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야 너 그 판사 잘 알잖아?”

‘같은 법원에 근무했던 사람’ ‘담당 판사가 모시던 부장’ ‘대학 동창’ ‘연수원 동기’…
실질적인 영향과는 상관없이 보통의 의뢰인은 철썩같이 믿는 ‘전관 예우’
등록 2014-09-06 13:51 수정 2020-05-03 04:27

“야, 너 그 판사 잘 알잖아?”
“야, 너 아무개 판사 잘 알지 않아?”
몇 년 전의 일이다. 학교 선배로부터 오랜만의 전화를 받았다.
“예, 그 후배 잘 알죠. 연수원 때 같은 조이기도 했고요. 근데 왜요?”
변호사 생활을 10여 년 하다보니 선배가 전화한 이유를 단번에 알게 된다. 짐짓 모른 척 물어보지만 대답은 예상했던 대로다.
“우리 사무실에서 그 판사 재판부가 진행하는 형사사건을 하고 있는데 너를 공동으로 선임하면 어떨까 해서 말이지.”

모르는 변호사가 나를 추천한 이유

아무도 “그래 내가 봐줬지”라고 이야기하지 않지만, 많은 의뢰인들은 재판에는 고도의 법률적 능력 외에 ‘전관 예우’가 작용한다고 생각한다. 서울 서초구 서초동 서울중앙지법 로비에 법원 마크가 불을 밝히고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아무도 “그래 내가 봐줬지”라고 이야기하지 않지만, 많은 의뢰인들은 재판에는 고도의 법률적 능력 외에 ‘전관 예우’가 작용한다고 생각한다. 서울 서초구 서초동 서울중앙지법 로비에 법원 마크가 불을 밝히고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난 흔히 말하는 ‘전관’ 출신은 아니지만 이런 전화를 종종 받는다. 이렇게 아는 사람에게서 전화가 오는 경우도 있지만 어떤 때는 당사자나 그 가족이 직접 찾아온다. 한번은 어떤 여자분이 사무실로 전화해서 날 찾았는데 전혀 모르는 분이었다. 상담을 원해서 만나보니 자기 남편이 구치소에 있단다. 자기는 아무개 변호사에게서 날 추천받아 찾아오게 되었다고 했다. 남편이 사업을 하다 ‘사기죄’로 구속됐는데 빨리 보석으로 나올 수 있게 도와달라는 거였다. 남편의 급작스러운 구속에 아내는 난감하고 절절한 모습 그대로였다. 그 여자분은 나를 어떻게 소개받았는지 묻는 질문에는 대답을 얼버무렸다. 나도 모르는 변호사에게서 추천을 받았다는 것이 왠지 찝찝했던 나는 담당 판사가 누군지 알아보았다. 잘 아는 대학 선배였다.

“그 양반 성격이 괴팍해서 제가 들어가면 오히려 역효과가 날 거예요”라며 여자분을 떠밀어 보냈다. 사실은 좀 두려웠다. ‘선임하면 곧 보석이 되겠지’라고 기대하는 여자분을 기쁘게 해줄 자신이 없었다. 그분은 ‘사건 및 변론의 내용’ 이전에 ‘관계’를 이용해 문제를 우선 해결하기 바랐을 것이다. 하지만 나와 판사의 ‘관계’ 때문에 그분이 원하는 결과가 나오지는 않을 것으로 생각했다. 이런 경우, 흔한 일은 아니지만 ‘선임료를 내놓으라’며 의뢰인이 사무실에서 난동을 피웠다는 얘기도 남의 일 같지만은 않은 것이다.

판사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재판을 진행하고 있는데 잘 아는 사람이 변호인이라고 등장하면 어떤 기분이 들까 말이다. 뭐 즉각적인 반응이야 반갑기도 할 텐데, 실제 중요한 판단을 해야 하는 순간엔 고심을 할 것이다. ‘그래, 애매하지만 저 양반 말이 일리가 있는 것 같구먼’이라고 팔이 굽을 수도 있고, ‘아, 혹시 의심받을 일을 해서는 안 되니 좀더 엄격하게 대해야겠다’고 자세를 고쳐잡을 수도 있다. 아니면 ‘이 순간부터 사건에만 집중해야지’ 하며 중립적으로 냉정을 유지하려고도 할 것이다. 어떤 경우가 많을까. 이 문제를 통계로 잡을 수는 없는 노릇이지만 명백한 것은 하나 있다. 우리 사회에서 사건을 당해 변호사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 그 보통의 의뢰인 중 다수는 ‘팔이 안으로 굽지 밖으로 굽냐’고 믿고 있다는 것이다.

‘불명확성’을 활용한 대가 이상의 돈

그러고는 ‘전직 판검사’, 좀더 범위를 넓히면 ‘학교 동창, 연수원 동기 등 담당 판검사와 잘 아는 이’를 선임하기 위해 많은 돈을 낼 각오를 하고 찾아다닌다. 피고인을 구명하기 위해 애쓰는 가족에게는 절박하기 이를 데 없는 문제다. 그런데 만약 말이다. ‘같은 법원 또는 같은 검찰에 근무했던 사람’ ‘담당 판사 또는 검사가 모시던 부장이었던 사람’ ‘대학 동창’ ‘연수원 동기’ 등의 관계가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 어찌하는가. 그 가족은 자신이 믿고 있는 것과 다르게, 심하게 말하면 변호사에게 속아서 큰돈을 낸 셈이 아닌가. 의뢰인이 변호사에게 속았는지 속지 않았는지 가려낼 방법은 마땅치 않다. 승패가 명확하지 않은 형사사건에서 재판 결과는 해석하기 나름이기 때문이다. 이 ‘불명확성’을 이용해 대가 이상의 돈을 버는 변호사가 꽤 있을 것이다. 나뿐만 아니라 모든 변호사에게 그런 유혹이, 그런 기회가 있기 때문이다.

그동안 내가 만나온 판검사들은 ‘그래 한번 봐줬지’라고 얘기하지 않았다. 또 전관 등에 대해 ‘특별한 처리’를 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런데 어떤 술자리에서는 ‘퇴직 뒤 1∼2년간 돈을 좀 버는 것이 검사로서는 퇴직금 대신이 아니겠어’라는, 박봉에 시달려온 술 취한 검사의 우스개 가까운 얘기를 듣기도 한다. 이해도 되지만 ‘저런 기대를 하는 사람이라면 먼저 퇴직한 선배 검사를 봐주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이 퍼뜩 든다. 변호사 개업을 한 전직 부장판사가 매년 한두 번씩 ‘배석모임’이라는 이름으로 후배 판사들에게 비싼 저녁을 사주면서 만나다가, 후배가 형사단독 판사로 발령되자마자 어찌 알았는지 그 재판부 사건에 추가로 공동변호인 선임계를 제출하고 법정에 등장한다. ‘어? 저 판사는 자기가 모시던 저 부장님을 소홀히 대할 수 있으려나?’ 의심하게 된다. 퇴직한 대법관·검찰총장 등을 비롯한 고위직, 우리나라 사법을 좌지우지하는 듯 보이는 분들이 한 사건에 ‘억, 억’ 하는 수임료를 받았다고 하면, 그분이 그동안 갈고닦은 고도의 법률적 능력으로 제공하는 서비스의 대가 외에 ‘전관예우’의 대가가 포함돼 있음은 당연한 것이다. 어떤 변호사도 그런 ‘대가’가 숨어 있음을 모르지 않는다.

이런 장면을 목격한 보통 사람들은 ‘전관이나 무슨 동기·동창을 찾아나서야 하는 것 아닌가’ ‘그게 당연한 일 아니냐’는 생각에서 벗어나기 어려울 것이다. 돈만 있다면 말이다. 변호사들은 이러한 의뢰인의 요구에 맞춰 노력하는 것을 변호사의 ‘본분’으로 여기기도 한다. 잘나가는 로펌들에서는 온 회사를 뒤져, 진행 사건 재판부 판사와 아는 변호사를 찾아낸 다음 어떻게든 전화 한 통화라도 걸도록 하는 경우도 있다. 영 불편해도 로펌에 소속된 변호사가 이러한 선배, 동료들의 요구를 뿌리치기는 어렵다.

이 순환고리를 어떻게 끊어낼 것인가

판사, 검사, 변호사 그리고 의뢰인. 누가 먼저 이 순환고리를 끊어내야 할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각자가 시류에만 편승하면, 눈앞의 이익에만 급급하면 ‘신뢰’는 땅에 추락할 것이다. 신뢰를 잃은 법조계에서는 어떤 법조인도 자랑스러워하기 어렵고, 행복하지도 않을 것이다.

류신환 변호사·법무법인 지향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