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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헌법소원은 ‘국정원 선거 개입’

‘국회의원 선거제도’ 헌법소원 경험담… ‘직접선거의 원칙’ ‘평등선거의 원칙’에 대한
결정을 받았으니 이제 ‘자유선거의 원칙’과 관련한 소원을 검토해볼까
등록 2014-12-06 15:20 수정 2020-05-03 04:27
지난 대통령 선거에서 국가기관인 국가정보원과 국군사이버사령부의 선거 개입은 ‘자유선거의 원칙’에 어긋나는 것이 아닐까. 지난 9월 원세훈 전 국정원장이 대선 정치 개입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받고 서울 서초구 서초동 서울중앙지법을 나오고 있다. 한겨레 김명진 기자

지난 대통령 선거에서 국가기관인 국가정보원과 국군사이버사령부의 선거 개입은 ‘자유선거의 원칙’에 어긋나는 것이 아닐까. 지난 9월 원세훈 전 국정원장이 대선 정치 개입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받고 서울 서초구 서초동 서울중앙지법을 나오고 있다. 한겨레 김명진 기자

나는 2000년과 올해 헌법소원을 통해 우리나라 국회의원 선거제도(결과적으로는 지방의회 의원 선거제도도 포함)에 대해 근본적인 문제제기를 한 적이 있다. 국회의원들 스스로 “핵폭탄이 떨어졌다”고 말할 만큼 개별 의원들에겐 선거구 존폐와 당락이 달린 문제였다.

2000년 청구인은 2014년 청구대리인이 되고

혼자서 한 일은 아니다. 또한 내가 제기했던 사건만이 아니라 다른 변호사가 청구했던 사건들도 병합돼 함께 이루어낸 결과였다. 나는 단지 소송(청구) 대리인이었다. 시간이 흘렀으므로 밝히자면, 특히 2000년 헌법소원은 사법연수생 신분으로 선배 변호사들의 이름을 빌려 진행한 것이었다. 두 번의 헌법소원 모두 처음 문제되는 부분에 대해 들었을 때, 나는 당연히 위헌이라 생각해 적극적으로 헌법소원을 내자고 이야기했다. 처음 그런 문제의식을 느낀 쪽은 당시 시행되던 국회의원 선거제도 때문에 큰 피해를 당하고 있던 진보정당(2000년은 민주노동당, 2014년은 정의당)들이었거나 그 소속 당원들, 출마 예정자들이었다. 세상일이 재미있는 것이 2000년 헌법소원의 청구인 중 한 명이던 민주노동당 당원은 14년이 흐르는 동안 그 자신이 변호사가 되어, 그것도 내가 소속된 법무법인의 후배 변호사가 되어 2014년 헌법소원의 청구 대리인들 중 한 명으로 이름을 올리게 되었다.

먼저 2000년 제기해 2001년 7월에 위헌 결정을 받은 사안은 국회의원 후보자 등록 기탁금 제도, 그리고 비례대표 국회의원 배분 방식과 관련한 ‘1인1표제’에 대한 것이었다. 국회의원 후보자로 등록할 때 기탁금으로 2천만원을 납부해야 한다는 것과 상당히 많은 득표를 하지 않으면 기탁금을 반환해주지 않고 국고로 귀속된다는 것은 내가 알고 있던 ‘선거공영제’와 맞지 않았다. 국회의원 후보자로 등록하기 위해 당시 4년제 대졸 초임 평균연봉 수준인 돈을 기탁금으로 납부해야 한다는 것은 ‘돈 있는 사람만이 출마하고, 국회의원이 될 수 있다’는 뜻이었다. 또한 상당한 득표를 하지 않으면 거액의 기탁금을 반환하지 않고 국고에 귀속시키도록 하는 것은 거대 정당 소속이 아닌 경우 반환 기준을 충족하기 어려워 진지한 입후보 희망자 앞을 가로막는 것이었다.

특히 문제라고 생각한 대목은, 지역구 선거 후보자에게 행사된 유권자 의사를 정당 지지 의사로 의제(擬制)해 비례대표 국회의원 의석을 배분한다는 것이었다. 고등학교의 정치·경제 수업 시간에 배웠던 ‘직접선거의 원칙’에 완전히 배치되는 제도였다. 지역구 국회의원 후보자에 대한 지지와 그 후보자가 소속된 정당에 대한 지지는 엄연히 다른 것이다. 후보자를 많이 낼 수 없는 신생정당이나 진보정당은 실제 정당 지지율보다 훨씬 적은 비례대표 국회의원을 배정받는 불합리가 생기는 제도가 1인1표제였다. 왜 이전에 헌법소원이 제기되지 않고, 그때까지 위헌이 선언되지 않았는지 의아스러운 제도였다. 당연히 헌법재판소는 그와 같은 기탁금 제도와 1인1표제에 대해 위헌 결정을 했다.

비례대표 국회의원 선거제도는 완전히 바뀌었고, 그 직접적인 결과가 2004년 민주노동당의 국회의원 10명(그중에서 비례대표 국회의원이 8명) 배출이었다. 그런데 또한 세상사가 아이러니한 것이 비례대표 국회의원 문제가 2008년 민주노동당의 분당 원인 중 하나가 되었고, 비례대표 국회의원 후보자에 대한 부정경선으로 인해 2012년 통합진보당 분당의 배경이 되기도 했다는 것이다.

‘지역대표성’을 고려했기에 2:1

올해 제기해 지난 10월30일 위헌 결정을 받은 내용은 국회의원 선거구 획정에서 인구 편차에 대한 것이었다. 그 사건 헌법소원의 청구인이 속한 선거구를 예로 살펴보면, 2012년 3월 기준 서울 강남구 갑 선거구의 인구수는 30만9776명으로, 전국 선거구의 평균 인구수 20만6702명과 비교해 +49.87%의 편차를 보이고, 전국 최소 선거구인 경북 영천시 선거구의 인구수 10만3003명에 비해 3.00:1의 편차를 가지는 것이 ‘평등선거의 원칙’에 부합하느냐 하는 문제제기였다. 평등선거의 원칙이란 투표의 수적 평등, 즉 ‘1인1표의 원칙과 투표의 성과가치의 평등, 즉 1표의 투표가치가 대표자 선정이라는 선거의 결과에 기여한 정도에서도 평등해야 한다는 원칙을 내용으로 한다. 비록 도시와 농촌 사이에 인구 격차 등이 존재하고 국회의원에게 지역대표성 측면이 있다 하더라도 국민주권의 출발점인 투표가치의 평등을 본질적으로 침해할 수는 없다. 따라서 적어도 선거구의 인구 편차 기준으로 상하 33⅓%, 인구 비례로 2:1을 넘어선다면 위헌이라고 주장했다.

외국의 경우를 보더라도, 미국은 연방 하원의원 선거에서 선거구별로 동일한 인구수를 요구하면서 절대적 평등인 0에 가깝도록 편차를 줄이기 위해 성실히 노력했음을 입증하지 않는다면 평등선거의 원칙에 반한다고 본다. 독일은 원칙적으로 상하 편차 15%를 허용 한도로 하되, 상하 편차 25%를 반드시 준수해야 할 최대 허용 한도로 하고 있다. 일본 역시 1994년 법률 제정으로 ‘각 선거구의 인구 중 가장 많은 것을 가장 적은 것으로 나누어 얻은 숫자가 2 이상이 되지 않도록 함을 기본’으로 하고 있다. 다행히 헌법재판소는 나의 주장을 받아들였다.

이번 위헌 결정으로 자신의 선거구가 없어질 상황에 처한 국회의원들이 헌법재판소가 지역대표성이라는 문제를 제대로 반영하지 않았다고 이야기하는 것이 터무니없어 보인다. 위헌 결정이 지역대표성을 고려했기 때문에 인구 비례를 1:1로 하지 않고 2:1로 한 것이라는 점을 애써 부정하려 하기 때문이다.

이번 위헌 결정이 나오자 거대 보수 양당과 언론은 마치 국회의원 선거제도 전반에 큰 변화가 있을 것처럼 호들갑을 떨었다. 하지만 그로부터 겨우 한 달밖에 지나지 않았음에도 위헌 결정과 관련돼 언급되는 것은 ‘선거구획정위원회’를 어디에 둘 것이냐 정도다. 태산명동서일필(太山鳴動鼠一匹)인 상황인 것이다.

일부 선거구의 조정으로 새누리당과 새정치민주연합이 기득권만 서로 주고받는 것이 과연 투표가치의 평등이라는 헌법재판소 위헌 결정의 정신에 부합하는지 의문이다. 거대 양당만의 선거구 조정으로 끝나버리고, 심지어 그 과정에서 비례대표 국회의원 수를 희생양으로 삼는다면 또 다른 역설이 생기게 될 것이다. 이번 위헌 결정을 주도한 정의당이 가장 큰 피해자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위헌 결정을 이끌어낸 청구 대리인으로서, 이번 기회에 보수 양당의 기득권을 줄이는 결과가 되더라도 진정한 투표가치의 평등을 실현하기 위한 선거제도가 논의되고, 도입되었으면 한다.

위헌 결정 주도한 당이 가장 큰 피해?

지금까지 선거제도와 관련해 ‘직접선거의 원칙’ ‘평등선거의 원칙’에 대한 중요한 헌법재판소의 결정을 받았으니 이제 ‘자유선거의 원칙’과 관련한 헌법소원이나 검토해볼까 하는 생각도 든다. 자유선거의 원칙이란 선거인이 외부의 어떠한 강제나 간섭 없이 자유롭게 자신의 선거권을 행사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므로, 지난 대통령 선거에서 국가기관인 국가정보원, 국군사이버사령부의 선거 개입이 현재 논란이 되고 있는 우리나라 상황에서 가장 시의성 있는 사안 아닐까?

박갑주 변호사·법무법인 지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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