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러스트레이션 슬로우어스
줌바스 하이(Zumba’s high). 줌바댄스를 출 때 밀려오는 행복감을 일컫는 말이다. 줌바를 30분 이상 추다보면 남들의 시선 따위는 잊고 나와 음악의 리듬이 하나가 되는 물아일체의 상태가 된다. 진짜 이런 말이 있냐고? 아니, 없다. 방금 내가 만들어낸 말이다. 용어 설명은 네이버 국어사전에 있는 ‘러너스 하이’(Runner’s high)의 뜻풀이를 고스란히 옮겼다.
일주일에 두세 번, 줌바댄스를 추러 간다. 벌써 열 달째다. 줌바는 몸 움직이기를 싫어하고 의지가 박약한 내가 반년 이상 지속한 몇 안 되는 운동이다. 라틴음악에 맞춰 유산소·근력 운동이 결합한 형태로 생겨났다는 줌바댄스는 내 체감상 방송댄스와 에어로빅, 태보의 중간쯤 된다. 노래도 최성수의 ‘풀잎사랑’부터 엔싱크의 ‘바이 바이 바이’를 지나 아이브의 ‘뱅뱅’에 이르기까지 스펙트럼이 넓다. 소싯적 못다 이룬 꿈 때문에 방송댄스와 걸스힙합, 현대무용과 발레까지 모두 ‘찍먹’은 해본 내 입장에서, 줌바가 개중에 가장 신난다는 것은 보증할 수 있다. 줌바는 철저히 내 흥에 복무하는 운동이기 때문이다. ‘춤선’ 따위 개의치 않고, 누가 더 흥겹게 굵은 땀방울을 흘리느냐가 줌바의 키포인트다.
동네 소규모 운동시설에서 하는 줌바 수업에 나갈 것을 엄마한테 권유받았을 때, 사실 반신반의했다. 수영장을 위시한 동네 커뮤니티에서 벌어지는 수많은 ‘텃세’에 대한 증언 때문이었다. 샤워장에서부터 아주머니들이 눈을 세모나게 뜨고 비누 거품부터 몸의 문신까지 체크한다더라, ‘고인물’들이 앞자리 차지하고선 그 자리를 신입이 감히 넘보면 ‘꼽’을 준다더라 등등…. 많은 걱정에도 불구하고 창고에 처박힌 녹슨 기계를 움직이는 심정으로, 줌바 수업에 입성했다.
서른 명 남짓한 수업에서, 나는 유일한 30대였다.(50대 언니들이 주를 이룬다.) 그리고 아마도 유일할(?) 비혼 여성이다.(전수조사를 한 것은 아니지만 분위기로 미뤄 짐작건대 그렇다.) 아이들의 학교 등을 매개로 오랜 세월 마주하며 네트워크를 쌓아온 것으로 보이는 줌바 ‘횐님’들은, 출신을 알 수 없는 ‘어떤 여자’의 등장을 자못 신기해했다. 몇 달간 나를 탐색하는 눈초리가 사방에서 쏟아졌지만, 나는 짐짓 모른 체했다.
그러던 어느 날, 단톡방 참가를 기화로 대화의 물꼬가 조금씩 트였다. 나에게 나이와 사는 곳, 하는 일 등 신상 전반에 관한 질문이 날아들었다. 가끔은 자녀 수나 나이에 관한 질문이 ‘결혼 여부’를 앞질렀다.(그런 지점에서 횐님들은 나보다 ‘가족’ 개념에 대한 편견이 없는 것처럼 보였다.) 간만에 날아든 질문들에 내가 어안이 벙벙한 사이, 횐님들은 서로가 서로를 ‘식구’라고 불렀다. 소소한 군것질거리와 비누, 양말을 상시로 나누고 크리스마스에는 불이 들어오는 루돌프 팔찌를 하고 함께 춤을 췄다. 그날그날 거울 속 내 춤사위에서, 횐님들은 내 컨디션을 귀신같이 알아채고 안부를 묻는다. 페미니즘을 강의하며 입만 앞서는 돌봄주의자인 나보다, 훨씬 실천적인 ‘돌봄 9단’들이다.
어느덧 삶이 된 ‘줌바’라는 단어를 마주한 것은, 암울한 지방선거의 끝에 나온 선거 기사에서다. 경북 안동의 줌바댄스 클럽 회원인 허승규씨의 시의원 당선 소식이었다. 녹색당 최초의 공직선거 당선자인 그가 2년 넘게 주민자치회에서 유일한 남성으로 줌바 수업을 들었다는 사실이 소셜미디어상에서 화제가 됐다. 동갑내기인 내가 그렇듯, 그도 그곳의 막내일 것이다. 그는 시사인(IN)과 한 인터뷰에서 정치적 올바름에 집착하는 대신 주민들과 소통하며 접근하는 일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예의 “결혼은 했느냐”는 질문은 그도 받았다면서.
나 또한 줌바를 하기 전까지 횐님들에게 가진 편견에 더해, 정치적 올바름에 대한 유구한 집착이 있었다. 그러다 요즘은, 그것이 조금씩 허물어져감을 느낀다. 혼자만 느끼는 ‘줌바스 하이(high)’를 넘어, 줌바로 인사하는 ‘줌바스 하이(hi)’에까지 조금은 근접하고 있음을 느끼기 때문이다. 허승규의 ‘줌바스 하이’를 응원한다.
이슬기 칼럼니스트·‘우리는 우리가 놀랍지 않다’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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