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예훼손에 대한 우리나라의 법 체제를 설명하면 반응은 크게 두 가지로 극명하게 갈린다. 하나는 말도 제대로 못하게 하냐이고, 다른 하나는 겨우 그것밖에 처벌받지 않냐다. 우리나라에서는 명예훼손죄의 처벌 범위가 넓고 불명확하기 때문에 맘만 먹으면 대부분 명예훼손죄로 고소할 수 있다. 반면 악의적이고 반복적인 경우가 아닌 한 대부분 벌금형에 그친다.
아뿔싸, 군대 갔다 온 이동관·안병만
그래서 명예훼손죄는 ‘잽’ 역할을 하고, 결정적인 다른 한 방으로 스트레이트를 날리게 된다. 그러나 권력층에 의한 명예훼손죄 고소는 잽이 아니라 스트레이트가 될 수 있다. 특히 이명박 정부 때는 <pd> 사건 등에서 명예훼손죄가 정부 비판을 막기 위한 방패로 남용됐고, 그 밖에도 언론에 많이 나지 않았지만 명예훼손죄의 올가미로 고생한 경우가 많이 있다. 이명박 정부 때 대운하·4대강 문제 등에 대해 꾸준한 비판하던 홍성태 교수도 그중 한 명이다.
홍 교수의 칼럼은 병역의 의무는 모든 국민에게 평등하게 부과돼야 한다면서 이명박 정부의 병역 문제를 전반적으로 지적하는 내용이다. 문제는 칼럼 중간에 인용한 고위 공직자 16명의 병역 면제 관련 표. 홍 교수는 인터넷에서 자료를 찾다가 발견해 인용했는데, 아뿔싸! 그중 이동관 전 홍보수석과 안병만 전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은 군필임에도 면제로 기재돼 있었던 것이다.
홍 교수는 인터넷에 칼럼을 올렸다가 표에 일부 인사의 병역 상황이 잘못됐다는 연락을 받고 5시간 뒤 바로 삭제했다. 그런데 그사이 홍 교수의 칼럼이 인터넷에서 퍼짐에 따라 이동관과 안병만이 홍 교수를 명예훼손죄로 고소했다.
쟁점은 간단했다. 사실관계를 제대로 확인하지 않은 과실은 있지만, 과연 비방할 목적으로 고의적으로 한 것이라고 보아서 형사책임까지 물을 수 있느냐였다. 당시 정황상 홍 교수의 단순 실수로 보이는데, 과연 수사기관이 이명박 정부를 계속 비판해온 홍 교수의 말을 믿어주느냐가 관건이었다. 홍 교수에게는 최대한 설득해보되, 설득이 안 되더라도 벌금 100만~200만원 정도로 끝날 사건이라고 하고 서울지방경찰청에 함께 출석했다.
서울지방경찰청 사이버수사대에 들어가니 담당 팀장이 “지금 도착했다. 변호인은 누구다”라고 전화 보고를 한다. 기껏해야 벌금사건인데 난리군. 그 뒤 담당 팀장과 홍 교수의 공방은 예상대로 지루했다.
수사관 “노무현 때는 이러지 않았는데…”
문: “병무청 사이트에 들어가면 공직자들 개인별 병역 상황을 쉽게 검색할 수 있는데 모르고 표를 올렸다는 것이 말이 되냐.”
답: “그래야 하는데 시간이 부족해서 표의 내용을 일일이 확인하지 못했고 인터넷에 워낙 많이 퍼져 있어서 맞는 것인 줄 잘못 알았다. 실수는 인정하는데 고의는 아니었다.”
문: “인터넷에 기고도 많이 하는 교수님이 사실관계를 확인하지 않았다는 게 말이 되냐.”
답: “그러니까 실수는 인정한다는 것 아니냐. 실수를 깨닫고 최선을 다해 바로 시정했고 고소인들에게 사과의 뜻을 전달했다.”
문: “고위 공직자들에 대해서는 청문회도 하기 때문에 병역 상황을 다 알고 있지 않느냐.”
답: “어떻게 일일이 다 기억하냐. 만일 고소인들을 노렸다면 눈에 띄지 않게 표에만 두지 않았을 텐데 칼럼 본문에 고소인들 이름을 언급하지도 않았다.”
경찰이나 검찰에서 조사를 받아본 사람은 조사 과정이 얼마나 지겨운지 안다. 수사관이 물어보면 대답하고 수사관이 타이핑을 마칠 때까지 한동안 멍하니 기다렸다가, 다시 물어보면 대답하고 수사관이 타이핑을 마칠 때까지 또 멍하니 기다렸다가, 다시 또 반복. 지루하게 하루 종일 조사를 받았는데도 조사가 미진하다고 다시 조사 기일을 잡는다.
이번엔 팀장이 바빠서 다른 수사관이 조서를 작성했고, 중간 쉬는 시간에 1층 휴게실에서 수사관과 조우했다.
“조서 작성하느라 수고하십니다.”
수사관은 씩 웃으며 말한다. “노무현 때는 그렇게 욕해도 이러지 않았는데….”
나도 씩 웃는다.
조사를 마치고 며칠 뒤 경찰은 “이명박 정부의 고위 공직자들이 병역을 면제받았다며 허위 명단을 유포한 대학교수 등이 경찰에 붙잡혔다”고 대대적으로 기자들을 대상으로 브리핑했다. 처음에 ‘정당한 비판을 억압하기 위해 사소한 실수를 심각한 필화로 만든 사건’이라면서 방방 뜨던 홍 교수는 졸지에 잡범이 되었다.
얼마 뒤 홍 교수는 서울중앙지검에서 또 비슷한 질문으로 9시간 동안 조사를 받은 뒤 기소되었다. 수사기록을 복사해서 홍 교수께 드리니 기겁을 한다. 수사기록을 보니 홍 교수의 6개월치 전자우편에 대해 압수수색을 한 것이다. 헐! 이동관에게 ‘너 면제지?’ 했다가 6개월치 전자우편이 다 털린 것이다. 더 짜증 난 것은 그래놓고 검찰에서 증거자료로 제출한 것은 단 1건도 없고, 평소 홍 교수가 정부 비판적으로 쓴 기고글 정도가 증거자료로 제출되었다.
몇 차례 공판기일을 진행한 뒤 선고기일이 잡혔다. 결과는? 공소기각! 명예훼손죄는 피해자가 고소를 취하하면 유무죄 따지지 않고 ‘공소기각’ 선고로 사건을 종결 처리하는데, 고소인들이 선고기일 며칠 전에 고소를 취하한 것이다.
국민이 자발적으로 동상 만들어줄지니
인터넷에서의 악의적인 글로 피해자가 입는 정신적 고통은 심각하다. 최근 유산된 아기 합성사진으로 고통을 당한 백지영씨 사건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법 적용은 공평해야 한다. 우리나라 국민 중에 이동관 전 수석과 안병만 전 장관이 군필인지 면제인지 관심 있게 볼 사람이 얼마나 있겠는가. 청와대 수석이나 장관 정도 되면 난 아니라고 보도자료를 내면 그만이지 그걸 형사고소까지 하고, 거기에 맞춰 수사기관은 6개월치 전자우편까지 압수수색하면서 달려들다니. 내 기준으로는 이명박 정부를 계속 비판해온 홍 교수에 대한 경고성 잽으로 보였다.
동네 골목길 집에 사람만 지나가면 으르렁대는 개가 있었는데, 그 집에 도둑이 들어 경찰차가 출동한 적이 있었다. 온라인 정화라는 명목하에 이동관과 안병만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악착같이 6개월치 전자우편까지 압수수색하던 검찰과 경찰이 왜 그보다 몇백만 배 중요한 우리나라의 민주주의가 온라인에서 도둑맞는 것은 분노하지 않는가. 검찰과 경찰은 권력층의 심기를 건드리지 말라고 동네 사람들에게만 으르렁대지 말고, 진짜 도둑놈들에게 온몸으로 달려들어서 민주주의를 지켜야 한다. 그러면 말하지 않아도 영화 와 같이 국민이 자발적으로 성금을 모아 동상을 건립하는 충견 하치가 될 것이다.
이상훈 변호사·법무법인 지향</pd>
한겨레21 인기기사
한겨레 인기기사
[단독] 명태균, 윤 부부 ‘아크로비스타 이웃’ 함성득 교수 거쳐 김건희 만나
이 절경이 한국에…더 추워지기 전, 가봄 직한 여행 후보지 3곳
버려진 ‘덕분’에 드러난 죽음 ‘암장’...몇 명이 죽는지 아무도 모른다
[단독] ‘최재해 탄핵 비판’ 연서명 강행 감사원, 내부 반발로 무산
한동훈의 ‘김건희 꽃잎점’ 특검 한다, 안 한다, 한다, 안 한…
미래한국연구소 각서 공개 “김건희 돈 받아 6천만원 변제”
예산안 4.1조 삭감에 “국정마비 온다”는 당정…야당 “합당한 감액”
초유의 야당 단독 ‘감액 예산안’…본회의 앞두고 날 선 대치
매주 한 건 ‘유상증자 폭탄’…“이래서 한국 증시를 떠난다”
숲 여행도 하고 족욕도 하고…당일치기 기차 여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