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증 필요한 SMR을 17만5천 인구밀집 지역에 짓겠다고?

2026년 7월8일 부산광역시 기장군 바다 너머로 대형 핵발전소인 고리 1~4호기가 보이고 있다. 이승배 기자 photolee@hani.co.kr
2026년 7월8일 울산 울주군 최남단 동해안에 자리 잡은 작은 어촌인 신리마을. 이곳에서 바다 건너편을 바라보니 부산 기장군과 울산 울주군의 경계 해안을 따라 핵발전소(원전) 6기가 잇달아 늘어서 있는 모습이 한눈에 들어왔다. 신고리 1·2호기(기장)와 새울 1~4호기(울주). 행정구역이 부산과 울산으로 나뉘어 신고리와 새울 핵발전소가 멀리 떨어져 있는 것으로 생각했지만, 현장에 와서 보니 ‘한 단지’ 안에 있었다. 실제 새울 1·2호기의 이름은 원래 신고리 3·4호기였고, 새울 3·4호기도 처음엔 신고리 5·6호기였다. 신고리 1·2호기의 기장 방향 안쪽에는 고리 1~4호기(1호기 영구정지, 2호기 수명연장돼 가동 중, 3·4호기 수명연장 심사 중으로 정지 상태)도 있어 이 지역은 10기의 핵발전소가 촘촘하게 밀집한 곳이다. 여기에 11번째로 ‘혁신형 소형모듈원자로’(i-SMR) 4기(1개소·680㎿)가 들어설 예정이다. 정수희(48) 부산에너지정의행동 활동가는 “2011년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 이후 한국에서도 사고에 대비해 약 8~10㎞였던 방사선비상계획구역을 핵발전소 반경 최대 30㎞까지 대폭 확대했다”며 “부산 전체 16개 구와 군 중에 10곳이 이 30㎞ 범위에 포함되는데, 대형 핵발전소인 고리 2호기(650㎿)보다 더 큰 SMR이 들어오는데 기장군 외 다른 기초지방자치단체의 주민들에게는 찬반 의견을 묻지 않았다”고 말했다.

3대 메가 프로젝트 규탄 시민사회 136개 단체 관계자들이 2026년 7월13일 서울 종로구 참여연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의 반도체·AI데이터센터·피지컬AI 산업육성 정책” 전면 재검토를 요구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 ‘신규원전 부지선정평가위원회’가 2026년 6월17일 기장을 SMR 건설 부지로, 경북 영덕을 대형 핵발전소 2기 건설 부지로 선정했다. 한수원이 기장을 기후에너지환경부에 전원개발사업 예정구역으로 지정해줄 것을 신청하고, 기후부가 지정·고시하면 부지가 법적으로 확정된다.
SMR은 윤석열 정부 때인 2025년 2월 확정된 제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2024~2038년·이하 전기본)에 처음 포함됐는데, 2034년과 2035년에 각각 모듈 2기(1기당 170㎿)씩 완공 예정이다. 여기에 더해 김성환 기후부 장관은 2026년 7월13일 현재 마련 중인 제12차 전기본(2026~2040년)에도 SMR과 핵발전소 도입을 공식적으로 천명했다. 김 장관은 반도체 팹(공장)과 에이아이(AI) 데이터센터, 피지컬 AI 등 총 4755조원 투자 규모의 ‘3대 메가프로젝트’와 관련해 2040년까지 전력수요가 확정적으로 약 30기가와트(GW), 잠재수요와 전기차 전환, 건물 난방 전기화 등까지 합치면 50GW 이상으로 전력수요가 폭증할 것으로 전망되기 때문이라고 이유를 밝혔다.
SMR은 원자로·펌프·증기발생기 등 구성품을 하나의 용기에 일체화해 공장에서 모듈로 제작한 뒤, 수요 발생시 발전소에 설치할 수 있도록 설계된 모듈당 300메가와트(㎿) 이하의 출력을 가진 원자로를 말한다. 국제원자력기구(IAEA)에 따르면 세계적으로 80여 종의 SMR이 개발되고 있다. 다만 현재 상업운전에 도달한 나라는 러시아와 중국뿐이다. 러시아는 2020년 육상이 아닌 바지선에 설치한 부유식 원전 ‘아카데믹 로모노소프’(약 70㎿)를 운전 중이다. 중국에서는 2023년 최초의 육상 SMR인 ‘HTR-PM’(210㎿)이 상업운전에 들어갔다. SMR은 이처럼 일부 나라에서 ‘상업운전’에는 돌입했지만, 시장에서 판매되며 수익을 창출하는 ‘상용화’에는 이르지 못한 상태다. 미국, 영국, 프랑스, 캐나다 등 주요 핵발전소 강국들도 정부지원 정책과 법·제도를 마련하며 SMR 개발 경쟁을 하고 있다.
국내에서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기후부가 공동으로 2023~2028년 총 3992억원의 사업예산을 투입해 한국의 독자 노형인 i-SMR을 개발 중이다. 2023년 출범한 i-SMR 기술개발사업단은 i-SMR 표준설계인가를 2026년 3월 원자력안전위원회에 신청했다. 표준설계인가는 앞으로 반복해서 지을 동일 설계 원자로가 종합적으로 안전기준에 부합하는지 규제기관의 승인을 받는 제도다. 같은 설계 원자로를 되풀이해서 건설할 때 인허가 절차를 간소화할 수 있는 상용화를 위한 첫 관문이다.

2026년 7월8일 부산시 기장군 장안읍의 한 아파트 옥상 울타리 너머로 이곳에서 약 4㎞ 떨어진 고리 핵발전소와 연결된 송전탑들이 보이고 있다. 이승배 기자 photolee@hani.co.kr
SMR은 그동안 “미래 에너지 산업의 게임체인저” “2035년 글로벌 SMR 시장 630조원” 등 장밋빛으로 전망됐다. 그러나 그렇게 볼 수만은 없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평가다. 무엇보다 2034~2035년 부산 기장에 들어설 i-SMR은 ‘상용로’가 아니라 ‘실증로’다. 한수원은 2026년 1월30일 지방자치단체를 대상으로 신규 핵발전소 건설 후보부지 유치 공모를 할 때 “SMR 실증로” 건설을 명시했다. 신형 원자로 개발은 통상 ‘실험로→원형로→실증로→상용로’ 단계를 거치는데 ‘실증로’는 이 원자로로 전기를 생산하면 시장에서 경쟁력이 있는지(경제성), 수십 년 동안 안전하고 안정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지(안전성·안정성)를 테스트하고 입증하기 위한 단계다. ‘상용로’는 모든 검증이 끝나고 수익 창출을 목적으로 본격 판매·운영되는 최종 완성형 원자로다. 그런데 i-SMR은 실험로와 원형로 단계를 건너뛰고 실증로로 바로 기장에 건설될 예정이라는 얘기다.
실증로를 17만5천 명의 인구밀집 지역인 기장에 건설하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지적과 함께 법정계획인 전력수급기본계획이 검증을 누락하며 앞서가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전영환 전 홍익대 교수(전자전기공학부)는 “검증이 끝난 상용로가 아닌 검증이 계속돼야 하는 실증로를 사람이 많이 사는 곳에 짓는다는 것은 이곳 주민들을 상대로 실험한다는 것이 아닌가”라며 “실증해서 데이터를 만들어놓고 상용화해야 하는데 순서가 완전히 잘못됐다”고 비판했다. 석광훈 에너지전환포럼 전문위원도 “(전기사업법에 따라 수립되는 최상위 국가 전력계획인) 전기본은 수립된 계획대로 15년 안에 반드시 전력을 공급해야 하는데, 아직 실증 단계에 있는 원자로를 이 전기본에 포함한 것은 격에 안 맞고 위험한 일”이라고 지적했다.
‘검증 전 낙관’의 위험성은 미국과 한국에서 실제 사례로 존재한다. 미국 뉴스케일파워는 SMR의 대표 주자로 여겨졌다. 뉴스케일파워는 2020년 50㎿급 SMR 모델에 대해 미국 원자력규제위원회(NRC)의 설계승인을 최초로 받았고, 이후 출력을 77㎿로 높인 업그레이드 모델도 개발해 승인받았다. 뉴스케일파워는 유타주 지방자치전력조합(UAMPS·약 50개 지역 공영 전력사들의 연합체)과 공동으로 아이다호 국립연구소 부지에 2029년 첫 모듈 가동을 목표로 첫 SMR을 건설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총사업비 추정치는 61억달러(약 9조550억원)에서 93억달러(약 13조8천억원) 수준으로 치솟았고, 애초 메가와트시(㎿h)당 58달러(약 8만6천원)에 전력을 공급하리라 봤던 예상과 달리 89달러(약 13만원)로 비용이 크게 뛰면서 전력 수요자가 대폭 이탈했다. 결국 사업은 2023년 11월 취소됐다. 전력공급 가격이 급등한 원인으로는 세계적 인플레이션에 따른 원자재 가격 상승과 금리 인상, 원자로 모듈을 공장에서 대량생산할 기반이 아직 존재하지 않았다는 점 등이 지목됐다.

2026년 7월8일 부산시 기장군 바다 너머로 대형 핵발전소인 고리 1~4호기가 보이고 있다. 이승배 기자 photolee@hani.co.kr
추락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뉴스케일파워는 현재 증권사기 집단소송을 당한 상태다. 뉴스케일파워가 핵발전소 건설·운영 경험이 사실상 없는 상업화 파트너사(엔트라원에너지)를 경험이 풍부한 것처럼 포장해 투자자를 오도했다는 혐의다. 이에 뉴스케일파워의 주가는 2025년 10월 57달러 선까지 올랐다가, 같은 해 11월 17달러 선으로 70% 이상 폭락했다. 2026년 7월13일 뉴스케일파워의 주가는 종가 기준 8.35달러였다. 또 뉴스케일파워 창립 때부터 대주주였던 엔지니어링 기업 플루어는 보유 지분을 전량(약 24억달러어치) 처분하고 완전히 철수했다.
국내에도 선례가 있다. 우리나라는 2012년 국내 기술로 개발한 소형원자로인 ‘SMART’(스마트·약 100㎿)로 세계 최초의 SMR 표준설계인가를 받았다. 기대가 이어졌지만, 이후 10여 년간 수출은 단 한 기도 성사되지 않았다. 기장에 지으려는 SMR도 SMART가 아니라 다른 설계인 i-SMR이다. 주관 부처에서는 SMART의 한계점으로 △대형 핵발전소와 차별화되는 SMR 특화 시장의 미형성 △개발 초기 검토된 다양한 혁신기술의 적용이 계획대로 이뤄지지 못해 혁신성 희석 △대형 핵발전소 수준의 안전기준 충족을 위한 추가설비 도입에 따른 경제성 저하 등을 꼽았다. 애써 개발한 SMART를 두고 i-SMR을 새롭게 개발하는 이유를 묻는 질의에 한수원은 “세계 각국의 SMR 경쟁 심화로 SMART가 경쟁 모델 대비 경쟁력이 다소 부족할 것으로 판단돼 2020년 12월 제9차 원자력진흥위원회에서 2030년대 글로벌 SMR 시장 경쟁 우위를 확보할 수 있는 i-SMR 개발사업을 추진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이헌석 에너지정의행동 정책위원은 “신규 원자로를 개발한다는 것 자체가 갖고 있는 기술적·상업적 리스크를 보여주는 사례들”이라고 말했다.
상용로가 아닌 실증로를 기장에 건설하려는 이유를 묻는 말에 한수원은 “i-SMR은 원자력안전법 등 관련 법에 따라 엄격한 안전성 심사와 검사를 거쳐 건설할 예정”이라며 “혁신기술에 대해서는 별도의 성능시험과 검증시험을 수행할 예정이고, 향후 건설사업 추진 중에 i-SMR 안전성에 대해서는 지속적으로 지역 주민들과 소통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기장(부산)·울주(울산)=김규남 기자 3string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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