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 길지 않은 사이버월드 역사에서 2차 ‘사이버망명’ 파동이 벌어지고 있다고 한다. 1차 파동이 ‘누리꾼’ 부족이 한(hanmail)나라 이웃(네이버) 마을에서 구글나라 지메일(gmail)시로 주소를 옮기는 일로 나타났다면, 2차 파동은 ‘엄지족’ 부족이 그들의 인사를 ‘캐톡’에서 ‘스바시보 볼쇼이!’로 바꾸는 기이한 모습으로 나타났다.
문자 송수신 기록은 서버에 켜켜이은밀한 사적인 대화까지 공공(사실은 공공의 적)에 얼마든지 노출될 수 있다고 사람들이 깨닫기 시작한 것은 더 훨씬 전인, 수능시험 부정 사태 때부터였다. 시험장에 손전화를 들고 들어가 정답을 메시지로 보냈던 사람들의 문자 송수신 기록이 공개된 뒤 그동안 이들 부족이 주고받은 대화가 모두 통신회사 서버에 고이 개켜져 있다는 것이 알려지면서, 사람들은 ‘도대체 누가 그 회사들에 그런 권한을 주었느냐’고 따져묻기 시작했다. 통신회사는 곧바로 동의하는 사람들의 메시지만 보관하겠다며 사태를 진정시켰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런 일 따위에 동의하지 않음으로써 겨우겨우 자유로운 대화를 할 수 있었다(고 믿었다). 물론 이렇게 되자 그동안 이혼 소송에서 단골로 등장하던 ‘불륜 상대와 주고받은 1년치 문자메시지’ 증거는 재판소에서 사라졌다.
두 번째 난리는 첫 교육감 선거가 치러진 2008년에 일어났다. 선거 직후, 주경복 후보를 위해 교사 노조가 조직적으로 선거운동을 하고 선거자금을 불법적으로 기부했다는 ‘불법 선거운동’ 재판이 시작됐다. 쟁점은 이 정치자금이 자발적으로 모금된 것인지 단체가 조직적으로 모금한 것인지였는데, ‘조직적 관여’를 증명하기 위해 검찰은 노조 간부 103명의 전자우편 계정에 대해 그 통신 내역을 압수하기에 이르렀다. 그러자 통신회사들(모두 7개 회사)이 가입시부터 선거 시점까지 모든 전자우편 자료를, 그것도 파일 형태로 통째로 검찰에 넘겨준다. 물론 영장에는 “선거에서 선거자금을 전달한 사실을 확인할 수 있는 이메일 등”이라고 돼 있지만 통신회사들은 “내용을 선별할 수 없다”는 이유로 결국 해당 시점까지 모든 자료를, 그것도 파일 형태로 넘겨준 것이다. 처음에는 그럴 리가 없다고 생각해서 통신업체에 사실조회까지 해보았는데, 그들이 그렇다고 했다. 정확히 말하면 일부 통신회사는 서버 중 일부를 공유했고, 일부는 검찰 수사관들이 와서 검색해 저장해가도록 했다고 했으나, 이른바 ‘검색’ 과정을 통제하지는 않았기 때문에 원하는 경우 모든 전자우편을 저장해갈 수 있었다. 결국 재판 중인 피고인뿐 아니라 다른 조합원들까지, 2001년부터 2008년까지 7년 동안의 전자우편을 압수당했고, 검찰은 모두 4만1300여 쪽 분량을 받아갔다.
털린 줄도 모르는 이용자들원래 법은 통신의 검열을 금지하며, 우편물의 검열 또는 전기통신에 대한 감청은 일정한 범죄(중한 죄들로 그 범위가 한정돼 있다)를 계획 또는 실행하고 있거나 실행하였다고 의심할 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고 다른 방법으로는 그 범죄의 실행을 저지하거나 범인의 체포 또는 증거의 수집이 어려운 경우에 한하여 검사가 법원의 허가를 얻어 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통신비밀보호법 제5조, 제6조). 문제는 전자우편의 경우 ‘통신’이 아니라 ‘물건’이라는 이유로 형사소송법 제106조 ‘물건’에 대한 압수수색 조항을 적용한다는 데 있다. 서버에 보관된 전자우편에 대한 압수수색은 서버 관리자에게만 통보되고 실제 전자우편을 주고받은 이용자에게는 통보하지 않기 때문에, 이용자들은 자신의 전자우편 서버가 ‘털린’ 사실을 재판에 이르러서나 뒤늦게 알게 된다(이 난리를 치른 다음 2009년에 새 조항이 도입돼 30일 뒤에 통보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이전에도 ‘전자우편 압수’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2008년은 대부분의 국민이 전자우편을 주요한 통신수단으로 사용할 때였고, 이렇게 대규모로 전자우편 압수가 이루어진 적이 없었던지라, 변호인들과 노동조합은 심각하게 반발하며 증거능력을 부인하고 헌법소원까지 제기했다. 서버에 저장돼 있다고는 하나 전자우편은 여전히 ‘통신’이고 사생활의 비밀 영역에 속하는 것이기 때문에 다른 ‘물건’과는 달리 엄격한 제한을 통해 압수해야 한다는 취지였다. 적어도 수신자가 아직 확인하지 않은 전자우편은 달리 취급해야 한다는 말도 덧붙였지만, 주된 논지는 “현대에 와서 이메일은 전화 등 통신수단과 그 차별이 없이 이용되고 있고, 사생활의 깊숙한 내용을 담고 있을뿐더러, 그 비밀의 보장은 프라이버시권의 핵심적인 내용에 해당한다”는 것이었다. 헌법소원 자체는 형식적 이유로 각하됐고(형사소송법상 준항고에 의하여야 한다는 취지), 법원은 위법수집 증거라는 항변을 받아들이지 않았으며(1심 법원은 “감청 행위는 통신 행위와 동시에 이루어질 것이 요건이므로 송수신이 완료된 전기통신 내용을 확보하는 방법은 감청영장이 아닌 형사소송법상 압수·수색·검증영장에 의해야 한다”고 그 판단 이유를 밝혔다), 그렇게 압수된 전자우편들은 모두 유죄 인정의 주요한 증거가 되었다. 결국 그 후보는 대법원에서 벌금형을 선고받았지만, 이후 “검찰의 광범위한 압수수색으로 정신적 고통을 입었다”며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는 “압수수색이 위법하니 700만원을 배상하라”는 판결을 받았다. 법원은 판결문에서 “법원이 발부한 영장에서 전자우편의 송수신 기간을 특정하지는 않았지만, 검사는 이를 집행하며 적정한 시간을 정해 범죄 혐의와 명백히 무관한 전자우편을 압수하지 않을 의무가 있다”고 밝혔고(제941호 표지이야기 참조), 이 판결은 2013년 11월15일에 확정됐다.
이제 더 이상 항의하지 않는 사람들이러한 사건 진행과는 별개로, 당시 엄청난 양의 전자우편 서버의 열쇠를 통째로 넘긴 국내 통신회사들과는 달리 검사가 압수수색조차 하지 못한 구글메일이 뜻밖의 호황을 누렸다. 가히 1차 사이버망명이라 할 수 있는 ‘전자우편 바꿔타기’가 유행한 것이다. 그즈음에 일어났던 MBC <pd> 작가와 PD들의 전자우편 압수도 한몫했다.
수능시험 부정 사건에서 촉발된 통신회사의 문자메시지 문제는 ‘국민 메신저 카톡’의 등장으로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 있다. 메시지 보관(저장) 여부 동의를 묻는 통신회사의 일반 문자메시지 서비스와 달리 카톡으로 나눈 대화는 카톡 서버에 저장되고, 어느덧 카톡은 형사사건이라도 될라치면 수사기관이 가장 먼저 뒤져보는 서버가 되었다.
사람들은 이제 더 이상, ‘대화 메시지를 동의 없이 저장하면 안 된다’거나 ‘아무 제한 없이 저장된 대화를 수사기관에 넘겨주어서는 안 된다’고 통신회사에 항의하지 않는다. ‘물건에 대한 영장으로 통신 내용을 압수하는 것은 통신비밀 보호 원칙과 맞지 않는다’면서 검사에게 대들거나 헌법재판을 걸지도 않는다. 그저 조용히 ‘사이버 국적’을 옮긴다고 한다. 하지만 국적을 다시 옮겨 한 번도 가보지 못한 미국과 러시아의 사이버 시민이 되는 대신, 차라리 나는 계속 외쳐보련다. 어제, 내가 우리 엄마와 나눈 대화는 결코 물건이 아니며, 나는 당신들의 서버에 우리의 대화를 저장할 것을 허용하거나 동의한 적이 없다, 고.
김진 변호사·법무법인 지향</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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