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우리나라의 불법 소프트웨어 사용률이 38%로, 연례 조사를 한 이래 사상 최저를 기록했다는 소프트웨어연합(BSA)의 발표가 있었다. BSA는 마이크로소프트·오토데스크·시만텍 등 다국적 소프트웨어 기업들로 구성된 이익단체인데, 매년 이런 조사를 해서 국가별 순위를 발표한다. BSA는 “이 수치는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경쟁 국가인 일본(19%), 뉴질랜드(20%), 오스트레일리아(21%), 그리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주요 국가 평균(25%)보다 훨씬 높은 것”이며, “불법 소프트웨어 사용으로 인한 피해액도 약 7200억원에 달해 국내 불법 소프트웨어 사용의 심각성이 여전히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고 한국 상황을 평가했다.
소프트웨어는 합법적으로 이용해야 한다. 그러나 BSA의 발표에 마냥 수긍만 할 수 없는 사정이 있다. 소프트웨어 기업들의 행태 때문이다. 이들은 저작권법에서 이용자들에게 허용한 사적 이용을 위한 복제를 제한하는 이용자 약관을 만들고, 소비자 선택권을 제한하는 거래 조건을 설정한다. 수익 극대화를 위해 소비자의 선택권이나 제품의 다양성을 제한해, 필요 없는 다기능으로 된 고가의 소프트웨어만 판매할 뿐이다.
중고 없고 끼워팔고 가격 남용하고
중고 소프트웨어 시장이 활성화하지 못하게 하고, 끼워팔기, 가격 남용 등의 불공정 거래를 하기도 한다. 한 집에 컴퓨터를 여러 대 구매해왔다면 소프트웨어는 하나만 구매해도 되는데 현실적으로 그것이 어렵고, 기업도 사용하는 기능은 일부인데 그에 맞는 값싼 프로그램을 선택할 수 없다. 소프트웨어 구매에 들어가는 비용을 따져보면 결코 적다고 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다국적 소프트웨어사들이 소비자의 불법 탓만 할 게 아니라는 것이다.
한국에는 특이한 현상이 있는데, 소프트웨어사들이 소프트웨어 단속에서 특혜를 받고 횡포를 부린다는 점이다. ‘소프트웨어 단속’을 당해보지 않은 기업이 드물 텐데, 사실 소프트웨어 단속이라는 말부터 ‘적법절차’를 피하기 위한 소프트웨어 업체들의 의도적인 용어 사용으로 보인다. 정확하게는 ‘불법 소프트웨어 증거물 발견을 위한 압수수색’이다. 이건 형사소송법에 규정된 ‘압수수색’ 절차이기 때문에 준수해야 한다.
영장이 발부돼야 압수수색을 할 수 있는데, 압수수색영장은 막연한 추측으로는 발부되지 않고 죄를 범했다고 의심할 만한 정황이 인정돼야 발부된다. 그래서 소프트웨어 저작권사들로부터 고소 대리를 위임받은 변호사들은 압수수색영장을 발부받기 위해서 고소장에 ‘불법 소프트웨어를 복제하여 사용하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고 하지 않고, 구체적으로 소프트웨어를 열거하면서 ‘어떤 어떤 소프트웨어를 불법 복제하여 사용하고 있다’고 고소 사실을 적는 경우가 많다. 실제로 압수수색영장을 집행하면 그 소프트웨어를 불법 복제해 사용하고 있지 않는 일이 허다하다. 어쨌든 불법 소프트웨어 사용 현장이 하나만 걸리면 된다는 주의다. 내가 압수수색을 당한 기업들의 법률 자문을 해준 모든 경우에서 고소장엔 실제로 설치해 사용하고 있지 않은 고가의 소프트웨어를 불법 복제해 사용하고 있다고 허위 사실이 적혀 있었다. 아니면 말고 식으로 압수수색영장을 발부받기 위해 허위 고소를 한 것이다. 이건 무고로 볼 수 있다. 이런 불법적인 관행은 사라져야 한다.
경찰관은 수수방관, 이익단체 직원이 압수수색심각한 문제는 압수수색 과정에 있다. 압수수색은 당연히 사법경찰관이 해야 하는데, 경찰관은 회의실에 앉아서 커피를 마시고, 같이 온 고소인 쪽 소프트웨어 저작권자들의 이익단체 직원이 회사 직원들의 컴퓨터를 한국소프트웨어산업협회에서 만든 프로그램을 이용해 압수수색한다. 사법경찰관이 아닌 고소인 쪽 사람이 하는 압수수색은 명백히 불법이고 중대한 범죄행위다. 그동안 수사기관에서 고소인 쪽 저작권자 단체의 직원에게 압수수색을 시키고, 그 결과를 가지고 고소인이 합의금을 받아가게 하는 불법적인 수사 절차를 묵인하는 특혜를 베풀어온 이유를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사법경찰관은 압수수색 결과가 나오면 고소인 쪽과의 합의를 기다려준다. 이때 고소인 쪽은 압수수색의 결과대로 회사 컴퓨터에 복제돼 있던 모든 소프트웨어를 정품으로 구매하라 하고, 정품 구매 외에 정품 가격의 80% 정도를 합의금으로 더 달라고 한다. 이 대목이 본격적인 합의금 거래인데, 여기에도 횡포가 많다.
모름지기 정품을 구매하면 피해 회복은 된 것인데, 고소 취하를 조건으로 내걸고 형사보상금 명목으로 정품 가격의 80%를 더 달라고 하는 것은 재산 범죄에서는 유례가 드물다. 사기죄의 경우도 피해자는 피해 회복을 받으면 고소를 취하해주지, 피해액의 180%를 내야 고소를 취하해주겠다고 하지는 않는다. 정품 가격의 10%도 아닌 80%를 합의금으로 더 받아가는 것은 결코 좋아 보이지 않는다. 추가 80%의 금액은 다른 저작물에서는 볼 수 없는 요구인데, 80%가 일종의 담합처럼 유지되고 있다. 이렇게 손해배상이 아닌 순수한 합의금으로 더 받아간 돈이 지금까지 얼마나 될지 모르겠지만, 천문학적인 금액일 것이다.
물론 가장 중요한 것은 라이선스에 따른 사용하나에 1억원이 넘는 고가의 소프트웨어가 회사 직원 컴퓨터에서 나오는 경우도 가끔 있다. 고소인 쪽은 정품 구매와 배상금도 요구하니 그 돈은 억대가 넘는다. 직원은 그 프로그램의 일부 기능만 사용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직원이 사용했던 기능은 수백만원대의 저렴한 가격에 따로 툴박스로 판매되기도 한다. 이때 툴박스의 값이 아닌 풀패키지의 가격을 배상금으로 요구하는 것이나, 풀패키지 정품 구매를 요구하는 것은 부당하다. 이런 경우 손해배상을 청구해도 사용한 일부의 기능에 대해서만 손해배상이 인정될 것이기 때문이다.
관행처럼 굳은 80%의 추가 배상금 요구는 시정되는 게 바람직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굳이 추가 배상금을 받아가야 한다면 10% 정도는 어떨까.
정품을 구매하고도 무려 80%의 추가 배상금을 요구하거나 풀패키지 정품을 구매하라고 요구할 경우, 그 사정을 검찰에 호소하고 선처를 바라는 것이 좋은 해결책이 될 수도 있다. 나머지 정품을 구입했다면 피해 회복이 된 것이므로 검찰이나 법원은 가벼운 벌금형으로 선처해주는 경우가 많다. 가벼운 벌금을 피하기 위해 수천만∼수억원의 지출을 하는 것은 기업 입장에서는 합리적 선택이 아닐 수 있다. 물론 가장 중요한 것은 사전에 철저히 라이선스 조건에 따라 소프트웨어를 사용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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