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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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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년 남성의 냄새

등록 2013-04-25 21:57 수정 2020-05-03 04:27

관계가 꼭 위기에 처하지 않아도 중년 부부가 한 이불을 쓰지 않거나 각방살이를 하는 경우는 꽤 많은 듯하다. 대체로 여성 쪽에서 이런 요구를 하는 것 같다. 이때 상당수의 남성이 여성의 욕망이나 사랑이 약화된 탓이라고 받아들인다. 다소 민망함을 무릅쓰고 여성들 쪽의 진실을 알려줘야 할 것 같다. 아내는 남편의 냄새 때문에 동침을 거부하는 것이다. 술냄새, 담배냄새, 생리현상의 냄새까지(코 고는 소리는 양념이다), 중년의 남편은 아내에게 성과 사랑의 정신분석학적 차원보다는 단순한 생화학적 두통거리로서 함께 자기 어려운 존재다.
고깃집에서 나올 때 냄새제거제를 잘 뿌리고 잘 씻고 특히 양치질을 꼭 잘하시라고 권하기 위해 이 글을 쓰는 것은 아니다. 자기관리에 실패한 중년 남성을 비난하는 것으로는 이 생화학적 문제의 진실을 결코 발견하기 어렵다. 중년 남성이 늦은 밤 아내 옆에서 풍기는 이 혐오스러운 냄새의 사회학적 실체란, 그가 참전한 또 하루의 전쟁터에서 묻혀온 화약과 총상의 냄새이며, 그 상처를 응급처치하기 위해 들이켠 ‘소독용’ 알코올의 냄새인 것이다. 그러니까 아내가 동침을 회피하며 내세우는 성적 욕망의 감퇴는 사실 연기에 가깝다. 그녀는 냄새 때문이라는 즉물적 진실을 차마 말하지 못한다. 그것은 전장에서 잠시 귀환한 부상병에 대한 모욕이라는 것을 그녀 자신이 아주 잘 알기 때문이다.

일러스트레이션/ 이강훈

일러스트레이션/ 이강훈

지난 대선에서 한 정당의 후보가 내세운 ‘저녁이 있는 삶’이라는 슬로건은 많은 사람들에게 역대급 구호로 받아들여졌다. 당이나 후보 개인에 대한 지지 여부와는 별개로 이 평범한 세 어휘는 한국인들의 심장에 깊은 울림을 던졌다. 현대 한국인들에게, 특히 중년 남성들에게 개인적 행복과 가족의 행복, 사회적 성공은 대체로 대립하는 게 냉정한 현실이다. 사회적으로 성공해야만 가족도 행복할 수 있지만 대개 현실에서 사회적 성공이란 중년 남성의 육신과 정신이 민망한 냄새로 황폐해진 대가로 획득한 전리품에 가깝다. 문제는 개체로서의 어느 가족도 이 중년 남성만 쏙 빼놓고서 행복해지기 어렵다는 데 있다. 결국 우리 사회에서 ‘사회적 성공’이라는 껍데기를 제외하면 행복한 사람은 아무도 없는지 모른다. 우리는 지금 이런 세상에 살고 있다.

남성의 생애주기에서 40대 중반부터 50대 중반에 이르는 시기는 사회적으로 황금기에 해당한다. 사회적 활동 범위가 가장 넓어지고 지위는 정점을 향해 치닫는다. 계급·계층이라는 잣대를 제외하고 본다면 그들은 분명히 우리 사회의 갑 중 갑이다.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이 층을 형성하는 남성들 대다수가 이른바 ‘386세대’에 속한다. 이들은 젊어서 민주주의라는 이상에 헌신했고, 정치적·경제적·사회적 보상과 위신을 획득했다. 게다가 한국 영화 ‘1천만 관객’ 시대를 연 주역이기도 하다. 그만큼 문화적 감수성도 갖추었다. 아마 이 세대는 단군 이래 가장 풍요로운 정치·사회·문화적 자원을 갖추었을 것이다. 바로 이들이 냄새를 풍기는 중년 남성이다. 이 세대가 지금 이 냄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나서지 않는다면 문제 해결의 가능성은 더 요원해질지 모른다.

사실 냄새를 풍기지 않는 사람은 없다. 우리 모두는 살아온 이력에 걸맞은 냄새를 풍긴다. 그러니까 마흔 살 이후에는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하듯이, 중년을 넘어서면 냄새에도 책임을 져야 한다. 중요한 점은, 지금 한국 사회에서 중년 남성들의 냄새 문제 해결은 그들 각자가 해결해야 할 사적 문제가 아니라 우리 사회의 행복을 위해 책임져야할 공적 영역의 문제라는 것이다. 그때 중년 남성의 냄새는 더 이상 악취가 아니라 살아온 삶을 올곧이 드러내는 삶의 체취로서 온당한 자리를 차지하게 될 것이다.

한귀영 한겨레사회정책연구소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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