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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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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인했던 말 “복귀하여 조금만 참으라”

탈영한 병사를 설득해 복귀시키며 젊은이의 미래를 구했다 생각했는데…
눈감았던 진실로 인해 희생된 수많은 병사들에게 부끄러워
등록 2014-10-24 15:59 수정 2020-05-03 04:27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들을 변론하면서 자연스럽게 군인의 인권 문제에도 관심을 갖게 되었고, 이 때문에 가끔 상담을 해오는 병사들이 있었다. 수년 전, 이른 새벽에 전화 한 통을 받았다. 군부대를 이탈한 병사가 있고 변호사와의 상담이 시급하다며 당장 달려와달라는 요청이었다.

“상담이 시급하다, 당장 달려오라”

지난 8월 국회 국방위원들이 윤 일병 폭행사망 사건의 현장조사를 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지난 8월 국회 국방위원들이 윤 일병 폭행사망 사건의 현장조사를 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병사는 가혹한 구타를 당하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집단생활에서 따돌림을 당하고 있었다. 화장실조차 마음대로 가기 힘든 따돌림과 견제를 견디지 못한 병사는 휴가를 나왔다가 부대에 복귀하지 않기로 하고 사람들에게 도움을 요청한 것이었다. 나는 고민에 빠졌다. 부대에서는 48시간 내에 복귀하면 처벌을 면해줄 것이라며 계속 접촉해왔고, 병사는 결심을 바꾸지 않는다면 군사재판과 징역살이, 그리고 앞으로의 삶에서 ‘탈영병’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살아야 하는 상황이었다. 나는 병사에게 군을 이탈할 경우 진행될 형사재판 과정 등에 대해 설명했고 병사는 이미 각오한 듯 담담히 고개를 끄덕였다. 고민 끝에 나는 다른 사람들과 함께 병사를 설득했다. 복귀해 조금만 참으라고, 지금 복귀한다면 군에서도 병사를 대우하는 데 조심할 것이라고, 우리가 계속 관심을 갖고 지켜보겠다고…. 결국 병사는 부모와 나를 포함한 주변인들의 설득으로 부대 복귀를 했다. 부대에 복귀하는 병사의 뒷모습을 보며 한 젊은이의 미래를 구한 듯한 생각에 안도의 한숨이 절로 나왔다.

지난 4월7일 22살의 한 젊은 병사가 군대에서 죽었다. 당시 언론은 이 젊은이가 냉동식품을 먹다가 질식사했다고 짧게 보도했고 이 젊은이의 죽음은 별다른 관심을 끌지 못했다. 이 젊은이는 윤 일병이다. 윤 일병의 부모는 아들의 사망이 구타에 의한 것이라고 의심했지만 진실을 밝히겠다는 군을 믿었다. 부모는 두 번의 재판이 진행되는 과정을 지켜보고서야 진실을 밝혀주겠다는 군의 말이 거짓이었음을 깨달았다. 지난 7월31일 군인권센터가 윤 일병의 죽음이 잔혹한 구타와 가혹행위에 의한 것이라는 의혹을 제기한 뒤에야 윤 일병의 죽음에 대한 진실은 서서히 밝혀지기 시작했다.

윤 일병은 선임 병장의 주도하에 지속적으로 구타와 잔혹행위를 당했다. 잔혹행위 외에도 가래침 핥기, 개처럼 기어다니기, 성기에 안티푸라민 바르기 등 인격 파괴 행위가 자행되었고, 지속되는 고문에 심신이 허약해지면 수액을 맞혀 체력을 회복시켜 다시 가혹행위를 했다. 행위의 잔혹성도 잔혹성이거니와 이에 가담한 병사의 면면을 보면 참혹한 비극을 넘어선 그 무엇이다. 주도적인 가해자 이 병장 외에 다른 병장과 상병이 가담하고, 윤 일병과 똑같은 피해를 당했던 이 일병은 “내가 했듯이 개처럼 행동해라. 그래야 네가 살 수 있다”고 하며 폭행에 가담했다. 수십 명의 목격자는 침묵함으로써 폭력에 동참했다. 병사를 관리해야 할 간부(유 하사)는 구타를 말리기는커녕 병사들이 보는 앞에서 책상용 스탠드로 윤 일병의 머리를 내리치거나, “선·후임병 간의 구타는 있을 수 있다. 잘 뭉쳐야 하니 구타가 있어도 참견하지 않을 것”이라며 구타를 묵인 또는 조장했다. 왜 우리의 아들들은 서로 죽고 죽이는 가해자와 피해자가 되어야 했는가. 왜 윤 일병은 도와달라는 비명조차 지르지 못했는가.

윤 일병이 비명조차 못 지른 이유

군대 내 가혹행위, 구타, 따돌림 등이 개인적 성향만의 문제가 아니며, 군대문화와 구조적 문제로 인해 근절되지 못한다는 것은 이제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국가인권위원회는 2012년 인권친화적 병영문화를 위한 정책·제도 개선안을 마련했다. 2011년 해병부대 초소에서 당시 만 19살이던 상병이 무시와 괴롭힘, ‘기수 열외’라는 따돌림을 견디지 못하고 총기를 난사해 사병 4명이 죽고 1명이 부상당한 사건을 계기로 상당한 기간에 걸쳐 면밀한 조사와 분석을 진행한 결과였다. 인권위는 군대 내에서 발생하는 가혹행위 등의 원인으로 인권이 제대로 보장되지 못하는 점을 지적하며, 독일 군인법 제6조가 군인에게 시민과 동일한 권리를 인정해 군인을 ‘제복 입은 시민’으로 규정한 점에 주목했다. 인권위는 군인복무규율 등의 각종 규정이나 지침이 군인이라는 이유로 과도하게 권리를 제한하고 의무만을 중심으로 규정돼 있다면서, 헌법과 국제인권규약상의 권리를 군인 지위의 특수성에 맞게 구체화하고, 장병의 인권침해에 대한 권리 구제 제도 및 절차, 구제 기관과 피해자 보호 조치 등이 명시된 장병 인권 보장의 법적 기준이 될 수 있는 ‘군인권법’을 제정할 것 등을 권고했다.

그러나 군은 문제의 심각성을 깨닫지 못하고 그 권고를 무시했다. 소원 수리 제도 등 군대 내 인권침해 신고 절차는 군대 내의 조사와 통제라는 점에서 병사들로 하여금 자신의 신분이 보호되며 객관적으로 조사가 이루어질 것이라는 기대를 하기 어렵게 만든다. 실제 병사들은 신분 노출의 위험, 보호받지 못할 것이라는 불안감 등의 우려 때문에 소원 수리 절차를 잘 이용하지 않는다. 인권위나 국민권익위원회 역시 1~2명의 인력만이 군 인권 문제를 담당하고 있어 60만 군인의 인권침해 문제를 조사하는 데 역부족인데다, 방문 조사조차 불가능해 실효성을 기대하기 어렵다.

병사들의 인권침해 상황을 개선하기 위한 가장 효율적인 제도로 독일식 국방감사관 제도를 모델로 한 군사옴부즈맨 제도를 많은 전문가들이 제시하고 있다. 군사옴부즈맨은 현역 군인 또는 제대 군인이 아닌 민간인이 참여하는 제도로 군 외부의 조사와 통제가 가능하고, 병사들이 언제 어디서든 자유롭게 접근할 수 있으며, 진정이 접수되면 군대 어디든 가서 문제를 신속하게 파악하고 해결할 수 있는 제도다. 현 상태로는 군대 내 인권침해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본질을 바꾸는 시스템의 변화가 필요하다. 지금 이 순간에도 군인이 된 우리의 아들들(또는 딸들)이 고통당하고, 고통을 가하고 있다. 군인권법 제정, 군옴부즈맨 제도 등의 도입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시급한 과제다. 군인은 군번으로 명명되는 군수품이 아니라 ‘제복 입은 시민’이다.

이 땅의 ‘어 퓨 굿맨’, 그 명예를 찾을 때

잠시 내가 돌려보냈던 병사를 떠올려본다. 나는 심한 착각에 빠져 그 병사를 돌려보내며 한 젊은이의 미래를 구했다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기까지 했다. 폭력적인 병영문화를 거부하려 했던 병사의 소리에 더 귀기울이고 함께했어야 한다는 뒤늦은 후회가 밀려온다. 군대 내 폭력으로 사망한 병사와 관련한 진실을 파헤치는 영화 (A Few Good Men)에서 타협과 협상으로 진실을 감추려 했던 군법무관(톰 크루즈)의 모습이 자화상처럼 겹쳐진다. 극 중 톰 크루즈는 결국 병사의 사망이 군 상부의 지시(코드레드)에 따른 가혹행위 때문이었음을 밝혀내며 성장한다. 상부의 명령에 따른 것뿐이라며 자신의 무고함을 주장했던 가해 병사는, 군인으로서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자백하면 형을 감해주겠다는 제안을 거절하지만 종국에는 군인으로서 ‘약자를 보호하지 못했다’는 잘못을 깨닫고 불명예제대를 받아들이며 성장한다. 나의 성장은 내가 돌려보낸 병사의 고통과 내가 눈감았던 진실로 인해 희생된 수많은 병사들을 통한 부끄러운 것이었다. 국가와 국민을 지키는 영예로운 사람들, 그들은 바로 군인이며 이 땅의 ‘어 퓨 굿맨’들이다. 이제 그 명예를 되찾아야 할 때다.

김수정 변호사·법무법인 지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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