄심리 영역에 대해서는 조금도 아는 바가 없다. 하지만 전문 영역도 상식에 기초할 터, 범죄 피해자를 범행 현장으로부터 이격하는 것은 상식 아닌가 싶다. 베스트요양병원 관계자들의 대표적 죄목은 유인·알선 행위를 금지한 의료법 제27조 3항을 위반했다는 것이다. 이들은 유인 행위를 통해 아프지 않거나, 해당 병원에서 치료할 수 없는 질환에 걸린 홈리스들을 입원시켜왔다. 즉 해당 병원에 홈리스들이 존재한다는 것 자체가 범죄의 결과요, 체류 기간이 길어지면 요양급여가 쌓인다는 점에서 범죄의 후과를 키우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따라서 우리는 입원 홈리스에 대한 후속 대책을 지속적으로 요구해왔다. 무엇보다 범행 현장에서 범죄 피해자들을 분리시키는 것이 우선되어야 한다는 상식적 판단에서다. 그러나 복지부는 미동조차 없었다. 7월22일부터 복지부 장관 서울 집무실 앞에서 매일 농성을 하며 입원자에 대한 후속 대책을 요구해왔으나 복지부 관계자의 그림자조차 볼 수 없었다. 그러던 복지부가 장관을 상대로 한 기습시위를 단 한 번 벌이자 후속 대책을 마련하기로 했다. 헛웃음이 났지만, 복지부 쪽에 후속 대책에 대한 세부 의견을 전달했다. 요지는 베스트병원 입원 홈리스들을 만나 “어떤 지원이 필요하십니까?”라고 묻지 말라는 것이었다. 오랜 노숙 생활을 거치는 사이 노숙인 복지라는 것이 실체가 없음에 절망한 채 도피처로 병원을 선택한 이들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손에 잡히는 실체적 수단, ‘임시주거 지원 100명, 일자리 지원 50명, 공공병원 연계 30명’과 같은 구체적 복지 지원 수단을 들고 찾아가 그들에게 선택하도록 할 것을 요청했다.
그러나 8월20일 진행된 복지부의 후속 대책은 아무런 성과도 없었다. 복지부가 들고 간 정책 수단이란 게 ‘임시주거 지원 10명, 시설 입소 10명’이 고작이었기 때문이다. 당시 입원자 수가 78명이었다는 점에서 정책 물량이 부족했다는 질타를 하는 게 아니다. 입원자들의 욕구는 ‘주거’와 ‘일자리’였음에도 일자리 지원은 전무했다. 또한 복지부가 제안한 ‘임시주거 지원’은 2인이 1조로 한방에 사는 형태로 각 개인에게 고시원이나 쪽방 월세를 한시적으로 지원하고 있는, 법률과 지침에 따른 ‘임시주거비 지원’에 미달하는 것이었다. 결국 복지부는 입원 홈리스들의 필요나 현실을 외면한 채 준비 없이 그들을 찾아간 것이다.
제2·제3의 베스트병원 곳곳에 포진한때 200명에 육박했던 베스트병원 입원 홈리스들은 전부 흩어졌다. 일부는 서울역·영등포역 같은 거리로 되돌아왔지만 그보다 훨씬 많은 수는 우리의 시야에서 멀어졌다.
그러나 그들이 어디에 있을지 짐작하기는 어렵지 않다. 제2, 제3의 베스트병원 같은 요양병원은 곳곳에 포진해 있기 때문이다. 실제 한 제보원에 따르면 베스트병원 쪽은 폐업을 앞두고 여러 요양병원에 입원자들의 전원을 요청했다고 한다. 주거지로 병원을 선택한 홈리스들, 그들은 또 다른 요양병원의 돈벌이를 위해 스스로를 가두고 있다. 복지부는 여전히 해당 병원에 요양급여를 지급할 것이고, 만에 하나 부당청구로 확인된들 환수될 가망성은 없다. 묻고 싶다. 이러한 복지부 왜 필요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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