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1월3일 검찰은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소속 변호사 7명을 한꺼번에 대한변호사협회에 징계 신청했다. 그중 2명에 관해서는 수사기관의 수사 중에 의뢰인에게 허위 진술 또는 묵비권을 ‘강요’했다는 것이 징계 신청 이유였다. 당사자인 장경욱 변호사와 김인숙 변호사가 허위 진술이나 묵비권을 ‘강요’한 적이 없다고 밝혔으니 진실은 향후 절차에서 드러나겠지만 검찰이 내세운 징계 청구의 ‘명분’이 도무지 납득되지 않는다. 변호인이 피의자에게 ‘진술거부권을 행사하라’고 한 것이 변호사 징계의 이유라니!
피의자에게 보장된 탈출구, 진술거부권
근래 드라마나 영화를 통해 피고인이 법정에서 변호인의 도움을 받아 재판받는 모습을 많이 볼 수 있게 됐지만, 수사 과정에서 변호인이 신문에 참여해 피의자를 돕는 모습을 화면을 통해 접할 기회는 적은 편이다. 아마 이를 낯설게 느끼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수사 단계에서의 조사 과정 역시 판사 앞에서 재판받는 공판절차 못지않게 매우 중요하다. 경찰이나 검사는 범죄 입증을 위한 중요한 진술을 수사 과정에서 모두 미리 확보하기 때문이다. 피고인 입장에서 보면 ‘수사 절차에서 어떻게 이야기했는지’가 자신의 재판 전체를 좌우할 수도 있는 법이다.
더구나 경찰이나 검찰은 두려운 존재이기 때문에 그곳에서 조사받는 보통 사람들은 엄청나게 위축되기 마련이다. 그때야말로 변호인의 조력이 가장 필요한 순간인 것이다. 변호인이 여러 가지 조력을 할 수 있겠지만, 그 가운데에서도 변호인이 조언하는 ‘진술거부권’은 온전한 정신으로 자신을 위한 변명을 당당하게 내놓지 못해 쩔쩔매는, 궁지에 몰린 범죄 피의자에게 보장된 ‘탈출구’ 같은 것이다. 자신을 둘러싼 상황이 어떻게 흘러갈지 모르는데, 자신은 사건의 앞뒤 상황을 정확히 알지 못하는데, 수사관의 질문에 반드시 무슨 대답이라도 선택해 내놓아야 한다면 그 불안과 답답함은 겪어보지 않은 이는 쉽게 예측하지 못할 일이다.
‘수사기관에 진실만을 말한다면 도대체 진술거부권이나 변호인의 조력이란 것은 불필요한 것 아닌가’라고 반문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피의자의 ‘진술’ 자체가 사건의 모든 진실을 담아내지 못하는 경우가 있고, ‘조서’에 적히는 과정에서 ‘진실’조차 왜곡될 수 있다. ‘조서 작성’은 범죄자의 나쁜 행동을 강조하는 ‘수사기관의 조직 논리’에 영향을 받기 마련이다. 오죽하면 ‘조서를 꾸민다’는 말이 관용되겠는가. 피의자는 ‘자신의 의사가 억압되지 않은 상황에서, 입 밖으로 내놓은 진술이 조서에 있는 그대로 반영될 수 있기’를 바란다. 변호인은 이를 돕는 것을 ‘업’으로 하는 사람이다. 때로는 변호인의 조력이 ‘진실’을 구해내기도 한다.
의뢰인 그냥 앉혀놓고는 ‘수사 중’
‘공익의 대변자’. 검사에게 붙여진 이름표지만, 내가 직접 경험한 몇몇 검사의 모습 때문에 이 이름표가 걸맞지 않다고 생각한 경우가 종종 있었다. 특히 ‘진실을 찾는다’는 명분을 내세워 피의자와 변호인을 차단시키고 피의자를 고립시킨 상황에서 자신들이 원하는 진술을 ‘조서’에 ‘꾸며내기’ 위해 무리하는 경우를 본 적이 있다. 예전, 아직은 ‘검사’라는 직함에 대해 불신보다는 믿음이 더 컸던 시기에 겪은 일이다.
내 의뢰인은 기업인이었는데 유력한 사회 인사를 도운 사실이 있었다. 검찰은 그 사회 인사의 비위 혐의를 잡아 전방위로 수사를 확대하고 있었는데, 정권이 교체된 지 얼마 되지 않은 시기였기 때문에 정치적 표적수사라는 의혹이 일던 때였다. 내 의뢰인은 사회 인사의 비위 혐의에 연루돼 있다는 의혹을 받았다. 다만 검찰은 우선 의뢰인의 회사를 수사해 회사 운영과 관련된 횡령 등 의뢰인의 잘못을 잡아내고 그 혐의 사실로 의뢰인을 구속했다. 속된 말로 ‘회사가 털린’ 것이다. 검사는 구속된 의뢰인을 상대로 사회 인사에 대한 수사에 집중했다. 우리 의뢰인은 온갖 회유와 거래를 제안받았다고 했다. 검찰이 원하는 진술을 해주면 회사 운영상의 잘못은 덮어주겠다는 것이었다.
난 수사상 부당한 행위가 발생하지는 않는지, 또 수사에 대비해 어떻게 진술할지를 의논하기 위해 의뢰인을 만나야 했다. 매일 구치소에 접견 신청을 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검사는 매일 아침 의뢰인을 검찰로 불러들였기 때문이다. 아예 검찰에서 의뢰인을 접견하기 위해, 또 수사에 참여하기 위해 검사실로 찾아갔지만 검사는 ‘변호인의 신문 참여가 수사에 현저한 지장을 초래할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수사 참여를 거부했다. 수사가 이루어지지 않는 동안만이라도 접견을 하게 해달라고 요청했지만 계속 ‘수사 중’이어서 안 된다고 했다. 검사실 앞 복도 대기실에서 포승줄에 묶여 화장실을 오고 가는 의뢰인과 눈인사 정도만을 나누고 몇 시간을 기다리는 날이 며칠 반복되었다. 내가 계속 항의하자, 어느 저녁 식사 시간 즈음에 검사가 나에게 접견을 하라고 얘기해왔다. 자신들이 식사하는 시간에 접견을 하라는 것이었다.
수사실에서 검사와 수사관들이 저녁밥을 시켜먹는 동안, 우린 한쪽 검사실 안에서 방문을 열어두고 접견을 했다. 우리 의뢰인은 나에게 “사실 아까 오후 변호사님이 기다릴 때부터 지금까지 난 검사실 한쪽에 앉아만 있었지 조사는 진행되지 않았다”고 낮은 목소리로 얘기했다. 난 검사의 접견 방해 행위를 문제 삼기 위해 그 내용을 의뢰인에게 직접 메모지에 쓰게 하고 서명하게 했다. 그 순간 어느새 검사가 다가와 메모지를 나에게서 빼앗았다. 그러고는 그 내용을 읽어보더니 순식간에 메모지를 찢어버렸다. 나보고는 ‘위법한 서신 교환’이라고 큰소리를 쳐댔다. 지금도 그 순간을 생각하면 가슴이 뛴다. 얼굴이 달아오르고 머리로 피가 몰리는 것 같다.
검사는 여전히 승승장구 승진그때 그 사건에서 검사가 한 위법행위를 모두 모아 준항고 절차를 진행했다. 결국 대법원에서 검사의 행위가 ‘변호인의 조력권을 침해했다’는 결정을 받아냈다. 곧이어 해당 검사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를 준비하다가 그만두었다. 어릴 때 보던 무협지의 표현을 빌리자면 ‘출수하면서 손 속에 정을 둔 셈’이다. 그러지 말걸 그랬다. 준항고 결정만으로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을 수도 있음을 이제야 알게 된 것이다.
시간이 꽤 흘러,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는 많이 신장되었다. 수사기관에 가보면 분위기가 많이 바뀐 것을 확 느낄 수 있다. 하지만 이번에 다시 검찰이 ‘진술거부권 권유’를 ‘진실을 은폐하는 수사 방해 행위’로 단정해 징계 청구하는 행태를 보고 많이 답답해졌다. 그때 메모지를 찢고 나서 오히려 나에게 눈을 부라리며 언성을 높이던 검사의 모습이 생각난다. 그 검사가 여전히 검찰 내에서 승승장구 승진하는 소식도 듣고 있다. 하지만 검사의 돌발 행동에 당황했던 그 마음과는 조금 달라진 것 같다. 검찰이 잘못한 일이라는 게 결국 밝혀질 것이고 또 조금은 이전보다 나아질 것이다. 그런 믿음이 이 안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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