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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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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이 족발집에 걸려 있다면

지난 7월 ‘퍼블리시티권’에 대해 심각하게 엇갈리는 판결 나와, 깊이 있게 연구한 대법원 판결 나와야
등록 2014-09-25 17:17 수정 2020-05-03 04:27

그럴 리는 없겠지만 누가 내 이름(동명이인이 다수 존재할 것이 뻔하므로 오로지 필자의 이름이기만 한 것은 아닐 것이다)을 상호로 걸고 가게 안팎에다 내 사진까지 붙여놓고 족발집을 열어 성업 중이라면 기분이 어떨까? 족발은 필자가 좀 멀리하는 음식이기에 잠시 인상이 찌푸려졌겠지만 절대다수가 좋아하는 음식의 표상이 될 수도 있다면 이 한 몸 희생할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든다. 그런데 만일 족발집 한 곳이 성업 중인 수준을 넘어 여기저기 프랜차이즈 점포가 생겨나고 상당한 인기몰이까지 하게 된다면 단순히 배가 아픈 것만으로 끝날 일 같지는 않다.

지난해 침해 소송만도 30건

영화배우나 탤런트, 개그맨, MC와 같은 연예인이나 운동선수 같은 유명인들은 어떠할까? 지금도 유명 개그맨의 이름과 캐릭터를 사용한 프랜차이즈 회사가 성업 중이고 유명 영화배우나 탤런트가 착용했다는 액세서리가 그때그때 불티나게 팔리는 것을 보면 이 문제는 필자 이름을 내건 족발집 영업과는 차원이 다른 문제로 커질 수 있음을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바로 ‘퍼블리시티권’(the right of publicity) 문제다. 특정 개인에 대해 그 사람으로 특징지우는 이름이나 초상 등을 상업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권리를 말하는데, 심지어 음성(미국의 유명 여가수 벳 미들러의 음성이 퍼블리시티권으로 보호되었다!)과 극중 역할까지 그 대상에 포함된다. 지난해 제기된 퍼블리시티권 침해 소송만도 30건이 넘는다 하니 실제 분쟁 건수는 훨씬 많았을 것이며, 포털 사이트를 통한 검색광고나 오픈마켓이 활성화돼 있고 홍보성 블로그가 넘쳐나는 인터넷 환경에서는 일상적 법률 문제로 등극할 날도 머지않아 보인다.

한 성형외과의 지하철 광고판. 한겨레 강재훈 선임기자

한 성형외과의 지하철 광고판. 한겨레 강재훈 선임기자

그런데 만일 어떤 유명인이 필자에게 와서 자기 허락도 없이 제3자가 자기 이름이나 초상을 병원이나 가게의 홍보 블로그에 올려 사용하고 돈을 벌고 있으니 배상금을 받아달라고 한다면 필자는 이제까지와는 다르게 상당히 주저할 것이다. 필자가 이와 같은 사안에서 대부분 초상권이나 인격권 침해 말고도 퍼블리시티권 침해가 되고 배상을 받을 수 있다고 단언했던 것과는 다르게 말이다. 그 이유는 퍼블리시티권에 대한 법원의 태도가 확립되지 못해 심각하게 엇갈리는 판결이 최근 등장했기 때문이다.

퍼블리시티권의 원조라 할 수 있는 미국에서는 이 권리를 아예 법으로 인정하고 있는 주가 상당수고 주법으로 인정하지 않는 주에서도 판례로 인정되고 있다. 이러한 흐름을 반영해서일까 우리나라에서도 당연히 인정되는 것으로 알려졌고, 이를 인정한 하급심 판례도 꽤 존재했다. 예를 들면 배우 김선아의 사진과 사인을 성형외과 블로그에 올린 사건과 유이·민효린의 사진·예명을 성형외과·피부과 홈페이지에 올린 사건의 1심 및 신은경이 한의사를 상대로 한 비슷한 사건, 이미 사망한 소설가 이효석의 초상을 상품권에 사용한 사건, 유명 프로야구 선수들의 성명 이니셜을 모바일 야구게임에 제공한 사건, 사망한 미국 배우 제임스 딘의 이름을 딴 국내 상표 사건, 박찬호 브로마이드 사건, 배드민턴 국가대표였던 박주봉 선수의 이름과 초상을 상표와 서비스표로 사용한 사건 등에서 아직 법률로 인정되지 않는 퍼블리시티권이 법원에 의해 인정됐던 것이다. 1990년대 말부터 꾸준히 축적돼온 이러한 판결의 핵심 내용은 ‘비록 퍼블리시티권의 양도 및 상속성, 보호 대상과 존속 기간, 구제 수단 등을 규정한 우리나라의 실정법이나 확립된 관습법이 존재하지는 않으나, 성명·초상 등에 대하여 형성된 경제적 가치가 이미 광고업 등 관련 업계에서 널리 인정되고 있어 이를 침해하는 행위는 민법상 불법행위를 구성한다’는 것이었다.

싸구려 영업 행태에 경종을 울리는 한편에선

이렇게 판례가 쌓여가면서 우리 같은 보통 사람들의 내면에도 이미 오래전에 자리잡았던 초상권 침해나 프라이버시 침해 금지 같은 경고문구와 거의 비슷한 비중으로, 다른 사람들 특히 유명인들의 이름이나 사진을 함부로 사용하면 안 된다는 의식도 자연스레 형성돼왔다. 더욱이 이 시기에 우리 사회는 정당한 비용과 시간을 들인 공정한 경쟁보다는 물신주의나 외모지상주의에 기대어 영리활동을 추구하는 비정상(free-riding)의 시대를 질주하고 있었기에, 퍼블리시티권을 인정하는 법원의 판결은 이러한 싸구려 영업 행태 등에 경종을 울리는 순기능적 역할도 했다고 볼 수 있었다.

다만 이러한 경향이 대다수의 인식으로 자리잡으면서부터는 약간의 폐단도 등장했다. 영리업체의 홈페이지나 홍보 블로그에 유명인들의 이름이나 초상이 등장한다는 이유로 거액의 합의금을 요구하는 업체도 등장했고 당연히 소송 건수도 급증했다. 문제가 된 사건이 대부분 연예인이나 운동선수와 관련된 것으로도 알 수 있듯, 퍼블리시티권이 유명인의 ‘몸값’을 올려주는 데만 기여한다고 비판하는 목소리도 존재했다.

이 와중에 1심에서 퍼블리시티권이 인정돼 승소했던 몇몇 사건이 2심에서 퍼블리시티권이 명확하지 않다는 이유로 뒤집혔고, 급기야 2014년 7월에는 배용준·김남길 등 유명 연예인 56명이 ‘키워드 검색광고 서비스’를 제공하던 포털 사이트 ‘네이트’를 상대로 제기한 소송에서 퍼블리시티권을 명시적으로 부인하는 판결까지 나오게 되었다. 이 판결이 특이한 것은 퍼블리시티권을 부인했던 2002년 서울고등법원 판결의 내용을 무려 12년이나 지난 지금에 와서 그대로 원용했다는 점이다. 즉 이 사건에서 법원은 ‘성문법과 관습법 등의 근거 없이 그 필요성이 있다는 사정만으로 물권과 유사한 퍼블리시티권을 인정할 수 없다’는 입장을 표명했는바, 이 판결이 퍼블리시티권에 대해 12년 동안 이루어진 논의를 제대로 정리한 결과물인지는 알 수 없으나 이제까지의 판례 이론을 심화·발전시켰다기보다는 오히려 단순화한 것이 아닌가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이 판결 직후에 나온 다른 사건의 판결(신세경·한혜진 등 여배우 4명의 성명, 사진, 드라마 포스터 및 출연 사진 사용 사건)에서도 이른바 ‘성문법주의’를 절대화하는 논리가 그대로 사용되고 있는 것을 보면 특히 그렇다.

대부분 하급심에서 판결 종결

물론 퍼블리시티권의 인정 여부에 관하여는 아직 우리 대법원 판결이 나온 적이 없고 이제까지는 모두 하급심 판결이기에 법원의 입장이 오락가락한다고 단정해버릴 수는 없는 일이다. 하지만 이런 종류의 사건이 대부분 하급심에서 조정이나 판결로 종결돼 대법원까지 올라가지 않는 것이 통례임을 감안한다면, 특정한 권리의 존재 여부에 대한 하급심의 혼선은 관련 업계는 물론 시민들의 일상생활에 불편함을 안겨준다는 점에서 결코 바람직하다고 할 수는 없다. 퍼블리시티권에 대해 깊이 있게 연구한 대법원 판결을 기다리는 이유다.

남상철 변호사·법무법인 지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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