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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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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오답 많은 법이라니

정당원 아닌 국민은 정치자금 낼 수 없다고 규정한 정치자금법,
국민의 정치적 표현의 자유 보장하도록 개정되기를
등록 2014-08-22 13:04 수정 2020-05-03 04:27
2011년 1월26일 정진후 의원(왼쪽) 등이 진보정당에 소액 후원한 사건의 선고공판을 마치고 서울 서초동 서울 중앙지법을 나오고 있다. 당시 1심은 정치자금 기부 혐의에 대해서만 유죄를 인정해 벌금 30만원을 선고했다. 대법원은 지난 6월26일 상고심에서 원심을 확정했다. 한겨레 자료

2011년 1월26일 정진후 의원(왼쪽) 등이 진보정당에 소액 후원한 사건의 선고공판을 마치고 서울 서초동 서울 중앙지법을 나오고 있다. 당시 1심은 정치자금 기부 혐의에 대해서만 유죄를 인정해 벌금 30만원을 선고했다. 대법원은 지난 6월26일 상고심에서 원심을 확정했다. 한겨레 자료

먼저 현행 정치자금법과 관련한 간단한 ○× 문제를 풀어보자.

1) 정당원이 아닌 국민도 자신이 지지하는 정당에 대해 정치자금을 기부할 수 있다. ( )

2) 노동조합은 자신을 대변하거나 자신이 지지하는 정당에 노조 또는 노조와 관련된 자금으로 정치자금을 기부할 수 있다. ( )

많은 독자들이 두 문제 모두에 ○를 했거나 적어도 한 문제에는 ○를 했을 것이다. 그런데 현재까지 정치자금법 규정과 법원의 판결에 의할 때, 정답은 모두 ×다.

노동조합 지지선언 가능, 재정 지원은 안 됨다음은 정답풀이.

1) 정치자금법 제45조 1항은 “이 법에 정하지 아니한 방법으로 정치자금을 기부하거나 기부받은 자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라고 규정하고, 제6조는 정당을 후원회 지정권자로 명시하지 않고 있다. 따라서 정당원이 아닌 국민은 자신이 지지하는 후보자나 정당에 투표할 수는 있지만, 정당에 정치자금을 기부할 수는 없고, 이를 위반할 경우 형사처벌을 받는다.

2) 정치자금법 제31조 1항은 “외국인, 국내외의 법인 또는 단체는 정치자금을 기부할 수 없다”라고, 2항은 “누구든지 국내외의 법인 또는 단체와 관련된 자금으로 정치자금을 기부할 수 없다”라고 각각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노동조합은 자신을 대변하거나 자신이 지지하는 정당과 정책 연대를 맺고 지지 선언을 하는 것은 가능하지만, 노조 자금이나 노조와 관련된 자금으로 정당에 재정적 지원을 할 수 없고, 마찬가지로 이를 위반할 경우 형사처벌을 받는다.

소속 조합원 중에 진보정당 당원이 많아서 노동조합이 결의해 진보정당에 정치자금을 기부한 사안, 노동조합 관련 자금으로 정당(주로 진보정당)에 정치자금을 기부한 형사사건을 여러 건 변호했거나 현재도 진행하고 있다. 다음과 같은 사안들이다. 앞 ○× 문제의 심화 사례로 보면 된다.

① 모 노동조합연맹은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일환으로 지지하는 진보정당에 정치자금을 기부할 것을 결의했고, 산하 노조 일부 조합원은 자기 돈으로 노조가 지지하는 진보정당에 정치자금을 기부했다. ② 모 노조는 700여 명의 조합원 중 400여 명이 특정 진보정당의 당원일 정도로 특정 진보정당과 긴밀한 관계에 있었고, 그에 따라 당원이 아닌 조합원 일부도 1년에 1회씩 그 정당에 정치자금을 기부했다. ③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소속 교사 일부는 민주노동당 등에 후원당원으로 가입한 뒤 당비 납부 형태로 정치자금을 기부했다. ④ 모 노조는 매년 조합원으로부터 해고자 발생 등에 대비해 ‘희생자 구제기금’을 모금했다가 반환했는데, 정치자금을 기부하기 원하는 조합원 일부는 반환받을 구제기금에서 일부 금액을 특정 후보자 또는 정당에 정치자금으로 기부했다. ⑤ 모 노조는 대의원대회에서 노조의 정치적 발언력을 확보할 수 있도록 국회 관련 상임위 소속 특정 국회의원들에게 정치자금을 기부하는 문제를 논의했고, 일부 조합원은 그와 같은 특정 국회의원들에게 정치자금을 기부했다.

2006년 개정으로 불가능하게 돼

앞의 풀이를 이해한 독자라면, 각 사례에서 무엇이 문제가 되는지 금방 알 수 있을 것이다. ①과 ②의 사례는 정치자금법 제45조 1항의 정당에 대한 정치자금 기부 금지가 문제되는 사안이다. ③사례에선 후원당원을 당원의 종류로 보면 교사의 정치활동 금지가 문제되고, 그렇지 않다면 마찬가지로 정치자금법 제45조 1항 위반이 문제된다. ④사례는 구제기금 반환금을 노조와 관련된 자금으로 볼 경우 정치자금법 제31조 2항을 위반한 것이고, 또한 정당에 기부한 경우에는 정치자금법 제45조 1항에도 문제된다. ⑤사례는 노조의 대의원대회 논의에 강제돼 기부한 것으로 보면 정치자금법 제31조 2항의 단체 관련 자금의 기부가 문제될 수 있다.

물론 이 사례들 모두 정치자금법 위반으로 유죄가 확정된 것은 아니다. 정치자금법 제45조 1항의 정당에 대한 기부 금지와 관련해서는 헌법소원이 제기돼 현재 심리 중이며, 정치자금법 제31조 2항의 경우에도 돈의 처분권이 조합원에게 있고, 노조는 단지 권유와 행정적 편의만 제공한 것이라면 조합원들이 자발적으로 기부한 것으로 볼 수도 있다. 실제 그런 이유로 무죄를 받은 경우도 많다.

처음의 ○× 문제로 돌아가, 나도 이 사례들을 변호하기 전까지는 전부 ○라는 답을 했다. 그런데 오답자가 많으면 정답 자체가 잘못된 것으로 의심해봐야 하지 않을까? 수능 문제의 오류를 검증하는 것처럼 이 ○× 문제의 정답을 살펴보자.

먼저 문제 1). 우리 헌법은 정당 민주주의 원리를 규정하고 있고(제8조), 국민은 누구나 정치적 표현의 자유를 가진다(제21조). 따라서 국민이 정치적 의사를 표현하기 위해 투표하는 일 외에 지지하는 정당에 정치자금을 기부하는 것은 헌법 규정에 부합한다고 볼 수 있다. 외국의 사례를 살펴봐도 정당에 대한 정치자금 기부를 금지하는 입법을 찾아보기 어렵다. 정당제 민주주의를 채택하는 대부분의 국가는 정당에 대한 기부를 인정하고 있으며, 다만 액수와 기부 방법 등을 제한할 뿐이다.

정치자금법이 2004년 3월12일 개정돼 2006년 3월13일부터 정당 후원회가 폐지되기 전까지는 정당원이 아닌 국민의 정당에 대한 정치자금 기부가 가능했다. 정치자금법 개정으로 선거관리위원회와 법원은 정당에 대한 정치자금 기부가 불가능하다고 해석하는 것이다. 법원은 그 이유로 과거 정당 후원회가 불법 정치자금 수수의 수단이 되었다는 점을 제시하기도 한다.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그는 경우라고 하겠다. 정치자금을 정당에 기부하지 못하도록 한 결과 기존 거대 정당보다 진보정당이 훨씬 더 재정적으로 타격을 받았다. 실제 정당에 대한 정치자금 기부가 가능했던 마지막 해인 2005년에는 정당별 후원금 모금액이 열린우리당은 12억원, 한나라당은 11억원, 민주당은 3억원인 것에 비해 민주노동당은 62억원에 달했다. 정치자금법 개정의 실질적 이유를 추측할 수 있는 데이터라 하겠다. 이미 언급한 것처럼, 현재 정치자금법 제45조 1항과 제6조와 관련해서는 헌법소원이 제기돼 있다. 아무쪼록 헌법재판소가 문제 1)의 기존 정답이 잘못됐다고 선언해줬으면 좋겠다.

나올 수 없는 문제가 출제되다

다음으로 문제 2). 사실상 문제 1)과 본질적으로 같다. 심지어 기존 정치자금법의 경우 노조의 정치자금 기부를 제한적으로 허용했음에도 2004년 3월12일의 개정으로 노조 또는 노조와 관련된 자금으로 정치자금 기부를 할 수 없도록 한 것도 동일하다. 각국의 정당사를 살펴보면, 진보정당은 노동조합의 조직적·재정적 지원에 기반해 성장하고, 노동자 또는 노조가 자신의 이해를 대변하는 정당(특히 진보정당)과 후보자에게 정치자금을 기부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자본가들도 직간접적 방법으로 자신의 이해를 대변하는 보수정당에 정치자금을 기부하는 현실에 비춰볼 때도, 노조의 정치자금 기부를 금지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따라서 노동조합의 정치자금 기부를 가로막는 정치자금법 제31조는 개정될 필요가 있다. 결국 문제 2)는 나올 수 없는 문제가 출제된 경우라고 할 것이다. 더 이상 노동조합이 진보정당을 실질적으로 지지할 것인지, 아니면 정치자금법을 준수할 것인지라는 말도 안 되는 시험에 들지 않도록 정치자금법이 개정됐으면 한다.

박갑주 법무법인 지향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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